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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te | 25/12/03 17:35:08 |
| Name | 트린 |
| Subject | 또 다른 2025년 (1),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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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2월 2일 20시. 충청도 소재 특수작전항공단 항공 기지의 하늘은 달과 별이 가득했다. 야간 작전에 특화된 UH-60P 블랙호크 헬기 두 대가 이착륙장에 앉아 있었다. 이 기체는 공군이 운용하고 있는 탐색구조용 헬리콥터였다. 유사시 이 기체는 707 특임대, 일명 참 수부대를 싣고 적진에 침투해 요인을 암살하거나 전략 목표를 점거 또는 제거하는 특수 임무에 활용되는 기체였다. 이런 기체는 대체로 야간에 낮게 장거리를 뛰는 만큼 FLIR라 는 야간특수장비와 외부 연료 탱크, 포복비행 레이더를 장착하였다. 이들은 2024년 12월 3일 “자유대한민국 재탈환 기념일”에 국회에 돌입, 중국과 북한의 사주를 받은 국회의원들을 해산 및 체포하는 혁혁한 공을 세웠다. 대통령은 크게 만족하 여 부대 전체에 대통령 훈장을 내렸고, 모든 간부는 일계급 특진하였다. 당일을 포함, 소 문난 기분파인 대통령 명의의 금일봉이 자주 돌았고 모두의 계좌가 풍성해졌다. 두 기체는 하단 부분에 포복비행 레이더는 있었으나 외부 연료 탱크는 없었다. 기술 준위 들이 긴 소시지처럼 생긴 외부 탱크를 소형 전기 트레일러에 실어 막 뒤로 빼내는 참이었 다. 대기하던 707 대원들은 트레일러를 몰고 정비창으로 향하는 준위들에게 길을 터줬다. 하나같이 침통하고 긴장된 얼굴의 대원들은 모두 비무장에 국방색 우비 차림이었다. 인솔자인 강주경 상사가 말했다. “이제 그만 다가오십쇼.” 작업모 밖으로 덜 염색된 흰 머리가 꽤 있는 준위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멀어졌다. 물론 말 안 해도 이 근처에 올 리는 없었다. 이런 종류의 비밀은 금세 새어나간다. 그러나 실질 적으로 돌아가는 고문실과 사형이라는 벌칙이 있으니 군부대 외부로 새기는 쉽지 않았다. 딱 시간 맞춰 검은색 스타리아가 이착륙장 사이로 들어왔다. 운전석이랑 보조석 외엔 전 부 짐칸으로, 부대에서 사역용으로 쓰는 차였다. 뒷바퀴 쪽이 묵직한 모습을 보니 뭔가 잔뜩 실은 듯했다. 707 특수부대원들은 약속한 것처럼 좌우로 도열했다. 운동과 잦은 대테러 훈련으로 도열하는 자세와 간격 모두 날렵하면서 절도 있었다. 후방 도어램프가 열리고 차곡차곡 쌓인 검은색 영현백이 드러났다. 모두 열 구였다. 의외로 냄새는 나지 않았다. 작업은 두 번째이지만 익숙해질 수가 없는 종류의 것이니 모인 대원들은 보자 마자 주춤거렸다. 군기반장 역할인 배남 중사가 닦달하지 않았으면 1분도 모자랐을 것이다. “밤 샐래? 빨리 안 움직여?” 마법처럼 모두가 깨어났다. 2명 1개조로 한 조는 영현백을 들고, 다른 2명 1개조는 검은색으로 칠해진 철제 캐니스 터를 열고 사선으로 기울여 대기했다. 정보사에서 지급받은 캐니스터였다. 영현백 안의 유해는 대체로 뻣뻣했으나 그러지 않은 것도 있었다. 사지가 분리되었는지 인간이 보여 줄 수 없는 각도가 몇몇 보였다. 강주경 상사는 아까 마신 술기운이 살짝 올라오는 기분을 느끼며 뒤로 돌았다. ‘또 누가 나처럼 술을 마셨을까. 고참 놈들? 아니면 전부?’ 공수교장에서 흔히 부르는 “독사가” 가사처럼 막걸리 생각날 때 흙탕물을 먹는 체력 좋 은 독종들이다. 