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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te | 26/03/09 17:44:24 |
| Name | 바보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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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ject | 고전 게임 <레거시 오브 케인> 소회 : 소울 리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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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쪽 그림의 가운데 인물이 라지엘, 아래 그림의 칼이 '소울 리버'입니다. 1996년 출시한 고전 게임 <블러드 오멘: 레거시 오브 케인>은 평범한 (듣기 좋게 말하자면, 당시로선 딱히 흠 잡을 구석도 없는) 플레이 뒤에 숨겨진 장대하고, 어두우며 진지한 이야기와 비유로 가득한 화제작이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서양과 일본의 PC게임 시장에서도 이 게임의 팬이 늘어났습니다. 기대 이상의 흥행에 고무된 유통사 에이도스에서는 최초 개발사인 실리콘 나이츠와 더불어, 당시 자신들의 1선 개발사 중 하나인 크리스털 다이내믹스까지 합류시켜 레거시 오브 케인이라는 이야기의 후속작을 만들 것을 지시했습니다. 당시엔 아직 제약이 많고 사양편차도 불안정했던 2000년 이전의 PC 대신, 뛰어난 그래픽 성능과 믿음직한 내구성에 대해 검증을 끝낸 게임 콘솔, 그러니까 플레이스테이션으로 게임을 개발하자는 과감한 시도를 했지요. 그렇게 탄생한 시리즈의 후속작이 <소울 리버> 그리고 그 이후의 사건을 이어서 다룬 <소울 리버 2>입니다. 시간차를 꽤 두고 나온 별개의 작품이지만, 1편이 중간에 너무 허무하게 이야기가 잘리기도 했고, 2편은 반대로 1편에 비해 발전이나 변화가 너무 없어, 사실상 팬덤에서는 이 두 게임을 하나로 묶어 <소울 리버>를 1부, <소울 리버 2>를 1부에서 이어진 2부 서사로 논하곤 했습니다. 이후 어스파이어에서 리마스터판을 만들 때도 <소울 리버>는 1과 2를 하나로 합쳐 만들었고, 이제 이 게시물에서도 <소울 리버>라고 할 때는 1과 2를 따로 구분하지 않고, 하나의 게임인 것처럼 다루고자 합니다. <소울 리버>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줄거리보다는 이 게임 자체가 남긴 업적을 먼저 논해야 맞지 않나 싶습니다. 그 정도의 게임이거든요. 그리고 게임으로서의 <소울 리버>를 논하고자 한다면... 가장 먼저 1998년과 1999년이라는 게임의 시대상을 입에 올려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3D 액션 게임을 논할 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그 모든 것 중에, 아직 어느 한 가지도 당연한 게 없던 시절이거든요. 2D 게임에 익숙하던 사람들에게, 2D로 입력하는 패드를 쥐어주고, ‘위’와 ‘앞’과 ‘옆’이 모두 존재하는 3차원 공간에서 움직이게 할 때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던 시절이기도 했습니다. 