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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5/08/04 11:25:03
Name   눈부심
Subject   들장미 소녀 제니

분류가 문화/예술까지는 아닌데 쵸큼 부끄러운..(아.. 기타가 있군요. 수정했다는..) 제가 어렸을 때 티비에서 '들장미 소녀 제니'라는 만화가 방영되기 시작했어요. 쌍둥이 양오빠의 사랑을 담뿍 받으며 엄마와 한 지붕에 살던 금발의 제니는 호주의 푸른 들판에서 행복하기 그지없는 귀염둥이였죠. 무엇보다 만화의 그림이 참 예뻤어요. 유명한 순정만화 캐릭터 캔디는 좀 뭉툭하게 생겼잖아요. 제니는 무지하게 미인이어서 눈이 즐거웠어요.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만화가 종영된 거예요.  




우오오오오!!!!

뭣땀시! 도대체 뭣땀시 만화를 안 틀어주는 것이냐!! 어린 저는 예쁜 금발머리소녀 제니가 앞으로 어찌될지 노심초사하며 다음 회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은데 그 뒤로 결코 볼 수 없었어요. 그 후 '금발의 소녀 제니'라는 만화는 제게 미완성의 신화로 남게 되었어요. 기억이 너무 흐릿해져버려 제가 만화를 보다 만 것인지 방송사에서 방영을 중단해 버린 건지 구분이 안 갔어요. 내용은 기억 나지 않아도 만화 주제가만큼은 마음 속에 아련하게 남아 있어서 가끔 '캥거루가 뛰어 노는 푸른 목장은~'하고 흥얼거리다가 더 이상 생각이 안 날라치면 국물 한 술 떠 먹은 사이 누가 뺏아가 버린 아쉬운 라면면발이라도 되는 양 허기가 지고 속이 화닥화닥 타곤 했어요. 이건 일종의 트라우마에 가까웠는데 미지의 전설로 남은 그 만화는 머릿 속에서 결코 지워지지 않은 근사한 주제곡의 음율 때문에 그 미련이 뜨겁게 남아 식는 법이 없더군요. 

그러던 어느 날, 수십 년이 지나고 나서야 본격적으로 이 만화에 대해 검색을 해봤더니 럴수럴수 이럴수가, 주제곡도 검색이 되고 일한번역이 완성된 채로 판도라에 첫 회부터 끝 회까지 일본판 만화영상이 하나도 빠짐없이 다 올라와 있는 것이 아니겠어요. 그래서 몰아서 한 방에 골인!

내용이....퓨하하하하하... 왜 당시 엄마들이 '이런 막장을 내보내냐!'며 방송사에 집단항의를 했는지를 알겠더라고요. 

쌍둥이아들이 있는 부부가 제니를 데려다가 키우는데 이 두 아들이 동시에 동생을 좋아하게 되고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엄마는 제니를 증오, 엄마의 차가운 마음을 읽은 제니는 가문의 비밀을 담고 있는 팔찌를 손에 꼭 쥐고 영국으로 향하고 그 곳에서 지난 날 호주 고향에 왕자님처럼 등장했다가 사라진 첫사랑 로엘과 재회하지만 로엘은 시름시름 앓다가 어쩌구 저쩌구... 사랑하는 제니를 찾아 역시 영국으로 향한 큰오빠 아벨, 그 둘을 찾아 나선 작은오빠 아더... 

대충 이런 이야기인데 지네들끼리 호주에 살 때 비바람 휘몰아치는 어느 날 밤, 제니를 원망하는 엄마의 절규에 충격을 받은 제니가 빗 속을 찰박찰박 뛰쳐나가 발을 헛디뎌 강물에 풍덩 빠지는데 운좋게 제니를 구해낸 오빠가 근처 동네의 혼자 사는 아저씨네에 제니를 업고 가서 차갑게 젖은 제니의 옷을 홀딱 벗겨 침대에 눕혀요. 그리고 얼음장 같이 식어버린 제니의 몸을 녹여준답시고 덩달아 알몸이 되어 제니 위로 가서 눕습니다 부흐흐흐흑. 이 외에도 둘이 까불까불하다가 제니 위로 철푸덕 쓰러진 오빠가 강렬히 끓어오르는 애정을 느낀다던지 등과 같은 장면이 만화에 나와요. 부헬헬헬헬. 엄밀하게 말하면 근친상간이 아니지만 부모님들이 결사반대해서 만화를 중간에 확 끊어버린 바로 그 문제작! 이건 만화버전이라 그나마 많이 순화되었고 원작의 막장스러움은 말도 못해요. 제니가 큰오빠 아벨과 재회했을 때 아이를 임신하지만 불한당의 강요로 마약에 찌들어 살던 아벨은 감옥에서 죽고 그 후 해후하게 된 작은 오빠 아더를 아이아빠로 두고 행복하게 산다고 하는, 애들 만화 치고는 매우 엽기적인 내용입니다. 이 만화의 작가는 바로 '캔디'의 작가인 이가라시 유미코예요. 

어쨌든 다 본! 그래서 트라우마는 사라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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