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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1/06/26 09:08:37수정됨 |
Name | mchvp |
Subject | 빌 게이츠의 "기후재앙을 피하는 법" 리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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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redtea.kr/?b=3&n=11528
이 유나바머 글의 번역이 생각나네요. 그러고 보니 레퍼런스에도 유나바머가 있군요. 저 번역글도 이 글도 인상깊게 보았지만, 선뜻 추천을 누를 수가 없더군요... 빌 게이츠 책이 베스트셀러인 이유는, 저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실낱같은 희망에 매달려 진실을 외면하고 싶어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유나바머 글의 번역이 생각나네요. 그러고 보니 레퍼런스에도 유나바머가 있군요. 저 번역글도 이 글도 인상깊게 보았지만, 선뜻 추천을 누를 수가 없더군요... 빌 게이츠 책이 베스트셀러인 이유는, 저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실낱같은 희망에 매달려 진실을 외면하고 싶어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연재된 글이 끝나고 나서 본격적으로 읽게 되네요. 그런데, 의도하지 않은 결과는 검색해보니 사회과학 용어로 나오고 이 용어를 쓴 사람들은 특별히 카오스 이론을 쓰지 않은 걸로 보여요. 그리고 의도하지 않은 결과에서 예시로 드신 게
• 빌&멜린다 게이츠 재단은 아프리카의 말라리아 유행을 줄이기 위해 살충효과가 있는 모기장을 모잠비크에 배포하였습니다. 주민들은 모기장을 물고기 잡는 그물로 쓸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되었습니다. 이는 남획으로 이어졌고, 모잠비크 생태계는 심각하게 파괴되었습니다.
이 와 같은 것인데, 이는 딱... 더 보기
• 빌&멜린다 게이츠 재단은 아프리카의 말라리아 유행을 줄이기 위해 살충효과가 있는 모기장을 모잠비크에 배포하였습니다. 주민들은 모기장을 물고기 잡는 그물로 쓸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되었습니다. 이는 남획으로 이어졌고, 모잠비크 생태계는 심각하게 파괴되었습니다.
이 와 같은 것인데, 이는 딱... 더 보기
연재된 글이 끝나고 나서 본격적으로 읽게 되네요. 그런데, 의도하지 않은 결과는 검색해보니 사회과학 용어로 나오고 이 용어를 쓴 사람들은 특별히 카오스 이론을 쓰지 않은 걸로 보여요. 그리고 의도하지 않은 결과에서 예시로 드신 게
• 빌&멜린다 게이츠 재단은 아프리카의 말라리아 유행을 줄이기 위해 살충효과가 있는 모기장을 모잠비크에 배포하였습니다. 주민들은 모기장을 물고기 잡는 그물로 쓸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되었습니다. 이는 남획으로 이어졌고, 모잠비크 생태계는 심각하게 파괴되었습니다.
이 와 같은 것인데, 이는 딱히 카오스 이론으로 설명되는 현상이 아니에요. 단순히 결과를 예측할 수 없다거나 부작용이 발생했다는 이유에서 수학이론을 빗댄다면 카오스 이론이 아니어도 쓸만한 수학이나 물리 법칙은 많이 있어요. 저 문장의 요소들을 시간을 변수로 하는 비선형 미분방정식으로 한 번 수식화해보실 수 있으신가요? 그리고 그걸 풀어 시간에 따라 그려보았을 때 나타나는 끌개가 어떤 형태인지 생각해봐요. 그게 일반적으로 카오스 이론에서 나타나는 형태의 주기를 띄고 있을까요? 카오스 이론에서 초기조건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동역학계의 해(이 경우엔 주로 위치가 되겠죠.)에 집중하여 예측불가능성에 대해 많이 언급되지만, 카오스 이론에서 놀라운 부분은 그런 복잡계 시스템들을 방정식으로 풀었을 때 그 혼란스러운 끌개 속에서도 '규칙성'이 나타난다는 부분이에요. 그래서 거시적인 범주에서 끌개를 봤을 때 그런 카오스 이론의 복잡계는 예측가능한 정보들을 제공해줘요. 나비의 바람으로 발생할 태풍은 예측하기 어렵죠. 하지만 태풍이 큰 범주에서 끌개의 궤도를 돌게 될 것이라는 건 예측할 수 있어요.
그리고 예측불가능성에 대해 너무 집중하시는 것 같아요. 우리는 문제상황을 수식화할 때 항의 비선형적인 부분을 마주하면 선형적으로 근사시키거나 무시하여 선형방정식으로 만들어풀어왔어요. 그로 인한 오차는 뭐 섭동같은 걸로 처리했죠. 그리고 이게 제공하는 미시적 혹은 거시적인 예측의 정확성들은 대부분 실제로 그 오차들을 무시해도 될만큼 유용했어요. 많은 문제상황을 제시하셨지만, 사회에는 우리가 예측한 대로 결과를 불러온 정책들도 굉장히 많고, 혹여 부작용이 발생했다 하더라도 그것들이 정책으로 의도한 작용이 무의미해질 정도의 반작용이 없는 경우도 많았죠.
• 빌&멜린다 게이츠 재단은 아프리카의 말라리아 유행을 줄이기 위해 살충효과가 있는 모기장을 모잠비크에 배포하였습니다. 주민들은 모기장을 물고기 잡는 그물로 쓸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되었습니다. 이는 남획으로 이어졌고, 모잠비크 생태계는 심각하게 파괴되었습니다.
이 와 같은 것인데, 이는 딱히 카오스 이론으로 설명되는 현상이 아니에요. 단순히 결과를 예측할 수 없다거나 부작용이 발생했다는 이유에서 수학이론을 빗댄다면 카오스 이론이 아니어도 쓸만한 수학이나 물리 법칙은 많이 있어요. 저 문장의 요소들을 시간을 변수로 하는 비선형 미분방정식으로 한 번 수식화해보실 수 있으신가요? 그리고 그걸 풀어 시간에 따라 그려보았을 때 나타나는 끌개가 어떤 형태인지 생각해봐요. 그게 일반적으로 카오스 이론에서 나타나는 형태의 주기를 띄고 있을까요? 카오스 이론에서 초기조건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동역학계의 해(이 경우엔 주로 위치가 되겠죠.)에 집중하여 예측불가능성에 대해 많이 언급되지만, 카오스 이론에서 놀라운 부분은 그런 복잡계 시스템들을 방정식으로 풀었을 때 그 혼란스러운 끌개 속에서도 '규칙성'이 나타난다는 부분이에요. 그래서 거시적인 범주에서 끌개를 봤을 때 그런 카오스 이론의 복잡계는 예측가능한 정보들을 제공해줘요. 나비의 바람으로 발생할 태풍은 예측하기 어렵죠. 하지만 태풍이 큰 범주에서 끌개의 궤도를 돌게 될 것이라는 건 예측할 수 있어요.
