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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4/05/28 23:49:49
Name   Jargon
Subject   24/05/28 리움미술관 나들이
퇴사한지 1달이 다 되어간다.
직장을 다니면서 안정화되던 수면패턴이 다시 망가질 기미를 보였다.
밖에 나가서 무언가 활동을 하고 에너지를 소모해서
잠을 일찍 잘 수 있도록 해야했다.
시간은 벌써 2시.
밖에 나서기에 애매한 시간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전에도 똑같은 이유로 외출이 무산됐었다.
애매하든 말든 일단 나가자는 생각이 들었다.
목적지는 리움미술관.






열차 창 밖으로 한강이 보였다. (당연히 한강 맞겠지?)







역에서 내려 리움미술관으로 향했다.







입구에 신호등에 들어갈법한 번호 조명들이 박혀있었다. 숫자가 계속 바뀌고 있었다.







고미술전은 무료라길래 표 없이 그냥 입장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무료라도 데스크에서 표를 뽑아야 하는 시스템이었다.
관람은 엘레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4층으로 가야했다. 엘레베이터 앞 직원분이 "4층으로 올라가시면 됩니다"라고 하시는 말에
'그렇구나' 생각하고 대꾸는 하지 않았는데, 대답을 하지 않으니 외국인인 줄 아셨는지 영어로 다시금 안내해주셨다.
순간 당황해서 "하, 한국인입니다." 라고 말하며 살짝 웃어버렸다.







가장 인상 깊었던 전시물. 솔직히 초반부는 옛날 살림 도구들 모아 놓은 느낌이라 그다지 흥미가 가지 않았는데,
그중에서도 이 곳만큼은 인상 깊었다. 전시물 자체보다는 전시를 세련되게 잘 해놓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교과서에서 봤던 고려 청자







이런 것들을 보면서 이건 그냥 밥그릇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꽤 예쁘다고 생각했던 것들도 있었다.







어떤 모녀가 이걸 보고 "이거 연필꽂이로 쓰고 싶다"고 말하는 걸 주워들었다.
가서 설명을 보니 실제로도 용도가 필통이었다. 
그 순간 내가 이 전시물들을 잘못된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미술관에 있더라도 예술적으로 어마어마한 것들일 필요는 없구나.
'옛날 부잣집에서 썼던 비싸고 예쁜 생활용품들' 정도로만 생각해도 되는구나.
미술 전공생이 보면 어떻게 생각할진 모르겠지만,
어쨋든 마음을 가볍게 먹으니 전시가 조금 더 재밌어졌다.







아래로 내려가는 통로에 빛이 무지개색으로 부서지고 있었다.

처음엔 왜 4층으로 올려보낼까 궁금했는데, 
올라가는 것보다 내려가는게 덜 힘들어서 그런게 아닐까 싶었다.
4층까지 계단으로 올라가면 헉헉대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정조가 썼다는 글씨. 이것 말고도 서예나 그림들이 전부 신기할 정도로 상태가 좋았다.
10년 전에 만들었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깨끗했다. 가짜는 아니겠지?








어떻게 이 장면을 보고 바로 외워서 그렸을까? 스케치를 빠르게 한건가? 아니면 인간 뇌의 위대함인가?

세밀한 부분들을 보면서 공상에 빠졌다. 

옛날에는 컨텐츠가 없어서 이런 세세한 부분들을 오랜 시간에 걸쳐서 다 감상했겠지만, 
지금은 컨텐츠가 쏟아져나오니까 작품들을 깊이 감상할 여유가 없지 않을까 생각했다. 

영화 마니아들이 극도로 싫어하는 영화 요약 유튜브가 떠올랐다. (참고로 나도 별로 좋아하진 않는다.)

내가 좋아하는 장르의 세밀한 부분을 살피지 않는다고 욕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의 귀중한 자원을 투자해달라고 다소 억지를 부리는게 아닐까? 
애초에 즐기는 부분이 다른 것이니 그걸 보고 즐기는 것에 한심해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저작권 침해는 또 다른 이야기겠지만, 엘리트주의적인 편협한 사고는 경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극에서 많이 봤던 병풍.







아래에 뭔가 붙어있는 걸 보면 지팡이도 총도 아닌 것 같다. 이건 도대체 용도가 뭘까?
이름을 봐둘 걸 그랬다. 사진에 있는 수어 해설 qr 코드를 찍어보면 알 수도 있겠지만, 
그정도로 궁금하진 않다.






