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15/06/28 15:02:25
Name   한신
File #1   20130604_2b55437216f620ffac4bec32c80c243f_59_20130604180037.jpg (36.1 KB), Download : 9
Subject   살좀 쪄라 라는 말에 대하여.



요즘은 롤챔스를 잘 안보지만, 가끔 페이커 선수를 보고 있으면 내가 말랐던 시절이 생각난다. 경기를 보고 있으면 항상 아프리카창이나 페이커선수 짤방밑에 '살좀 쪄 ㅠㅠ' 이런식의 악의없는 응원(?) 댓글이 달리곤한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마른 사람들에게 그런말을 하는게 당사자에게 얼마나 스트레스인지.

나는 어린시절부터 소위 '갈비' 였다.
7살때 몸무게가 19kg정도 였으며 (그 당시 일주일에 한번씩 어머니와 여탕*-_-*에를 갔는데 1년 내내 저 몸무게가 나와서 -한창 클 시기에- 아직도 저 당시 몸무게를 기억한다.), 키가 다자라 고등학교 2학년 정도가 되었을 무렵, 180cm / 56kg라는 몸무게로 살아왔다. 물론, 대학생이 되어서도, 거의 24살 무렵까지 60kg를 넘은 기억이 없다.

그러다 보니 내가 학창시절에 가장 많이 들은 말은 역시 '살좀 쪄라' 였고, 특히 어르신들은 만날때마다 "팍팍좀 먹어잉! 살좀 쪄야지" "에효 한신아 피골이 상접하구나 살좀 쪄라"  등의 멘트들을 날리시곤 했다. 물론 그들은 악의없이 걱정되는 마음에 하신 말씀이고, 또 그런걸 알고는 있는지라 딱히 대꾸할말이 없이 '네' 라고 단답형으로 대꾸하곤 했다.

물론 "나는 먹어도 안쪄." 따위의 변명을 하고싶지는 않다. 나도 내가 많이 먹는데 안찌는 줄 알았지만, 운동을 안하니 음식물 소화능력이 달리고, 그리고 생각보다 내가 많이 먹고 있지 않았다는것도 깨닳았으니까. 어쨋거나, 소위 '갈비'들에게는 그게 최선인거다.
그러니까 나름 스트레스를 엄청 받고, 또 내가 말랐다는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나름 먹는다고 먹어보지만 딱히 많이 들어가지도 않고, 그냥 살이 잘 안찐다.

어쨋거나 대학교 1학년 시절에 운좋게 예쁜 여자친구를 만날 수 있었고, 그제서야 옷에 관심이없던 내가 패션에 슬슬 관심이 갔고, 옷을 입어보니 역시 사람은 옷빨을 받으려면 키와 체형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서 살을 찌우기로 결심했다. (라는것보다는 사실 여자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어쨌든 그 이후에 운동을 통해 몸무게를 70kg 가까이 찌우고 체형도 다듬어서, 지긋지긋한 '갈비'소리와는 이별하게 됐다. 사요나라.


하여간에,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이유기도한데,
우리사회는 뚱뚱한/ 마른 사람에 대한 배려를 잊는경우가 많다. 특히 마른사람에 대해서.
물론 나도 속으로는 '저사람 돼지네...' '저사람 말랐네...' 하고 생각하지만 그런 나쁜생각(?)들을 입밖으로 꺼내지는 않는다.
만약 뚱뚱한 체형의 사람을 보고 '어휴 ㅠㅠ 살좀빼라 누구야.' '살에 기름기가 좔좔흐르네' 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사회적으로 매장감일거다. 그런데, 의외로 이런 폭력적인 말을 마른사람에게는 굉장히 쉽게 꺼낸다. 폭력적으로.

살을 찌운다는게 살을 빼는것'만큼' 힘들다. 의외로 살이 찌신분이 마른사람이 운동하면서 먹는거 보면, '와 좋겠다.' 하시는데, 이거도 참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것이다. 먹고싶을때 '먹고싶은걸' 먹는것과, 필요한것을 먹기싫을 때 먹는게 엄청난 차이가 있다.
운동량은 오히려 비슷하고, 돈은 더 많이든다. (먹을걸 많이 먹어야하니까.)
그냥 많이 먹으라고? 그럼 유니세프에 나오는 아프리카 아이들처럼, 팔다리는 말랐는데 배만나오는 체형이 되버린다.