그나마 십자패드와 레버를 양손으로 잡을 수 있게 설계한 닌텐도 64나, 키보드가 필수 입력 장치인 PC는 사정이 좀 나았습니다만, 당시 플레이스테이션 1의 경우 그 모든 장점에도 불구하고 패드에 아직 레버가 없어서 (넵, 실화) 복잡한 3D 조작에 큰 제약을 받곤 했지요. 그래서 당시 나온 PS 게임들은 트리거 버튼을 옆걸음, 혹은 돌아서기 키로 활용한다거나, 고정된 카메라 워크 안에서 사실상의 2D 이동만을 허용하거나, 그냥 3D를 포기하거나, 대체로 세 가지 선택지 중 하나를 고르곤 했습니다. 소울 리버는 이 문제를 ‘자동 대면(Autoface)’라는 독자적인 방식으로 해결한 최초의 게임이었습니다. 이게 무슨 개념인고 하니, 360도로 방향을 바꾸며 평면 이동을 하는 자유로운 이동 모드와, 방향을 고정한 채 이동하는 방향 고정 모드로 게임의 이동을 이원화하는 거였지요. 그리고 락온까진 아니지만 (당시 기기 성능 수준에서 락온 기능을 자연스럽게 적용할 정도로 개발사 능력이 뛰어나지도 않았습니다) 대면 모드를 사용하면 PC는 그 때 가장 거리가 가까운 적이 있는 곳을 돌아봅니다. 그러면 돌아본 방향을 유지한 채, 횡이동을 하면서 적과 타격점을 맞출 수 있었지요. 그 상태에서 스텝, 구르기 등을 써서 회피를 하는 조작도 있었고요. 말하자면 마리오 64 같은 느낌으로 필드를 뛰어다니다가도 싸움이 벌어졌을 때는 파이널 파이트, 아랑전설과 같은 과거 격투 액션 조작을, 스타폭스 비슷한 백헬드 시점과 감각으로 쓰면서 플레이할 수 있었다는 이야깁니다. 넵, ‘격투 액션.’ <철권>에 비할 바는 못 됐지만, 적어도 <버추얼 파이터>나... PS로 나온 <토발 No.1>에 비하면 오히려 이 게임이 훨씬 치고받는 액션의 느낌이 진하게 느껴졌습니다. 냉정하게 말하면 ‘횡이동 모드’와 ‘자동 방향 맞춤’이 소울 리버의 전매특허나, 하다못해 최초 발명품인 건 아닙니다. 락온마저도 시간의 오카리나 이후 툼레이더가 빠르게 도입하기도 했고 말이죠. 횡이동 그거 뭐 울프3D나 둠에도 있던 그거고, 자동 방향 맞춤도 당대 1인칭 슈터 게임에서는 알음알음 도입하던 조작이긴 했거든요. 마우스가 아직 선택사항이던 시절이라. 그런데, [이 두 시스템을 하나로 묶을 수 있다]는 것과 [이 시스템은 오버뷰 카메라 게임에서도 먹힌다]는 사실을 시험하고 또한 성공까지 한 건 소울 리버가 최초였던 겁니다. 더구나 소울 리버는 그 당시로선 게임 자체도 충분히 훌륭했습니다. 모험 액션인데도 전투가 격투 감각이라는 것뿐만 아니라, 주변에 떨어진 물건을 집어들거나, 적이 손에 든 무기를 내가 빼앗아 휘두른다는 전술적 개념의 시도도 가져와서 <파이널 파이트>나 <천지를 먹다> 때의 감성을 자극했습니다. 거기에 적을 그냥 때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결정타를 적절하게 날려야만 한다는 점, 그 결정타가 단순 커맨드만 있는 게 아니라 무기를 써서 적을 찍어 내리거나, 참수하거나, 적을 들어서 물에 던지거나, 불에 태우거나, 일광욕을 철저하게 시키는 등의 ‘주변 사물 활용’을 해야 한다는 점, 그리고 이 모든 게 하나의 게임 그것도 3D 게임에서 이루어진다는 점 등은 유례가 별로 없는 플레이의 ‘자연스럽게, 할 일이 많다’는 폭을 만들어냈습니다. 여기에 소울 리버에는 특이한 레벨 디자인을 더했습니다. 