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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3/01/16 16:03:57
Name   하마소
Subject   별개의 환대
최근 들어 안부가 뜸하던 이들로부터 연락이 오는 일을 꽤 자주 겪는다. 아마도 오랜만에 바꾼 톡의 프로필 사진 때문이겠지. 평소에 전혀 신경쓰지 않던 사진이기에, 몇 년 만에 바뀌는 프로필은 생에 있어 꽤 중요한 변화를 암시하는 대목으로 여겨지기 충분할테니. 그것도 곧 태어날 아이의 초음파 사진이라든가 하는 무언가가 자리해있는 건 한 개인의 세계를 뒤흔들 수 있는 가장 큰 사건과 마주했음을 알아채기에는 충분한 단서이기에, 오랜 시간으로 두터워진 소원함도 순간 잊을만한 놀라움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내가 느끼는 내 신변에 대한 놀라움은 당연한 거지만, 누군지 모를 상대가 그리 느낀다는 건 심히 생경한 이야기. 그게 그만큼의 세월이 다져온 장벽마저 돌파하게 된다는 건 더더욱. 그러나 어떤 장벽이든 돌파했다고 하여 그 거리감조차 완전히 소거된 건 아니다. 반가움 또는 놀라움에 모처럼만의 대화가 시도되어도, 꽤 오랜 시간 단절되어 있던 존재를 향한 몰입이 그리 쉬운 건 아니니까. 그래서 그럴 때일수록 단절을 넘어서려 노력한 상대에게 고마움을 숨기지 않는다. 혹여 그 연락에 숨은 의도가 있다 해도, 어려운 부탁을 청할만큼 나를 떠올릴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이 손쉬운 단절의 세상에선 감사한 일이니까. 의도가 없다면 더더욱.

사모님과 느긋한 저녁을 보내며 하루를 마무리하던 중 톡이 울린다. 광고 메시지들은 심야만 아니라면 시간을 가리지 않고 오기에 으레 그렇듯 신경쓰지 않았는데, 연이어 울리는 진동이 아무래도 목적을 띈 대화의 시도같다. 화면을 켜봤더니 세상에, 이게 누구람. 오랜 기억 속으로 잊어버릴 뻔 했던 - 물론 떠올리려면 바로 떠올릴 수 있었지만, 그럴 만한 일이 아쉽게도 없었으니 - 누군가의 인사다. 잘 지내냐는 한 마디와 함께 너무 오랜만이라 머쓱한 듯한 한 줄의 톡이 덧붙어있다. 그러게, 언뜻 생각해도 8년 만, 아니 더 오래 전의 일일까? 우리가 마지막으로 만난, 아니 안부를 나눴던 시점이 언제인지가 기억나지 않을 정도인데 그 머쓱함은 비단 네게만 함께하고 있는 게 아니겠지. 그럼에도 그 어색한 듯한 인사마저 너무나도 반갑다. 그래, 그러는 누군가, 그러니까 당신은 잘 지냈는지.

동갑내기 친구라 어느 새 마흔이 되어버린 서로, 그러니까 각자를 한탄하다 문득 잠깐 동안 30대와 상봉할 수 있는 시간이 다가옴을 떠올리고 실없이 자음을 연타한다. 그 즈음 머쓱함은 어느 새 온전한 반가움이 되고, 나름의 안부들이 세월의 풍파에 텅 비어버린 서로의 정보란을 다시금 채워나간다. 태어난 지 얼마 안된 둘째의 육아로 정신이 없다던 누군가의 말에 나는 20일도 채 남지 않은 예정일을 이야기하며 엄살이 아닌 실재하는 불안을 호소하는데, 문득 이런 즈음에 과거로 기억을 되돌려보는 건 어떤 글귀에서든 흔히 목격할 법한 클리셰 아니었나. 상상력이 빈약한 나 역시나 예외는 아니어, 이런 현재를 논하는 동안 언젠가의, 누군가를 처음 알게 된 그 때 그 즈음을 떠올려본다. 이미 지난 세기의 일. 그러니 우리는 제법, 아니 몹시 오랜 시간동안을 알고 지낸 친구였구나. 우리가 알아온 것도, 지난 세기와의 거리감도 우리 생의 절반을 훌쩍 넘어서는 시간의 몫이라는 건 이제는 결코 짧다고 말할 수 없는 생의 무게감에 덧대어져 아득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그 오랜 시간 중간의 꽤 오랜 기간 동안 젊음의 미숙함으로 나름의 분투와 괴로움 속을 헤집으며 헤메던 각자의 모습도 지금껏 눈에 어른거리는데, 어느덧 이 시간들을 차분히 뒷켠에 두고 평온한 현재를 이야기하는 지금이 있다. 잘 지내온걸까, 아마도 그런 거겠지.