힘 +1









귀엽게 생긴 종








도자기 구워서 조개 껍데기 모양으로 만든건가? 이걸 왜 전시해놨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허리띠인줄 알았는데 검이었다. 
옛날엔 서슬퍼런 날이 형형한 예기를 띠고 있었을 텐데,
지금은 이도 다 나가고 녹이 슬대로 다 슬어있는 볼품없는 모습이 된 걸 보니 왠지 서글퍼졌다. 
이 검은 생전에 뭘 베어봤을까?







붓이 예뻐서 하나 갖고 싶었다.







4,5세기 가야 신발모양 토기. 컨버스 같이 생겼다.







녹이 하나도 안 슨 청동 검은 처음 봤다.
어디 호수에라도 빠져 있었던 걸까?







전시를 다 보고 로비로 돌아와 의자에 앉아서 다른 전시를 볼까 말까 고민했다.
그런데 의자가 뭔가 이상했다. 딱딱할 줄 알았는데 푹신했다. 눌러보니 얇은 매트가 깔려 있는듯 했다.
부르주아 놈들. 이런 거 하나에도 사치를 부렸구나! 라고 헛소리를 잠깐 했다.

핸드폰 배터리도 34퍼밖에 안 남았고, 과연 내가 관람료 18,000원에 걸맞는 효용을 느낄 수 있을까 고민했다.
나중에 다시 와서 보면 되지 않을까도 생각했지만, 그건 너무 귀찮을 것 같아서 그냥 관람하기로 했다.









여기저기 물고기 풍선이 떠다니길래 위에 줄이 있나 보려고 손을 가져다 댔는데,
직원 분이 바로 제지하셨다. 서운했다. 만지려고 한거 아닌데.







이것도 가까이 갔더니 멀리서만 보라고 제지당했다. 서운했다.







피아노 위에 있는 천장에서 노란 가루가 조금씩 뿌려지고 있었다.
치토스 가루가 묻은 미니어처 피아노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속 서 있으면 위에서 떨어지는 가루 때문에 폐질환에 걸릴 가능성이 높아지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러면 바로 앞에 서 계신 직원분은 산재를 받을 수 있을까? 
연관성을 입증하기 힘들어서 산재를 받지 못하지 않을까.








처음엔 왜 흰 모래 쌓아두고 전시라고 우기는거지? 하고 보니까
다이아 가루가 들어갔다고 한다.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 정도 재료면 전시해도 인정이지.

인공눈이 들어갔다길래 그럼 녹는거 아닌가? 생각했는데
바닥에 물기는 보이지 않았다.







2층으로 가려는데 지하로 가는 계단이 보였다.
대충 들어가지 말라는 표지석이 있었다.
들어가고 싶었지만 참았다.







2층에는 버튜버 느낌의 영상이 있었다. 제목은 No Ghost Just a Shell. 영혼 없이 껍데기만 있다는 뜻.
(대놓고 shell 자리에 로열 더치 쉘 로고를 사용했다. 자본주의의 상징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다.)
영상은 살짝만 인상적이었다. 캐릭터가 자기의 기구한 내력을 줄줄 읊는게 내용의 전부였다.
들어보니까 뭔가 작가가 전달하고 싶어하는 메시지가 있긴 했는데, 흥미롭진 않았다.








관람을 마치고 저녁을 먹기 위해 주택가를 지나 이태원으로 향했다.
비싸보이는 건물들 사이 탁 트인 하늘을 볼 수 있는 곳은 공사현장 뿐이었다.
















가는 길에 마인크래프트에서 볼법한 건물이 있었다.







처음 이태원 거리를 보니 살짝 이국적이라고 느껴졌다.
설명할 순 없지만 그냥 그런 기분이 들었다.
행인들도 외국인의 비중이 높았다. 신기했다.



 


밥을 먹으려고 헤맸는데 사람도 없고 식당도 없고 주점들만 있었다.
이태원이면 뭔가 특별한게 있을 줄 알았는데 딱히 그런 건 없었다.
관광지라기보단 사람들이 사는 동네에 더 가까운 느낌이었다. 살짝 실망했다.










어쨋든 식당을 찾긴 찾았다. 마르게리따 피자를 시켰다.
처음엔 이걸로 배가 찰까 의문이 들었지만, 반 정도 먹으니까 배가 벌써 불러왔다.
피자는 맛있었는데 나머지 3조각을 너무 힘겹게 먹었다.






다 먹고 집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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