이 게임의 주요 특징 중 하나가, PC가 육체를 잃은 영혼이기 때문에 정신계와 물질계라는 두 세계를 넘나들며 문제를 해결한다는 거지요. 서로 다른 세계를 표현하기 위해 개발사는 두 세계를 (그러니까, 신들의 트라이포스 같은) 색반전 동일 필드를 쓰지 않고, “분명히 인접했는데 명백히 구분되는” 별개의 레벨로 만들려고 했습니다. 당연하지만, 겨우 700메가바이트가 용량의 (그나마도 이 정도까지 공간을 쥐어짜기도 힘든) CD 한두 장으로는 그렇게까지 방대한 레벨을 담아내기란 어림도 없었습니다. 앞서 주석으로 언급했지만, 개발사 능력도 솔직히 그 정도는 아니었고요. 그래서 어떻게 했느냐면, 결과적으로는 이 게임도 색반전 동일 필드를 사용했습니다. 그 대신, 3D 그래픽을 구성하는 각 표현단위의 꼭짓점, 그러니까 버텍스와 지오메트리라고 하는 것들을 뒤틀어 설계도 A에 의한 형태와, 설계도 B에 의한 형태의 두 가지로 나누었습니다. 게임에서 PC가 정신계와 물질계를 오가면, 이 설계도의 전환에 따라 공간이 실시간으로 ‘뒤틀리고 새롭게 짜 맞춰지며’ 전혀 다른 성질의 레벨로 탈바꿈했지요. 분명 성능 때문에 타협을 보면서 구현한 결과인데, 결과적으론 어마어마한 대박이 나왔습니다. 인접했지만 동시에 머나먼 두 세계라는 개념을, 시각적으로, 그것도 실시간으로 바뀌는 형상을 통해 직접 게이머들에게 전달한 셈이거든요. 그 덕분에, 소울 리버는 진행이 꽤나 선형적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로부터 내용 그 자체가 즐겁고 좋은 게임으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물질계에서만 풀 수 있는 퍼즐, 정신계에서만 통과할 수 있는 난관, 거기에 PC가 가진 신체적이거나 마법적인 제약들이 게임 속 보상으로 서서히 사라져 가며 점점 초자연적인 존재... 라기보단 이질적인 괴물로 전락하며 (아 근데 간지가 난다니까 그게?) 잠긴 통로를 풀어 나가는 점은 ‘액션과 레벨 디자인만큼은 아니지만’ 충분히 나쁘지 않은 점으로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끝이 아닙니다. 개발자는 시대의 취향을 한껏 들이부은 그로테스크한 다크 판타지 감성을 다 만든 작품에 아주 통으로 끼얹었지요. 퇴폐적인 분위기가 미련 없는 수준까지 발휘된 흉측한 바이오 괴물 사이로, 시퍼렇게 죽어 뼈와 근육만 남은 괴물이, 망토로 얼굴만 가리고 - 그런데 그 복면 차림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간지를 터뜨리고 - 누더기가 된 날개를 펄럭이며 길을 헤쳐나가는 겁니다. 97년 파이널 판타지 7 정도 의 원초적인 그래픽이 3D의 정점이던 시절에, 정반대의 흉측한 세기말 미학 센스를,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의 꼼꼼하고 - 그러니까, 뼈와 근육이 허연 마디와 근육 다발의 결로 단번에 인지가 될 정도의 - 완성도 높은 텍스처로 구현했단 말입니다. 당연히 이런 취향과 거리가 좀 있다고 알려진 일본에서도 <소울 리버>만큼은 출시하자마자 반응이 매우 좋았고, 미국에서는, 뭐, 아주 폭발했지요. 당시엔 미국 쪽 게임 올드 보이들은 모두 소울 리버 얘기만 꺼내면 눈이 뒤집혀서 사흘 밤낮을 이거만 논할 기세였고, 시간이 좀 지나서 나온 다른 게임들도 유저가 손을 대고 모드가 생기면, 반드시 그 중에는 게임에 나오는, 케인의 유물로 알려진 칼 '소울 리버'를 등장시키는 모드가 등장했습니다. 