그리고 예측불가능성에 대해 너무 집중하시는 것 같아요. 우리는 문제상황을 수식화할 때 항의 비선형적인 부분을 마주하면 선형적으로 근사시키거나 무시하여 선형방정식으로 만들어풀어왔어요. 그로 인한 오차는 뭐 섭동같은 걸로 처리했죠. 그리고 이게 제공하는 미시적 혹은 거시적인 예측의 정확성들은 대부분 실제로 그 오차들을 무시해도 될만큼 유용했어요. 많은 문제상황을 제시하셨지만, 사회에는 우리가 예측한 대로 결과를 불러온 정책들도 굉장히 많고, 혹여 부작용이 발생했다 하더라도 그것들이 정책으로 의도한 작용이 무의미해질 정도의 반작용이 없는 경우도 많았죠.
그 부분은 후속 글을 통해 이미 반박이 된 것으로 보이는데요. 우리가 단기적으로 그럭저럭 믿을만한 예측을 얻을 수 있다 하더라도, 우리 사회가 어느 방향으로 가야할지 누가 결정합니까? 이게 대단히 어려운 문제라는건 "사회적 합의의 한계"에서 다루었습니다. https://redtea.kr/?b=3&n=11756
해당 글의 1890년으로 시작하는 부분부터 나열한 예시들로는 후반부의 주장이 성립하지 못한다는 말이죠.
예시의 나열이 결론을 형성하기 위해서
예시가 가설의 검증에 충분하게 기여하여야 하는데 그 부분이 불충분하니까요. 불명확하다고 해야할까요?
읽는 입장에서 판단할 수 있는, 혹은 주장하는 입장에서도 측정할 기준이 없으니 당연한거겠죠.
주어진 예시들은 '집중된 권력에 의한 단기적 합의' 가 어렵다는 것이지, 사회적 합의가 대단히 어렵다는 예시로서 적절한지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데이터와 가설이 따로 노는 느낌... 더 보기
예시의 나열이 결론을 형성하기 위해서
예시가 가설의 검증에 충분하게 기여하여야 하는데 그 부분이 불충분하니까요. 불명확하다고 해야할까요?
읽는 입장에서 판단할 수 있는, 혹은 주장하는 입장에서도 측정할 기준이 없으니 당연한거겠죠.
주어진 예시들은 '집중된 권력에 의한 단기적 합의' 가 어렵다는 것이지, 사회적 합의가 대단히 어렵다는 예시로서 적절한지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데이터와 가설이 따로 노는 느낌... 더 보기
해당 글의 1890년으로 시작하는 부분부터 나열한 예시들로는 후반부의 주장이 성립하지 못한다는 말이죠.
예시의 나열이 결론을 형성하기 위해서
예시가 가설의 검증에 충분하게 기여하여야 하는데 그 부분이 불충분하니까요. 불명확하다고 해야할까요?
읽는 입장에서 판단할 수 있는, 혹은 주장하는 입장에서도 측정할 기준이 없으니 당연한거겠죠.
주어진 예시들은 '집중된 권력에 의한 단기적 합의' 가 어렵다는 것이지, 사회적 합의가 대단히 어렵다는 예시로서 적절한지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데이터와 가설이 따로 노는 느낌이에요.
그리고 그 또한 예측불가능성에 대한 보론으로 불충분하죠.
다자간의 권력분산에 의한 합의의 어려움이 예측불가능성을 증대시킬 것이라는건 가설이지 입증된 주장은 아니니까요.
해당 글의 예시들만으로 입증되었다 볼 수 없고.
그냥 글로서 읽을때는 동의하지 않는 부분이 있다고 해도 문제가 없었습니다. 동의안하면 그만인거고 시리즈 5편에 와서는 방향과 목적이 명확해지면서 앞선 글들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있으니까요.
5편에 와서야 '우리에겐 남은 시간과 기회가 없다' 는 전제에 자연스럽게 동의할 수 있었고,
그러면 이전의 주장들도 '그래 단기간에 하기 어렵지' 라는 필터가 씌워지면서 납득이 되었습니다.
말씀드리자면,
대충 내용과 생각엔 공감을 합니다. 5편에 와서는 그래요.
그럼에도 허술한 부분은 있습니다.
거기에 '집중'했다면 1~4편에서 벌써 말씀을 드렸겠죠(...)
대학원에서 코칭받아가면서 쓰는 논문들도 허술할 때가 많습니다.
저는 허술한거 자체는 문제가 없다고 생각해요.
커뮤니티 게시판이라는 곳은 내가 어제 먹은 밥 이야기도 올라오고 빤스색깔도 이야기하니까요.
발제 자체만으로도 그 의욕과 용기를 높이 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단지, 피드백이라는게 발생하고
어차피 발생한 피드백이면 거기에 대해서는 또 기탄없이 이야기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건 아닌거 같은데요'
'이 부분은 좀 다르게 생각하는데요'
이런 피드백은 학회에서 발표하는 사람도 난감해하는 반응이긴 합니다.
킹설수설하고, 응답을 미루고, 성질내기도 하죠(...)
예시의 나열이 결론을 형성하기 위해서
예시가 가설의 검증에 충분하게 기여하여야 하는데 그 부분이 불충분하니까요. 불명확하다고 해야할까요?
읽는 입장에서 판단할 수 있는, 혹은 주장하는 입장에서도 측정할 기준이 없으니 당연한거겠죠.
주어진 예시들은 '집중된 권력에 의한 단기적 합의' 가 어렵다는 것이지, 사회적 합의가 대단히 어렵다는 예시로서 적절한지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데이터와 가설이 따로 노는 느낌이에요.
그리고 그 또한 예측불가능성에 대한 보론으로 불충분하죠.
다자간의 권력분산에 의한 합의의 어려움이 예측불가능성을 증대시킬 것이라는건 가설이지 입증된 주장은 아니니까요.
해당 글의 예시들만으로 입증되었다 볼 수 없고.
그냥 글로서 읽을때는 동의하지 않는 부분이 있다고 해도 문제가 없었습니다. 동의안하면 그만인거고 시리즈 5편에 와서는 방향과 목적이 명확해지면서 앞선 글들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있으니까요.
5편에 와서야 '우리에겐 남은 시간과 기회가 없다' 는 전제에 자연스럽게 동의할 수 있었고,
그러면 이전의 주장들도 '그래 단기간에 하기 어렵지' 라는 필터가 씌워지면서 납득이 되었습니다.
말씀드리자면,
대충 내용과 생각엔 공감을 합니다. 5편에 와서는 그래요.
그럼에도 허술한 부분은 있습니다.
거기에 '집중'했다면 1~4편에서 벌써 말씀을 드렸겠죠(...)
대학원에서 코칭받아가면서 쓰는 논문들도 허술할 때가 많습니다.
저는 허술한거 자체는 문제가 없다고 생각해요.
커뮤니티 게시판이라는 곳은 내가 어제 먹은 밥 이야기도 올라오고 빤스색깔도 이야기하니까요.
