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16/02/10 01:51:32
Name   이젠늙었어
Subject   (19금) 담배 <2.5>
담배를 멀리하면서 여러가지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이 증상은 나쁜것과 좋은것이 동시에 존재합니다.

1. 후각

갑자기 제 코가 개코가 되었습니다. 모든 냄새에 민감해졌습니다. 특히 담배냄새에 민감해졌습니다. 저는 전철에서 제 옆자리 네번째에 방금 앉으신 여자분이 20분 전에 역 근처 스타벅스 흡연실에서 한까치 태우신 후 급히 전철을 타셨다는걸 알 수 있습니다. 방금 지나간 아저씨가 흡연자인지 아닌지 저는 100%의 확률로 알아맞힐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 그런데 이게 좋은것만은 아닙니다. 담배냄새가 역해요. 흡연자에게서 풍겨오는 냄새가 점점 역해지는 것이었습니다. 방금 담배를 피고온 직장 동료와 이야기를 하는게 고역이었습니다. 예전엔 내가 도대체 어떻게 저런 역한 것을 몸에 지니고 있었지? 하는 의문과 함께 차라리 담배를 다시 피면 이런 괴로운 상황이 없어지려나? 하는 생각조차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미안한 마음이 더 컸습니다. 내가 그동안 이렇게나 비흡연자들을 괴롭히고 있었다니. 아니 근데 아내는 이런 나를 어떻게 참아냈지?

2. 시각

똑딱이 카메라를 쓰다가 풀프레임 DSLR 카메라의 결과물을 보신적 있나요? 오래 써서 여기저기 잔기스가 나고 색이 바래진 액정보호지를 떼어낸 후의 화사한 전화기 액정에 감탄해보신적 있나요? 금연 후에 제 망막에 맺히는 상들이 이랬습니다. 오랜 담배연기속에서 누렇게 낀 담배진이 씻겨나가듯 갑자기 제 눈에 보이는 장면들의 채도와 샤프니스가 팍 올라갔습니다. 흰 색은 더 희게, 빨간색은 더 빨갛게 보였습니다. 새벽의 새하얀 운무, 잿빛의 초봄에 액센트를 주는 분홍의 진달래, 예전엔 지저분해 보이던 흐드러지는 샛노란 개나리가 이리도 예뻣던가? 여기저기 좋은 경치를 찾아서, 산에서 맞는 아침의 장관을 위해 비박산행을 하던 무렵이어서 더 잘 알 수 있었습니다. 갑자기 세상은 더 아름다워졌습니다.

3. 미각

그 전에 저는 맛집을 찾아다니는 사람들에게 약간은 부정적인 느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음식은 그저 인간에게 에너지를 주는 것으로서 맛은 부차적인 것이라는 생각이었죠. 맛을 찾아서 귀중한 시간을 소비하며 먼 거리를 이동하고 비싼 비용을 지불하는 행동에 코웃음 쳤습니다. 사과드립니다. 제 짧은 소견에 의한 불찰입니다. 미뢰를 통해 감지되는 그 세련되고 풍부하고 때로는 거친 때로는 부드러운 맛들, 또한 입안을 애무하는 음식물의 질감과 이에 느껴지는 저작감 등을 통해 대뇌에 쏟아부어지는 그 쾌감이라니... 데코레이션을 통해 망막을 통해서 전해지는 시각적 즐거움과 함께 미뢰를 안달나게 하는 그 기대감. 아아~ 미식은 고막을 두드려대는 클래식 음악, 시신경을 통해 이미지 전하는 미술이라는 예술에 전혀 꿀리지 않는 훌륭한 종합예술의 세계였습니다. 물론, 담뱃값보다 수 십배에 이르는, 새로운 예술을 향유하게 되는 금전적인 희생이 뒤따랐지요만은...

