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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5/03/25 17:13:43수정됨
Name   당근매니아
Subject   알중고백
* 예고 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


작년부터 부쩍 술을 많이 마셨습니다.  스스로 생각해도 이건 의존증 내지는 중독에 가까운 상황이 아닌가 싶은 정도.  물론 일에 영향을 끼치는 수준...은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왠만하면 다음날이 휴일이거나, 오전에 중요한 일정이 딱히 없는 날에 한해서 마셨거든요.  일전에 유튜브에서 본 다큐 영상에 따르자면 사회적응형 알콜중독이라고 불러도 되겠네요.  

작년부터 많이 마셨던 이유는 크게 두 가지 같습니다.  이직이 마음대로 안되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와 연애/결혼 관련된 문제들.  그보다 이전에는 법인 일이 불규칙적이고 업무강도가 높았다는 점이 있겠죠.  하루종일 일에 매달리고 있다가 대강 마무리되었을 때, 이미 게임이고 운동이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각이 되어 있으면 보상심리가 세게 발동했습니다.  다른 재미를 못 봤으니 이거라도 해야겠다는 거죠.

이직 준비를 시작하면서는 계속 물 먹는 것 자체가 당연히 고통이었습니다.  마음이 떴으니 더더욱 일하기 싫어졌구요.  나름으로는 기업 경력도 있고, 법인에서도 5년을 근무했으니 기업에서 꽤 선호하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실제로는 시장에 나올 시기를 살짝 놓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이직을 시도한, 3살 정도 어린 동료가 몇개월 빠르게 엑시트하는 걸 보면서 더더욱 그랬구요.  다행히도 연말에 이직하는 데에 성공했고, 옮긴 직장에서는 '밥값/직급값을 해야한다'는 스트레스와 압박이 있긴 하지만 꽤 잘 지내고 있긴 합니다.

남은 건 연애/결혼에 관한 문제겠지요.  사실 지금 여친을 만나기 전까지는 평생 결혼할 생각 자체가 없었습니다.  세상에 즐길 것은 너무나 많고, 혼자 먹고 사는 데에 충분한 소득이 있는데다, 그다지 외로움을 타는 성격도 아니니까요.  그러다가 지금은 유부남들이 흔히 말하는 '정신 차려보니 식장에 서있더라'의 '정신 못차리는 시기'를 지나가고 있습니다.  종전의 생각을 고쳐먹게 만들었으니, 물론 지금 여친이 충분히 좋고 같이 살만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건 분명합니다.  나름 긴 여행도 몇번 같이 다녀왔고, 그 과정에서도 종종 다투긴 했지만 같이 사는 데에 큰 문제는 없겠다고 생각했지요.  그럼에도 스트레스를 받는 건 소통방식과, 불안의 문제입니다.

어릴 적을 돌이켜 보면 어렴풋한 불안에 많이 지배되었던 기억들이 납니다.  그건 성장과정의 문제일 수도 있고, 타고난 성정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어찌되었건 간에 대학생 시절 심리상담 등을 거쳐 그러한 문제는 꽤나 많이 해결되었고, 제 가슴팍에는 라틴어로 'here and now'라는 의미의 글귀가 적혀 있습니다.  지나치게 멀리 보려 하지 말고, 지금에 충실하게 대충 살자는 의미에서 박아넣었습니다.  물론 그 뒤에도 자격증 시험을 거칠 때나, 이런저런 장벽이 다가왔을 때까지도 완전히 초탈하지는 못했었습니다.  그렇게 살고 싶다는 입장을 스스로에게 표명하고, 선언하는 의미일 뿐이니까요.