소주 두 병 이상 먹어도 티 하나 안 나는 자들이 부지기수였다. 그래서인 지 마실 만한 상황 속에서도 스타리아 앞에선 전원 표가 나지 않았다. ‘너희나 나나 시대를 잘못 타고났네.’ 주경은 씁쓸하기도, 불쌍하기도 했다. 첫 번째 작업 때 같으면 주취자를 바로 잡아서 색출했으리라. 하지만 이번엔 본인부터 이 미 알딸딸하니 명분도 없었고,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맨 정신으로 하기엔 힘든 작업이었 다. 영현백이 캐니스터로 미끄러져 들어가자 담당자들이 얼른 걸쇠로 채웠다. 걸쇠는 두껍 고 강인했다. 절대 풀리지 않을 것 같았다. 이렇게 무게 250킬로그램짜리 강철관이 열 개 탄생했다. 대체 저런 종류의 생각과 물건을 어떻게 떠올리고 만들었을까 하고 궁금했지만 굳이 알 고 싶지는 않았다. 세상에는 로드킬당한 동물의 사체를 빤히 보는 자들이 있지만 주경은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캐니스터를 가져온 떠버리 정보사 대위는 저게 70년대 남미에서 개발한 수법이며, CIA가 연 집체교육에서 우리나라에 전했는데 우리나라에서 는 답례로 칠성판(*물고문과 전기고문을 동시에 가할 수 있게 만든 형틀)을 알려줬다 고 웃었다. 묻지도 않았는데 더러운 지식을 얻은 셈이었다. 이제 네 명이 한 조가 된 707 특임 요원들은 바닥의 바퀴에 의지해 캐니스터를 대기 중 인 헬기에 차곡차곡 싣기 시작했다. 무게가 상당한 만큼 다들 힘깨나 쓰는 요원들도 버 거워하는 눈치였다. 배남 중사가 또 한 번 잔소리를 해야 했다. 원래는 병 계급의 보조 요원들이 알아서 했겠지만 그들을 믿을 수 없는 지금, 보조 요원 들의 빈 자리 빈 업무까지 부조종사가 직접 나와 캐니스터의 연결 고리와 바닥의 하네스 를 잘 결합하여 미끄러지지 않게 만들었다. 갓 포효하는 로터 속에 강주경 상사는 목소리를 높여 물었다. “몇 명?” “네 명은 있어야죠.” “난 오늘 안 가도 되지?” 부조종사는 잠시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배남 중사에게 턱짓하자 잘 알았다는 듯 두 명씩 뽑아 캐니스터 옆에 앉혔다. 강주경은 안도감과 죄책감을 동시에 느끼며 뒤로 물러섰다. 미닫이문 형식의 사이드 도어가 닫혔 다. 사이드 도어 건너편 배남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지랄.’ 저 새끼는 국회에 들어오던 시민들에게 클레이모어(*대인용 지향성 산탄 지뢰. 쇠구슬 700개가 고속 폭풍 형태로 살상 구역을 만드는 무기) 격발기를 누르기 전에도 따봉을 날린 놈이었다. 배남이 사람들을 스무 명이나 죽이면서 그때부터 국회를 포위 봉쇄하던 경찰관들, 국 회에 진입한 군인들은 미친 호랑이 등에 탄 꼴이 되었다. 대통령의 헛짓이 바로 자신의 일이 됐다. 법적으로 처벌받지 않으려면 국회의원들을 확실히 잡아들여 국회를 부숴야 했다. 그 결과로... 강철관을 실은 대당 400억짜리 헬기 두 대가 마술 양탄자처럼 붕 뜨더니 기수를 살짝 돌려 바다로 향했다. 헬기 주변에 달린 빨간 안전등이 점차 멀어졌다가 달과 별빛 속으 로 사라졌다. 주경은 정비창 쪽으로 먼저 걸으며 말했다. “술이나 먹자. 내가 쏜다.” 2. 12월 3일 밤. 경찰관들은 자유대한민국 재탈환 기념일 식장을 지키려고 15개 중대가 곳곳에 배치되 었다. 이에 따라 종로 탑골공원 앞 도로는 이미 전쟁터였다. 22시가 넘었건만 네온사인과 가로등 불빛 사이로 최루액이 섞인 물줄기가 무지개처럼 번쩍였다. 물대포차 세 대가 부채꼴로 배치되어 있었고, 그 뒤로는 방패와 진압봉을 든 경찰 기동대가 검은 벽을 이루고 있었다. "물러서십쇼! 불법 시위를 종료하고 해산하십쇼!