발제 자체만으로도 그 의욕과 용기를 높이 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단지, 피드백이라는게 발생하고
어차피 발생한 피드백이면 거기에 대해서는 또 기탄없이 이야기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건 아닌거 같은데요'
'이 부분은 좀 다르게 생각하는데요'
이런 피드백은 학회에서 발표하는 사람도 난감해하는 반응이긴 합니다.
킹설수설하고, 응답을 미루고, 성질내기도 하죠(...)
진실은 대부분의 엘리트들이 기후 문제와 지구 공학에 그저 별 관심이 없다는 것입니다. 본인이 언급한 '단기적 이익'에 집중한 것이 그들이 엘리트가 된 대부분의 이유입니다. 체제 유지와 대중 기만 따위의 거창한 목적은 특정 서적의 베스트셀러화에 거의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그리고 인류가 지구공학적 문제를 해결할 능력과 동기가 현실적이지 않다고 비판할 수는 있겠지만, 그 해결책으로 에코파시즘스러운 방안이 제시된다면 그야말로 더더욱 비현실적인 유머일 뿐입니다.
물론 지금 당장 기술 체제를 붕괴시키자는 주장은 대단히 비현실적이고 우스꽝스러운 주장입니다. 사울 알린스키가 말했듯이, 변혁은 오직 대중이 과거의 방식과 가치에 환멸을 느낄 때에만 가능합니다. 결국엔 모두에게 현존 체제가 자멸하고 있으며, 현존 체제에는 희망이 없다는 사실이 명백해지는 순간이 올겁니다. 그 무렵이면 한 때 엘리트라고 불리었던 자들은 필요하면 망설임 없이 살인과 약탈을 저지르는 일개 약탈자 집단으로 전락해 있을 것이고, 사람들은 굳이 사회 질서를 지키려는 노력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변혁을 시도하지는 않겠지만, 변혁에 적극적으로 반대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전기발전소, 통신시설, 반도체생산공장, 대학 연구소들을 불태우고 한 때 엘리트라고 불리우던 혐오스러운 범죄자들을 죽여버리는게 마냥 비현실적인 이야기는 아니겠죠.
역시 몹시 비현실적인 얘기입니다. 지구 환경이 인류가 감당 못하는 수준으로 임계점을 넘어 자원(환경 포함)의 희소성이 극대화되고 대대적인 변혁이 필요한 순간이 찾아온다해도, 본인이 언급한 '단기적 이익'을 효과적으로 추구하는 쪽이 자연선택될 확률이 높을 뿐입니다. 과학과 기술을 자가파괴하는 사회나 국가가 나온다면 경쟁 사회에 의해 더 빠르게 도태되어 먼저 사라질 뿐이겠지요.
전세계적 환경 재앙이 갑자기 하늘에서 거대운석이 꽂히는 거라면 모를까, 기후 위기와 같은 형태이면 국가별로 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잔여시간과 여력에는 큰 편차가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국가 사회가 막장화 될 때 사람들은 굳이 기술파괴 같은 짓에 열을 올리기 보단 자신과 가족의 위험지역 탈출 혹은 약탈에 힘쓸 겁니다. 결과적으로 망하는 건 비슷할 수도 있는데, 말씀하신 '대중이 과거의 방식과 가치에 환멸을 느끼고 분연히 들고 일어나 엘리트와 과학기술을 처단하는'는 식의 시나리오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렇게 한참 사람들이 죽어나간 아포칼립스가 지나고 나면, 살아남은 사람들은 과거의 기술을 재활용할 방법을 찾으려 여념이 없겠죠.
[어떤 국가 사회가 막장화 될 때 사람들은 굳이 기술파괴 같은 짓에 열을 올리기 보단 자신과 가족의 위험지역 탈출 혹은 약탈에 힘쓸 겁니다.]에 대해서는 제가 앞선 댓글에서 사람들은 변혁을 시도하지도 않을 테지만, 굳이 반대하지도 않으리라고 이미 똑같은 얘기를 했잖습니까. 그러니 더더욱 소수의 인원이 변혁을 일으키는게 쉬워지는 것이고요. 체제 붕괴 상황에서 대중이 엘리트들을 처단한 상황은 역사 속에서 여러 차례(프랑스 혁명, 신해혁명, 나치 혁명, 러시아 혁명 등) 있어왔죠. 물론 미래의 붕괴... 더 보기
[어떤 국가 사회가 막장화 될 때 사람들은 굳이 기술파괴 같은 짓에 열을 올리기 보단 자신과 가족의 위험지역 탈출 혹은 약탈에 힘쓸 겁니다.]에 대해서는 제가 앞선 댓글에서 사람들은 변혁을 시도하지도 않을 테지만, 굳이 반대하지도 않으리라고 이미 똑같은 얘기를 했잖습니까. 그러니 더더욱 소수의 인원이 변혁을 일으키는게 쉬워지는 것이고요. 체제 붕괴 상황에서 대중이 엘리트들을 처단한 상황은 역사 속에서 여러 차례(프랑스 혁명, 신해혁명, 나치 혁명, 러시아 혁명 등) 있어왔죠. 물론 미래의 붕괴 상황에서 대중이 엘리트들을 처단할지, 처단하지 않을지는 알 수 없는 것이지만, 굳이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확정적으로 말씀하시는 것은 어떤 근거가 있어서라기 보다는 그렇게 믿고 싶은 본인의 심리적 욕구에 의한 것으로 보입니다.
제가 이 글을 연재한 이유는 현존 체제에 대한 사람들의 믿음을 꺾기 위해서였는데, 앞장서서 [진실은 대부분의 엘리트들이 기후 문제와 지구 공학에 그저 별 관심이 없다는 것입니다.]라고 저의 주장을 인증해주시는 분이 있으시니 기대 이상의 수확이네요.
제가 이 글을 연재한 이유는 현존 체제에 대한 사람들의 믿음을 꺾기 위해서였는데, 앞장서서 [진실은 대부분의 엘리트들이 기후 문제와 지구 공학에 그저 별 관심이 없다는 것입니다.]라고 저의 주장을 인증해주시는 분이 있으시니 기대 이상의 수확이네요.
