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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5/09/20 14:47:06
Name   골든햄스
File #1   IMG_9897.jpeg (26.8 KB), Download : 35
Subject   반짝반짝 빛나는.


어릴 때 히키코모리가 되어 집 밖을 거의 못 나갈 때, 밖에서 웃고 떠드는 사람들은 빛나는 세상을 전유하는 특별한 이들로 보였다. 나는 모종의 죄인이라 집에서 나갈 수 없고, 나가기만 해도 시비가 걸리거나 통상적으로 편의점에서 친절하게 서비스 받는 정도의 일도 어려운 게 틀림 없었다. 어쩌면 그때의 나는 범죄자 수배지에 나오는 어둡고 다듬지 않은 머리카락의 슬픈 얼굴, 흔히들 말하는 좀 ‘쎄한’ 관상의 소유자였을지도 모르겠다. 동북아시아는 소외된 이들에게 수치감을 줬고 그 수치감이 그들을 다시 소외시켰다. 매일 투명한 주먹을 맞는 기분이었지만 어디서, 누가, 왜 때리는지는 알 수 없었다.

이제 현실로 나아가며 나는 현실이 정말 ‘반짝반짝’한가 생각해본다. 분명 아니다. 현실은 은근한 거리두기의 요령, 각자 생계와 집안이 버팀목이 확실할 때의 균형, 어느 조직이건 항상 존재하는 암묵적인 연공서열제(다시 말해, 짬밥) 등 미묘한 것들이 수천 가지다. 인간의 동물성과 서구 선진국 눈치를 보며 지켜야 하는 민주주의 등의 룰 사이에서 사람들은 균형을 찾아냈고 그걸 아는 사람들끼리는 기막히게 서로를 알아보고 서로가 같은 게임의 플레이어란 걸 안다. 나란히 놓인 바둑돌도 자세히 보면 바둑판에서 조금 떠있는 것처럼, 세상 살이에 활발한 사람들은 오히려 세상에서 조금 떠있다. 내가 느끼기엔 불행했던 시절의 내가 세상과 더 표면적이 닿아있었던 거 같다. 뉴스의 단어 하나에 시름하고 눈물짓던 순진한 초년생.

그럼에도 현실로 나와 좋은 점은 그게 현실이란 거다. 숨쉬고 몸을 움직일 때 마우스나 동글 등을 이용하지 않아도 되고, 곧바로 움직여지는 “본래 살았어야 하는 세상” 속에서 내가 활약하고 있다는 자존감이 곧바로 뒤따른다.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와, 아주 조금씩 넓혀가고 있는 사람들과의 화젯거리, 그리고 조금 바둑판에서 떠있는 이 느낌.

언제든 누구든 서로 돌아설 수 있으면서도 같이 있을 때는 화기애애하게 빵가루 하나에 15분도 웃을 수 있는 사람들. 사람의 욕구를 해킹하듯 기본적 사교욕구 등에 대해 해박하게 알아서 어딜 가도 어울리는 무리를 만들지만 그 이상은 타인에게 접근하지 않으려하는. 이성과 본능의 교묘한 교집합. 누가 그들에게 그것을 알려주었을까?

조금씩 나아가며 계속 생각한다. 내가 이곳으로 이토록 고생하며 한 걸음 한 걸음 나온 이유는… 바람에 어느새 길어진 머리카락이 나부낀다. 이마에 가을 햇살이 닿는다. 어느새 알게 된 건 반짝반짝 빛나는 건 내 마음이었다는 것이다. 나의 상상, 마음 자체가 아름다웠던 것이란 걸 나이를 먹다가 알게 되었다. 내가 선생으로 서면 교실도 화기애애하고 달콤한 분위기를 띠곤 했다.

나는 여전히 반짝반짝한 것이 너무 좋다. 어두운 데서 웅크려 자라서 그런가. 밝고 행복한 것을 동경한다. 그런 것을 겪고, 더 만들어보기 위해 오늘도 노력한다. 거짓말할 여유가 없어 세상에 나오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 그 모든 것이 숨길 수 없는 진실이란 걸 알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실제 세상은 어떤 일을 마치자마자 다 같이 피부과를 예약하며 나누는 동질적 웃음(고백하건대 내 얘기는 아니고 요즘 문화 같은 것이다) 같은 것과, 왕따 피해자였지만 자라서 비겁한 가해자였노라 자백하는 소설을 읽으며 미묘한 기분에 접어드는 것, 누군가의 단점을 못본 척해주는 것, 짝을 찾는 데 급급한 사람들의 모습에 눈을 감는 것, 모든 정치성향과 종교성향이 옳고 그름 없이 모여있는 상태를 유지하려 부지런히 계속해서 지휘봉을 흔드는 거랑 다를 바 없다. 초차원적인 어떤 공간을 나는 머릿속에 그려본다. 바깥 사람들은 균형의 천재다. 나는 비틀거리며 수수깡 인형처럼 팔다리를 하나씩 삐걱삐걱 움직여본다. 각자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너무 진심이 되지 않으며.. 복무신조마냥 알게 된 것들을 외지만 아직 쉽진 않다.

그럼에도 내 마음 속의 반짝반짝 빛나는 것들은 살아있다. 어둠이 몰려왔다가도 살아나면 다시 그것들이 보인다. 어딘가에는 아주 달콤한 수박이 있을 거라고, 어린 나는 믿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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