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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5/07/10 20:29:29
Name   마르코폴로
Subject   피맛골, 사라진 골목에 대한 아쉬움

종로통을 왔다갔다하는 양반, 고관대작들의 말이나 가마를 피하기 위해 큰 길 뒤편으로 사람들이 흘러 들었다.
그러다보니 큰 길 뒤편에 자연스럽게 길이 생겨났고 그 길로 다니는 아랫사람들의 왕례가 늘어나다보니 좁다란 골목길 양 옆으로 국밥집도 술집도 생겼다.
그리고 말을 피해 가는 곳이라는 의미에서 피맛골이라는 이름도 생겨났다.
태생부터 미천한 아랫사람들의 길이라 하찮게 보인것인지 너무 쉽게 개발이 결정되고 너무 쉽게 깡그리 밀려버렸다.



서울 종로에 피맛골이라는 식당골목이 있었다. 교보빌딩 뒤편에 작은 골목길을 사이에 두고 식당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이 식당들은 도심 리모델링 계획에 따라 철거되고 이전되었다. 인근에 오랜된 맛집들도 주변의 신축 건물로 이전영업을 할 수 밖에 없었다.
피맛골 식당들은 반세기에 가깝게 영업해온 집들이 대부분이다. 이 식당들은 비좁은 골목길 안에서 매장을 수리하고 보수해 가면서 영업을 계속해왔다.
이렇게 수십년에 걸쳐 점증적으로 개선된 식당들은 자연스럽게 그 자체로 운치와 관록을 지니게 된다.
식당 여기저기에 쓰여진 낙서들, 오래된 포스터와 광고지가 붙어 있는 벽은 시간의 흐름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이렇게 반세기에 걸쳐 영업을 한 식당은 오래된 역사 그 자체가 하나의 문화가 된다.
더욱이 삼청동에 위치한 사랑방 형식의 한정식 집들과 다르게 피맛골은 일반서민들과 부대끼며 생겨난 보편적인 정취를 지니고 있었다.
어쩌면 한국적이란 이름에 걸맞는 것은 삼청동의 한정식집이 아니라 피맛골의 식당일지도 모르겠다.



피맛골이 사라지고 주변의 식당들도 철거되었다.
인근 신축빌딩으로 이전하여 장사를 계속하고 있지만 맛은 보존했을 망정 더이상 특유의 분위기를 선사 할 수는 없다.
반세기동안 피맛골을 상징했던 것은 오롯이 식당들이 선보이는 음식의 맛 뿐만은 아니었다.
음식의 맛과 함께 식당을 방문하던 사람들의 희노애락이 담겨진 골목길이야말로 피맛골의 온전한 상징이었다.



음식도 식당도 제대로된 상품으로서 인정받기 위해서는 스토리가 있어야 한다.
식당의 운치를 살려낼 수 없다면 그 식당이 가진 역사성 또한 상품으로서의 가치를 잃는다.
피맛골이 사라지면서 옛 건물이 가진 운치도 사라지고 골목길이 품고있던 이야기들도 흩어졌다.
오랜된 맛집의 의미를 되살리고자 노력한 흔적이 역력한 '청진옥'의 인테리어가 애잔해 보이는 것은 그런 이유때문일 것이다.
반듯한 간판과 깔끔해 보이는 내장재보다는 손때 묻은 식탁과 낡은 외관이 오래된 맛집의 정체성을 보여주는데는 더 적합해보인다.
피맛골의 오래된 식당들이 선보였던 맛의 반절쯤은 좁은 뒷골목에서 느껴졌던 운치와 시간이 쌓아준 관록이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피맛골의 개발이 다시 한번 아쉬워진다.