모로윈드에도 소울 리버, 산 안드레아스에도 소울 리버, 네버윈터에도 소울 리버, 다고바와 야빈-IV에도 소울 리버, 심지어 로데론의 패륜아조차 무려 서리한 대신(세상에! 넵, 실화입니다. 20년 전 양키 씹덕들에겐 소울 리버 > 서리한이었음.) 소울 리버를 손에 드는 모드가 있고 또한 무수한 다운과 추천을 받아갈 정도였습니다. 이 원효대사 텀블러가 장착된 소드오프 장팔사모가 얼마나 많은 양키들을 지독하게 홀렸는지 알 만하죠. 그리고 1999년 이후 나온 모든 액션 게임은, 한동안은, 그러니까 이 소울 리버 또한 따라하고 싶어했습니다. 물론 따라할 모범 답안의 1순위는 당연히 젤다고 2순위는 하프라이프이며 3순위는 철권이었지만, 이 ‘트라이포스’를 모방하고도 다른 요소에 눈 돌릴 여력이 남아 있거나, 반대로 감히 신을 흉내 낼 엄두를 내지 못한 중소 개발자에게, 소울 리버는 훌륭한 제 3의 대안이 되어준 겁니다. 지금은 <시간의 오카리나> <하프 라이프> 그리고 기타 전설적인 명작들과 더불어 <소울 리버>로부터도 가르침을 이미 전승받은 현대의 수없는 게임이, 자신들의 유산을 더 뛰어나게 발전시킨 시대입니다. 이 시점에 <소울 리버>를 다시 한다 치고... 겁나 재밌겠느냐 하면 그렇진 않을 겁니다. 2026년의 기준에서 소울 리버는 이미 현대 게임들의 하위호환이죠. 심지어 리마스터 버전이 나오면서는 옛날에 빠졌던 락온 시스템까지 흡수해서 스스로의 불완전함을 메워내야 했을 정도니까요. 그런데, 아까 이야기한 1999년 앞뒤의 3D 게임을 다시 언급해 보죠. 크래시 밴디쿳 초기 시리즈나, 유비 소프트의 <레이맨> 2나 3은 십자 패드를 누르면 마치 둠1이나 듀크 뉴켐처럼 ‘제자리 옆회전’을 했습니다. 아머드 코어 1은 트리거 L, R을 각각 따로 눌러 좌우 횡이동을 해야 했고요. (조작을 설정으로 바꾸면, 그땐 LR이 제자리 옆회전이 됩니다.) 파이널 판타지는 7, 8은 물론 9까지 가서도 자유로운 카메라 워크를 끝내 게임에 적용하지 못했습니다. 토발 시리즈는... 아, 이건 그냥 말을 맙시다. 이 게임들을 2026년에 다시 하면? 좋아하는 사람은 되게 좋아합니다. 싫어하는 사람은 시작하고 딱 3분만에 때려치고요. 중요한 건, 이제 이들 게임은 [낯설다]는 겁니다. 이들의 조작, 이들의 설계는 대부분 현대 게임으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이야깁니다. 반면 소울 리버의 조작, 게임의 설계, 방식은... 지금도 통합니다. 지금도 사람들이 이해합니다. 지금도 [야숨 왕눈 하면 나오는 그 조작을 이 게임에서 하면 먹힙니다. 이 작품이 시작이니까요] 따로 미화를 하진 않겠습니다. 2026년 시점에서 하기에 이 게임은 예쁘지 않습니다. 편하지도 않고요. 심지어 원작을 아는 입장에서 보기엔, 리마스터 기준 모션도 이상하게 촐싹이는 것처럼 보여서, 불만이 있기도 합니다. 과거에 팬들을 양산했다는 그 괴이한 아트 디자인도, 옛날부터 게임하던 팬들 보기에 이쁘다는 거지, 보편적으로 잘생기고 멋지고 그러진 않을 겁니다. 난이도 곡선도 정교하지 못하고, 조작도 ‘리마스터 와서 그나마 편해졌다는 게’ 아직도 불편합니다. 하지만 이 게임은 익숙합니다. 아는 사람에겐 당연하고, 모르는 사람에게도 ‘이상하게 알던 대로인’ 플레이 진행, 그거 하나는 보장합니다. 다크 판타지 센스, 음, 요즘 보기엔 별로라고 했습니다만, 또 모르죠. 