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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8/08/13 22:45:53수정됨
Name   化神
Subject   [서평]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 줄리언 반스, 2011
주인공 앤서니 웹스터는 토니라는 애칭으로 불린다. 고등학교 시절, 그를 포함한 무리는 철학적 사유와 논쟁을 즐기곤 했다.

그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인물은 에이드리언이었고 주인공을 비롯한 다른 친구들은 은연중에 그의 인정과 평가를 바라곤 했다.

대학을 간 이후로 무리는 그 전처럼 자주 볼 수는 없었지만 정신적인 유대를 어느정도는 유지하고 있었고, 주인공은 대학에 진학하면서

베로니카라는 이름의 여자친구를 사귀게 된다.

하지만 그 여자친구와의 관계는 왠지 모르게 어색했고, 주인공은 그 이유를 둘 사이의 불충분한 성 관계 때문은 아닌지 의심한다.

베로니카에게 가끔씩 이야기하던 고등학교 친구들과 마침내 만나게 된 자리에서 베로니카는 에이드리언을 향한 관심을 보이고 그 장면을 목격한 주인공은

불편한 감정과 꺼림칙한 추론을 시작하게 된다.

하지만 그 이후로 다른 일들은 없었고, 오히려 방학 기간을 맞이하여 베로니카의 가족과 지내게 되는데 그 사이에 베로니카의 어머니 사라로부터

'너무 많은 것을 내주지 말라' 는 충고를 듣게 된다. 진의를 알 수 없는 사라의 말과 함께 베로니카에 대한 주인공의 불신도 조금씩 커져간다.

'너는 항상 감을 못 잡는구나'

둘 사이는 마침내 깨지고 만다. 하지만 그보다 더 충격적인 것은 그 이후에 베로니카와 에이드리언이 사귀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그 소식은 에이드리언이 직접 편지를 써서 알려주게 되고

주인공은 그 사실을 매우 모욕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어쩌면 배후에서 베로니카가 에이드리언을 조종한 것은 아닐까, 좋지 않은 헤어짐에 앙심을 품고 자기 자신에게 상처주기 위해서 그러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주인공은 마음을 다 잡고 둘 사이를 축복해주는 편지를 보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에이드리언이 자살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된다.


40년의 세월이 지나서, 잠깐 만났던 베로니카의 어머니 사라로부터 유언이 전해진다. 오백 파운드라는 돈과 함께 에이드리언의 일기를 전달하겠다는 유언이었다.

어째서 에이드리언의 유품을 베로니카도 아닌 사라가 가지고 있었던 것일까? 의문스러운 상황은 계속된다.


이동진의 빨간책방 등에서 인간의 부정확한 기억이 만들어내는 오류들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 자주 등장하는 이 책은

과거의 사건을 다룬 1부와 현재의 사건을 다룬 2부로 구성되어있다.

과거의 기억에서 가장 큰 오류는 에이드리언과 베로니카의 만남을 축복해주는 편지를 써주었고 그런 모습을 스스로 '멋있게' 생각했었지만 사실은 폭언과 저주로 가득찬 편지였다는 것이다.

자기 자신이 매우 괜찮은 행동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전혀 다른 행동을 했다는 것을 알게된 토니는 이후 에이드리언의 유품을 돌려받기 위해 베로니카로와 만나는 과정에서 그녀에게 과거의 행동에 대한 용서를 구하려 하지만 그럴수록 베로니카는 의미심장한 말들만 남길 뿐이었다.

과거의 기억만이 오류투성이인 것은 아니다. 현재 시점에서 주인공 토니가 추측하는 모든 상황은 그 시점을 지나고나면 이내 잘못된 예측이었다는 것을 알게된다. 베로니카가 안내하는 대로 따라간 병원에서 어떤 환자를 만나게 된다. 그 환자는 베로니카를 메리라고 불렀다. 시간이 지난 후 토니는 그 환자를 제대로 다시 보게 되는데 에이드리언의 아들임을 알 수 있었다.
자신이 젊은 시절에 만들었던 저주가 실현되었음을 알게된 토니는 에이드리언에 대한 모든 것을 포기하기로 결심하고 베로니카에게 용서를 구하는 메일을 보낸다.

하지만 그 메일에 대한 답변은 '아직도 전혀 감을 못 잡는구나, 그렇지? 넌 늘 그랬어, 앞으로도 그럴거고. 그러니 그냥 포기하고 살지그래.' 라는 냉소적인 답변이었다.

병원에서 만난 그 환자의 정체에 대해서 궁금해하던 토니에게 환자의 간병인은 진실을 알려준다.

베로니카가는 어머니가 아니라 누나라는 것.


이전까지 아무도 진실을 말해주지않았다. 어쩌면 주인공은 진실을 찾으려고 하기 보다는 자신이 만든 시나리오를 어떻게든 맞춰가려고만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한국의 막장 드라마 같은 결말이지만 그보다 더 충격적인 것은 이런 반전을 만들어낸 것이 그 누구도 아닌 주인공이며 더 정확하게는 주인공의 착각이었다는 것이다.

마지막까지 주인공의 예측이 틀리는 것을 지켜보면서 어쩌면 주인공의 모든 것이 거짓이거나 착각일 수 있다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고 그 때서야 비로소 온 몸에 소름이 돋는 것 같은 떨림을 경험할 수 있었다. 젊은 시절 베로니카와의 관계 또한 주인공이 잘못했기 때문에 틀어진 것은 아니었을까? 베로니카의 믿을 수 없는 행동들에 대한 회상 또한 전혀 믿을 수 없다. 그들의 관계가 틀어진 이유는 토니가 말했던 이유 때문은 아닐 수 있다. 그리고 여기서 언급했던 큰 줄기 외에도 주인공이 경험하는 인간 관계와 인물평 또한 믿을 수 없다. 그것 또한 전혀 객관적이지 않은 주인공의 시각에만 입각한 서술이니까.

1인칭 주인공 시점에서 서술하는 것들에 대하여 독자들은 진실이라고 나도 모르게 받아들이게 된다. 그리고 주인공에게 동조하고 응원하게 되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 어떤것도 믿을 수 없다는 사실만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고 이내 허탈해지고 만다.

사람의 기억은 불완전하다. 그리고 불완전한 기억 속에서 나는 서투르고 어리숙할지는 몰라도 착하고 좋은 사람으로 남아있다.

자기 자신을 좋은 사람으로 기억하는 것은 방어기제 중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그로인해 인간의 기억은 불완전해진다.

'역사는 부정확한 기억이 불충분한 문서와 만나는 지점에서 빚어지는 확신이다.' 라는 명제가 이 책을 관통하는 주제의식이다. 소설 초반부부터 이렇게 짜릿한 스포일러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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