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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15/11/18 15:47:36 |
Name | 눈부심 |
Subject | [조각글 4주차] 집사와 미치광이 |
[조각글 4주차 주제] ['자신'의 첫경험에 대해 써주세요.] 나는 어쩌면 정말로 미친 걸지도 모른다. 물론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과연 내 이야기를 듣고 내가 정신병자가 아니라고 생각할 이가 몇명이나 있을지는 모르겠다. 나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다시피 나를 보살피는 집사가 내게 한 명 있다. 내 식사를 준비해 주고 물을 무서워하는 날 위해 샤워까지 시켜주지. 덩치 큰 집사가 반강제적으로 샤워시켜주는 일조차 없다면 나는 평생 씻을 생각을 않을테니까. 나의 병적인 개포비아는 괴상하게 날 포악하게 만들곤 해서 집사가 온몸을 날려 날 말리지 않으면 안 된다. 그들의 귀가 날렵하게 솟아 있을수록 뒷다리의 근육이 위아래 큰 보폭으로 일렁일수록 송곳니가 아랫턱을 뚫을 듯 날카로울수록 공포에 비례해 나의 발작도 걷잡을 수가 없게 되거든. 나는 모든 짐승들이 증오스럽다. 집사가 있다고 하니 독자들은 나를 대단한 집안의, 정신질환을 앓는 망나니 자제쯤 될 것이라 생각할 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도 할 수 있겠지. 아마 내가 집사의 호위가 없이는 결코 바깥으로 나갈 엄두를 못 내는, 극도의 신경증세를 앓는 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을 수도 있겠다. 그런 내가 드디어 외출을 하게 된 것. 집근처를 어슬렁거리는 외에는 어디 근사한 곳을 방문한 적이 없는 나다. 집사는 굳이 우리의 목적지를 알려주지 않는다. 영리한 그는 종종 내 마음을 책 읽듯 꿰뚫어보기도 하지. 그 없이 어디 가지도 못하는 겁쟁이 주제에 미친 일탈을 꿈꾸는 내 번득이는 눈을 일찌감치 알아본 그는 내가 흥분하는 일이 없도록 도통 무슨 계획을 꾸미는지 알려주는 일이 없다. 내 일생 잠잠할 날이 하루도 없었던, 걷잡을 수 없는 광기와 오랜 세월을 함께 한 그는 지나온 시간동안 부지런히 나에 대한 애정을 키워온 모양인 듯도 하다. 누구에게는 정신질환자일 법한 나 스스로가 집사를 단지 고용된 월급쟁이일 뿐이라 생각한 적이 단 한 순간도 없거든. 내 미치광이 짓거리를 감내해온 집사를 나는 어쩌면 결국 존경하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내 광기로 말미암아 한 번도 잡아본 적이 없는 자동차의 운전대를 집사는 능숙하게 조종하고 있다. 커튼이 내려진 방 안에서 내다보는 태양빛을 병적으로 좋아하던 나지만 숲이 펼쳐진 너른 대륙에서 직광으로 쐬는 햇볕은 미친 희열을 선사했다. 나는 그동안 왜 그렇게 바깥세상과 담을 쌓고 살아왔던가. 어쩌면 그건 집사의 계략이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무슨 꿍꿍이인지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아니면 난 정말 미치광이일까. 놀랍도록 평화로왔던 숲으로의 여행은 밤을 맞이하는 중이었다. 당신 인생에서 최대의 공포는 무엇인가. 질병인가. 사랑하는 이가 당신을 외면하는 것인가. 인생에서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는 건가. 나는 바로 이 순간이다. 쏟아질 듯한 별들의 잔치는 공포가 밀려오기 직전의 어떤 기믹이었던 것. 집사가 텐트를 완성하고 모닥불을 피우고 찬이 풍성한 저녁식사까지 풀서비스로 노동을 아끼지 않은 이 밤, 잠자리에 들기 전 왠지 그는 날 비웃을 준비를 하고 있는 듯 손가락으로 아랫턱을 쓸며 기묘한 표정을 하고 날 주시하고 있었다. 나는 아무말도 할 수가 없었다. 우리가 눈을 마주하고 있는 이 텐트의 바깥에서 강한 악취를 풍기는 짐승이 기웃거리며 우리의 동태를 살피고 있는 중이었다. 털들, 짐승의 털은 얼마나 야만적인가. 난 털 촉감이 나는 어떤 의류도 입지 않는다. 짐승은 얼마나 악취를 풍겨대는가. 처음 집사를 따라 자연으로 나왔건만 어딜 가든 나는 인간과는 판이하게 다른 짐승들과 가끔은 마주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집사는 내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미치광이처럼 포효할 것이라 예상한 모양이다. 포효할 수 없다. 야생의 짐승은 나의 모든 기력을 앗아가고 마는구나. 인생 최대의 공포 앞에서 당신은 어떤 말도 꺼낼 수 없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공포는 심장을 조이는 법이지만 나는 격렬하게 뜀박질하는 심장을 어쩌지 못해 가슴을 부여잡아야만 할 판이다. 나는 두려움에 휩싸여 그 자리에서 기절할 지경이었다. 집사의 입술이 일그러지듯 움찔한다. 순간 그가 박장대소를 참고 있는 것이 아닌가 착각할 정도로 그는 처참하게 작아져 굳어 버린 내 육신을 보며 비웃음이 터질까봐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정녕 그는 나를 애정으로 돌봐준 것이 아니란 말인가. 집에 닿으면 그를 해고해야 할지 고민해야 할까. 그치만 그는 이 순간 내게 유일한 구세주다. 지금 바깥에서 송곳니를 번쩍이고 있는 짐승에게서 나를 구해 줄 유일한 신이다. 나는 그에게 말하고 싶다. 아빠 무서워요. 멍멍. * * * 저희집 개가 글 좀 올려달래서요. 첫 야영경험이래요.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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