-오피스텔 안 식당가를 드나들던 시인이 이런 시를 쓸 수 있었을까?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 김종삼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시가 뭐냐고
나는 시인이 못됨으로 잘 모른다고 대답하였다.
무교동과 종로와 명동과 남산과
서울역 앞을 걸었다.
저물녘 남대문 시장 안에서
빈대떡을 먹을 때 생각나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이
엄청난 고생 되어도
순하고 명랑하고 맘 좋고 인정이
있으므로 슬기롭게 사는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알파이고
고귀한 인류이고
영원한 광명이고
다름아닌 시인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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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란아게하
    좋은 닉네임 좋은 글에 좋은 시입니다
    새내기 시절 거나하게 취한 새벽녘, 차수로는 으레 그렇듯 4차에 다다를 무렵, 유일하게 아침까지 마실 수 있는 장소였던 덕에 아직 술고픈 학우들이 좀비 몰리듯 몰려들던 학교후문쪽 아 그 이름 그리운 한모 주점에
    여인네들의 관능적인 누드화가 대문짝만한 캔버스에다 한 두 개도 아니고 요쪽 조쪽 쩌쪽 임마 니 뒤통수 있는 데까지 벽면을 가득채우고 있어 우엌 어찌 이리 야한 그림들만 있나 흐흐흐 하고 있으면
    선배왈 A동 같이 쓰는 미대 서양화과 인간들이 외상술값 대신 걸어두고 가버렸단 썰 한 번 ... 더 보기
    좋은 닉네임 좋은 글에 좋은 시입니다
    새내기 시절 거나하게 취한 새벽녘, 차수로는 으레 그렇듯 4차에 다다를 무렵, 유일하게 아침까지 마실 수 있는 장소였던 덕에 아직 술고픈 학우들이 좀비 몰리듯 몰려들던 학교후문쪽 아 그 이름 그리운 한모 주점에
    여인네들의 관능적인 누드화가 대문짝만한 캔버스에다 한 두 개도 아니고 요쪽 조쪽 쩌쪽 임마 니 뒤통수 있는 데까지 벽면을 가득채우고 있어 우엌 어찌 이리 야한 그림들만 있나 흐흐흐 하고 있으면
    선배왈 A동 같이 쓰는 미대 서양화과 인간들이 외상술값 대신 걸어두고 가버렸단 썰 한 번 풀어주는데 키햐아 이게 대학이구나 그래 이게 낭만이지 마셔라 아침까지
    이러고 술냄새 풀풀 풍기며 학교 다시 기어올라갔더니 어라 분명 어제 뒷풀이 1차 같이하다 집에 귀가하더니만 금방 또 등교해서는 시끌시원하게 깔깔대는 뽀얗고 풋풋한 동기 얼굴 마주치고
    뭐 나도 이제 슬슬 한모 주점 역사의 한 글자 정도는 써 가고 있나보다 헤헤 하던 그 시절이 떠오르네요
    좋은 글에 술꼬장같은 댓글 죄송
    마르코폴로
    술 값 대신 그림이라니. 그야말로 낭만이네요. 이제는 전설같은 이야기겠죠.
    그나 저나 신입생때 이야기는 지금 들어도 설레네요. 내년에 다시 재입학하고 싶은 기분이에요.
    Beer Inside
    피맛골 정말 아쉽지요.