지금 우리가 논의하는 게 '이미 되돌이킬 수 없는 임계를 넘어서 사회가 망한 상태'를 지칭하는 것인지 '아직 망하지 않았지만 이대로 가면 사회가 망할 것이라고 모두가 인지하게 되는 상태'를 지칭하는 것인지에 따라 의미가 다를텐데, 저는 후자의 상황에서 '엘리트를 처단해 망해가는 세상을 바로잡는' 서술의 성사 가능에 부정적인 것이지, 일단 망한 이후에 사람들이 오만가지 행동들을 하고 다니는 것에 대해는 별로 의미를 두지 않습니다. 엘리트도 죽이고 열등생도 죽이겠죠. 집도 부술테고 과학시설도 부수겠죠. 물론 그게 특별한 변혁운동이진 않... 더 보기
지금 우리가 논의하는 게 '이미 되돌이킬 수 없는 임계를 넘어서 사회가 망한 상태'를 지칭하는 것인지 '아직 망하지 않았지만 이대로 가면 사회가 망할 것이라고 모두가 인지하게 되는 상태'를 지칭하는 것인지에 따라 의미가 다를텐데, 저는 후자의 상황에서 '엘리트를 처단해 망해가는 세상을 바로잡는' 서술의 성사 가능에 부정적인 것이지, 일단 망한 이후에 사람들이 오만가지 행동들을 하고 다니는 것에 대해는 별로 의미를 두지 않습니다. 엘리트도 죽이고 열등생도 죽이겠죠. 집도 부술테고 과학시설도 부수겠죠. 물론 그게 특별한 변혁운동이진 않고 그냥 망한 사회의 흔한 노략파괴 활동의 일환일 것이며, 특별한 의미도 없습니다. 이미 망했으니 엘리트가 살건 죽건 의미가 없습니다.
그렇게 흘러갈 근거는 본인이 앞서 얘기했던 바들과 같습니다. 에코파시즘이 사회적 합의를 이룰 일도 없고, 전세계인을 지배하여 과학기술을 발전을 제어할 철인이 등장할 일도 없고, 늘 단기적 관점에서 과학기술을 더 발전시키는 사회가 그렇지 않은 사회를 누르고 더 살아남을 것이기 때문이지요. 지구적 위기가 닥쳐도 그 단기적 이익에 더 매몰한 쪽이 더 오래 살아남아 이익을 누리고, 나머지 지역은 대충 망할텐데 그 망한 지역에서 시대에 뒤떨어진 건물이나 엘리트들 좀 부순다고 과학기술의 발전을 막는 효과는 없겠지요. 지금까지 줄창 세계 각국에서 혁명이나 분란이 일어나 엘리트들을 쳐 죽여왔음에도 님이 기대하는 세상은 안 왔듯이, 국지적 혁명따위로는 세상이 바뀌지 않습니다. 전 지구적 영향력을 지닌 철인이 등장해 기술 발전을 멈추자는 전지구적 사회적 합의를 이루고 실로 유능한 전략 전술로 실현하는 게 훨씬 더 현실적입니다. 물론, 실제로는 그게 힘든 이유는 본인이 설명한 바 대로입니다. 그런데 훨씬 더 어려운 걸 민중들이 해낸다? 결국 자신이 믿고 싶은 것에 목 메고 있는 건 본인이에요. 본인이 줄창 설명한 인류 사회의 속성들이, 본인이 원하는 시나리오가 발현하는 것을 훨씬 더 명확히 부정하고 있는걸 직시하셔야죠.
그렇게 흘러갈 근거는 본인이 앞서 얘기했던 바들과 같습니다. 에코파시즘이 사회적 합의를 이룰 일도 없고, 전세계인을 지배하여 과학기술을 발전을 제어할 철인이 등장할 일도 없고, 늘 단기적 관점에서 과학기술을 더 발전시키는 사회가 그렇지 않은 사회를 누르고 더 살아남을 것이기 때문이지요. 지구적 위기가 닥쳐도 그 단기적 이익에 더 매몰한 쪽이 더 오래 살아남아 이익을 누리고, 나머지 지역은 대충 망할텐데 그 망한 지역에서 시대에 뒤떨어진 건물이나 엘리트들 좀 부순다고 과학기술의 발전을 막는 효과는 없겠지요. 지금까지 줄창 세계 각국에서 혁명이나 분란이 일어나 엘리트들을 쳐 죽여왔음에도 님이 기대하는 세상은 안 왔듯이, 국지적 혁명따위로는 세상이 바뀌지 않습니다. 전 지구적 영향력을 지닌 철인이 등장해 기술 발전을 멈추자는 전지구적 사회적 합의를 이루고 실로 유능한 전략 전술로 실현하는 게 훨씬 더 현실적입니다. 물론, 실제로는 그게 힘든 이유는 본인이 설명한 바 대로입니다. 그런데 훨씬 더 어려운 걸 민중들이 해낸다? 결국 자신이 믿고 싶은 것에 목 메고 있는 건 본인이에요. 본인이 줄창 설명한 인류 사회의 속성들이, 본인이 원하는 시나리오가 발현하는 것을 훨씬 더 명확히 부정하고 있는걸 직시하셔야죠.
2편을 읽었어요. 글의 제목은 '사회적 합의의 한계'지만 실제로 사용하신 인용구의 대부분은 '권력자의 권력의지의 한계'네요. 맞아요. 전제군주조차도 사회를 거스르기란 쉽지 않죠.
여기서 '누가' 결정하는 지를 묻는 이유를 모르겠어요. 예시를 들어보죠. 미국에서 인종분리를 끝낸 민권운동과 민권법의 제정은 어떤 공직에도 있지 않았던 마틴 루터 킹, 그리고 그와 같은 인물들의 풀뿌리 운동에서 비롯되었어요. 이들의 투쟁이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냈고 역사적 전환점을 이룬거죠. 여기서 사회의 방향을 누가 결정했나요? 마틴 루터 킹이요... 더 보기
여기서 '누가' 결정하는 지를 묻는 이유를 모르겠어요. 예시를 들어보죠. 미국에서 인종분리를 끝낸 민권운동과 민권법의 제정은 어떤 공직에도 있지 않았던 마틴 루터 킹, 그리고 그와 같은 인물들의 풀뿌리 운동에서 비롯되었어요. 이들의 투쟁이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냈고 역사적 전환점을 이룬거죠. 여기서 사회의 방향을 누가 결정했나요? 마틴 루터 킹이요... 더 보기
2편을 읽었어요. 글의 제목은 '사회적 합의의 한계'지만 실제로 사용하신 인용구의 대부분은 '권력자의 권력의지의 한계'네요. 맞아요. 전제군주조차도 사회를 거스르기란 쉽지 않죠.
여기서 '누가' 결정하는 지를 묻는 이유를 모르겠어요. 예시를 들어보죠. 미국에서 인종분리를 끝낸 민권운동과 민권법의 제정은 어떤 공직에도 있지 않았던 마틴 루터 킹, 그리고 그와 같은 인물들의 풀뿌리 운동에서 비롯되었어요. 이들의 투쟁이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냈고 역사적 전환점을 이룬거죠. 여기서 사회의 방향을 누가 결정했나요? 마틴 루터 킹이요? 아님 민권법을 제정한 당시 연방의회의 다수당 의원들인가요? 그저 사회의 방향을 결정하기 위해 노력한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이 투쟁속에서 드러났을 뿐이죠. 또 사회의 대립이 첨예한 상황에서 권력자의 권력의지가 의제의 성패를 결정한 경우도 있었어요. 인용구에 링컨을 포함시키셨는데, 저런 말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링컨은 갈등상황속에서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켜 역사의 방향을 바꾼 인물로 평가받아요.
