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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1/06/17 17:30:01수정됨
Name   마카오톡
Subject   춘추시대의 샌디쿠팩스. 중이. -완-
https://redtea.kr/?b=3&n=11780
https://redtea.kr/?b=3&n=11788

시리즈 물이니 앞의 글을 읽고 읽으시는게 편하실겁니다. 제목에 과감하게 완결편이라고 적었는데 완결이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설령 마무리를 못하더라도 외전이란 이름으로 연재하겠습니다.

이전 내용에 대해 바쁜 현대인을 위해 간단히 정리하자면, 춘추시대 진헌공의 아들중에 중이가 있었고, 진헌공이 죽자 계승싸움이 벌어져서 중이는 타국으로 망명을 갈수 밖에 없었고 (여기 까지가 상편) 아직 못돌아왔다 (여기까지가 중편)입니다.





혼인으로 더욱 단단해지는 진(秦)목공과 중이의 동맹



중이가 진나라(秦,섬진)에 오기 직전 진나라(晉 당진)의 상황을 다시 한번 살펴볼게요. 중이의 동생이던 진혜공 이오가 신의없이 진(秦)목공을 대했다가 혼쭐이 나고 맏아들을 볼모로 맡겼는 이야기를 지난 이야기에서 했었습니다. 진목공은 볼모로 잡은 맏아들을 진(秦)나라의 공녀(공작가문의 여자, 즉 진목공의 친척) 회영과 결혼시켰습니다. 근데 이오가 병에 들어 죽어버렸습니다. 계승권은 당연히 맏아들에게 있었는데, 얘는 타국인 진(秦)나라의 볼모신세잖아요. 도망쳐서 군위에 오르기로 결심합니다. 홀로 야반도주하려다가 부인인 회영한테 걸립니다. 걸린 마당에 회영에게 같이 가겠냐고 물었더니, 회영은 지아비를 배신할수도 없고, 나라에 불충할수도 없다고 대답합니다. 그래서 지아비의 모른척 묵인하지만 따르진 않기로 결정합니다. 이오의 맏아들은 회영이 눈감아준 덕분에 당진에 도착해 군위에 올랐고 그가 바로 진회공입니다. 진목공은 더욱 열받았지요. '아니 이놈이 말도 안하고 와이프도 버리고 도망갔다고? 역시 그 아비의 그 자식이구만. 역시 답은 중이였다.'




다시 돌아와서 중이가 진나라(秦,섬진)에 도착했습니다. 진목공은 백리해를 재상으로 임명했었죠? 백리해는 진(晉 당진) 헌공과 진목공의 혼사때 몸종으로 딸려가다가 도망쳤었는데 진목공이 수소문해서 데려왔었고요. 이거 가물가물하시면 관련글을 한번 다시보셔도 됩니다. (관련글 링크) 이때 진헌공의 딸과 진목공의 결혼이었습니다. 중이는 진헌공의 아들이죠? 네 사실 중이는 진목공의 처남이었던겁니다. 진목공의 와이프가 중이의 누나였어요. 이복누나이긴했지만요. 진목공의 부인은 신생과 동복남매였고, 신생과 중이쪽은 서로 우애가 깊었고 동복형제와 다름없었습니다. 여희에게 억울하게 죽은 신생 생각이 나기도 하고, 고생만하다 돌아온 동생 중이를 보니 울컥하는겁니다. 누나가 남동생을 가엾게 여기고 반가워했던건 당연했습니다. 중이는 누나덕과 매형덕분에 섬진에서 큰 환대를 받았습니다.




진목공은 중이를 만나보니 역시 중이가 답이다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리하여 혼인을 통해 중이와의 관계를 더욱 돈독하게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마침 남편이 야반도주한 회영이 있네요. 중이한테 넌지시 회영과 결혼하시겠냐는 뜻을 전합니다. 중이는 난감했습니다. 중이도 재혼이라서 회영이 싫었던건 아니에요. 근데 회영은 자기 동생인 이오의 아들의 처였잖아요. 한마디로 전 조카며느리인겁니다. 게다가 조카는 멀쩡히 살아있어! 고민이 되어서 한숨을 푹푹 쉬는데 가신중 한명인 조쇠가 말합니다.

