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25/05/31 07:46:56수정됨
Name   곰곰이
Subject   5월
재작년에 1년 정도 글쓰기 교실을 다녔습니다. 과정을 마치고 나니, 글을 잘 쓰게 되었다기보다는, 비로소 글쓰기를 시작할 준비가 된 느낌이었습니다. 이후 꾸준히 자발적으로 글을 쓰고, 매월 한 차례씩 후속 모임을 통해 독회를 하고 있습니다. 이번 달 주제는 '5월'이었는데, 그때 쓴 글을 5월이 지나기 전에 홍차넷에 올립니다. 경어체가 아닌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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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밤늦은 시간인데 갑자기 메신저 창에 불이 났다. 윤석열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몇 달 전부터 민주당이 경고했던 일이 진짜 일어났다. 몇몇 단톡방에는 카카오톡 폐쇄를 우려해 텔레그램 방으로 옮겨가는 링크가 떠 있었다. 이제 인터넷에 함부로 글을 올렸다간 잡혀갈지도 모른다. 광화문에 나가면 장갑차에 깔릴지도 모른다. 식은땀이 흘렀다. 유튜브에선 이재명의 라이브가 나오고 있었다.
"국민 여러분 속히 국회로 와 주십시오."
지나고 나서 짚어보니 이 멘트가 나라를 구했다. 그 와중에 어떻게 라방을 켤 생각을 했을까. 천운이 몇 가지 겹쳐 계엄군의 이동이 늦어지는 사이, 방송을 듣고 달려온 시민들이 국회를 둘러쌌고, 뒤늦게 도착한 특수부대원들은 차마 국민을 적극적으로 진압하지 못했다.

1980년 5월
후일담을 들어보면, 이재명은 그 절박한 순간 1980년 5월 광주 여성들의 가두방송을 떠올렸다고 한다. 슬리퍼 차림으로 국회까지 달려간 시민들도 모두 1980년 5월을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헬기를 타고 국회에 진입한 군인들의 머릿속에도 1980년 5월이 가득했을 것이다. 1980년 5월의 계엄군은 시민에게 총탄을 발사했지만, 2024년 12월의 계엄군은 도저히 그럴 수 없었다. 모든 것이 1980년 5월 때문이었다. 그렇게 시간을 번 덕분에 국회는, 본회의장의 문이 부서지기 전에, 전원이 내려가기 전에 비상계엄 해제 요구를 결의할 수 있었다.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너라고, 혹은 당신이라고 2인칭으로 불리는 순간 희끄무레한 어둠 속에서 깨어난 소년이 혼의 걸음걸이로 현재를 향해 다가온다. 점점 더 가까이 가까이 걸어와 현재가 된다.”
- 한강, 2024년 12월 7일 노벨문학상 수상자 강연

“피청구인의 국회 통제 등에도 불구하고 국회가 신속하게 비상계엄해제요구 결의안을 가결시킬 수 있었던 것은 시민들의 저항과 군경의 소극적인 임무 수행 덕분이었으므로, 결과적으로 비상계엄해제요구 결의안이 가결되었다는 이유로 피청구인의 법 위반이 중대하지 않다고 볼 수는 없다.”
- 헌법재판소, 2025년 4월 4일 대통령(윤석열) 탄핵 결정문

2025년 5월
이른 대선 기간에 5.18을 맞이했다. 지난한 과정을 거쳐 결국 내란 수괴는 탄핵당했지만, 불법 비상계엄을 준비하고 실행했던 내란 세력은 아직도 죄수복이 아닌 정장을 입고 국민의 세금으로 활동 중이다. 언론은 그들도 여전히 자격이 있는 양 기사를 실어주고, 내란당 대선후보의 지지율은 무려 35%에 육박한다. 그래 우리나라는 무죄추정의 원칙이 있으니, 특검 때까지만 참아야겠다. 차근차근 절차를 밟아 내란당이 해산되는 꼴을 봐야겠다. 역사에 기록될 엄중한 시기를 살아가고 있지만, 정작 하루 벌어 먹고살기 바쁜 우리 일상은 그저 쳇바퀴 돌 듯 굴러간다.

"우리는 오늘 패배하지만, 내일의 역사는 우리를 승리자로 만들 것이다."
- 윤상원 (1950.9.30~1980.5.27), 1980년 5월 26일 계엄군의 진압을 앞두고

서른 살 윤상원은 그날 전남도청에서 미래를 보았을까. 그저 오늘처럼 버텨내는 하루였을까. 45년 전 짓밟힌 이들이 오늘 우리를 구했다. 우리는 여전히 문제가 많지만, 그 어떤 나라보다 평화롭고 민주적인 2025년 5월을 맞이했다. 감사하며, 기억하며 5월을 살아야겠다. 그분들에게 5월의 햇빛처럼 아름다운 역사를 돌려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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