“ 경찰처럼 주로 검은 옷에 푸른색 팻말이나 슬로건이 적힌 천을 든 시위대는 조금도 그럴 생각이 없었다. 시위대는 1차로 서쪽으로 나가서 교보문고 사거리로 나가 광화문 광장과 세종 대로를 점거할 생각이었다. 목적이 확실하면서 분노에 찬 시위대는 오히려 더 촘촘하게 대열을 정비했다. 각양각색의 소모임이 만든 특이하고 다양한 깃발들이 대열을 독려했다. 맨 앞줄의 청년들이 팔짱을 끼고 서로를 단단히 고정시켰다. 그 뒤로 중년 남녀들, 그리고 그 뒤로 나이 지긋한 어르신 들까지 줄을 맞춰 섰다. "민주주의 사수! 헌법 수호!" "윤석열을 타도하라!" 구호 소리가 하나로 합쳐져 밤하늘로 치솟았다. 702특공연대 하사인 김보민은 건물 모서리에 육중한 몸을 숨기고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보 았다. 그는 어제 급하게 행정보급관에게 휴가원을 제출했다. 행보관은 처음엔 현 시국을 들어 거절했지만 보민이 "교통사고를 당한 어머니가 우울해하신다"고 끈질기게 우겨대자 마지 못해 허락했다. 당연히 어머니는 핑계였고, 행보관에게 말하기 힘든 다른 사정 때문에 휴가 를 나온 만큼 시위대와 섞여서는 곤란했다. 2025년 대한민국에서 군인이라는 신분은 이 사 람들과 가장 멀고 가장 적대적인 직업이었다. 그럼에도 시위대의 구호와 그들의 대의, 모인 방식, 열의는 보민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들 었다. 시위대가 전진하자 물대포가 발사됐다. 최루액이 섞인 물줄기가 시위대 한복판을 강타했 고, 맨 앞줄 청년 둘이 그 자리에서 넘어졌다. 한 명은 바로 일어났지만, 다른 한 명은 바닥 에 엎어진 채 눈을 비비며 몸부림쳤다. "아저씨, 괜찮아요?" 주변 사람들이 달려들어 그를 일으키려 했지만, 그 순간 기동대가 방패벽을 앞으로 밀어내 며 전진했다. 쾅쾅거리는 방패 소리와 진압봉이 바닥을 두드리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울렸다. 겁을 먹은 시위대가 뒤로 밀려났다. 하지만 완전히 흩어지지는 않았다. 뒤쪽에서 새로운 사 람들이 계속 합류하고 있었고, 넘어진 사람을 부축해 수건과 생수를 건네고 뒤로 빼내는 동 안에도 대열은 유지되었다. 그때 보민은 초로의 한 남자에 시선이 끌렸다. 육십대 후반에 화려한 형광색 등산복을 갖춰 입은 이 남자는 시위대 전열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서 있었다. 호리호리한 몸에 날카로운 눈, 고집스러워 보이는 주름진 입매, 불끈 쥔 두 주먹은 평소 그의 성격을 보여주는 듯했다. 물 결치듯 전진하는 기동대를 피해 뒤로 물러서는 시위대 전열과 부딪혀도 자리를 뜨지 않는 모습도 그랬다. 그러나 고집스럽고, 강단 있어 보이는 그는 그 표정 그대로 입을 우물거리며 울고 있었다. 슬슬 피기 시작한 검버섯이 좀 있는 푸석한 피부 위로 눈물이 쉴 새 없이 흘렀다. 보민은 홀린 것처럼 시위대를 헤치고 그에게 다가갔다. 남자는 아주 작게 중얼거리는 중이었다. "우리가. 아니 내가. 내가." 남자는 시위대를 바라보며 계속 중얼거렸다. 마치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진리라도 되뇌이 듯 멈추지 않았다. 어느새 나타난, 또래로 보이는 초로의 남자가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등을 툭 쳤다. "아이고, 오바 육바 쌈바 하네." "..." "나왔잖아. 됐어. 뭔 울고 청승이야." "아니, 내가." "그렇게 찜찜하면 앞에 한 번 서." 형광색 노인은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이고 친구와 전열에 합류했다. 노인들이 합류하고 얼마 안 돼 검고 긴 경찰 기동대 좌측이 소란해지더니 대열이 살짝 열렸 다. 