크게 보았을 때, 역사의 모든 순간은 우연처럼 느껴져요. 많은 의도하지 않은 요소들이 인간사의 중요한 사건들을 좌지우지 했죠. 어떤 집단의 미래가 그와 전혀 관계없는 외부세계나 환경의 영향을 받아 결정되기도 했어요.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미래를 예측하여 정책을 수립하고, 사회의 방향을 바꿀 수 있는 인간사회의 능력을 부정하는 것은 다른 문제에요. 우리는 역사속에서 많은 문제에 대해 '사회적 합의'를 이루며 사회의 방향을 바꿔왔다는 사실들이 있는걸요. 노예해방이든 민권운동이든 여성참정권이든, 혹은 환경운동이든 대단히 어려운 일들이었죠. 그런데 대립되는 의지의 투쟁속에서 사회적 합의들은 드러나고 그에 따라 사회의 방향은 결정되었어요. 이걸로 충분하지 않나요?
여기서 '누가' 결정하는 지를 묻는 이유를 모르겠어요. 예시를 들어보죠. 미국에서 인종분리를 끝낸 민권운동과 민권법의 제정은 어떤 공직에도 있지 않았던 마틴 루터 킹, 그리고 그와 같은 인물들의 풀뿌리 운동에서 비롯되었어요. 이들의 투쟁이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냈고 역사적 전환점을 이룬거죠. 여기서 사회의 방향을 누가 결정했나요? 마틴 루터 킹이요? 아님 민권법을 제정한 당시 연방의회의 다수당 의원들인가요? 그저 사회의 방향을 결정하기 위해 노력한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이 투쟁속에서 드러났을 뿐이죠. 또 사회의 대립이 첨예한 상황에서 권력자의 권력의지가 의제의 성패를 결정한 경우도 있었어요. 인용구에 링컨을 포함시키셨는데, 저런 말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링컨은 갈등상황속에서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켜 역사의 방향을 바꾼 인물로 평가받아요.
크게 보았을 때, 역사의 모든 순간은 우연처럼 느껴져요. 많은 의도하지 않은 요소들이 인간사의 중요한 사건들을 좌지우지 했죠. 어떤 집단의 미래가 그와 전혀 관계없는 외부세계나 환경의 영향을 받아 결정되기도 했어요.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미래를 예측하여 정책을 수립하고, 사회의 방향을 바꿀 수 있는 인간사회의 능력을 부정하는 것은 다른 문제에요. 우리는 역사속에서 많은 문제에 대해 '사회적 합의'를 이루며 사회의 방향을 바꿔왔다는 사실들이 있는걸요. 노예해방이든 민권운동이든 여성참정권이든, 혹은 환경운동이든 대단히 어려운 일들이었죠. 그런데 대립되는 의지의 투쟁속에서 사회적 합의들은 드러나고 그에 따라 사회의 방향은 결정되었어요. 이걸로 충분하지 않나요?
글쓴이가 그걸 묻는 이유는 (과학 기술을 발전시키는 하나로 정체화 하기 불분명한 광의의) 엘리트들이 전 지구적 문제를 해결 할 수 없다고 논변하기 위함이죠. 그리고 '의도적으로 엘리트가 원하는 방향으로 세상을 바꾸기는 어렵다'는 것을 '우리가 원하는(=기술발전과 환경문제를 병행하는) 방향으로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를 증명하는 논변인 것처럼 비틀고 있습니다. 언급하신 것처럼 '의도적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 어렵다'와 '그럼에도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세상이 변화할 수 있다'는 명제는 양립 가능한 것임에도 말입니다. 그런데 정작 그래놓고서 마지막에 가서는 '본인이 원하는 방향(=민중이 엘리트를 처단하는)으로 세상이 바뀔 것'은 기대하고 있다는 점이 아이러니한 부분입니다.
인류는 역사상 단 한번도 "사회적 합의"를 일관적, 합리적, 장기적인 계획을 따라 질서정연하게 이룬 바가 없습니다. 자신만의 권력을 추구하는 수많은 이익집단들의 권력 투쟁 속에서 승리한 이익집단이 법률과 공권력을 동원해 나머지 집단에게 자신의 의지를 강요하고서는 “이것이 사회적 합의노라”라고 선언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죠. 사회 발전은 서로 다른 파벌 간의 투쟁과 타협으로 점철됩니다. 어느 때는 한쪽이 주도권을 잡았다가, 어느 때는 다른쪽이 주도권을 잡습니다. 투쟁의 노선은 여론에 따라 계속 바뀝니다. 사회 제도는 정교한 장기적, 합... 더 보기
인류는 역사상 단 한번도 "사회적 합의"를 일관적, 합리적, 장기적인 계획을 따라 질서정연하게 이룬 바가 없습니다. 자신만의 권력을 추구하는 수많은 이익집단들의 권력 투쟁 속에서 승리한 이익집단이 법률과 공권력을 동원해 나머지 집단에게 자신의 의지를 강요하고서는 “이것이 사회적 합의노라”라고 선언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죠. 사회 발전은 서로 다른 파벌 간의 투쟁과 타협으로 점철됩니다. 어느 때는 한쪽이 주도권을 잡았다가, 어느 때는 다른쪽이 주도권을 잡습니다. 투쟁의 노선은 여론에 따라 계속 바뀝니다. 사회 제도는 정교한 장기적, 합리적 계획이 아니라 수많은 이익집단들의 투쟁과 타협의 결과, 그리고 체제의 필요에 따라 그때그때 개조하고 땜빵하는 방식으로 성립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제일 잘 보여주는게 한국의 징병제 입니다. 한국의 징병제가 장기적, 합리적 계획에 따라 설계되었더라면 지금처럼 의무복무에 대한 보상이 형편없지도 않았을 것이고, 90%를 넘어가는 역사상 유례가 없는 징병률로 정신적, 신체적 문제를 갖고있는 젊은 남성들을 현역병으로 강제징병하지도 않았을 것이며, 그런 징병기준조차 통과하지 못할 정도로 심각한 정신적, 신체적 질병을 앓고 있는 젊은 남성들을 국제노동기구의 협약에 어긋나는 국방에 무관한 노역에 강제동원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한국의 징병제가 합리적으로 설계되었더라면, 보상도 다수의 남성들이 납득할 만큼 충분했을 것이고, 징병률이 이토록 높지도 않았을 것이며, 심신에 질병을 앓고 있는 남성을 징병하기 보다는 건강한 여성을 징병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죠. 지금 당장 체제는 국방이 요구하는 병력 수요를 챙기기는 해야하는데, 합리적 결정에 따라 여성을 징병하기에는 여성계 자체가 대한민국에서 어떤 정치인도 무시할 수 없는 거대한 권력집단을 이루고 있기에, 합리적 결정을 내리기 보다는 상대적으로 숫자도 없고 권력도 없는 심신 질환을 앓고 있는 젊은 남성을 강제징병하고 강제노동에 동원하고 있는 것이죠.