"여복이 있으시군요"

"농담할때가 아니오"  중이가 대답했습니다.

"농담이 아닙니다. 공자께서 진(秦)나라의 도움을 받기 위해서 우리가 먼저 청해도 모자랄판에 진목공이 먼저 제안했다니 이보다 더 좋은일이 있을수가 있습니까"

조쇠의 의견은 매우 실리적이고 합당한 의견이었습니다. 다만 아무래도 마음에 걸리지 않을 수가 없는 관계인게 문제입니다.

"조카의 아내와 어찌 같이 살수 있단 말이오.."

전직 조카며느리 라서 거절하고 싶지만 그러면 진(秦)목공과의 관계가 나빠질까봐 고민하던 중이, 그런 중이에게 조쇠가 일침을 놓습니다.

"공자께서는 본국(당진)으로 돌아가 조카를 섬기려고 하셨습니까. 아니면 조카의 군위를 대신하려 하셨습니까?"

조쇠의 일침은 이런 말입니다. 너 어차피 조카의 군주 자리 뺏으러 가는 개새퀴인데, 뭘 새삼 조카가 버린 여자랑 재혼하는 걸로 고민하냐고. 조쇠의 말을 옳다 여긴 중이는 회영과 결혼해서 진목공과의 동맹을 더욱 단단히 합니다.





중이, 드디어 진(晉)문공이 되다.

시집가기전에 막역하게 지내던 누나도 너무 오랜만에 만났겠다. 매형도 잘해주겠다. 예쁜 와이프도 '또' 얻었겠다. 중이의 삶은 다시 안락해져갔습니다. 혼인도 한 마당에 진목공은 매일 연회를 열어 중이를 환대했습니다. 가신들은 제나라 시절이 생각 안날수가 없었습니다. 저러다 우리 공자가 당진으로 돌아갈 생각이 없어지면 어떻게 하지? 제나라때 수레에 태워서 데려온 중이의 외숙부 호언이 이번에도 나서려고 합니다. 조쇠가 말합니다. 이번엔 제가 해보겠습니다. (모르는 이름이 많이 나오면 글이 어려워져서 이제껏 이름을 말 안했지만, 사실 조쇠는 역사적으로는 중요 인물이라서 이번편부터 이름을 등장시켰습니다.)



조쇠는 중이와 함께 연회에 참석합니다. 매형 진목공은 오늘도 술한잔 마시고 기분이 좋아서 처남이랑 즐겁게 놀고 있습니다. '처남 우리 기분도 좋은데 처남이 노래나 하나 뽑아보게.' 처남 중이가 대답합니다. '저 말고 조쇠가 노래 잘해요.' '그럼 들어봐야지! 우리 조쇠의 노래를 다같이 들어보겠소!' 이에 조쇠가 한곡 뽑기 시작합니다.



가지런히 솟아난 기장 싹 촉촉이 내린 비에 젖어있구나
멀고도 먼 남행의길 소백께서 노고를 위로하시네
등짐 진 사람, 손수레꾼 내 수레 내 소
이제 큰일을 이루었으니 어찌 아니 돌아가랴, 내 고향 내 집

이 노래 (사실은 시)는 주나라 선대에 왕에 명에 따라 영토 개간을 하러 갔던 사람이 임무를 다 마친 사람이 귀향길에 오르면서 불렀던 노래입니다. 한마디로 우리 이제 집에가자 노래인겁니다. 듣고 중이는 정신이 버쩍 들었습니다. 그래 연회도 좋지만 이제는 당진으로 돌아가야 할때지.  조쇠는 진목공에게 우리는 이제 당진으로 돌아가야한다는 노래를 부른 것이죠. 진(秦)목공은 조쇠의 노래를 기분좋게 듣고는 말합니다. '나도 이런 좋은 노래를 들었으니 답가를 아니할수 있겠소'



유월은 어지러운달 병차를 정비하고
네 마리 말이 튼튼하니 모든 준비가 끝났도다
험윤의 기세 불꽃같아 내 이를 막기 위해 서두르네.

