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22/08/14 04:29:42
Name   당근매니아
File #1   265XV3046N_1.jpg (168.0 KB), Download : 12
Subject   헤어질 결심 - 기술적으로 훌륭하나, 감정적으로 설득되지 않는다.




기술적으로는 훌륭하나, 감정적으로 설득되지 않는다.

박쥐 이전의 박찬욱 영화를 전부 챙겨보다가, 박쥐 이후의 영화들을 보지 않았다.  박해일의 전근을 기준으로 절반 갈라져 있는 이 영화는, 송강호의 타락을 기준으로 절반 갈라져 있던 박쥐를 연상시켰다.  신부에서 흡혈귀로 몰락하는 송강호처럼, 박해일은 품위 있는 형사였으나 붕괴한다.  최후에 송강호는 김옥빈과 함께 산화했으나, 박해일은 산화한 탕웨이를 찾아 홀로 해변가를 해멘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는 동안 왓챠피디아에서 훑어본 어떤 평가는, 이 영화에서의 탕웨이를 '불행에서 벗어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진취적 인간상'으로서, 과거 팜므파탈로 소비되었던 캐릭터들을 긍정적으로 재해석했다는 식으로 썼다.  틀렸다.  그런 식의 선해라면 탕웨이의 두번째 남편과, 그 두번째 남편을 찔러죽인 범인 역시 그와 다르지 않은 기준으로 선해해야 할 것이다.

적어도 영화에서 드러나거나 암시된 내용만을 고려한다면, 탕웨이는 흔한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범에 지나지 않는다.  탕웨이는 높은 지능과 탁월한 관찰력으로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거기에서 도출된 최적해를 연기하여 완전 범죄를 꿈꾸는 자에 불과하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며, 목적의 달성을 위해 수단을 선택하면서, 사회의 룰을 전혀 신경쓰지 않는 교묘한 무법자다.  예쁘고 매력적이니 박해일과 관객의 면죄부를 받아들었을 뿐.  "내가 그렇게 나쁩니까?", 네 나쁩니다.

나에게 있어서 이 영화의 문제는 그 언저리에서 시작한다.  수단의 정당화를 납득할 수 없는 나로서는 탕웨이가 맡은 캐릭터에서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박해일에게 한정된 수준으로 이입할 수 밖에 없다.  그러니 영화가 펼쳐놓는 장치들이 실로 적합하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박해일이 극중에서 마주하는 내적 갈등에는 몰입할 수 없다.  그러고 나니 남는 건 박해일 특유의 '품위있는' 목소리와 각본을 훌륭하게 소화하는 배우들의 연기 뿐이다.

그리하여 나는 그 모든 호평들을 이해하되, 납득할 수는 없게 되었다.



4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843 경제현대기아차가 현대캐피탈의 GE지분의 대략 절반을 인수했습니다. 2 Beer Inside 15/12/22 5627 0
    2374 기타현대기아차 플렉시블 커플링 무상수리 해준다네요. 3 스타로드 16/03/10 5545 1
    8072 꿀팁/강좌현대M포인트 유용하게 쓰는법! 5 초면에 18/08/18 5352 0
    12742 사회현대 청년들에게 연애와 섹스가 어렵고 혼란스러운 결정적인 이유 56 카르스 22/04/19 6069 16
    9263 경제현대 중공업의 대우해양조선 합병에 대해서 7 쿠쿠z 19/06/01 5416 3
    8094 경제현 정부의 경제정책과 경제상황에 대해 잘 분석한 글 소개해 드립니다. 2 디스마스 18/08/22 4467 1
    10040 게임현 시점까지의 LCK 공식 로스터 정리 3 Leeka 19/11/29 6681 3
    13363 게임현 시점 기준 LCK 팀 로스터 정리 5 Leeka 22/12/02 1943 0
    11119 사회현 시대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_ 관심에 대해서 9 Edge 20/11/09 3997 9
    1315 일상/생각헬조선에 대한 잡담 41 관대한 개장수 15/10/22 9716 1
    1060 일상/생각헬조선 단상 - 이건 뭔 거지같은 소리인가 56 바코드 15/09/22 8770 0
    12794 일상/생각헬요일 화이팅입니다^^ 5 곧점심시간 22/05/09 2364 1
    10875 생활체육헬스장이 문닫아서 로잉머신을 샀습니다. 14 copin 20/08/23 6417 4
    659 일상/생각헬리콥터 맘 3 西木野真姫 15/07/26 5195 0
    13577 기타헤어짐을 준비하는 중입니다. 18 1cm 23/02/17 3623 27
    13049 영화헤어질 결심. 스포o. 안보신분들은 일단 보세요. 10 moqq 22/08/04 3250 1
    13082 영화헤어질 결심 - 기술적으로 훌륭하나, 감정적으로 설득되지 않는다. 4 당근매니아 22/08/14 3629 4
    6857 일상/생각헤어졌어요. 27 알료사 17/12/30 5906 23
    3113 기타헤비 오브젝트 애니판 다봤습니다. 1 klaus 16/06/24 3583 0
    3040 기타헤비 오브젝트 라는 애니 보는중인데 꽤 재밌군요. 2 klaus 16/06/16 3803 0
    3719 의료/건강헤로인과 모르핀 이야기 9 모모스 16/09/17 16105 1
    7625 음악헝겊 인형 5 바나나코우 18/06/05 3653 6
    6165 일상/생각헛살지는 않았구나 22 와이 17/08/24 4977 16
    9727 일상/생각헐 지갑분실했어여 ㅠ 8 LCD 19/09/28 3778 0
    12347 일상/생각헌혈하는 것의 의미 9 샨르우르파 21/12/14 3749 23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