세상엔 취향이 특이한 사람이 더 많이 있을지도 모르고, 우리 안에 미처 있는 줄 몰랐던 특이한 감성이 잠자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너무 큰 기대까지는 하지 않고, 옛날 게임이나 (사실 옛날 거 맞음) 인디 게임 한다 생각하고 가볍게 잡아보시면, 의외로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는 괜찮은 물건일 겁니다. 여기까지가 <소울 리버>에 대한 소회입니다. 그 때 그랬고, 지금도 어느 정도는 좋다고 해줄 수 있습니다. <소울 리버 2>는 냉정하게 말하면, 1편의 재탕입니다. 기술적으로만 말하라면 딱히 못한 부분도 없긴 했는데, 그래도 이 “문제 없음”이 문제인 이유는 출시 연도가 2000년을 넘겨 버렸다는 것 때문일 겁니다. 그리고 기종이 플레이스테이션이 아니라, 플레이스테이션 2라는 것 때문일 거고요. 넵, 그렇습니다. 플레이스테이션 1의 최고 걸작 중 하나가 [그 모든 요소를 빠짐없이 있는 그대로 그냥 똑같이 유지만 한 채로] 플레이스테이션 2로 넘어왔다고요. 그 때는 씹덕뽕에 눈이 멀어서 이래 놓고도 저나 올드 팬들이 좋다고 덤벼들었습니다만... 지금 보니, [이것보다 완벽한 퇴보도 다시 나오기 힘들겠군요.] 아무리 그래도 그래픽은 풀 폴리곤에 텍스처 해상도가 좀 올라가긴 했는데... <소울 리버 2가> 그러는 사이에 이 기종에선 세상을 바꾼, <소울 리버> 1편의 유산을 백 배로 증폭해서 재생산한 다른 걸작들이 쏟아져 나왔단 말이죠. 이해되는 부분이긴 합니다. <소울 리버>의 이야기는 사실 너무 길쭉했습니다. 1편의 엔딩은 사실 완결도 뭣도 아니었어요. 더 많은 레벨, 더 오랜 이야기, 더 머나먼 여정이 필요했습니다. 더구나 블러드 오멘처럼 2D 필드 안에서 뚝딱뚝딱 스크립트만 적어내면 분량이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니, 3D 그래픽에 애니메이션을 일일이 입혀 ‘영화 같은 장면’을 만들어내야만 했고... 한 편의 게임에 담기에는 시간도, 자본도, 무엇보다 [용량도] 부족했던 터라 일단 만든 1부를 뱉어내고, 2부를 부랴부랴 만드는 사이에 시간이 속절없이 지나가 버린 거겠죠. 겨우 게임을 다 만들고 정신을 차려 보니, 세상이 너무나 빠르게, 그리고 멀리 나가고 있었던 거고. 그렇게 <소울 리버 2>는 늙어가는 팬들의 축복과 몇몇 잡지의 성의 없는 찬양 외에 별다른 화제나 흥행을 만들지 못했습니다. 개발사는 다음 작품에서 대박을 터뜨려야 하는 안타까운 처지에 놓이게 됩니다. 다행히 현대에 어스파이어가 이 게임을 리마스터할 때에는 <소울 리버>에서 1부와 2부를 굳이 구분하지 않았고, 둘이었던 것을 하나로 합일시켜 진정한 작품 한 편으로 만들어줬지요. 게임에 대한 설명을 여기서 더 이어나갈 수도 있겠습니다만, 이쯤에서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대신 이제 <소울 리버>를 통해 이어지는 <레거시 오브 케인>의 이야기를 해야 할 차례입니다. <소울 리버>의 흥행이 극적인 부침을 겪고 결국엔 시리즈 전체가 침몰해버렸는데도 아직까지 이 게임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는 이유가, 시리즈 중 한 작품이 희대의 걸작이어서만은 아니거든요. 그럴 리가 없죠. 우리 게이머들이 스토리에 얼마나 목을 매는데. 미리 말하자면, <소울 리버>의 이야기는 <블러드 오멘>과 달리 장대하고 복잡하지는 않습니다. 