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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5/01/06 18:40:12수정됨
Name   Daniel Plain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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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시민의 책임은 어디까지일까




1
이번 윤석열의 계엄 사태를 빌어, 탄핵 및 체포 촉구 등에 대해 시민들은 정치적 시위들을 조직하고 촉발했다.
누군가는 행동하고, 누군가는 다른 이유로 침묵한다.

나는 행동하지 않는 쪽이다.

이 때 나는 행동가들에게 빚을 지고 있는 것일까?
혹은 자신이 행동하지 않는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껴야 하는 것일까?

다른 질문을 해 보면, 윤석열은 근소한 차이로 당선되었다.
이 때 윤석열을 뽑았던 유권자들은 윤석열의 이런 행동에 대해 정치적 책임을 동시에 져야 하는가?
혹은 정치적 책임이 아니더라도 내가 잘못 판단했다거나 하는 죄책감을 가져야 하는가?

2
이번 사태에서 여러 언술이 있지만, 내게는 이런 게 눈에 띈다.

"저는 대신 참석해주시는 동료 시민들께 빚을 갚는 마음으로 살아야 할 것 같아요"
"집회에 나가는 사람에게 참 송구하고 빚진 마음입니다."

나는 그들의 행동에 지지를 보내지만, 내가 지금 행동하지 않는 것에 대한 죄송함=죄책감을 갖고 있진 않다.
그들에게 빚을 지고 있다거나 하는 부채감을 가지진 않는다.
이런 논리가 더 나아가면 결국에는 "우리는 그들이 지킨 민주정에 무임승차하고 있는 거다" 까지 나오게 된다.

이런 언술에는 결국 [너는 원래 행동해야 하는데 행동하지 않은 거야]라는 전제를 가지고 있다. "행동해야 하는데" 너의 행동을 누가 대신해 준 거니까 부채감을 가져야 하고, "행동해야 하는데" 안한 거니까 잘못한 거다. 라는 이야기.

그럼 여기서 말하는 그 "행동해야 하는데"의 근거를 생각해보자.
결국 내가 한국 사람이니까, 너도 이 사회의 일원이니까 라는 답으로 귀결될 것 같다.
그런데 이 사회의 일원이라면 반드시 그 사회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가는 데 참여해야 하는가?

우리는 [한국 사회]라는 집단에만 속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회사원이기도 하고, 학생이기도 하고, 가정의 일원이기도 하다. 그럼 나는 이 집단들에 속해 있다는 것만으로 집단에 대한 의무가 발생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다.

하지만 회사-직원의 관계에서 우리는 "받은 만큼의 일만 하면" 의무를 다했다고 주장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또한 회사에서 받는 돈 이상으로 더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구시대적 사고방식이라 생각한다.

비슷하게 가정에서 어머니라는 이유로 가해지는 일방적인 희생에 대해서는 <독박육아>라고 부른다.

사실 나는 내가 속해있는 집단 안에서 하는 어떤 행동들이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의무처럼 말하는 모든 시선들이 불편하다.
내가 열심히 부양도 하고, 육아에도 열심히 참여하는 것은 그 자체에서 행복감을 느끼는 것이지 반드시 해야 할 의무를 달성함으로서 행복감을 느끼는 것이 아니다.
회사 일 역시도 일 자체로서 보람을 느끼니까 열심히 하는 거지 직원으로서의 의무기 때문에 해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비슷하게 시민 사회에 속해 있다고 해서, 누군가는 그 참여 자체에 보람을 느낀다고 생각하지 참여하지 않는 <나>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진 않는다. 나는 반대로 지금 육아에 열심히 참여하느라 바쁘기 때문.

그런데 유독 정치적인 참여는 대가를 받지 않기 때문에 숭고하고, 뭔가 대단한 참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어떻게 보면 나는 이기적인 개인주의자이다. 그런데 이걸 "무임승차"라고 표현하기 시작하면 이세상엔 무임승차라고 할 만한 게 너무 많아진다고 생각한다. 청춘을 바쳐서 안보를 지키고 있는 군인들에게 무임승차하는 것이고, 적은 돈으로 일하고 있는 공무원들에게 무임승차하는 것이고...

3
다시 질문을 바꿔 보면, 사회를 구성하는 것은 시민들의 정치참여 외에도 여러 구성요소가 있다. 이 사회는 여러 납세자들이 세금을 내고, 누군가는 청춘을 희생하여 국가를 지키고, 각자의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각자 일을 열심히 함으로써 잘 돌아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평소에 사회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것에 대해 감사해야 하는가? 아마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내가 "아이가 둘이시네, 애국자시네." "미래에 우리 먹여살릴 분들" 같은 말을 들을 때 느끼는 불편함과도 비슷한데, 나는 애국하려고 애낳은 것도 아니고, 그냥 아이가 좋아서 낳은 것이다. 그리고 그 말을 하는 사람들도 자신들이 애를 안 낳아도 지금 세금 똑바로 내고 있으면 나름대로 사회 굴러가게 하는 데 기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내 개인적인 욕구가 마치 사회의 공공선을 위한 것처럼 포장될 때 내 마음속에는 어쨌든 불편감이 생긴다. 딱히 너희들의 대의를 위한 게 아니다, 이런 느낌.

4
민주정으로서의 시민의 의무에 대해서도 사람들과 생각이 갈린다.