어쨌거나 그런 사회적 시선이 따갑고, 옷빨도 잘 받아보고 싶어 헬스를 2년간 해서 지금은 '평범한 체형'이 되었지만, 사실 내가 살기엔 이 몸이 꽤나 불편하다. 적당한 몸무게아니냐고? 전혀. 오히려 살이 찌고나서 나는 20년 내내 여름을 타지 않던 몸에서 땀쟁이가 되어버렸고, 조금만 빠르게 걸어도 땀이 줄줄흐른다. 물론 의학적 지식이 결여된 경험적인 느낌이지만, 어쨌거나 내가 살기에 이 몸은 불편하다. 나는 마른 몸이 내가 살기에 편하다고 생각한다.  
누구에게나 자기에게 편한 몸이 있을거다. 그것때문에 살을 찌운다는거, 그 씁쓸한 기분은 살을 많이 빼보신분들의 그 씁쓸함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아무튼, 살좀 찌라는 말은, '야이 미친놈아' 처럼 기분나쁘게 들릴수 있다는걸 꼭 알리고 싶었다.
의외로 말라본 경험이 없는 사람들은, 이게 굉장히 스트레스 받는다는걸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기왕이면, 남이야 어떻든 그냥 좀 내버려두면 안되나. 제발 '평균'이라는 기준점에 사람을 가둬두고 평가좀 안했으면 좋겠으나, 그것까진 무리라면, 그냥 생각만했으면 좋겠다. 제발 배려 좀.


p.s 주저리 주저리 쓰다보니 평어체로 쓴거 양해부탁드립니다.




0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공지 티타임 게시판 이용 규정 2 Toby 15/06/19 31678 7
    15047 일상/생각탐라에 쓰려니 길다고 쫓겨난 이야기 4 밀크티 24/11/16 633 0
    15046 정치이재명 1심 판결 - 법원에서 배포한 설명자료 (11page) 19 + 매뉴물있뉴 24/11/15 1164 1
    15045 일상/생각'우크라' 표기에 대한 생각. 32 arch 24/11/15 846 5
    15044 일상/생각부여성 사람들은 만나면 인사를 합니다. 6 nothing 24/11/14 806 20
    15043 일상/생각수다를 떨자 2 골든햄스 24/11/13 400 10
    15042 역사역사적으로 사용됐던 금화 11종의 현재 가치 추산 2 허락해주세요 24/11/13 483 7
    15041 영화미국이 말아먹지만 멋있는 영화 vs 말아먹으면서 멋도 없는 영화 8 열한시육분 24/11/13 608 3
    15040 오프모임11/27(수) 성북 벙개 31 dolmusa 24/11/13 658 3
    15039 요리/음식칵테일 덕후 사이트 홍보합니다~ 2탄 8 Iowa 24/11/12 363 7
    15022 기타[긴급이벤트] 티타임 따봉 대작전 (종료) 19 dolmusa 24/11/05 1034 31
    15038 정치머스크가 트럼프로 돌아서게 된 계기로 불리는 사건 4 Leeka 24/11/11 1021 0
    15037 일상/생각와이프와 함께 수락산 다녀왔습니다. 10 큐리스 24/11/11 507 4
    15036 일상/생각과자를 주세요 10 하마소 24/11/11 545 18
    15035 일상/생각화 덜 내게 된 방법 똘빼 24/11/11 398 14
    15034 일상/생각긴장을 어떻게 푸나 3 골든햄스 24/11/09 599 10
    15033 일상/생각잡상 : 21세기 자본, 트럼프, 자산 격차 37 당근매니아 24/11/09 1707 42
    15032 IT/컴퓨터추천 버튼을 누르면 어떻게 되나 13 토비 24/11/08 693 35
    15030 정치 2기 트럼프 행정부를 두려워하며 13 코리몬테아스 24/11/07 1457 28
    15029 오프모임[9인 목표 / 현재 4인] 23일 토요일 14시 보드게임 모임 하실 분? 14 트린 24/11/07 509 1
    15028 도서/문학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 - 오직 문학만이 줄 수 있는 위로 7 다람쥐 24/11/07 729 31
    15027 일상/생각그냥 법 공부가 힘든 이야기 2 골든햄스 24/11/06 678 16
    15025 생활체육기계인간 2024년 회고 - 몸부림과 그 결과 5 Omnic 24/11/05 562 31
    15024 정치2024 미국 대선 불판 57 코리몬테아스 24/11/05 2227 6
    15023 일상/생각마흔 직전에 발견한 인생의 평온 10 아재 24/11/05 794 24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