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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15/11/06 17:58:45 |
Name | 초코머핀 |
Subject | [잡담] 예상은 원래 빗나가라고 있는 거야 |
#1. - 원래 예상은 빗나가라고 있는 거야. 입버릇처럼 그렇게 말하곤 했다. 그리고 그것은 얼추 맞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모든 것이 내가 원하는 대로만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굉장한 일이겠지만, 한편으로는 그 얼마나 지루한 삶이겠는가 싶기도 했다. 적당히 이루어지고 적당히 실망도 하고. 어느 정도는 예상대로 되다가 어느 선에서는 여지없이 예상을 빗나가고. 모름지기 세상은 그러하다. #2. 저희 엄마마마께서는 제가 평생 시집은 안 갈 줄 아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제가 어느 날 문득 지금 만나는 사람이 있다고 했을 때 분명 기분이 좋았는데 어느 순간 덜컥 걱정이 들더랍니다. 저 지지배를 어떻게 시집보내지??!! 위로 언니, 오빠들이 다들 무난하게 자라 무난하게 시집장가가서 무난하게 살던 것에 비해 저와 또 다른 언니 한 명은 도무지 누굴 만나는 것 같은 기미도 안 보이고 말해도 뒷등으로도 안 듣길래 그저 제 밥벌이나 하면서 사고나 안 치고 살면 요즘같은 시절에는 그것도 그것 나름대로 효도다 싶어 이제 어느정도는 마음을 놓으셨답니다. 그런데 난데없이 제가 그 예상을 깬 거죠. 엄마딸 남자 만나요, 하고. 아직도 그 때 엄마마마께서 제게 하셨던 한 마디 외침이 기억납니다. 넌 평생 시집 안 갈 줄 알았지!!! 아... 엄마...... #3. 돌 맞을 걸 각오하고 얘기하자면요, 제 이상형(말 그대로 이상형)은 '강동원'입니다. 네, 여러분이 아시는 그 강동원 맞아요. 강참치. 늘씬하고 길고 수트 잘 어울리고 안경 쓴 얼굴이 지적으로 보이는. 하지만 이상형은 그냥 한낱 이상형일 뿐이에요. 현실에 존재할 리가 없죠. 다음주 토요일이면 남편이 될 사람과 저 이상형의 공통점은 키가 크다는 것과 안경을 쓴다는 것 뿐. 2014년이 제게 준 건 취업성공패키지 교육 수료증과 키 큰 곰돌이 푸우, 두 가지였습니다. 그 중 곰돌이 푸우는 예상에 없었어요. #4. 버스로 10분 거리에 위치한 서로의 동네를 오가며 연애를 하던 어느 날. 저는 '설마 나를 뽑겠어?'라는 마음으로 지원했던 구직처에 덜컥 합격을 하고 맙니다. 그래서 졸지에 지방으로 이틀 안에 이사를 가야 하는 상황에 놓였죠. 푸우는 삐졌습니다. 10년 넘게 솔로였다가 이제야 겨우 '여자사람친구'가 아닌 '여자친구'라는 게 생겨서 이제 좀 인생의 봄날을 즐겨보나 했는데 졸지에 장거리 아닌 장거리 연애를 하게 생겼으니까요. 못마땅함을 얼굴 가득하게 표현하는 곰을 한 마디로 제압해 놓긴 했는데 저라고 걱정 안한 건 아닙니다. 경기도 -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라 직장생활을 시작했던 터라 저 역시 이사가야할 지방에 기반이 하나도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어쩌겠어요. 먹고 살려면 가야지. 오히려 지금은 내려오길 잘 했다는 생각도 가끔 합니다. #5. 사귀기로 했을 때부터 '음, 나중에 결혼을 하게 된다면 얘랑 하겠군.'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고 그건 남자친구인 곰도 마찬가지여서 한 내년 가을 즈음에 하면 되지 않을까, 하던 우리에게 닥친 날벼락같은 소식. 지금은 고인이 되신 친정 아버지의 암 말기 시한부 선고. 빠르면 6개월, 길면 1년이라는 의사의 이야기를 듣고 예정에 없던 결혼을 서둘렀습니다. 남들은 상견례하고 날짜잡고 식장잡고 그런다는데 저희는 날짜잡고 식장잡고 예물해놓고 상견례를 하게 됩니다. 그런데 지난 달 말, 그렇게 서두른 보람도 없이 아버진 투병 2개월여 만에 세상을 떠나셨고 저희집 식구들은 장례식장에 앉아서도 이 결혼을 어찌 해야 하나 고민합니다. 저희 사정 때문에 무려 1년이나 앞당긴 결혼인데 앞당긴 이유가 사라졌으니까요. 하지만 시댁에서 이미 청첩장 찍어 돌리고 준비도 거의 다 했는데 미루고 하는 건 더 아니라면서 그냥 하자 하셨어요. 아빠 때문에 망설이던 신혼여행 예약도 지르고 필요한 짐들 체크하고 하다보니 어느 새 결혼식 날짜가 코앞이네요. 아마 제 생애 가장 다이나믹했던 한 해가 되지 싶어요. #6. 많은 분들이 아시겠지만 연애와 결혼은 참 다른 거여서 그렇게나 좋은 이 사람에게도 마음 상하는 일이 생기곤 합니다. 아직 서로 목청 높여가며 이 결혼 하네 마네 하고 싸운 일은 없지만, 왜 그런 말 있죠. 두 사람 사이에 다툼이 없다면 그건 한쪽이 일방적으로 참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보라, 라는 말. 지금 딱 그런 상태라고 생각합니다. 많이 이야기하고 조율할 건 조율한다고 생각은 하는데 그래도 결혼은 아무래도 집안과 집안의 만남인 지라 입버릇처럼 예상은 항상 빗나가는 거라며 느긋하게 넘기는 저도 '내 맘 같지 않네~'를 외칠 상황들이 종종 닥쳐오곤 합니다. 하지만 같이 일하는 직장동료들은 저에게 전혀 결혼 코 앞인 사람 같지 않다고, 너무 조용하고 평온한 거 아니냐고들 해요. 사실 저도 제가 곧 결혼하는 사람이 맞나 싶긴 합니다. #7. 다음주 토요일이면 남자친구에서 남편으로 위치 변경이 될 곰돌이 푸우. 처음 여자친구 생겼다는 소식에 친구들로부터 '여자사람이랑 사귀는 것 맞냐', '(상대가) 와우 NPC는 아니지?'와 같은 소리를 들을 정도로 외길인생을 걸어온 사람이라 안해본 것도, 못 가본 곳도 참 많네요. 옆에 앉으면 습관처럼 팔짱을 껴 손을 잡아주는 이 사람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 보며 문득 난 왜 이사람이 좋을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결론은 하나더라고요.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 날 정말 아껴주고 있다는 감정, 나만 바라보고 내 옆을 지켜줄 사람이라는 믿음. 내 사람이라는 확신. 그거였습니다. #8. 그러니까요, 여러분. 입으로, 눈으로는 "난 안될 거야, 아마~"를 외치시더라도 너무 안심하지 마세요. 언제, 어디서, 어떤 일이 일어날 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랍니다 :D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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