그럼 우리가 지금까지 이룬 인종평등, 성평등, 노동자 처우 개선과 같은 성과는 어떻게 설명할 것이냐? 산업혁명 이후 "평등"을 추구하는 역사적 흐름이 있었습니다. 산업화와 기술 발전에 의해 신분, 성별 구분이 무의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신분, 성별보다는 산업사회가 요구하는 작업들을 잘 수행할 능력이 있느냐가 더 중요해진 것입니다. 신분, 성별을 이유로 유능한 사람들을 소외시킨다면, 그 사회는 효과적으로 작동할 수 없습니다. 노동 착취는 특정 기업에게는 막대한 이윤을 줄 수 있겠지만, 노동자들이 적절히 대우받을 수 있어야 체제 전반이 잘 작동할 수 있습니다. 똑똑한 지도자들은 이를 잘 알고 있습니다. 또한 발전된 교통 기술은 장거리를 빠르게 이동하는 것을 가능하게 만들었고, 전통적인 생활방식을 망가뜨렸습니다. 이로 인해 서로 다른 인종, 국적, 문화, 그리고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섞여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인종, 민족, 종교, 성지향 등을 이유로 서로를 미워한다면, 체제는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없습니다. 소수의 구닥다리 유물들을 제외하면, 체제의 지도자들은 이 사실을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학교에서, 그리고 언론을 통해 인종차별, 성차별, 동성애혐오 등이 제거되어야할 악이라고 배우는 것입니다. 인종차별과 성차별을 철폐하려는 사회운동들은 역사의 흐름에 따라 지지를 받을 수 있었고, 이에 저항하는 움직임은 힘을 잃은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얻은 “사회적 합의”들이 정교한 장기적, 합리적 계획에 따라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은 분명해 보입니다. 그리고 빌 게이츠는 자신의 저서에서 기후재앙을 피하기 위한 전지구에 걸친 정교한 장기적, 합리적 계획을 제안했습니다.
아래 절름발이이리님이 인정하신 바, [진실은 대부분의 엘리트들이 기후 문제와 지구 공학에 그저 별 관심이 없다는 것입니다. 본인이 언급한 '단기적 이익'에 집중한 것이 그들이 엘리트가 된 대부분의 이유입니다.](전 이분이 정말 엘리트 계급에 속해있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습니다마는 엘리트 계급에 아주 깊게 감정이입을 하고 계시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니까 저 댓글을 엘리트 계급해 속한 엘리트가 진심으로 작성한 댓글이라고 간주하겠습니다.) 엘리트들은 인류의 미래 따위에는 무관심하고 지금 당장의 이익을 추구하고 있는데, 어떻게 빌 게이츠가 제안한 정교한 장기적, 합리적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 필요한 전지구적 합의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지 참 궁금합니다. 그리고 단순히 전지구적 합의를 이루는게 다가 아닙니다. 이렇게 이룬 전지구적 합의가 장기간 유지되어야 합니다. 단 한 나라라도 합의를 어기고 무임승차하려들면, 이에 위기감을 느낀 다른 국가들도 합의에서 이탈하기 시작하고, 합의는 무너지게될 것입니다. 북한, 파키스탄, 이란 같은 국가들이 합의에서 이탈하는 것을 어떻게 막을겁니까? 만약 전지구적 합의가 가능하다면, 남북통일, 동북아 평화와 같은 합의를 이루기는 훨씬 쉬울텐데 왜 못이루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이 사실을 제일 잘 보여주는게 한국의 징병제 입니다. 한국의 징병제가 장기적, 합리적 계획에 따라 설계되었더라면 지금처럼 의무복무에 대한 보상이 형편없지도 않았을 것이고, 90%를 넘어가는 역사상 유례가 없는 징병률로 정신적, 신체적 문제를 갖고있는 젊은 남성들을 현역병으로 강제징병하지도 않았을 것이며, 그런 징병기준조차 통과하지 못할 정도로 심각한 정신적, 신체적 질병을 앓고 있는 젊은 남성들을 국제노동기구의 협약에 어긋나는 국방에 무관한 노역에 강제동원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한국의 징병제가 합리적으로 설계되었더라면, 보상도 다수의 남성들이 납득할 만큼 충분했을 것이고, 징병률이 이토록 높지도 않았을 것이며, 심신에 질병을 앓고 있는 남성을 징병하기 보다는 건강한 여성을 징병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죠. 지금 당장 체제는 국방이 요구하는 병력 수요를 챙기기는 해야하는데, 합리적 결정에 따라 여성을 징병하기에는 여성계 자체가 대한민국에서 어떤 정치인도 무시할 수 없는 거대한 권력집단을 이루고 있기에, 합리적 결정을 내리기 보다는 상대적으로 숫자도 없고 권력도 없는 심신 질환을 앓고 있는 젊은 남성을 강제징병하고 강제노동에 동원하고 있는 것이죠.
그럼 우리가 지금까지 이룬 인종평등, 성평등, 노동자 처우 개선과 같은 성과는 어떻게 설명할 것이냐? 산업혁명 이후 "평등"을 추구하는 역사적 흐름이 있었습니다. 산업화와 기술 발전에 의해 신분, 성별 구분이 무의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신분, 성별보다는 산업사회가 요구하는 작업들을 잘 수행할 능력이 있느냐가 더 중요해진 것입니다. 신분, 성별을 이유로 유능한 사람들을 소외시킨다면, 그 사회는 효과적으로 작동할 수 없습니다. 노동 착취는 특정 기업에게는 막대한 이윤을 줄 수 있겠지만, 노동자들이 적절히 대우받을 수 있어야 체제 전반이 잘 작동할 수 있습니다. 똑똑한 지도자들은 이를 잘 알고 있습니다. 또한 발전된 교통 기술은 장거리를 빠르게 이동하는 것을 가능하게 만들었고, 전통적인 생활방식을 망가뜨렸습니다. 이로 인해 서로 다른 인종, 국적, 문화, 그리고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섞여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인종, 민족, 종교, 성지향 등을 이유로 서로를 미워한다면, 체제는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없습니다. 소수의 구닥다리 유물들을 제외하면, 체제의 지도자들은 이 사실을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학교에서, 그리고 언론을 통해 인종차별, 성차별, 동성애혐오 등이 제거되어야할 악이라고 배우는 것입니다. 인종차별과 성차별을 철폐하려는 사회운동들은 역사의 흐름에 따라 지지를 받을 수 있었고, 이에 저항하는 움직임은 힘을 잃은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얻은 “사회적 합의”들이 정교한 장기적, 합리적 계획에 따라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은 분명해 보입니다. 그리고 빌 게이츠는 자신의 저서에서 기후재앙을 피하기 위한 전지구에 걸친 정교한 장기적, 합리적 계획을 제안했습니다.
