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23/02/01 03:38:06
Name   당근매니아
Subject   우연과 우연이 겹쳐 만들어진 역대급 돼지고기 수육
운동을 마치고 돌아오니 어머니는 오늘 저녁 메뉴를 돼지고기 수육으로 정하셨더군요.
비록 이모댁에서 가져온 전라남도 김장김치는 다 먹었지만, 고기는 항상 옳으니까 행복하게 기다렸습니다.

어느 집이나 마찬가지인 국룰멘트 '밥먹어~'가 들려와서 식탁에 나가는데, 어머니가 께름칙한 말씀을 하시더군요.
제가 베트남 여행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사온 녹차 찻잎을 수육에 넣었다는 거였습니다.
문제는 제가 베트남에서 녹차를 사온 적이 없다는 점.......

제가 다낭 여행을 갔을 때 반미집에서 나온 냉차는 한국에서 맛보았던 공차 타로밀크티의 향을 내뿜고 있었고,
전 가게 직원에게 부탁해 무슨 차인지 확인했고, 그걸 들어오는 길에 면세점에서 사왔죠.
판단나무잎을 말려 만든 차였습니다.......

제 고정관념에는 그게 고기와 별로 어울리는 향이 아니었고, 그래서 별 기대 않고 수육을 집었습니다.
어머니가 고기 자를 때 향이 좋더라~ 하는 말을 하는 것도 흘려들었죠.

근데 이게 무슨 조화인지 맛이 있는 겁니다.

판단나무잎에 많이 노출된 가장 끄트머리 부분은 단내가 좀 과했지만,
나머지 중간 부분은 딱 적당한 수준으로 특유의 단내가 살살 올라왔고,
파래초무침과 같이 먹기 딱 좋은 향을 머금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잘나가는 족발집에서 삶은 고기마냥 껍질 부분의 젤라틴도 제대로 활성화되어 있더군요.
맛있게 잘 먹어치웠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판단나무잎에 고기를 평소보다 쫀쫀하게 만들어주는 효과는 없을 듯 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께 물어보니 드러난 사실은, 고기와 같이 먹었던 톳을 먼저 삶았고 그 물에 돼지고기를 삶았다는 것...

결과적으로 성립한 가설은 ① 톳에서 나온 젤라틴이 고기식감을 향상시켰고, ② 판단나무잎이 향을 배가했다는 겁니다.

근데 사실 톳은 먹을 수 있는 기간이 매우 한정적이잖아요.
그래서 다음에 수육을 할 때에는 톳 대용으로 다시마를 같이 넣어 팔팔 끓이고,
녹차 대신 판단나무 잎차를 넣어 실험해보기로 했습니다.

아직 그 수육의 기막힌 맛이 톳 때문인지, 판단나무잎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혹시라도 부엌에 여행 다녀오면서 남았던 판단나무잎이 있다면 시험해보시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합니다.

찾아보니까 동남아 현지에서는 말리지 않은 판단나무잎에 고기를 싸먹기도 하는 모양이네요.



* 판단나무 향이 어떤 향인가 하면.... 앞서 말씀드렸던 공차의 타로밀크티 향이나, 카야잼 향을 생각하시면 됩니다.
타로밀크티에 판단이 들어가는지는 모르겠고, 카야잼에는 주요재료로 들어가요!



10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공지 티타임 게시판 이용 규정 2 Toby 15/06/19 30612 6
    14610 기타6070 기성세대들이 집 사기 쉬웠던 이유 3 + 홍당무 24/04/20 148 0
    14609 문화/예술반항이 소멸하는 세상에서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세우는 소녀들 1 kaestro 24/04/20 293 5
    14608 음악[팝송] 조니 올랜도 새 앨범 "The Ride" 김치찌개 24/04/20 43 0
    14607 요리/음식드디어 쓰는 쌀국수 투어 모음집 2편 14 kogang2001 24/04/19 261 7
    14606 요리/음식드디어 쓰는 쌀국수 투어 모음집 1편 4 kogang2001 24/04/19 256 9
    14605 게임오픈월드를 통한 srpg의 한계 극복 13 kaestro 24/04/19 443 2
    14604 일상/생각개인위키 제작기 6 와짱 24/04/17 757 11
    14603 정치정치는 다들 비슷해서 재미있지만, 그게 내이야기가 되면... 9 닭장군 24/04/16 1138 6
    14602 오프모임5월 1일 난지도벙 재공지 8 치킨마요 24/04/14 732 2
    14601 꿀팁/강좌전국 아파트 관리비 조회 및 비교 사이트 11 무미니 24/04/13 852 6
    14600 도서/문학떡볶이는 좋지만 더덕구이는 싫은 사람들을 위하여 13 kaestro 24/04/13 1066 5
    14599 일상/생각가챠 등 확률성 아이템이 있는 도박성 게임에 안 지는 방법 20 골든햄스 24/04/12 1092 0
    14598 음악[팝송] 코난 그레이 새 앨범 "Found Heaven" 김치찌개 24/04/12 176 0
    14597 스포츠앞으로 다시는 오지않을 한국야구 최전성기 12 danielbard 24/04/12 991 0
    14596 정치이준석이 동탄에서 어떤 과정으로 역전을 했나 56 Leeka 24/04/11 2488 6
    14595 정치방송 3사 출구조사와 최종 결과 비교 4 Leeka 24/04/11 762 0
    14594 정치절반의 성공을 안고 몰락한 정의당을 바라보며 10 카르스 24/04/11 1332 18
    14593 정치홍차넷 선거결과 예측시스템 후기 11 괄하이드 24/04/11 907 6
    14592 정치2024 - 22대 국회의원 선거 불판. 197 코리몬테아스 24/04/10 5333 2
    14591 정치선거일 직전 끄적이는 당별관련 뻘글 23 the hive 24/04/09 1261 0
    14590 오프모임[5월1일 난지도 벙] 근로자 대 환영! 13 치킨마요 24/04/09 601 1
    14589 일상/생각지난 3개월을 돌아보며 - 물방울이 흐르고 모여서 시냇물을 만든 이야기 6 kaestro 24/04/09 384 3
    14588 일상/생각다정한 봄의 새싹들처럼 1 골든햄스 24/04/09 276 8
    14587 일상/생각탕후루 기사를 읽다가, 4 풀잎 24/04/09 422 0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