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15/06/20 11:31:43
Name   neandertal
Subject   울어라! 늑대여!
아하(A-HA)라고 80년대 중반에 뮤직 비다오 하나 잘 찍어서 인생 역전한 노르웨이 출신 3인조 밴드가 있었습니다. 1985년에 만든 뮤직 비디오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참신하고 인상적인 뮤직 비디오로 철저한 무명이었던 이들은 일약 세계적인 스타의 반열에 오르지요.



아하 (A-HA)


뮤직 비디오 Take On Me의 한 장면


하지만 이들에게는 이 뮤직 비디오의 곡인 Take On Me가 수록된 1집이 에베레스트 정상이었고 그 뒤로 내놓는 앨범들은 어떤 앨범도 데뷔 앨범의 성공을 재현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렇긴 해도 평생 음악을 해도 빌보드 싱글 차트 1위곡 하나 못 만들고 사라지는 뮤지션들이 허다할 텐데 이들은 그래도 짧게나마 큰 성공을 맛보았으니 득실을 따져보면 남는 장사였다는 것에는 이론이 없을 것 같습니다.

이들은 데뷔 앨범이 성공하고 난 후 1년 뒤에 2집 앨범을 발표합니다. 그리고 그 2집 앨범에 수록이 되어 있던 곡들 가운데 한 곡의 제목이 바로 [Cry Wolf]였습니다. 그런데 80년대만 하더라도 우리나라에서는 무슨 규정이 있어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팝송의 제목을 영어로만 말하지 않고 이상하게 꼭 한국어로 번역한 제목을 같이 쓰곤 했습니다. 특히 방송보다는 음악잡지 같은 종이매체에서 그런 경향이 더 심했는데 예를 들어 사이먼 앤 가펑클의 유명한 히트곡인 [Bridge Over Troubled Water][험한 세상에 다리가 되어]라고 했었고 존 덴버의 [Take Me Home Country Road][나를 고향으로 데려다 주오]라고 하는 식이었습니다.

그 당시 아하도 국내에서의 인기는 하늘을 찌를 듯 했기에 [Cry Wolf]라는 곡도 음악잡지에서는 무언가 한국어로 번역을 해야만 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아주 간단한 두 단어인 Cry와 Wolf 로 이루어진 이 제목을 한국어로 바꾸기가 만만치 않았었나 봅니다. 개별적으로는 다 아는 쉬운 단어들인데 이걸 하나로 합쳐놓으니 이게 뭔가 싶었던 것 같습니다.

원래 cry wolf 라고 하는 표현은 "거짓 경보를 보내다"라는 뜻입니다. "자신에게 어떤 도움이 되도록 하고자 원래 잘못되지 않은 사안에 대해서 경고의 목소리를 낸다."는 의미로 짐작하셨겠지만 유명한 이솝의 "늑대와 양치기" 우화에서 나온 표현입니다.

그런데 그 당시 매달 발간이 되던 [음악세계]라고 하는 잡지가 있었는데 그곳에서는 아하의 Cry Wolf에 아주 멋진 한국어 제목을 붙여 주었습니다. 바로...

"울어라! 늑대여!"

이었던 것이지요.

아마 이 제목을 생각해내신 분은 학교 다닐 때 영어 수업을 아주 잘 받으셨던 분인 것 같습니다.


[명령어 – 영어에서 명령어는 주어 You를 생략하고 동사의 원형으로 시작한다. 단, 상대방의 주의를 끌려고 하는 때에는 주어 You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여기에다가 돈호법까지 사용하여 그 분위기를 한껏 돋웠습니다.

[돈호법 - 죽거나 없는 사람·동물·사물 또는 추상적 관념을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여겨 말을 거는 담화의 형태]


위의 제목을 원뜻을 그대로 적용해서 [거짓 경보를 울리다]라고 했으면 이것만큼 무미건조하고 영혼이 없는 제목도 찾기가 어려웠을 것입니다.

저 호방한 남아의 기상!
각박한 현대 사회에서 야생성을 잃어버리고 있는 우리 인간들을 향해 준엄한 질타를 하는 듯한 저 제목은 마치 졸음이 쏟아질 때 어깨위로 사정없이 내려쳐지는 죽비 소리와도 닮았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기실 하울링 하지 않는 늑대는 이미 죽은 늑대요, 길거리를 빌빌 싸돌아다니는 x개에 지나지 않을 뿐이지요.


"Cry Wolf" - "울어라! 늑대여!"


문제의 곡 - Cry Wolf




0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공지 티타임 게시판 이용 규정 2 Toby 15/06/19 35238 1
    15927 창작또 다른 2025년 (15) 트린 25/12/26 86 1
    15926 일상/생각나를 위한 앱을 만들다가 자기 성찰을 하게 되었습니다. 1 + 큐리스 25/12/25 425 6
    15925 일상/생각환율, 부채, 물가가 만든 통화정책의 딜레마 9 다마고 25/12/24 588 11
    15924 창작또 다른 2025년 (14) 2 트린 25/12/24 153 1
    15923 사회연차유급휴가의 행사와 사용자의 시기변경권에 관한 판례 소개 3 dolmusa 25/12/24 493 9
    15922 일상/생각한립토이스의 '완업(完業)'을 보며, 사라지는 것들에 대하여. 1 퍼그 25/12/24 585 15
    15921 일상/생각아들한테 칭찬? 받았네요 ㅋㅋㅋ 3 큐리스 25/12/23 507 5
    15920 스포츠[MLB] 송성문 계약 4년 15M 김치찌개 25/12/23 213 1
    15919 스포츠[MLB] 무라카미 무네타카 2년 34M 화이트삭스행 김치찌개 25/12/23 136 0
    15918 창작또 다른 2025년 (13) 1 트린 25/12/22 182 2
    15917 일상/생각친없찐 4 흑마법사 25/12/22 595 1
    15916 게임리뷰] 101시간 박아서 끝낸 ‘어크 섀도우즈’ (Switch 2) 2 mathematicgirl 25/12/21 324 2
    15915 일상/생각(삼국지 전략판을 통하여 배운)리더의 자세 5 에메트셀크 25/12/21 428 8
    15914 창작또 다른 2025년 (12) 트린 25/12/20 225 4
    15913 정치2026년 트럼프 행정부 정치 일정과 미중갈등 전개 양상(3) 2 K-이안 브레머 25/12/20 345 6
    15912 게임스타1) 말하라 그대가 본 것이 무엇인가를 10 알료사 25/12/20 574 12
    15911 일상/생각만족하며 살자 또 다짐해본다. 4 whenyouinRome... 25/12/19 573 26
    15910 일상/생각8년 만난 사람과 이별하고 왔습니다. 17 런린이 25/12/19 914 21
    15909 정치 2026년 트럼프 행정부 정치 일정과 미중갈등 전개 양상(2)-하 4 K-이안 브레머 25/12/19 458 6
    15908 창작또 다른 2025년 (11) 2 트린 25/12/18 254 1
    15907 일상/생각페미니즘은 강한 이론이 될 수 있는가 6 알료사 25/12/18 652 7
    15906 기타요즘 보고 있는 예능(19) 김치찌개 25/12/18 375 0
    15905 일상/생각무좀연고에 관한 신기한 사실 5 홍마덕선생 25/12/18 594 3
    15904 일상/생각조금은 특별한, 그리고 더 반짝일 한아이의 1학년 생존기 10 쉬군 25/12/18 502 32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