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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3/11/01 00:52:32수정됨
Name   김비버
Subject   저의 악취미 이야기
저에게는 기묘한 취미가 하나 있습니다. 이른바 '인물 파도타기'.

아마 어렸을 때부터 집구석에 박혀서 위인전을 읽던 습성이 어른이 된 지금까지 이렇게 발전해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아무튼, 오늘 어떤 분의 이력을 보다가 '메릴랜드 대학교'라는 이름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언뜻 생소한 대학이라 궁금해서 찾아보니, 상당한 명문이더군요. 미국의 공립 아이비, 미국 메릴랜드 주와 워싱턴 D.C. 일대에서 강한 학맥을 갖고 있는 학교...

그리고 이 학교를 졸업한 한국인 중 '변수'라는 조선인이 있다고 합니다. 역관의 아들로 태어나 한국어, 중국어, 일본어, 영어를 능통하게 하고 김옥균과 함께 갑신정변에 참여한 인물. 갑신정변이 실패로 돌아간 직후 일본으로 잠깐 망명했다가 미국으로 이주, 고학하여 조선인 최초의 미국 유학생으로 메릴랜드 대학교에 입학했습니다.

변수는 메릴랜드 대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면서 졸업생 연설도 하였고, 지금은 해당 대학에 기념관도 있다고 합니다. 변수는 이후 미국 농림부에 입직하여 동아시아의 농업 관련 자료를 정리, 연구하여 미국 정부에 보고하는 업무를 하였으나, 만 30살이 갓 되었을 때 불의의 교통사고로 사망하였습니다.

변수와 함께 메릴랜드 대학으로 유학을 떠났던 인물로는 민주호라는 사람이 있는데, 여흥 민씨 유력가문 출신으로 젊은 시절 온건 개화파로서 독립협회의 결성을 주도했습니다. 그러나 이후 빠르게 변절하여 일제 치하 조선인 남작이 되었고, 사망할 때까지 중추원 참의로 재임하였습니다.

그 민주호가 청운의 꿈을 꾸던 젊은 시절 드나들었던 사교모임이 유명한 정동구락부입니다.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 속 글로리호텔의 모델이 된 장소이자 한국 커피문화의 시초라고도 불리는 '손탁호텔'을 아지트 삼아 활동하던 지식인 사교모임이지요.

조선 당대의 유력한 개화파 지식인들이 많이 정동구락부에서 활동했습니다. 유명한 인물로는 온건 개화파이자 조선의 대신이었으나 을사조약 직후 자결한 민영환, 명망있는 조선의 계몽적 지도자였고, 다방면에 재능이 있는 천재였으며 독실한 개신교 신자이기도 했으나 해방 직전 변절하는 입체적 친일파 윤치호(윤치호의 부계 증손녀는 이후 조선일보 사주인 방상훈과 결혼합니다) 등이 있습니다.

그리고 비교적 대중에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로 월남 이상재가 있지요. 국권 피탈 이후에도 좌우파간 이념 대립, 전근대적 계급 갈등에 역량을 소진하기도 했던 독립운동 진영에서 모두의 존경을 받는 어른으로서 좌우합작 항일운동단체였던 신간회의 초대 회장으로 추대되었고, 조선일보 초대 사장을 지내기도 했습니다.

월남은 선비 집안 출신이었으나 집안은 경제적으로 몰락하여 어린 시절 가난하게 지냈습니다. 그래서인지 근엄한 인상과는 다르게 입만 열면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로 농담하기를 좋아하였다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영부인 이희호 여사의 외삼촌인 독립운동가 이원순(이후 이승만의 측근으로서 자유당 최고위원, 한국증권주식회사 사장 등을 지냄)이 회고록에 적기도 하였습니다.

그런 월남이 사상의 스승으로 삼았던 인물이 이승만 전 대통령입니다. 이승만은 월남을 정치적 후견인으로 모셨고, 나이로도 이승만이 스무살 넘게 아래였지만, 월남을 독실한 기독교 신앙으로 이끈 이가 이승만이기 때문입니다. 을사조약 직전 독립협회를 반란세력으로 몰아 월남이 박은식, 장지연, 민병두 등 대중적으로도 유명한 당시 온건 독립운동가 지식인들과 투옥된 일이 있는데(이른바 '개혁당 사건'), 이 때 함께 투옥된 아들이 사망하였습니다. 그 때 이승만이 월남에게 건네 준 책이 성경, 월남은 그 중 "원수도 사랑하라"는 말에 가슴 속 분노와 한을 풀었다고 합니다.

이승만이 월남을 전도하였듯 월남은 일본인 소다 가이치를 전도하였습니다. 소다 가이치는 젊은 시절 홀홀단신으로 일본, 중국, 대만 등지를 방랑하고 막노동으로 생계를 이어가던 야인이었습니다. 그 시절 소다 가이치는 술에 절어 살면서 세상과 인생을 비관하곤 하였는데, 어느 날 과음하여 객사하려던 와중에 익명의 재일 조선인의 도움을 받아 생환하였습니다.

그 일로 충격을 받은 소다 가이치는 자신의 인생을 조선의 독립, 그리고 조선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바치기로 결심을 하여 을사조약 직후 조선으로 건너왔고, 1906년 월남을 만나 독실한 기독교인이 되었습니다. 이후 소다 가이치는 지금의 '영락보린원'의 전신이 되는 고아원을 세워 1,000여 명의 조선인 고아를 보살폈고, 해방 직후에는 돌연 일본으로 건너가 사망 1년 전인 1961년까지 일본에서 전쟁범죄 참회를 촉구하는 운동을 하였습니다.