육아에 대한 정보를 갈급하게 된 현재라 이와 관련된 많은 경험담을 듣는데, 그 때마다 언제의 누구로부터든 항상 빠지지 않는 두 가지의 결론이 있다. '어떻게든 하게 된다'와 '사모님께 잘하라'. 그 중 후자를 조금 더 집중하여 강조하는 누군가, 그리고 잠깐의 소강상태를 맞이하는 대화. '둘째가 어리니 바쁘겠구나. 우리도 이제 어떻게든 맞이할 광경이겠지' 라는 생각을 하며 폰에서 손을 놓고 책을 보다 다시 알림을 보내는 톡에 화면을 켜보니, 웬 과일 선물이 도착했읍니다. 이게 무슨 일이지, 세상에 이렇게 고마울 데가. 그러더니 잠깐만을 외치는 누군가. 그리고 잠깐의 공백이 지나자 이번에는 아기옷 선물 메시지가 뜬다. 요긴하게 쓰이리란 한마디와 함께. 갑자기 잔뜩 생성된 감사함이 뭉쳐서 황송함을 이루고 만다. 모처럼의 재회가 반가웠지만 이 정도의 마음을 받아들 정도로 내게 고마운 일이 있는 걸까 하는 의문이 들려는 찰나, 누군가로부터 전해진 메시지로 나는 우리의 마지막 기억이 수 년 전 누군가의 결혼식장이었던 걸 떠올려냈다.

아마 그 즈음이 내겐 인생에서 가장 힘겨울 즈음이었던가. 그 때가 맞다면 사람들과 대면하는 것 조차 꺼리던 시기였고, 이를테면 해가 지기 전에 누군가와 마주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지경으로 마음이 망가져있던 괴로운 시간이었다. 그래도 소식을 접하고, 어떻게든 축하를 하겠다고 어렵게 몸을 움직였던 기억이 방금 받은 메시지 덕에 흐릿하게 나기 시작했다. 다만 그럼에도 기억이 뚜렷해지지 못한 건 아마 떠올리기 싫던 시기 전반의 문제가 되겠지. 그래서, 네가 와줬지만 나는 가지 못해 미안했다는 마음을 전한 누군가의 말에서 언뜻 그랬구나, 하는 걸 떠올리지 못했음이 미안했다. 그렇지만 굳이 그 미안함을 꺼내 내 신경마저 그 지점에 그대로 둘 필요는 없겠지. 그저 이 고마움에 집중하는 편이 더 바람직할테니. 그러면서 언젠가 읽었던, 순수하고 무조건적인 환대에 대한 어떤 구절을 떠올려본다.

의무와 언어로 예속되지 않은, 그래서 예상도 기대의 대상도 되지 않으리라 여겨지는 환대는 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이를 데리다는 절대적 환대라 칭하며, 불가능하지만 지향해야 할 영역으로 언급했던 걸로 기억한다. 사회 내에 뿌리내린 한낱 인간으로서 도달할 수 없는 영역이기에 그저 후행적 댓가가 따름을 기대하지 않는 정도의 환대를 생각해보자. 서로를 각자의 인질로 만들지 않는, 그래서 그저 내가 고마워서, 정도로 이야기할 수 있는 환대들. 선물을 거듭해서 보내온 누군가는 조금 지나버린 내 생일을 이야기하며 선물의 명분을 명시하지만, 응답하지 못한 하객으로서의 입장을 떠올리게 되는 건 조금은 슬프고 미안한 일이다. 너에게도, 그리고 나에게도. 그러니 행위의 관계에 의해 연결되어 예속되는 답례들이 아닌, 그저 예상되는 의도없이 순수한 의지의 두 환대들이 개별적으로 존재했었다고 생각하자. 그저 그 곳의 결혼을, 여기의 탄생을 축하하겠다는 의지의 표상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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