    조조 영화보고 낮술마시던 기억이...
    마르코폴로
    조조에 낮술이면 완벽한 궁합이네요.
    Beer Inside
    어린시절 일요일 아침 조조영화를 보고, 피맛골에서 같이 영화를 본 이들과 파전에 소주를 마시던 모임이 있었지요.
    저는 예전 피맛골의 모습은 잘 모르지만, 서울이라는 도시가 너무 획일화되어 버리는 것은 아쉽습니다.
    아직도 간간히 남아있는 일제시대의 건물이나 서울의 인구가 막 늘어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건물들 중에도 보존할 가치가 있는 것들이 많거든요.
    땅이나 건물을 소유하신 분들이 경제적 이득을 추구할 권리까지 막을 수는 없겠습니다만
    과연 서울은 어떤 특색을 가진 도시인가 생각해보면 역사에 비해 보잘 것 없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나마 조선왕조가 남긴 궁궐이 한복판에 남아있어서 다행이긴 한데, 서민문화를 양식화할만한 것은 거의 남아있지 않죠.
    마르코폴로
    그러고보니 연남동에 목로주점이라고 허름한 술집이 있었는데 최근에 방문하니 없어졌더군요.
    친구들은 싫어했지만 전 그 집에서 천원짜리 노가리 안주에 맥주 한 잔 하는 걸 좋아했거든요.
    서민문화 하니 갑자기 그 생각이 나네요.
    디자인 서울을 외치던 오세훈의 업적이 엄청나지요.
    뭐든지 싹 밀어버린 물의 신 오세이돈
    마르코폴로
    디자인의 \'디\'자도 모르지만 획일적인 도시정비 사업에 \'디자인\'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걸 보고 놀랐었죠. 흐흐흐
    기아트윈스
    뭐.. 그게 어떻게 보면 우리 속모습이지요. 우리는 우리 속의 것을 바깥에 투사해서 비슷하게 만들어내니까요. 크고 영광된 것 좋아하는 정신을 투사해서 크고 영광된 것들을 만들고, 헌 것을 싫어하고 새 것을 좋아하는 정신을 투사해서 헛 것을 부수고 새 것을 만드니까요.

    물건 못버리는 제 정신은 서울 돌아가는 모습이 여간 마음에 안 들긴 하지만 그게 다수의 정신인 걸 내 힘으로 어쩌겠나 싶기도 합니다.
    마르코폴로
    요즘의 개발과정들은 경제발전에 대한 강박에서 오는 것같아요. 부수고 짓는 과정을 반복함으로써 부동산시장을 부양하고 경기침체를 막으려는 몸부림같이 느껴집니다. 과거에는 헌것과 볼품없는 것들에 대한 비하와 혐오라도 느껴졌었는데 근래에 들어서는 그 것조차 사라진 느낌이에요. 호랑이 등 위에 올라타서 냬려오지 못하는 사람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합니다.
    물론 가게 인테리어나 거리의 깨끗한 모습 좋죠
    하지만 예전 추억을 간직한 곳을 참 좋아하는데요
    예전모습을 간직하면서 추억,시간의 때가 묻어있는 곳 찾기란 요즘은 힘든거 같아요
    친정 근처에 오래된 국수집이 있는데
    항상 친정에가면 한번씩 들리는 곳이에요
    참으로 분위기가 좋죠.... 예전부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여기를 다녀갔을까 싶기도하구요
    은근슬쩍 사장님께 인테리어 바꾸실꺼에요?라고 물으니
    돈도 돈이지만 인테리어 하는동안 가게문을 닫는게 싫다고 하시더라구요
    자주 찾아오는 단골손님들이 많아서...크크
    마르코폴로
    오래된 식당은 그 나름의 멋이 있는 것 같아요. 저는 깨끗한 인테리어보다 손때묻은게 더 좋더라고요. 태생적으로 깨끗함과 먼 본능때문인지도 모르겠네요.
    맞아요 분위기가 사뭇다른게 느껴지거든요
    그래서 친정가면 그 국수집은 꼭 들려요....크크
    (제가 면을 좋아하는것도 있지만....)
    마르코폴로
    전 국수는 자주 해먹습니다. 유일하게 자신있는 음식이죠. 잔치국수. 흐흐흐
    캬~~ 갑자기 또 잔치국수 먹고싶네요 흐흐
    오늘점심은 잔치국수 해먹어야겠네용
    마르코폴로님덕에 오늘은 점심해결! 크크
    감사합니다아~
    제 자신부터 남의것은 예전의 모습을 유지해줬르면 좋겠지만 내것은 최신식으로 바꿨으면 하는 이중적인 생각을 갖고 있어...

    어느것이 정답인지 모르겠습니다 ㅠㅜ
    마르코폴로
    제 몸 좀 새걸로 바꿔줬음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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