소다 가이치는 영영 한국 땅에 다시 돌아가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였으나, 그의 벗이자 영락보린원을 함께 운영하였고, 월드비전의 창시자이기도 한 한경직 목사와 영락보린원 출신 사회인사들의 도움으로 1961년 한국 유력 인사들의 환영을 받으며 귀국, 영락보린원에서 고아들을 돌보다가 1962년 사망하여 평생 함께 고아들을 돌보았던 아내와 나란히 양화진에 안장되었습니다(한경직 목사는 평생 청렴, 검박했던 신앙인으로서 한국 기독교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큰 어른이지만 서북청년당을 옹호하고 박정희 대통령의 후원자로서 부흥회를 개최하고 국가조찬기도회를 주도한 이력이 있고, 1992년 종교계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템플턴상 시상식에서 자신의 심사참배 이력을 고백하여 이후 한국 기독교계에서 자아비판 릴레이가 발생하기도 하였습니다)

한편 월남이 젊은 시절 식객으로 몸을 의탁한 이는 월남의 평생 스승이 되는 박정양이었습니다. 박정양은 개화파 선비 박규수의 문하에서 수학하여 새지식을 받아들이고, 김옥균 등과 교우하였습니다. 이후 과거에 급제하여 엘리트 관료로 출세, 최초의 조선 주미 대사가 되었습니다. 엘리트 개혁파 출신이니만큼 당연히 독립협회와 인연이 있었으나, 다른 동지들과는 다르게 변절하지 않고(내지는 변절을 강요하는 역사적 무대에 서는 일 없이) 을사조약 직후 사망하였습니다.

그 박정양의 부계 손자 되는 인물이 한국 행정학의 개척자인 박동서 교수로서, 유명한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설립을 주도했고, 이른바 발전행정론을 국내에 도입하여 미국 맥락 행정학 개념에 함몰됨 없는 한국의 역사적 맥락에 맞춘 행정학을 발전시켰습니다. 박동서 교수의 아들이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박찬수 교수로서, 제가 학부 시절 이 분의 수업을 듣기도 하였지요. 그리고 박정양의 차남 박승철은 부친 박정양의 식객이었던 월남으로부터 영어를 교육받고 일본 와세다대학에서 유학했으며, 1922년에는 독일 베를린 대학교에서 유학을 하였습니다. 이 때 박승철과 함께 유학을 떠났던 벗이 해방 이후 법무부장관이 되는 김준연입니다.

김준연은 조선인으로서 도쿄제국대학 법대를 졸업하고, 1920년대 조선공산당 활동을 하다가 7년간 투옥되기도 하였던 인물로서, 출소 후 고려대학교의 실질적 설립자 인촌 김성수의 농장을 맡아 경영하다가 해방을 맞았습니다. 김준연은 이후 인촌 김성수와 함께 한국민주당 소속으로 정치에 참여, 5선 의원을 역임하다가 1957년 돌연 이승만 지지를 선언하고 통일당을 창당하여 315 부정선거에서 부통령에 출마하기도 하였습니다.

김준연은 4살 연상인 아내와 13세에 결혼한 이후 남은 평생을 해로했습니다. 슬하에 딸만 셋을 두었는데, 3녀 김자선(천주교 여신도회 회장)의 남편 즉 사위가 한국 법조계 '법조3성인' 중 한명으로 불리는 '사도법관 김홍섭'입니다.

이 때 김홍섭 판사와 김준연 3녀의 결혼을 중매한 사람이 매우 유명한 가인 김병로 어른입니다. 이것은 너무 길어질 것 같으니 패스하고, 서울대 로스쿨 2층에는 제가 가장 좋아하던 공간으로 '김장리홀'이 있는데, 한국 최초의 로펌인 김장리(이후 양헌으로 사명 변경하였다가 현재 다시 김장리로 복귀)의 이름을 딴 것입니다. 김장리 중 '리(Lee)'에 해당하는 분이 다시 매우 유명한 이태영 어른이지요. 가족법 개정 운동, 호주제 폐지 운동을 평생 온몸 불살라서 주도하셨고, 90년대까지는 여성 사법연수생은 매년 이분께 명절 인사를 드렸다고 하는데, 저는 그 시절은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이태영 어른은 한번 실신할 뻔한 적이 있다고 회고록에 적으신 바 있는데, 일제 시대 조선민법 시절부터 거슬러 올라오는 한국 가족법상 반여성적인 독소 조항의 개정 등을 요구하러 가인 김병로에게 찾아갔다가 '어디서 여자가 말대꾸냐!'라는 취지의 '갈!'을 듣고는 너무나 분해서 그만 계단에서 주저앉아 실신할 뻔했다고 합니다.

이태영 어른의 벗이고 김장리의 '김(Kim)'에 해당하는 인물은 김흥한 변호사인데, 한국 민법학 체계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던 원로 학자 김증한의 동생입니다. 저는 스쳐지나가기만 해서 잘은 모르지만 김증한 교수의 제자 중 한 명이 최근 대법관에 임명되었던 권영준 전 교수님인 것으로 들었는데, 권영준 전 교수님은 저의 '로스쿨 지도교수'님이셨지요(즉 '진짜' 지도교수인 '박사 지도교수'가 아니라 그냥 매년 밥 한 번 묵고 스쳐지나간 수많은 학생 중 한명이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렇게 쭉쭉 이어나가는 인물 파도타기입니다. 어떤 인물이든 한명 찍으면 타고타고 가다가 시간 가는 줄을 몰라요. 재미있지 않나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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