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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6/10/21 08:39:31
Name   SCV
Subject   [한단설] 아내와, 감기와, 아이와, 나.
무언지 모를 감각이 나를 깨웠다. 아니 이유없이 깨고 나서 누가 나를 깨운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해야 하나. 본능적으로 손을 뻗어 옆에 누운 아이의 이마를 짚어본다. 손발을 만지고 겨드랑이를 만져본다. 아 이런. 머리맡을 더듬어 체온계를 찾았다. 혹시나 깰까 싶어 조심스럽게 아이의 귀에 가져다 댄다. 다행히 깨지 않는다. 이럴 때 깨면 진짜 심각한거다. 중이염이 온다는 신호라서.

- 삑.  삐삐삐삐삐삐.... 삑.

눈을 비비고 체온계의 표시창을 들여다봤지만 불빛 하나 없어 숫자가 보이지 않는다. 꺼지기 전에 숫자를 봐야 하는데, 하며 다시 손을 더듬어 휴대폰을 찾는다. 켠다. 화면의 희미한 불빛에 표시창에 써진 글자가 눈에 들어온다. 취침등 불빛만 있어도 잠을 못드는 이상한 나 때문에 내가 고생한다. 안경은 결국 못찾아서 체온계에 눈을 바짝 가져다 댔다.

[37.9]

- 아호.....

나도 모르게 입에서 소리가 흘러나온다. 폰 화면을 다시 켜보니 새벽 네 시 반. 밤 열시 쯤 부루펜을 먹이고 재웠는데 중간중간 깨서 이마를 짚었을때는 미지근 하더니 여섯 시간만에 열이 다시 오르나보다. 열이 오르지 말지... 아님 차라리 38.2도쯤 나오면 약을 먹이고 다시 재우면 되는데 이쯤이면 지켜봐야 한다. 앞으로 열이 오를지 내릴지에 대해서는 체온계가 알려주지 못한다. 아까 아이의 이마를 짚은 내 손의 감각으로는 오르는 열이었던거 같은데, 다시 한 번 짚어본다. 아이가 뒤척이며 깊은 숨을 토한다. 숨소리가 파르르 떨린다.

- '몇도에요?'

체온계 소리를 들었는지, 아님 내 한숨 소리를 들었는지 건너방에서 자고 있던 아내가 문자를 보냈다. 아내도 며칠 째 아이와 함께 열감기를 앓고 있지만 수유 중이라 항생제 하나 먹는 것도 쉽지 않다. 아픈 사람한테 아픈 아이를 돌보라는건 등짝맞기 딱 좋은 각이라 혼자 재웠는데, 열이 올라서 잠이 못드는지 아이 걱정에 잠이 못드는지. 하긴. 어젯 밤엔 해열제가 잘 듣지 않아 두시간 간격으로 부루펜과 아세트아미노펜을 번갈아 먹여서 겨우 떨어뜨렸다.

- '37.9에요. 좀 더 봐야될거 같네. 자요.'

혹시나 불빛에 아이가 깰까봐 이불을 뒤집어 쓰고 답장을 보낸다. 내가 자라고 해도 아내는 쉬이 잠들긴 힘들 것이다. 건너방 문 너머로 한숨 소리가 들려온다.

- '몇시간 만이지? 여섯 시간?'
- '열시에 먹였으니까 대충 그쯤 돼요. 그래도 시간 간격이 점점 벌어지네.'
- '다행히 오늘은 잘 듣긴 듣네'
- '자요. 휴대폰 불빛 자꾸 보면 또 잠 깬다.'

아내에겐 체온계가 없어서 몇 도인지 물어볼 수가 없었다. 묻고 싶었는데 서로 한숨만 늘까봐 차마 묻지를 못했다. 갑자기 가슴에서 기침이 밀고 올라온다. 다시 이불을 뒤집어 쓰고 베개를 입에다 대고 쿨럭거려본다. 아오.. 화장실에 가서 가래를 뱉으려고 일어서려 하는데 아이의 손이 잠결에 날 붙든다. 하는 수 없이 나오려던 걸 도로 삼키고 누워 아이의 이마를 다시 만져본다. 다행히 열이 아까보다 더 오르는 것 같지는 않다. 이겨내자. 이겨내자 아가야.

- '자기도 감기 걸렸어요?'

소머즈 귀를 달았나.. 이불 속에서 쿨럭거린걸 또 어떻게 들은 아내가 문자를 보낸다.

- '주무시라니까요. 알아서 할테니까 주무세요.'
- '자기도 내일 병원가봐요. 자기까지 감기에 걸리고 그러냐'

월요일 아침이 밝아온다. 출근하기까지는 두 시간이 채 남지 않았다. 열이 끓는데 약도 먹지 못하는 아내와, 열이 오를까 말까 한 아이를 두고 씻고 정신차리고 옷을 차려 입고 가방을 챙겨 출근을 해야 한다. 아니 하지 말까. 아니 오늘 오후에 회의 있는데. 아니 막내 보내면 되지 않을래나. 오만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체온계를 가져가 내 귀에 댔다. 삑 삐삐삐삐삐삐 삑. 37.3도. 아놔.

- '몇도에요'

체온계를 보느라 켜뒀던 폰 화면에 글자가 떠오른다. 이사람이 신경 쓰지 말고 자라니까 안자고. 살짝 짜증이 났지만 아이가 걱정돼서 그러는거겠지, 다음에 체온계 살때는 꼭 화면 백라이트와 무음 전환이 가능한걸 사야지 라고 생각했다. 아니 그냥 스피커를 떼버릴까.

- '나 한번 재봤어요. 괜찮아요.'
- '지은이 체온 다시 재봐요'

그 새 다섯시다. 오를려면 올랐을만한 시간이다. 바로 누워 자는 아이의 귀에 체온계를 가져다 댔더니 뒤척거리며 모로 눕는다. 잠깐 숨을 고르고 다시 가져다 댄다. 삑 삐삐삐삐삐삐 삑. 37.8. 다시 잰다. 삑 삐삐삐삐삐삐 삑. 37.8.

- '37.8. 다시 안오르네. 좀 컸다고 버티려는지'
- '다행이네요'

아침 알람이 울린다.



--------------
간만에 소설에 손을 대봅니다. [한단설] 말머리는 '한페이지 단편소설' 의 약자인데요. 소시적에 드나들었던 사이트 이름이기도 합니다. 1400-2100자의 짧은 장편(이 경우는 길 장자가 아니고 손바닥 장자를 씁니다. 요샌 잘 쓰는 말은 아니지만...) 을 한단설이라고 부르더라고요.

오늘 쓴 글은 실화 50 픽션 50 정도 되겠네요. 재미있는 이야기는 잘 쓸 줄 모르는데 욕심만 많아서 자꾸 써댑니다. 종종 올릴텐데 보시기에 거북하진 않으셨음 좋겠습니다.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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