나는 애초에 민주정이 [모든 시민의 참여를 적극적으로 요청하는] 정치체제는 아니라고 본다.
그보다는 [현생이 바쁜 시민들이 평소엔 정치에 관심을 끊을 수 있게 만들어진] 체제에 더 가깝다고 본다.

샤츠슈나이더가 지적한 대로, 현대민주주의에서 인민주권의 최대치는 자신들의 갈등을 대변해 줄 정당을 선택하여, 대의적으로 정치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민주정의 인민들은 대부분 자기 생업을 가진, 평범한 생활인들이다. 따라서 이들은 모든 정치 의제에 대한 판단을 내릴 수 없으며 그것을 정책과 제도로 설계할 지식과 경험도 갖지 못한다. "인민을 위해 민주정이 만들어졌지 민주정을 위해 인민이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민주정은 평범한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학자연하는 이들이 인민의 자격을 인정하든 말든 상관없이, 그것은 평범한 사람들의 요구에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고안된 정치체제이다."

그리고 정당은 사회에 산재한 갈등을 조직화하고 정치적 대안을 마련하는 역할을 함으로서 부족한 인민주권을 보완한다. "민주주의는 다른 모든 일과 마찬가지로, 무지한 사람들과 전문가들이 함께 하는 협력의 한 방식이다."

이번 사태에서 정당들은 효과적으로 갈등을 공론장으로 불러왔고, 시민들은 정당의 개입 없이도 현대 기술(오픈카톡, 카페 선결제 등)을 통해 조직화되어 정치적 의사를 표출하고 있다. 사실 나는 이번 사태처럼 이상적으로 작동하는 민주정을 본 적이 별로 없을 정도다. (계엄 자체가 가지는 예외상태로 인한 논리 싸움은 별개로 한다)

5
우리나라 국민들은 민주주의를 '수많은 사람들이 저항하여 민중 권력을 쟁취하거나 정권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끄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럼으로서 민주주의는 지금은 부족하지만 언젠가는 이뤄야 할 역사의 최종 목표로서 다분히 이념적인 상징성을 갖게 된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이념이 아니라 체제다. 즉 이상의 이데올로기가 아닌 현실에 존재하는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 안에서 현실적으로 모든 인민들이 정치 고관여층이 될 수 없는 상황에서, 정당과 시민조직들은 갈등이 은폐되지 않도록 잘 불씨를 키워 왔다. 하지만 그렇다고 공론장에 나서지 않은 사람들에게 죄책감과 부채감을 부여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인민의 한계가 아니라 민주정의 한계이기 때문이다.

5
그래서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정치인의 실책에 대해 유권자들이 책임져야 한다"는 말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민주정은 정치 고관여층만을 대상으로 한 체제가 아니고, 그 유권자들이 틀튜브를 보든 말든 어쨌건 1표로 인정하는 체제다.
시민의 수준을 보는 게 아니라는 이야기다.

노무현이 했던 "깨어있는 시민들의 조직된 힘" 같은 말도 엄밀히 말하면 민주정을 이해하지 못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깨어있든 깨어있지 않든 모두 똑같은 1표다.

이런 체제에서 정치인은 과장해서 말하면 유권자들이 잠시 뽑아서 쓰는 말에 불과하다.
무능하고 자시고는 유권자가 책임질 게 아니다.
유권자는 정치적 의사를 표현함으로서 주권을 행사하는 것이지, 정치인의 연대보증인이 아니다.

시민을 정치인들의 보증인처럼 생각하며 이 사회가 이 모양이 된 것에 책임을 묻기 시작하면 이제 보편투표의 원칙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뭐, 다음에 투표권을 박탈하기라도 할 건가? 아니면 깨시민들의 투표는 1표고 나머지는 0.5표로 할 건가?
민주정이란 체제 하에서는 동등하게 1표로 취급해야 하고, 그들의 시민 참여 역시 아무리 꼬와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투표를 통해 의무가 생기는 쪽은 유권자가 아니라 정치인이다.
이들은 자신을 뽑아준 사람들에 대해 신의성실하게 주어진 임기 동안 열심히 할 의무가 생기는 사람들이다.

예전에 오세훈의 무상급식 투표가 정치인으로서 실격이었다고 보는 건, 애초에 서울시장으로 그 사람을 뽑아준 시민들은 4년 동안 일을 하라고 뽑은 것이지, 정치인 본인의 커리어를 위해 시장직을 던지라고 뽑은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모든 시민들을 포함하기 때문에, 나는 투표를 하지 않는 것조차도 시민의 정치의사표현으로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실제로도 나는 투표날 투표를 안한 적도 꽤 많다.
물론 "투표 하셨어요?" 물어보는 사람들한테는 투표했다고 거짓말은 했다. 왜냐면 그렇게 물어보는 사람들의 의도는 뻔하니까. 피곤하잖아.

6
물론 21세기에 계엄령을 선포하는 비상식적인 사람을 지지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탄핵 반대 시위에 비해 내가 도덕적으로 우월한가? 생각해보면 최소한 민주정의 잣대로는 그 우열을 가릴 수 없다는 생각을 한다.
둘 다 같은 시민이고, 심지어 집에서 애를 보고 있는 나도 시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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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와는 다른의견도 존중하는것도 민주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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