경장한 체포조의 등장인가 싶어 시위대는 술렁이며 긴장했다. 의외로 나온 것은 거의 대 부분 노인으로 이뤄진 대열이었다. 숫자는 500명 남짓. 이들은 성조기와 태극기, 이스라엘 국기, 십자가, 윤석열과 김건희 얼굴이 새겨진 팻말을 자랑스레 들고 휘둘렀다. 시위대에서 긴 탄식이 터졌다. 보민 옆의 이십대 여자가 욕설과 함께 중얼거렸다. "정부 돈 먹은 꼭두각시 인간 쓰레기들." 시위대 여기저기에서 비슷한 성격의 말을 하고, 몇 십 명은 이를 큰 소리로 외쳤다. 그걸 들은 자칭 애국 시민단도 지지 않고 대들었다. 마치 벌집을 건드린 듯 반박이 연거푸 쏟아졌다. "계엄은 합법이야." "우리는 자발적으로 나왔어!" "국가를 수호하는 애국자 대통령과 국모를 존경하면 안 돼?" "국민의 30퍼센트는 대통령 편이야." "그래서 우리는 애국자야." "왜 태극기가 없어?" "너희들이야말로 중국이 시켜서 나왔잖아." "우리는 계엄사령부의 허가를 받은 적법한 시위대야." "지금 전쟁 중이잖아. 법을 아예 안 지켜?" "너희들 빨갱이야? 북한 간첩이야?" "아니면 너희들 중국인이야? 기동대는 멈춰 일단 구경하고, 애국 시민단과 시위대는 반대되는 논리로 언성을 높이며 서로 가까워졌다. 흥분한 사람들이 서로 가슴을 세게 밀치기 시작했다. 검은색 낚시 조끼 차림에 무전기와 확성기를 든 시위 주최측 인사로 보이는 청년이 가장 앞으로 가서, 흥분 한 사람들을 말리려 들었다. 보민은 중얼거렸다. "설마." 최소 육십대 이상으로 이뤄진 애국 시민단 한가운데에서 검은 파카 차림에 야구모자를 쓴 삼십대 남자가 뛰쳐나왔다. 그동안 몸을 좀 움츠리고 두드러진 자신을 숨긴 것 같았다. 남 자는 길고 검은 우산 손잡이를 주최측 지도 인사 장딴지에 걸고 잡아당겼다. 젊은이가 넘 어지자, 뒤따라 나타난 두 명 중 한 명은 봉에 달린 핸드폰으로 채증을 하고 또 한 명은 멱 살을 잡아 기동대 쪽으로 주최측 인사를 끌고 갔다. "이거! 놔요!" 청년이 발버둥쳤지만 소용없었다. 다른 시위 참가자들이 사람 살리라고 소리치면서 다가갔 지만 약속한 듯 자칭 애국 시민단이 가로막았다. 다부진 두 명의 체포조는 성공적으로 기동 대 안으로 들어가 사라졌다. 시위대가 욕설을 퍼부었지만 뭘 어쩔 수가 없었다. 애국 시민단 의 노인 대다수와 소수 청년들은 즐거움과 기쁨이 가득한 표정이 되었다. 보민은 좀 전까지 숨어 있던 건물로 천천히 뒷걸음질 쳤다. "안전한 대한민국 대테러 2025 연습"에서 보았던 장비와 수법을 고스란히 눈앞에서 보았던 것이다. 부대 단위로 참여해 그 도 훈련받고 시행도 했던 바로 그 행동이었다. 다만 이번엔 친 정부 시위대를 사용했다는 점 이 다를 뿐이었다. 보민은 건물 벽에 등을 기댔다. 가슴이 답답했다. 지난 달 자신이 했던 일들이 떠올랐다. 방 패를 들고 시위대를 밀어내던 순간, 진압봉을 휘두르던 순간 들. 그때는 명령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반대편에서 보니 전혀 다르게 느껴졌다. '나는 진짜 어쩌냐...' 시위는 계속되었다. 진압을 목적으로 하는지 물대포는 쉬지 않고 사람들을 직격했다. 어찌나 자주 많이 뿌리는지 물 안개처럼 주변이 뿌얬고 일시적으로 현장 온도가 내려갈 정도였다. 희끄무레한 시야 속에서 오바육바 아저씨와 그 친구도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래도 대열은 계 속해서 채워졌다. 끌려간 사람들의 빈 자리를 새로운 사람들이 메웠다. 보민은 그 자리를 떠났다. 더 이상 지켜볼 수가 없었다.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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