종종 여자친구의 불안이 저를 잠식해 오는 걸 느낍니다.  한발 뒤로 물러서서 부감하고 관조했을 때, 당장 집을 사는 건 그다지 현명하지 못한 선택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더군다나 LTV와 DSR을 거의 한도까지 채워서 대출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라면 더더욱 그럴 겁니다.  그럼에도 대출사기를 당할 가능성과, 미래에 부동산 가격이 또다시 치솟을 수 있다는 불안에 휩싸여, 절대 하락하지는 않을 거라는 믿음 하에 일단 사자는 이야기를 계속 해오는 건, 상당한 압박으로 다가옵니다.  앞으로 20년간 소득의 절반 내외를, 그것도 둘다 쉼없이 벌어야 한다는 전제 하에 투자하는 결정을 이렇게 쉽게 내려도 되는 건가 하는 생각들.

언제 어떤 식으로 형성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저는 입에 발린 소리를 하는 걸 참 못합니다.  필드에 계속 남아있었다면 영업하는 데에도 그다지 도움이 되는 성격은 아니었겠지요.  반대로 예전 법인의 대표노무사처럼, 솔직하게 말해주는 게 상사 입장에서 좋다는 사람도 있긴 했었습니다.  위에 언급한 집을 산다고 가정했을 때, 제 임금의 거의 대부분이 이미 원리금 대출 상환에 소요될 것이고, 생활비를 충당할 방법 자체가 없으니 맞벌이는 필연적입니다.  그런 분명한 현상에도 불구하고, 한번 구입하고 나면 둘 모두 계속 일해야 한다는 말에 마음을 상하는 걸 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비슷한 갈등들이 있을 때마다 전 잠들고자 술을 마셨던 것 같습니다.  어디선가 큰돈이 갑자기 생기거나, 소득 수준이 확정적으로 대폭 상승할 가능성은 사실 없습니다.  외길로 나아가기를 바라면서, 아무 문제 없을 거라는 근거 없는 말을 함께 바라는 걸, 어떻게 씹어 소화해야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5
  • 솔직담백 글 잘 읽었습니다. 힘내시기 바랍니다.


알콜문제는 꽤 해결되셨나봐요. 현재 고민은 주택 매수를 할 것이냐? 에 방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집이라는 게 노숙을 할 게 아니면 전세든 월세든 살아야해서 집값이 빠지더라도 월세만큼의 효용은 있다고 보면
영 이상한 걸 비싸게 사지 않는 한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니라 생각합니다.
솔직히 미래를 다 알고 사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주택도 그렇고 결혼도 그렇고 육아도 그렇고 너무 위험하거나 죽도록 싫은 게 아니라면 까짓 거 서로를 믿고 함 가보자. 하는 거죠.
대신 너도 일해야한다. 는 어쩔 수 없지만..
당근매니아
아뇨, 아직 현재 진행형입니다.
그저께 어머니께서 여자친구를 집에 초대해서 밥 먹으면서 '얘 술 많이 먹는다'고 고자질(...)을 하셨거든요.
'내가 왜 술 먹는지 아냐' 소리를 할 수는 없으니 일단은 입 다물고 있습니다.
치즈케이크
뭐 사기당하는거 아닌이상 영끌해서 집산다고 큰일은 안날겁니다. 집이 어디 도망가는건 아니니깐요.
다만 영끌해서 사야 하는 상황인데 영끌 후 맞벌이하는거에 있어서 이견이 있는 상황인 것이 가장 큰 문제네요.
어쩔수 없지만 마음이 상한다는 것인지, 아니면 어쩔수 없는 상황인 것 자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인지, 아니면 또 다른 이유가 있는것인 이 글만 놓고서는 알 수 없으나 어느쪽이든 고생이 많으시겠습니다..
엄마손파이
사례)일부 가계는 처음부터 전액 상환을 목표로 하지 않습니다.
일단 원리금은 상환하면서도, 집값 상승을 기대하며 근저당이 설정된 상태로 매매를 이어가는 방식이죠.
즉, 중간에 점프하듯 갈아타는 전략을 쓰는 겁니다.
(하지만 문제는, 미래는 예측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dolmusa
힘드실 때 다른 사람과 같이 술을 드시면 알중이 아니(어 보이)게 됩니다. (?)
힘내세요.

술을 안 마시면 손을 떨던(?) 제 후배놈도 술 끊고 치과의사를 잘 하고 있더군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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