이 노래(이것도 사실은 시)도 주나라 선대에 왕의 명령에 따라 오랑캐를 정벌하러 출진하던 사람이 불렀던 노래입니다. '내 다 준비해놨다. 니들은 나의 준비된 군대와 함께 돌아가게 될것이다' 라는 답가를 한것입니다. 사실 조쇠와 중이 입장에서 불안했던거지, 진목공도 중이만큼이나 중이를 군위에 오르게 하고싶었던 사람이었고 준비도 다 잘되어 있었습니다. 조쇠는 이 노래를 듣고 중이의 옆구리를 쿡쿡 찌릅니다. '공자께서 속히 계단 아래로 내려가 절을 하며 명을 받드십시오' 그냥 진목공의 이야기가 취중 노래가 아니라 명을 내린 것으로 만들라는 겁니다. 중이는 계단 아래로 내려가서 절을 하려했고ㅡ 진(秦)목공은 처남이 술먹다가 계단을 내려와서 절을 하려고 하니 급히 만류했습니다. 아냐아냐아냐아냐 기분좋게 술먹고 노래부르다가 무슨 절이야. 안해도 돼. 아니라고 하지말라고..



조쇠가 외쳤습니다.

"이는 온갖 곡식이 비를 바라는 것과 같습니다. 군후(진목공)께서 중이 공자를 주천자(주나라왕)를 보필할자로 지명하셨으니 어찌 절을 아니 올릴수가 있겠습니까." (진목공의 행위는 당진 공작 자리를 중이에게 주려는 것이지만 명목상으로는 당진 공작은 주나라왕의 신하이니 주나라왕의 신하임무를 잘할 사람으로 중이를 추천하는 행위가 되는겁니다.)



이에 중이가 큰절을 올리며 진목공의 원조를 모두가 보는 앞에서 확인사살했고, 얼마 안되어 중이 일행은 섬진의 군대와 함께 당진으로 돌아갑니다. 이오의 아들이었던 진회공은 안팎으로 많은 인심을 잃은 상태였고, 당진내부에서도 중이를 환영했습니다. 중이가 진회공을 처단하고 당진의 군위에 오르니 이가 바로 춘추시대 첫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는 명군 진(晉)문공입니다.




춘추시대의 샌디쿠팩스 진 문공

진(晉) 문공은 19년의 망명생활과 중간중간에 거지같은 유랑생활을 하고 62세에 군위에 올랐습니다. 나이가 나이다 보니 군위에 오르고 나서는 고작 8년을 통치했을 뿐이죠. 그런 진문공을 제가 춘추시대 군주들중에 첫손에 꼽는 명군으로 보는 이유는, 당시 기준에서 춘추시대의 군주가 갖추어야할 가장 큰 미덕을 가장 완벽하게 해낸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메이저리그 역사상 가장 짧지만 굵었던 전성기를 기록했던 샌디쿠팩스를 진문공에 빗댄것이죠. 그치만 이 미덕에 대해서 알려드리려면 조금 더 설명이 필요하겠네요. 길어지는거같아 불안하지만 설명안하고 넘어갈순 없습니다.



주나라가 은나라를 물리치고 중원을 먹은 다음에 한참뒤에 춘추시대가 열리고 지금이 그 춘추시대입니다. 춘추시대는 주나라가 견융족의 침입에 수도가 개털리고 낙양으로 수도를 이전한 뒤의 시대를 이야기합니다. 주나라는 봉건제였기때문에 사실 수도근처만 주나라가 다스렸지만 제후들에게는 천자라는 인식이 있었습니다. 우리와는 다른 왕이시다. 근데 춘추시대부터는 이게 깨져요. 이민족에게 개털리고 제후국의 도움으로 겨우겨우 낙양으로 천도한거거든요. 그래서 이전과 달리 주나라왕을 좀 무시하게 됩니다. 주왕 입장에서는 최고의 제후국이 어떤 제후국일까요? 주나라 왕실의 위엄을 세워주고 (이 모양 이꼴을 만든) 이민족을 혼내주는것. 이게 가장 큰 제후국의 미덕인겁니다. 이걸 네글자로 존왕양이라고 합니다.



