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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1/11/02 00:08:47
Name   매뉴물있뉴
Subject   길치론
그냥 지인 중에 길치가 많습니다.
제가 길치인 사람들을 유독 좋아한다거나
혹시 나라는 사람은, 어떤 길치인 사람들이 좋아한만한 특성을 갖고있는게 아닐까? 라고
곰곰히 생각해본적도 있지만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저는 지인 중에 길치가 많습니다. 그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길치라는 것은 방향감각의 상실만 갖고는 획득할수 있는 속성이 아닙니다.
단순히 방향감각이 없는 사람들과 길치들을 통틀어 길치라고 칭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방향감각이 없는 사람들을 길치가 아닌 방향치라고 불러야하며
길치와는 구분하여 지칭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방향치들은 생각보다 길을 잃지 않기 때문입니다.

혹 이 글을 읽으시는 선생님들 께서는, 제게 그렇게 물으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길치나 방향치나 뭐가 다르냐, 방향 못찾으면 길치지'
아니요 선생님, 그렇지 않습니다.
생각보다 방향치는 길을 잃지 않습니다.

왜일까요
방향치는 '길을 묻기 때문'입니다.
많은 방향치들이 길치로 진화하지 못하는 이유는
길을 물어보기 때문입니다.

길치는 길을 묻지 않습니다.
왜냐고요?
길치는 '나는 길을 잘 찾는다'라고 스스로 믿기 때문입니다.

사실, 생각해보시면 간단합니다.
길을 모르는데 길을 나설수 있을까요?
길을 잃기 위해서는, 길을 나서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대부분의 소심한 방향치들은,
길을 모르면 길을 나서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강인하고 용감한 길치들은
길을 몰라도 길을 나설수 있죠.
길을 나서는 자만이 길을 잃을수 있는겁니다.

때문에 길치들은 방향치들과는 구분되는 두가지 중요한 속성을 갖습니다.
하나는 현실부정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감입니다.
내가 방향치라는 현실을 부정할뿐 아니라
나는 항상 옳은 방향을 찾을수 있다는 자신감까지도 갖춰야 하니까요.

사실 이 현실부정 능력과 자신감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저는 사실, 현실 부정을 못하는 길치를 상상할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길치는, 이미 길을 잃은 뒤에도 스스로를 계속 설득하며
그 길을 계속 가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10분 정도를 걸어가면 도착해야하는 여정이 이미 30분이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목표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확신을 가질수 있는 자신감이 충만해야만
길 잃은 영웅담을 가진 길치가 될수 있기 때문입니다.







길치 사례1

제가 아마 첫번째 만났던 길치는
중학생때...부터 지금까지도 연락을 하고 지내는 친구입니다. 세상에...
암튼 1년 후배 여학생이었습니다.
커서는 음대생이 되었죠.

어려서부터 음대생이 되고싶었던 여중생쟝은
어떻게어떻게 연줄이 닿아, 거장 선생님의 문하에 들어가게 되었읍니다.
굉장히 떨리기도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거장 선생님과 처음 만나뵙기로 약속을 하고 선생님의 집을 찾아갔는데.
......네 뭐 길을 잃었죠.

지하철역에 내려 n번출구로 나와 2-3분이면 도착한다던 선생님댁이었지만
여중생쟝은 두시간을 걸어다니며 선생님의 집을 찾아 헤메었습니다.
결국은 포기하고 주머니속에 있는 선생님의 집전화번호를 찾아 전화를 걸었지만
선생님은 받지 않으셨다고 합니다.

저는 여중생쟝에게 듣기를, 순간 이 학생은 절망했었다고 하더군요.
'세상에... 얼마나 어렵게 레슨해주시겠다고 허락을 해주셨는데ㅠㅠㅠ'
'두시간이나 아무말도 없이 늦었구나ㅠㅠ 이런 써글녀뉴ㅠ'
하는 생각이 눈물이 글썽글썽...ㅠㅠ
근데 두시간이나 길을 잃고나니 어디가 방향인지도 이제는 모르게 되었답니다.
그래서 삼십분인가를 더 이리저리 걸어보다가
선생님께 다시 전화를 걸었더니 선생님이 딱 받으시면서
'xx이니??'하고 물으시더래요
근데 이제 여중생쟝은 갑자기 거기서 눈물이 왈칵하면서ㅠㅠㅠㅠ '선생니이이이이임ㅠㅠ'

선생님의 입장에서는
한번도 본적없는 여중생 아이가 자기집을 찾아온다기에
얘가 혹시 길은 잘 찾아올까 해서 집앞 문앞에 계속 서계셨었답니다.
집앞에서 지하철 입구가 보인다던가?? 뭐 대략 그런 집이었대요.
근데 아이가 나타나지 않고 30분이 지나자
집안에 들어가 다시 아이 집에 전화를 해보고 (아직 핸드폰이라는 것이 드물던 시절)
아이 집에서는 레슨하러 나갔다고 하고
다시 집밖에 나가 지하철 출구만 쳐다보고...
'....여자아이가 혹시 무슨일이라도 생기면 부모님 낯을 어떻게 보나ㅠㅠ' 하는 생각에
선생님도 집밖을 나가 아이를 찾기 시작하셨고
아이 집에서 전화를 받은 부모님도 당황하시고 뭐 하는 틈에
'아, 내가 그래도 집에서 전화를 기다려야하는것 아닌가' 해서
집안에 발을 들어놓으시자마자 여중생쟝의 전화를 받으신 것.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지하철역을 4-5개역 을 지나쳐 걸었다고 합니다.

