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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15/11/27 18:43:57 |
Name | realise |
Subject | 심심해서 써 보는 에어컨 팔았던 이야기.+잡담 |
24살 때였던가. 하여튼 이제 막 처절한 군인의 삶과 이별하고 군대에 비하면 꿀중에 개꿀인 학생의 삶으로 돌아간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이야기네요. 지금으로부터 무려 6년이나 지났습니다. 흑 세월 참. 어쨌든 여름방학 때 빈둥빈둥 놀기도 뭐 하고 해서 아르바트를 하러 갔습니다. 길게 할 수도 없고, 뭐 짧게 할 수 있는 게 없나 찾아보니 여름 에어컨 판매 행사 아르바이트가 있더군요. 판매업이라는 걸 평생 해 본 적도 없고, 아마 앞으로도 해 볼 일은 없을 것 같은데 이번에 그래도 판매라는 게 어떠한 건지에 대한 궁금증을 해결 할 수 있을 것 같아 냅다 지원했습니다. 지원을 하고 KTX를 타고 왔다갔다 하면서 교육을 받고 매장에 투입되었습니다. 여기서 매장이라함은, 대형마트 전자매장입니다. 흔히 대형 전자매장 직원들이 그 매장에 소속된 직원이라고 많이들 생각하시는데, 실제로는 각 전자회사에서 파견한 직원들입니다. 매장에서는 굳이 직원 돈 주고 쓰지 않아도 전자회사에서 직접 직원 뽑아 보내주니 인건비 아끼는거고(명목상 마트 직원도 아니고 전자회사직원이지만, 당연히 을이기 때문에 마트에서 시키는 업무도 다 해야 합니다.) 전자회사들은 그렇게 직원 집어넣어 자사 제품 파니까 서로 윈윈인거죠. 당연하게도 파견 형식으로 가는 것이기 때문에 아는 사람도 없고 뭐 정보도 없이 무작정 가게 되었습니다. 물론 남 밑에서 일 하는 것이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승부욕이라는 게 있으니, 남들보단 잘 하자라는 생각으로 공부도 열심히 하고, 어떻게 제품을 팔아야 할까 고민도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고민 방법이야 뭐 24살의 대학생, 그것도 상경계 전공생이라면 뻔하죠. 제품의 어떤 부분에서 경쟁사에 비해 우위가 있는가, 차별적으로 강조할 수 있는 기능은 어떤 부분인가, 가격경쟁력은 어떠한가. 이 부분을 어떻게 경쟁사에 비해 차별적인 장점으로 고객이 제품을 살 수 있는지 설명해야 하는가에 대해 그래도 일당받는 아르바이트 치고는 많이 고민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타 경쟁사 직원들과 어떻게 지내지? 라는 고민도 했습니다. 한국이야 누구나 알아주는 무한경쟁 사회아닙니까. 걱정할 만 하죠. 타 회사 직원들과 어떤 트러블이 생길지... 하지만 언제나 제가 예상한 부분과 현실은 다르더군요. 저의 고민따위는 아무런 필요가 없었습니다. 왜냐구요? 한국인의 장점이 뭡니까. 바로 정(情) 문화 아니겠습니까. 매장에는 여러 회사 직원들이 많이 있습니다. 뭐 대표적으로 에어컨이면 LG, 삼성, 그리고 캐리어가 있었죠. 손님이 방문했을 때 매일 서로 얼굴보고 사는 이 직원들이 어떻게 감히 한 매장에서 손님을 두고 경쟁을 합니까.ㅡㅡ 한국인의 정 문화에서는 말같지도 않은 소리지요. 그럼 어떻게 하느냐? 일단 숨어있습니다. 에어컨 코너가 있으면 그 코너 주위로 가지 않는 것이죠. 그러면 손님이 에어컨을 보러 오는 손님이 있습니다. 그럼 이제 뭘 하느냐... 가위바위보를 하는 거죠 ㅡㅡ;;; 가위바위보도 있고, 순번을 정해놓은 곳도 있고, 하여튼 매장마다 일종의 자체적인 '룰'이 있습니다. 