아래 절름발이이리님이 인정하신 바, [진실은 대부분의 엘리트들이 기후 문제와 지구 공학에 그저 별 관심이 없다는 것입니다. 본인이 언급한 '단기적 이익'에 집중한 것이 그들이 엘리트가 된 대부분의 이유입니다.](전 이분이 정말 엘리트 계급에 속해있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습니다마는 엘리트 계급에 아주 깊게 감정이입을 하고 계시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니까 저 댓글을 엘리트 계급해 속한 엘리트가 진심으로 작성한 댓글이라고 간주하겠습니다.) 엘리트들은 인류의 미래 따위에는 무관심하고 지금 당장의 이익을 추구하고 있는데, 어떻게 빌 게이츠가 제안한 정교한 장기적, 합리적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 필요한 전지구적 합의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지 참 궁금합니다. 그리고 단순히 전지구적 합의를 이루는게 다가 아닙니다. 이렇게 이룬 전지구적 합의가 장기간 유지되어야 합니다. 단 한 나라라도 합의를 어기고 무임승차하려들면, 이에 위기감을 느낀 다른 국가들도 합의에서 이탈하기 시작하고, 합의는 무너지게될 것입니다. 북한, 파키스탄, 이란 같은 국가들이 합의에서 이탈하는 것을 어떻게 막을겁니까? 만약 전지구적 합의가 가능하다면, 남북통일, 동북아 평화와 같은 합의를 이루기는 훨씬 쉬울텐데 왜 못이루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기후변화로 다른 지역 다 망해도 북극 근처에서 소수의 엘리트들이 과학기술을 보존한채 호의호식하며 살다가 지구 환경이 어느정도 복구되면 다시 산업문명을 재건할 수 있다는 기괴한 망상에 빠져계신가 본데, 불행하게도 현실은 전혀 다릅니다. 지구상의 모든 산업 선진국들은 국제무역망으로 긴밀하게 연결되어있고 국제무역망이 끊겼을 때 살아남을 수 있는 산업국가는 존재하지 않거든요.
A국가는 자원에 특화, B국가는 원자재 특화, C국가는 원자재를 가공하는데 특화, D국가는 가공된 원자재를 이용해 부품을 만드는데 특화, E국가는 부품을 이용해... 더 보기
A국가는 자원에 특화, B국가는 원자재 특화, C국가는 원자재를 가공하는데 특화, D국가는 가공된 원자재를 이용해 부품을 만드는데 특화, E국가는 부품을 이용해... 더 보기
기후변화로 다른 지역 다 망해도 북극 근처에서 소수의 엘리트들이 과학기술을 보존한채 호의호식하며 살다가 지구 환경이 어느정도 복구되면 다시 산업문명을 재건할 수 있다는 기괴한 망상에 빠져계신가 본데, 불행하게도 현실은 전혀 다릅니다. 지구상의 모든 산업 선진국들은 국제무역망으로 긴밀하게 연결되어있고 국제무역망이 끊겼을 때 살아남을 수 있는 산업국가는 존재하지 않거든요.
A국가는 자원에 특화, B국가는 원자재 특화, C국가는 원자재를 가공하는데 특화, D국가는 가공된 원자재를 이용해 부품을 만드는데 특화, E국가는 부품을 이용해 완제품을 만드는데 특화, F국가는 식량생산, G국가는 금융에 특화, 이런식으로 국가마다 주력 수출상품이 있고, 국제무역망을 통해 자국에서 생산할 수 없는 것을 외부에서 수입하는 방식으로 산업사회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 중 한 국가라도 붕괴하면 그 피해효과는 전세계로 뻗어나갑니다. 그래서 현대에 들어와서 대규모 전면전이 뜸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미국, 중국이 패권경쟁을 하고 있지만, 두 국가 모두 상대가 무너지면 자기도 무너진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사회학자 찰스 페로우(Charles Perrow)는 기술 체제가 다음과 같은 상황에서 재앙적인 붕괴를 겪게되리라고 적었습니다.
1. 체제가 고도의 복잡성을 띄고 있다. 즉, 작은 붕괴가 예상치 못한 결과를 가져온다.
2. 체제의 상호의존도가 높다. 즉, 한 지역의 붕괴가 빠르게 전체에 퍼져나간다.
찰스 페로우는 체제 붕괴를 막기 위해 비동조화(decoupling) 장치를 마련하기를 권했으나, 이조차도 오직 제한적인 효과만을 갖으리라고 적었습니다. 그리고 기술이 발전할 수록 기술 체제는 복잡해지고, 체제 간의 상호의존도는 높아집니다. 결론적으로, 기후변화로 인해 중국, 미국과 같은 현대문명을 떠받들고 있는 핵심국가들이 무너지면, 도미노가 무너지듯 다른나라들도 연쇄적으로 무너지고, 당연히 북극, 남극 근처의 산업국가들도 무너집니다.
그리고 민중이 엘리트들을 처단하는 혁명따위는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아주 확고한 믿음을 갖고 계시는데, 어쩌면 한국에서는 절름발이이리님의 말씀이 맞을 수도 있어요. 한국인들이 워낙 개돼지라. 하지만 미국, 러시아, 프랑스, 중국, 독일 같은 국가에서도 그런 일이 터지지 않으리라고 확신하기는 힘들죠. 말씀하신대로 프랑스 혁명, 나치 혁명, 볼셰비키 혁명 모두 결과적으로 민중이 원하는 세상을 만드는데 실패했습니다. 하지만 프랑스 혁명은 왕과 귀족들의 목을 자르는데에 성공했죠. 나치 혁명은 유대인들을 감축시키는데 성공했죠(나치 눈에는 그들이 엘리트였습니다.) 볼셰비키는 로마노프 왕가의 씨를 말려버리는데 성공했죠.
A국가는 자원에 특화, B국가는 원자재 특화, C국가는 원자재를 가공하는데 특화, D국가는 가공된 원자재를 이용해 부품을 만드는데 특화, E국가는 부품을 이용해 완제품을 만드는데 특화, F국가는 식량생산, G국가는 금융에 특화, 이런식으로 국가마다 주력 수출상품이 있고, 국제무역망을 통해 자국에서 생산할 수 없는 것을 외부에서 수입하는 방식으로 산업사회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 중 한 국가라도 붕괴하면 그 피해효과는 전세계로 뻗어나갑니다. 그래서 현대에 들어와서 대규모 전면전이 뜸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미국, 중국이 패권경쟁을 하고 있지만, 두 국가 모두 상대가 무너지면 자기도 무너진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사회학자 찰스 페로우(Charles Perrow)는 기술 체제가 다음과 같은 상황에서 재앙적인 붕괴를 겪게되리라고 적었습니다.
1. 체제가 고도의 복잡성을 띄고 있다. 즉, 작은 붕괴가 예상치 못한 결과를 가져온다.
2. 체제의 상호의존도가 높다. 즉, 한 지역의 붕괴가 빠르게 전체에 퍼져나간다.