대신, 한 사람의 비극에서 출발하는 복수의 여행이 더럽게 꼬여가는 과정에 좀 더 집중하고 있지요. 좁게 꼬인 길과 매번 거친 공방을 주고받는 격투가 강조된, 직선적인 게임에 어울리는 간결한 이야기 말입니다. 그래서, 아마 크게 요약할 건 없을 겁니다. 지난 게시물에서, 전작 <블러드 오멘>의 마지막 순간에 케인은 기둥의 정화를 위해 스스로를 희생할 것인지를 선택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케인은 희생을 거부했습니다. 세계를 수호하던 마법 기둥을 폭파시켰지요. 하늘은 영원히 회색이 되었습니다. 흡혈귀임을 완전히 받아들인 케인의 피에 감염된, 무수한 자손 흡혈귀들이 무덤에서 일어났고, 노스고스의 인간과 다른 살아 있는 모든 존재는, 심지어 이세계의 괴물마저 흡혈귀의 가축과 사냥감으로 전락했습니다. 흡혈귀의 제국이 무너진 세계의 폐허에 세워졌습니다. 천 년이 흘렀습니다. 게임의 주인공, 흡혈귀 ‘라지엘’은 이를 두고 아주 간결하게 평가합니다. [케인은 신과도 같다.] 그가 옛날 어떤 삶을 살았는지, 세계가 왜 이 꼬라지가 됐는지, 애초에 세계에 문제가 있기는 한지, 진실을 아는 자는 물론 물음을 던지는 자도 이제 남지 않았습니다. 대신 노스고스, 아니 ‘제국’의 흡혈귀들은 ‘평화로운’ 세계의 주민답게 자신들의 고상한 여흥에 몰두했습니다. 바로 변신이었습니다. 케인을 시작으로, 제국의 흡혈귀들은 본래 인간의 시체에서 태어났지만, 점점 인간이었던 때의 흔적을 지우고 벽화 속의 고대 흡혈귀에 더욱 가까운 모습이 되었습니다. 케인은 머리에 뿔이 돋은 강인한 악마 같은 모양이 되었고, 상급 기사들은 인간일 때보다도 아름다운 (그리고 솔직히 보기에 퇴폐적이고 징그러운) 얼굴을 가졌으며, 모두가 인간의 손발 대신 야수 같은 발톱으로 물건을 잡고, 발굽으로 걸었습니다. 이 또한, 라지엘은 이렇게 평가합니다. “더욱 신성해졌다.” 그 신성한, 그리고 세상 쓰잘데기 없는 짓거리의 정점이 바로 지금 언급한, 이 게임의 주인공 라지엘입니다. 케인의 첫 번째 자손 중 한 명이자 가장 강력한 집행자이기도 한 라지엘은 케인이 이룩한 ‘진화’를 빠르게 이어서 터득해 나가다, 어느 날엔 기어이 케인을 앞질러 날개를 등에서 돋아나게 하는 데 성공합니다. 형제들이 라지엘의 놀라운 성취에 경탄하는 사이, 케인은 라지엘의 등에 돋아난, 박쥐 같은 날개를 유심히 쳐다보다가, 라지엘에게 다가가선 천천히 그의 날개를 쓰다듬습니다. 그리고 라지엘의 서술을 빌리자면, 케인은 그의 자손이 이룩한 위업에 대해, “더 특별한 보상을 내립니다. 고통이지요.” “질투를 참지 못한” 케인은 라지엘의 등에서 날개를 무참하게 떼어 패대기칩니다. 그리고 느닷없는 고통에 쓰러진 라지엘을 끌고 성을 나가, 나머지 기사들을 시켜 소용돌이치는 바다 한가운데에 집어던져버립니다. 원래 물은 흡혈귀의 천적이라고 하잖습니까? 이 게임에서도 그렇습니다. 그냥 물도 아니라 소금물에 담궈진 라지엘은 고통에 정신없이 몸부림치고, 결국에는 그 과정에서 피부 가죽은 물론이고 아래턱과 배까지 찢겨서 떨어져 나가는 끔찍한 형상이 됩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이윽고 기운이 빠진 채 흡혈귀조차 아닌, 이제는 흡혈귀 시체 피클이 되어 바다 밑바닥에 힘없이 가라앉은 라지엘 위로 과거 자랑스럽던 기사단의 휘장이 덮입니다. 그리고 알 수 없는 목소리가 라지엘을 깨우고, 일으켜 세웁니다. “너는 가치 있는 자로다, 일어서라, 라지엘.” 