4. 정력

성적 성숙기에 이른 인간 남성에게는 적재적시에 커지고 쎄져야 하는 신체 부위가 있습니다. 이 부분에 있어서 금연의 효과는 굉장했습니다. <중간생략, 중간생략, 잘리기 싫어요.> ... 또한 이러한 상태는 적절한 시간만큼 유지되어야 ... <중간생략> ... 이전엔 마치 수인선 협괘열차가  비틀비틀 굴다리를 통과하는 것이었다면 ... <중간생략> ... 마치 KTX가 지리산맥을 꽤뚫은 끝없는 터널속을 전속력으로 질주하는것만 같은 ... <중간생략> ... 리히터 지진계가 서서히, 끊임없이 신기록을 기록하면서 그 격렬한 진동을, 흔들림을 써나갈 때 ... <중간생략> ... 이전엔 없었던, 마치 억겁의 시간속을 잠들어있던 화산이 일거에 폭발하는 듯... <중간생략> ... 같은 느낌이 거진 매일매일 이어지는 것이었습니다.


크게 볼 때 이러한 부작용들이 금연에 수반되는 것이죠. 사회생활이나 경제적으로 봤을 때 그닥 크게 좋은 것은 아니였습니다.

하지만 이전편에서 말씀드렸다시피 금연 과정의 정말 큰 즐거움은 말이죠... (3부에 계속)



1

    게시글 필터링하여 배너를 삭제함
    목록
    게시글 필터링하여 배너를 삭제함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2337 일상/생각알랭드보통의 잘못된 사람과 결혼하는 것에 대하여 54 S 16/03/03 5591 5
    2310 일상/생각필리버스터를 보면서 드는 생각들 7 Raute 16/02/29 3362 6
    2309 일상/생각SBS 스페셜 '졸업-학교를 떠날 수 없는 아이들' 감상중... 1 NF140416 16/02/28 3880 0
    2300 일상/생각그놈의 건강 8 헬리제의우울 16/02/26 3967 1
    2294 일상/생각약 2주뒤에 공군 정보보호병으로 입대합니다. 16 삼성그룹 16/02/25 6481 1
    2291 일상/생각기숙사령부 이야기 1 No.42 16/02/25 4538 2
    2282 일상/생각(혐, 자랑, 뱀꼬리 주의) 담배 <3> 6 이젠늙었어 16/02/24 4255 3
    2279 일상/생각기업윤리와 불매, 그리고 라면 38 Raute 16/02/23 4429 1
    2265 일상/생각담배 <2.9375> 5 이젠늙었어 16/02/20 4804 5
    2255 일상/생각새누리당과의 아침 31 nickyo 16/02/19 4074 3
    2243 일상/생각(혐 주의) 담배 <2.875> 8 이젠늙었어 16/02/17 4275 7
    2237 일상/생각살을 빼보기로 했습니다. 18 쉬군 16/02/16 4031 0
    2235 일상/생각[14주차 조각글]겸 진정성 4 nickyo 16/02/16 4828 4
    2230 일상/생각일상 무제 6 헬리제의우울 16/02/15 3889 0
    2224 일상/생각그 시절 내가 좋아했던 애니메이션 곡 7 레이드 16/02/14 4218 0
    2223 일상/생각졸업식과 입시 결과와 나 30 헤칼트 16/02/14 4505 1
    2220 일상/생각깨졌대. 12 도요 16/02/14 3929 0
    2217 일상/생각식상함 10 까페레인 16/02/13 3815 4
    2212 일상/생각담배 <2.75> 6 이젠늙었어 16/02/13 3724 3
    2194 일상/생각(19금) 담배 <2.5> 9 이젠늙었어 16/02/10 4348 1
    2188 일상/생각담배 <2> 3 이젠늙었어 16/02/08 3653 0
    2186 일상/생각담배 <1> 5 이젠늙었어 16/02/07 4012 1
    2182 일상/생각작품 속 특정 여성을 x레로 지칭하는건 얼마만큼 악질적인 행위인가 13 klaus 16/02/06 4842 0
    2178 일상/생각원산지만 따질 일인가요 5 한성희 16/02/05 4474 1
    2177 일상/생각금수저 만능 사회 19 한성희 16/02/05 4781 1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