이게 단순히 주나라 왕의 입장에서만 좋느냐 그건 아닙니다. 춘추시대는 전국시대와는 달리 명목상으로는 신하였습니다. 겉으로는 주왕실을 모시는것이 더 명분상으로 도움이 되고, 그렇게 제후국이라는 동생들중에는 가장 형님으로 주왕에게 인증받음으로 다른 제후국들을 통솔하게 되는거죠. 마치 조조가 황제가 되진 않았지만 황제를 모시면서 다른 군벌들을 컨트롤하려는것과 비슷합니다. 이 시대의 군주의 미덕은 동생들중에 가장 형님이 되어 대빵 제후국이 된 다음 주나라 왕에게 가서 동생들아 이분이 형님의 형님이시다 라고 인사시키는거였어요. 그러면 큰형님 입장에서는 면이 살아 좋고, 큰형님이 그 사람에게 전권 위임하면 그 빌미로 동생들을 다스릴수 있는거에요. 어차피 큰형님이 힘은 없었지만 명분이 중요하니깐요. 이렇게 큰형님을 모시고 동생들을 아우르는 위치를 패자라고 불렀습니다. 이걸 패업을 이룬다고 하고요. 중이는 고작 8년의 시간으로 가장 완벽하게 패업을 이룬 남자입니다. (그래서 춘추시대에서 다섯명의 패업을 이룬 사람을 춘추오패라고 부릅니다)




진문공 중이는 공위에 오른지 얼마안되어 주왕실의 변란을 정리해줍니다. 당시 주나라왕은 주 양왕이었는데 동생이 왕위를 찬탈했고 주양왕은 다른 제후국에 도망쳤던 겁니다. 마치 이각과 곽사에게 도망친 헌제 꼴이랄까요. 진(晉)문공과 진(秦)목공이 주양왕의 부름에 응합니다. 진(秦)목공도 패업에 뜻이 있는 남자였거든요. 진(晉)문공이 진(秦)목공에게 요청합니다. '매형 이번 한번만 나한테 양보해줘.' 진(秦)목공은 어차피 이제는 당진의 우방이 되려고 하는 생각이었어요. 처남이 공을 세우는것도 좋다여겨 양보하고 진(晉)문공은 주나라 왕실의 변란을 정리하고 주양왕을 다시 복위시켜줍니다. 존왕양이중 확실한 존왕을 하게된거죠. 이제 남은건 양이 즉 오랑캐를 물리치는 것입니다.





제후인듯 제후아닌 제후같은 초(楚)




춘추시대 남쪽에는 초나라가 있었습니다. 백리해를 넘겨준 그 초성왕, 중이를 환대해서 삼사를 물러준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그 초성왕이 다스리는 나라였죠. 이 나라는 다른 제후국과는 좀 달랐습니다. 일단 초나라 군주가 왕이잖아요. 초 성'왕'. 이 시대의 왕은 주천자 뿐인데 초나라는 이미 칭왕을 하고있었습니다.



조선이 형식적으로는 명나라에 책봉을 받았었죠? 조선은 명의 제후국일까요? 원래 제후국은 최소한 왕이든 황제든 본인이 봉지를 하사해야 합니다. 조선왕은 본인들 끼리 지내고있었던거지 명의 영토를 받은건 아닙니다. 그러면 중화사상으로 치면 제후국아니면 오랑캐니깐 조선은 명입장에서 오랑캐였을까요? 오랑캐는 책봉도 안하죠. 형식적으로는 제후국이었으나 실질적으로는 아니고, 명에서도 조선을 오랑캐 취급이 필요할땐 오랑캐 취급하는거고, 제후국 취급이 필요할땐 제후국 취급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네 이런 관계가 주나라와 초나라의 관계였습니다.