말로는 딸 키우다보니 뭔가 자꾸 잊어먹는다고 하기에
...너님은 청소년 때부터도............라고
자주 상기시켜주고 있읍니다.



길치 사례 2
동갑내기 남고생이었습니다. 길치로써는 제법 드문 남자 아이인 것이에요.
함께 다니던 교회의 구조가

유치부실ㅜ성가대실ㄱ
       유년부실      식당
본당 ---ㅗ---복도---ㅓ
                        출구

뭐 대충 이런식이었는데
유년부실에서 본당으로 이동할때 보면
성가대실/식당/복도/본당 이런 경로로 항상 이동하길래 물어봤더니
유년부실의 문이 두개 달려있다는 것을 몰랐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대략 교회 다니기 6개월 되었을 무렵)

유치부실에서 유년부실로 이동하는데 실패하고 자기를 찾으러 와달라고
전화를 (이때는 핸드폰이 있었읍니다)한다거나 하는 시행착오 끝에
성가대실-->식당-->복도-->유년부실-->성가대실을 순환하는 순환로를 창안하고
교회내 모든 장소들을 순환로상 우측, 순환로상 좌측.에 위치한다라고 외운 뒤에는
비로소 길을 잃지 않게 되었습니다.
(대략 교회다니기 1년 되었을 무렵)

길치가 되기 위해서는 방향감각이 없을뿐 아니라
자신감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걸 일깨워준 친구가 저녀석이었습니다.
길도 모르는 주제에 가장 먼저 문을 나설뿐 아니라
항상 선두에서 성큼성큼 걸었거든요

......지금은 멀쩡하게 어느 작은 시골교회의 목회자를 하고있습니다.



길치 사례 3
1년 선배 여대생쟝이었습니다. 전공은 언론학과셨음.
제가 2학년, 선배가 3학년이 되던 시기에 들은 이야기인데,

선배가 2학년이던 시절
미대 건물을 나와 중앙 도서관으로 가려고 했답니다.
맞게 걸었다면 서쪽방향을 향해 도보로 10분정도?
하지만 동쪽 방향을 향해 30분은 걸어가셨고
결국은 대학을 벗어나 다른 지역으로... 갔다가
어쩌다 로스쿨 도서관에 들어가셨답니다.

로스쿨 도서관 1층을 찾아가
'제가 지금 중앙도서관을 찾는데, 어느 방향인가요,
저는 지금 미대 건물에서 왔습니다.' 라고 말하자
1층 데스크 언니는 설명을 포기하고
마이크로 로비에 방송을 했답니다.
'중앙도서관 갈일 있으신분 데스크로 와주시겠습니까, 여기 길잃은 1학년 신입생이 있습니다'
...... 하지만 선배는 당시 2학년, 그것도 2학기.

어떻게 반대쪽을 향해 걸었냐고 묻자 이 누님은
'아니 저번에 갔을땐 분명히 해의 반대방향으로 걸었었다니까?
그래서 이번에도 반대 방향으로 걸었지'라고 대답했습...



사례 4
뭐라 그 참. 그 설명하기 난해한데.
(지명은 제가 지어낸 것, 본래는 미국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부산 사는 사람들이 대구 근처 캠핑장에서 모이기로 했는데
약속된 시간이 되도 이 분이 안오시는 겁니다.
그래서 왜 안오시냐고 전화했더니 '나 아직 고속도로에 있어'라고 하시길래 기다렸죠?
근데 한시간쯤 지나서 전화가 오더니 '나 길 잃은것 같아'라고 전화왔다고 생각하시면 편합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누구보다 일찍 출발하셨고,
저희에게 전화하셨을 무렵에는 이미 대구를 지나쳐 대전 정도에 가계셨읍니다.



사실 3번 사례님이 제가 아는 길치계의 최고존엄.
집 근처를 산책하다 말고
뜬금없이 핸드폰을 산책중간에 떨어뜨렸다고 착각한 나머지
자기가 걸어온 길을 되짚어가며 걷다가 집 근처에서 길을 잃었는데
사실 산책하는 내내 본인 오른손에 쥐고있었다거나,
마트 미아보호시설 리뷰가능, 각 지점별로 장단점 나열 가능, 등등등



그냥 아무 생각없이 생각가는대로 길치 이야기를 주욱 써봤는데
..이 글의 볼륨 뭐지?
뭐지 나 이거 어떻게 마무리 하지

저는 길을 잘 찾읍니다.
백화점 안에서도 길 잘찾아요.
용산역 아이파크 백화점, 코엑스, 부평역 지하상가 등등
어디서든 어디든 잘 찾아다닙니다. (자랑)

자랑질로 마무리 해야겠다. 끝
자러 갈래요 빠이.



11
  • 길치의세계는 심오하다
  • 추천 버튼 어딨더라… 더듬더듬 찾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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