목소리에 이끌려 일어선 라지엘은 뼈다귀와 근육만 남아버린, 아니, 그 뼈다귀조차 간수하지 못해 아래턱을 잃어버린 스스로의 몰골에 절망하며, 휘장을 복면처럼 휘감아 자신의 얼굴을 가립니다. 두고두고 그의 이미지를 대변할, 바로 그 복장이지요. 어떻게 자신이 죽지 않았는지 묻는 라지엘에게, 목소리가 이어 설명했습니다. 라지엘은 사실 바다에서 살아남지 못했고, 육신 또한 흩어진 지 오래이며, 목소리는 라지엘의 영혼을 재구성해 저승의 문턱에서 멈추게 해준 것뿐이라는 설명에 라지엘은 한층 절망에 빠집니다. 산 것도 아니고, 죽은 것도 아니며, 생김새마저 끔찍한 괴물이 되어버렸으니 차라리 죽어 사라지는 게 낫다고 비관하는 라지엘에게, 목소리가 제안을 내립니다. 자신을 고대로부터 이 세계를 관리해온 삶의 동력이자, 죽음의 포식자라고 지칭한 목소리는 옛적부터 자신이 마법의 수호자와 더불어 노스고스의 윤회와 자연스러운 삶의 흐름을 주관해 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흡혈귀 케인이 영생을 누리고 남의 생명을 빼앗고 있으니, 세계의 균형이 깨어지고 타락이 임박했다고 하며, 자신의 의지를 대변할 전령이 나서서 케인을 처단하고, 세계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라지엘 또한 영혼의 고통을 잠재우고 본래의 운명으로, ‘순환’으로 돌아가 안식을 얻을 수 있다는 보상 또한 제시했습니다. 한 마디 꼬드겨 놓고 명령을 내렸다고 해서 알지도 못하는 ‘존재’의 말을 곧이곧대로 따를 생각까진 라지엘에게 없었지만, 그가 제안한 힘과 기회가 곧 복수의 가능성이기도 하다는 목소리의 지적에는 라지엘도 동의했습니다. 따라서 라지엘은 ‘일단 케인이 있는 곳까지 가보기라도 한다 (그리고 보이면 죽여버린다)’는 짧은 목적을 가지고, 목소리의 인도를 따라 바다 밑을 지나, 육신을 재구성하는 능력을 갖추어 지상의 물질계로 현신합니다. 목소리는 라지엘의 결정에 기뻐하며, 그를 다음부터 영혼을 사냥할 약탈자(reaver of soul)로 지칭합니다. 라지엘은 코웃음을 치고, 목소리의 주인이 고대의, 그러니까 ‘신 같은 것(god or ruler)’인지 넌지시 떠보는데, 목소리는 별 대답을 하지 않았지만 라지엘은 그에게서 느껴지는 자신감을 통해 분명 그런 존재임이 틀림없다는 확신을 얻습니다. 목소리, 혹은 라지엘의 표현을 따라 ‘고대 신(elder god)’으로 명명해야 할 존재의 가호에 의해 부활한 라지엘은 자신이 피에 더 이상 굶주리지 않는 대신, 영혼 그 자체의 생명 에너지에 의존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피의 갈증을 무색하게 할 만큼 고통스러운 허기를 동반하는 제약인 동시에, 자신을 가로막는 흡혈귀를 끝장낼 수 있는 무기 중 하나였지요. 거기에 원래도 라지엘은 생전 케인의 최고 측근, 그러니까 제국에서 두 번째로 강력한 존재였습니다. 흡혈귀가 어떻게 하면 죽는지, 뭐에 강하고 뭐에 약한지도 줄줄 꿰고 있었고, 적이 되어 단절되었기에 봐줄 필요가 없어 한층 약하게만 느껴지는 흡혈귀 제국의 조무래기들을 해치워 가며, 라지엘은 제국의 영토를 가로지릅니다... 너무 길어져서 다음에 개속 쓰고 나니 정작 이야기가 프롤로그에서 끊어지긴 했지만, 게임 관련 이야기도 하고 싶으니까요.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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