초나라는 원래 양자강 지방에 있던 이민족으로, 사실 주나라와 그 이전 은나라가 황하유역에 있었으니 제후국이라기보단 그냥 다른 나라입니다. 다만 주나라의 위세가 강해지니 주변국으로서 머리를 조아렸고 형식상의 책봉을 받은거죠. 책봉은 또 오랑캐출신니깐 오랑캐취급으로 오등작 (공작 후작 백작 자작 남작) 중에 가장 낮은 자작으로 줬어요. 아니 남작이 더 낮지 않냐고요? 남작은 왕이 주는 작위가 아닙니다. 제후가 자기 제후한테 주던 작위라서 자작이 왕이 내리는 최하 작위였어요. 책봉 받은김에 썩 내키지는 않지만 초나라가 주나라의 제후국으로서 활동을 해볼까 했는데, 모든 제후중에 제일 아래인거에요. 별 거지같은 작은 나라들이 공작입네 하면서 자기네 초나라를 '오랑캐무시+ 낮은 작위 무시'의 이단 콤보로 무시하는거죠. 초나라는 작위 좀 높혀달라고 했는데 주나라는 오랑캐들한테 자작도 과분한거지라고 생각했는지 응하지 않았어요. 부글부글. 아니 우리가 작위가 없지 힘이 없냐.




초나라는 이미 군사적으로는 강대국이었습니다. 당시 진(秦)목공 진(晉)문공 초성왕 모두 명군이었어요. 셋다 그 나라의 커리어 하이를 달리던 중이었어요. (물론 진(秦), 초는 이후에 더 전성기가 오긴하죠) 여튼 초나라 군주들은 작위가 낮은 것일뿐 힘이 없는건 아니었고, 스스로 본인의 작위를 올립니다. 어디까지 올려볼까 생각해봤는데 어차피 주나라 왕실 무시하고 본인이 본인 작위 올리겠다는데 굳이 주나라 눈치를 봐야할까요? 네 그냥 눈치 안보고 화끈하게 올리겠습니다. 저희는 오늘부터 왕입니다요.




안그래도 칭왕을 하는 제후국이 생겼는데, 그 나라가 송양지인(링크참조)의 송양공을 만나서 홍수전투에서 흠씬 두들겨패버린겁니다. 원래 왕이었던 주나라입장에서는 심각한 일이죠. 초나라는 중원에게 초나라의 힘을 무력시위했습니다. 그래서 몇몇 제후국은 초나라와 통교하고 속국과 교류국의 중간쯤이 되었고요. 주나라 왕실을 모시는 입장에서 칭왕하는 다른 나라를 섬기는건 사실상 주나라 제후국에서의 이탈을 뜻하는거죠. 주나라 왕입장에서는 목의 가시였습니다. 칭왕하고 우리 제후 두들겨패는데 그건 이제 오랑캐죠. 네 오랑캐를 물리친다는 양이의 대상은 바로 이 초나라였습니다.




위위구조

당시 송양지인으로 홍수 전투에서 초나라에게 흠씬 두들겨 맞은 송나라는 초나라 말을 잘듣기로하고 강화를 했습니다. 그렇지만 중원의 공작의 나라 송나라가 변방 자작의 나라인 초나라의 말을 들을리가 없죠. 초나라는 송나라가 말 잘듣기로 하고 강화해놓고도  말을 안들었기에, 다시 송나라를 혼내주러 왔습니다. 주나라 왕입장에서 송나라까지 초나라한테 먹히면 많이 곤란합니다. 송나라 입장에서도 sos를 보냅니다. 과거 송양공이 중이의 망명생활때 말도 주고 밥도 주고 그랬었죠. 비록 송양공은 이제 없지만, 그때의 은혜를 잊지 않은 진(晉)문공은 송나라를 구원하기 위해 출병합니다.