찰스 페로우는 체제 붕괴를 막기 위해 비동조화(decoupling) 장치를 마련하기를 권했으나, 이조차도 오직 제한적인 효과만을 갖으리라고 적었습니다. 그리고 기술이 발전할 수록 기술 체제는 복잡해지고, 체제 간의 상호의존도는 높아집니다. 결론적으로, 기후변화로 인해 중국, 미국과 같은 현대문명을 떠받들고 있는 핵심국가들이 무너지면, 도미노가 무너지듯 다른나라들도 연쇄적으로 무너지고, 당연히 북극, 남극 근처의 산업국가들도 무너집니다.
그리고 민중이 엘리트들을 처단하는 혁명따위는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아주 확고한 믿음을 갖고 계시는데, 어쩌면 한국에서는 절름발이이리님의 말씀이 맞을 수도 있어요. 한국인들이 워낙 개돼지라. 하지만 미국, 러시아, 프랑스, 중국, 독일 같은 국가에서도 그런 일이 터지지 않으리라고 확신하기는 힘들죠. 말씀하신대로 프랑스 혁명, 나치 혁명, 볼셰비키 혁명 모두 결과적으로 민중이 원하는 세상을 만드는데 실패했습니다. 하지만 프랑스 혁명은 왕과 귀족들의 목을 자르는데에 성공했죠. 나치 혁명은 유대인들을 감축시키는데 성공했죠(나치 눈에는 그들이 엘리트였습니다.) 볼셰비키는 로마노프 왕가의 씨를 말려버리는데 성공했죠.
너무 장황해진 것 같은데, 제 주장을 요약하자면 이렇습니다. 기술 체제의 단기적 이익에 도움이되는 가치는 채택되고, 방해가 되는 가치는 제거됩니다. 인종평등, 성평등은 기술 체제를 안정시키고, 효율성을 높여 기술 체제의 단기적 이익에 도움이 되었기 때문에 현존 사회 질서의 주요 가치가 될 수 있었습니다. 제가 3편에서 지적했듯이 https://redtea.kr/?b=3&n=11778 , 미래의 재앙을 막기위해 지금 당장의 이익을 자제하자는 가치는 기술 체제의 단기적 이익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채택되지 않을 것입니다.
국제무역망이 끊겼을때 살아남을수 있는 국가는 소수가 맞습니다만, 어쨌건 있기는 하다고 보는데 가장 강력한 국가인 미국 및 캐나다는 유력한 후보로 볼 수 있습니다. 현재를 기준으로 하면 북 아메리카 대륙은 국제 교류 없이도 거의 모든 종류의 자원을 자급자족할 수 있습니다. 기후 변화시 식량수급 정도가 관건인데, 캐나다는 동토가 풀려 경작지를 확보하는 대응이 가능할 수도 있지요. 온난화는 인류 전체에 파멸적인 재앙이기는 하지만, 문명의 소실까지 이를 만큼인가는 쉽게 단언하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민중이 엘리트를 처단하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자주 일어납니다. 그런 일이 안 일어난다는 게 아니라, 전 지구적으로 동시 다발적으로 그런 일이 일어나 전 지구적 기술발전을 중단하는 형태로 작용하지는 않을 것이란 겁니다.
그리고 민중이 엘리트를 처단하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자주 일어납니다. 그런 일이 안 일어난다는 게 아니라, 전 지구적으로 동시 다발적으로 그런 일이 일어나 전 지구적 기술발전을 중단하는 형태로 작용하지는 않을 것이란 겁니다.
엘리트들이 문제를 해결할 능력도 없겠지만, 또 하나의 불편한 진실은 대중들이 현재 누리는 안락함을 포기할 의사도 없다는 것이겠죠.
기후변화의 심각성이 엘리트들의 은밀한 밀실에서 논의되던 것도 아니고 이미 널리 알려진 사안입니다. 하지만 당장 30년 뒤에 부산 해운대가 침수된다고 현재 대중들이 자신의 편의성과 안락함을 포기하려고 할까요? 대중들이 스스로 나서서 기후변화대응을 위한 목소리를 높이는데 엘리트들이 이런 움직임을 탄압하는 상황도 아니지 않습니까? 폭동이 일어난다면 기후변화에 대응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기후변화 방지한답시고... 더 보기
기후변화의 심각성이 엘리트들의 은밀한 밀실에서 논의되던 것도 아니고 이미 널리 알려진 사안입니다. 하지만 당장 30년 뒤에 부산 해운대가 침수된다고 현재 대중들이 자신의 편의성과 안락함을 포기하려고 할까요? 대중들이 스스로 나서서 기후변화대응을 위한 목소리를 높이는데 엘리트들이 이런 움직임을 탄압하는 상황도 아니지 않습니까? 폭동이 일어난다면 기후변화에 대응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기후변화 방지한답시고... 더 보기
엘리트들이 문제를 해결할 능력도 없겠지만, 또 하나의 불편한 진실은 대중들이 현재 누리는 안락함을 포기할 의사도 없다는 것이겠죠.
기후변화의 심각성이 엘리트들의 은밀한 밀실에서 논의되던 것도 아니고 이미 널리 알려진 사안입니다. 하지만 당장 30년 뒤에 부산 해운대가 침수된다고 현재 대중들이 자신의 편의성과 안락함을 포기하려고 할까요? 대중들이 스스로 나서서 기후변화대응을 위한 목소리를 높이는데 엘리트들이 이런 움직임을 탄압하는 상황도 아니지 않습니까? 폭동이 일어난다면 기후변화에 대응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기후변화 방지한답시고 행한 정책들로 인해 기존 경제가 타격을 입을 때일 겁니다. 이건 탄소중립과 반대되는 이야기지만, 당장 얼마 뒤에 핵폐기물 용량을 감당하기 어렵다고 해도 탈원전하자면 난리치는 게 현실아닙니까?
엘리트들이 기후변화를 대응할 의지와 능력이 없는 것도 사실이지만 대중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기후변화로 인한 재앙은 막을수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대한민국 국민들은 현명하게도 역대급 세계 최저 수준의 저출산으로 대응하고 있으니 국뽕이 차오릅니다.
기후변화의 심각성이 엘리트들의 은밀한 밀실에서 논의되던 것도 아니고 이미 널리 알려진 사안입니다. 하지만 당장 30년 뒤에 부산 해운대가 침수된다고 현재 대중들이 자신의 편의성과 안락함을 포기하려고 할까요? 대중들이 스스로 나서서 기후변화대응을 위한 목소리를 높이는데 엘리트들이 이런 움직임을 탄압하는 상황도 아니지 않습니까? 폭동이 일어난다면 기후변화에 대응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기후변화 방지한답시고 행한 정책들로 인해 기존 경제가 타격을 입을 때일 겁니다. 이건 탄소중립과 반대되는 이야기지만, 당장 얼마 뒤에 핵폐기물 용량을 감당하기 어렵다고 해도 탈원전하자면 난리치는 게 현실아닙니까?
엘리트들이 기후변화를 대응할 의지와 능력이 없는 것도 사실이지만 대중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기후변화로 인한 재앙은 막을수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대한민국 국민들은 현명하게도 역대급 세계 최저 수준의 저출산으로 대응하고 있으니 국뽕이 차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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