이렇게 룰이 있고 손님이 매장에 들어오면 그 룰에 의해 정해진 회사 판매원이 가서 이제 인사를 하고, 어떤 제품을 보러 오셨나요? 물어보며 자사 제품 호객행위를 하는 것이죠. 당연하게도 제품간의 세세한 비교같은 건 없습니다. 자사 제품을 팔아야 자기한테 월급이 나오고 인센티브가 떨어지는데, 기껏 가위바위보 해서 이겼놓고 왜 남의 제품을 팔아줍니까. 결국 가서 이야기하는 건 우리회사제품이 최고라는 거지요. 저도 그렇게 가위바위보를 해서 제품을 팔기위해 나갔던 적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저도 각 제품의 장단점, 내가 파는 제품이 가질 수 있는 장점, 소위 스펙과 제원을 이야기하며 설명했는데, 정말 첫 일주일동안 단 한 대도 팔지 못했습니다. 정말입니다. 다른 제품 수없이 나갈 때 말이죠. 그래도 제가 나름 사람들한테 인기는 있었나 봅니다. 아니면 불쌍하게 보였거나 ㅡㅡ;;;;; 단기 알바로 와서 한심하게 행동하는 제 모습이 안타까웠는지 타 회사 직원, 저보다 나이가 10살은 많았던 형님께서 "야 너 그렇게 하는 거 아니다" 라고 하시면서 직접 시범을 보여주더군요. 자세하게 적긴 뭐하지만, 대충 기억나는 대로 적어보면, 아 사장님(or 사모님) 오늘 좋은 물건이 와 있는데 진짜 좋은 기회 잡으신 겁니다. 사장님 같은 품격있는 분에게 정말 딱 맞는 제품이 하필 오늘같은날 정말 믿을 수 없는 가격으로 나와 있습니다. 바로 이 제품입니다. 이 제품이 요즘 가장 인기도 많고 많이 팔립니다. 사람들이 요즘 매장에만 오면 이거 달라고 난리고 이것만 사가요. 아 다른 제품보다 무조건 이 게 최고입니다. 사가신 분들도 전부 제품 좋다고 난리입니다. 자세한 기억은 안 나는데 이렇게 판매를 했고, 그렇게 일주일 내내 파리만 날리던 저는 그 형 덕에 바로 그 날 첫 판매를 기록했습니다 ㅡ.ㅡ;;;;;;;;;;;;;;;;;;; 그 때 느꼈던 첫 심정은 아 X발 다 필요없네. 였고. 조금 시간이 지나서 느낀 심정은 내가 아는 게 하나도 없구나 였습니다. 내가 뭐 많이 배우면 뭐합니까. 막상 현장에서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데... 그리고 판매하는 사람들, 이 거 다, 다 그짓말인거 아시죠? 어쨌든 판매는 그냥 당시 동기들에 대비해서 중상위? 권은 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단기 알바를 끝내고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어쩌다 2층 단독주택 2층 전체를 저 혼자서 쓰게 되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새로 산 집이고 집에 가전제품같은 게 하나도 없었죠. 뭐 저희 부모님이라고 별 다를 게 있습니까. 근처에 대형 전자매장 가서 티비, 세탁기, 냉장고, 전자레인지, 에어컨 다 한 번에 사 오셨는데, 뭐 당연하게도 다 같은 회사 제품이었습니다 ^^;;;;; 그렇게 알바해서 번 돈은 24살짜리가 꼴에 사회인 야구한다고 야구 장비 사는데+ 당시 인기게임이던 슬러거 현질에 다 털어넣었습니다. 야구장비 이거 꽤나 비싸더군요. 장비 뿐만 아니라 제가 가입한 야구단이 금융회사 다니시는 분들 주도로 만들어진 건데 야구 한 번 할 때마다 씀씀이도 제가 감당하기 좀 어려운 씀씀이었긴 했습니다. 더군다나 아무래도 주도하신 분들이 회사 직원분들이시니 암암리에 경기 출전하는데 차별도 좀 있었고 해서 그만두긴 했습니다만. 뭐 결론은... 판매자 말 믿지말자 일까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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