다만 초성왕도 자신에게 후하게 대해줬던 사람이죠. 중이 입장에서 초나라와 붙는건 맘에 좀 걸렸습니다. 이때 가신이었고 같이 망명생활했지만 이제는 군대 통수권자가 된 선진이 말합니다. '초를 섬기기로 한 조(曺)나라와 위(衛)나라를 치시면 그들은 송나라 포위를 풀수밖에 없을겁니다.' 36계에도 나오는 위위구조의 책략이죠. 공격받은 곳을 구원하는게 아니고 다른 곳을 때려서 자연스럽게 공격받는 곳의 포위를 풀게하는 전략입니다. 위위구조( 링크참조 )가 전국시대 고사성어니깐 사실 이쪽이 원조입니다.






오록땅에서 구걸하다가 흙을 받은 굴욕이 있었죠. 그 오록땅이 위(衛)나라의 것입니다. 또한 과거 조(曺)나라에서 군주 조공공이 중이의 목욕하는 모습을 훔쳐봤습니다. 이 둘은 혼내줘야 되는 나라라서 거리낌이 없네요. 쾌속행군으로 박살을 내버립니다. 송나라를 포위하던 초성왕도 그 소식을 듣고 성득신을 잽싸게 파견했으나 성득신이 당도하기전에 이미 결판이 났습니다. 초성왕은 원래 중이가 호락호락하지 않은 인물인걸 알고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미 이번 일은 그르친것같으니, 회군하기로 결정합니다. 성득신은 이에 반발합니다. '제가 중이 그놈을 반드시 잡아오겠습니다' 초성왕은 어차피 말 안들을것이 뻔한 성득신의 군대는 두고 본인만 회군을 하기로 했고요. 회군하면서 초성왕은 성득신에게 중이를 각별히 조심하고 가급적 싸우지 말라고 이야기합니다.




자옥아~자옥아~

성득신의 자는 자옥이라서 자옥이라고도 불렸습니다. 성득신도 마냥 중이랑 싸움만 하려던건 아니었습니다. 사신을 보내 각종 보물을 진(晉)문공 중이에게 주면서 각종 보물로 이만하면 니 얼굴도 세워줄테니, 우리 속국인 조(曺)나라와 위(衛)나라 돌려주라고 이야기합니다. 직접적으로 말은 안했으나 그러면 자신도 회군하겠다는 뜻이었습니다. 중이도 원래 초나라 있던 시절부터 성득신을 걸물이라고 생각하고있었고, 초나라에서 경계 1순위라고 생각해서 어떻게 할지 고민합니다. 진짜 만만한 놈이 아니거든요. 대충 받고 물러서는게 좋을지도 몰라요. 이에 선진이 이야기합니다.


"초나라의 예물을 제나라와 진(秦)나라에 보내서 원군을 요청하십시오. 그리고 조(曺)나라와 위(衛)나라를 풀어주고, 초나라와 단교를 조건으로 해방하십시오. 그리고 성득신의 사신을 참하시지요."


중이는 선진의 말을 옳다여겨 그렇게 했습니다. 보물은 낼름 받고 속국들은 단교시켜서 해방시키는 눈가리고 아웅을 하고, 원수지간도 아닌데 사신을 죽이는 개매너라니요. 성득신이 열을 안받을수가 없습니다. ' 내 중이 저놈을 씹어서 먹으리'  중이는 사신을 초성왕에게 보내 우리는 성득신이 말한대로 했다고 이야기합니다. 근데 성득신이 계속 공격해온다고요. 우리는 별로 싸우고 싶지 않고 예전 약속대로 삼사를 물려줄테니 가급적 성득신을 잘 회유해보시라고. 초성왕은 심부름꾼을 성득신에게 보내 중이와 싸우지 말고 그냥 돌아오라고합니다. 성득신은 본인이 패배하면 목숨을 내놓겠다고 군령장을 써보내고 삼사를 물리는 당진의 군대를 추격합니다. 초성왕은 포기했습니다. 하여튼 자옥 이색히는 말을 안들어..





성복대전

춘추시대 최대 전투 성복대전. 삼국지로 치면 관도대전급의 대전은 이렇게 벌어졌습니다. 진(晉)문공 중이는 삼사를 후퇴해서 명분도 얻었고 전열도 정비했고, 원군이 도착할 시간도 벌었고, 성득신의 화도 더욱 돋궜으며 여러가지 실리도 함께 얻었습니다. 당진의 지휘관 선진은 삼사를 후퇴해 성복에서 성득신의 대군을 맞이하여 처음에는 또 후퇴하는 척하다가, 추격에 기세를 올려 삐져나온 초나라 좌익을 당진의 우익과 중군이 함께 섬멸해버리고 성득신의 중군을 포위합니다. 초나라 우익은 초나라 동맹국의 군대라서 당진의 좌익이 1:1로 이겨버렸고요. 고대전투는 양익이 져서 삼면에서 포위되면 그냥 거기서 겜 종료입니다.



성득신은 겨우 목숨만은 건져 도망갔습니다. 본인도 면목이 없었는지 초나라 인근에서 초성왕께 심부름꾼을 보냅니다. '님아 저 졌어요. 어쩌죠.' 초성왕이 대답합니다. '그래 너 질거같더라. 근데 너 지면 벌칙수행하기로 했잖아.' 성득신은 자신에게 다시 기회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목을 찔러 자결합니다. 성득신이 여기서만 보면 성격이 급하고 문제적 인사채용으로 보이지만, 사실 초성왕에게 성득신은 필요한 인재였고 앞으로도 필요한 사람이었습니다. 중이도 성득신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다리 뻗고 자겠구나 했다죠. 후세의 사가들은 초성왕이 성득신을 용서했어야했다고 평가합니다. 커리어 하이를 질주하던 초성왕도 여기서부터 내리막길을 걷게 됩니다.



춘추시대에 강대국끼리 그 시대 사실상의 최고를 가리던 첫번째 전투였던 성복대전은 이렇게 당진의 대승으로 끝납니다. 그 전까지의 초나라는 제환공시대의 관중조차도 건드리기 꺼려하던 난적중의 난적이었고, 초성왕도 인물중의 인물이었으나, 19년을 망명하고 돌아온 중이 진(晉)문공에게 원터치 전투에서 박살이 납니다. 이 뒤로 당분간은 초나라가 중원을 넘보지 못하게 됩니다. 주양왕이 기뻐했던것도 당연합니다. 감히 칭왕을 하는 오랑캐를 박살내서 주왕실의 위엄을 세워주었죠. 주양왕은 존왕양이의 미덕을 완벽하게 수행한 진문공을 치하하기 위해 멀리 마중을 나왔고 진(晉)문공은 마중나올 주양왕을 그냥 영접할수 없으니 일단 천토땅에 궁궐을 지어서 천자가 기거할 장소를 만듭니다. 천토에서 주양왕을 모시고 제후들을 소집해 회맹하니 이게 바로 천토의 회맹이고 이 자리에서 진(晉)문공은 명실상부한 패자로 전 제후들에게 공인받게됩니다.





-끝-

앗 빠뜨렸네요. 25년 아니라 평생 기다리겠다던 계외랑 술먹여서 수레 태운 제강을 중이는 다 불러왔고, 전직 조카며느리 회영와 함께 다 같이 잘먹고 잘살았다고 합니다. 서로 우애도 좋았대요.





주1)
조쇠 : 조최라고도 불리는데 진문공에게 헌신한 덕에 큰 권력을 받아 6경가문이 되었고, 후손들이 권신이 되어 당진을 조 위 한 셋으로 쪼개는데 일조함. 전국시대 조(趙)나라 가문의 중시조쯤 되는 인물.


이 글은 흥미와 이해를 돕기 위해 세부사항이 역사와 아주 조금 다를수있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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