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15/11/14 23:29:54
Name   레이드
Subject   오늘 하루 단상
오늘 민중 총 궐기가 있는 날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홍차넷 덕분이기도 하고, 트위터 덕분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오늘 그 곳에 갈 수가 없었습니다. 약속이 잡혀 있기도 했고 어떻게 보면 좀 무섭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운동권은 아니었지만 (운동권이라는 것도 요즘은 잘 없지만) 그 쪽의 아이들과 약간의 안면은 있어 그런 현장을 처음보는 것도 처음 가는 것도 아닌데 여전히 그런 곳에 가는 건 가는 것 자체만으로도 무섭고 두려운 일입니다. 진짜 무력할만큼 아무것도 못하는데도요.

약속이 시청에서 있었습니다. 시립 미술관에서 천경자 화백의 전시회가 있어 그 곳에 가보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굉장히 어색하고 낯선 광경이었습니다. 엠프소리가 엄청 커서 미술관에 들어가기 전까지 너무 크게 들렸거든요. 그 동안은 저 쪽에 있었기 때문에 이런 느낌은 전혀 몰랐었는데..내가 있던 그 장소 반대편에는 사람들이 이런 느낌을 받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으니, 무언가 진짜 마음이 이상하더군요.

시립 미술관에 들어가서 관람을 하기 시작했는데 이상한 건 그렇게 엠프소리가 컸는데 미술관에 들어가니까 진짜 하나도 안들려요. 바깥에서는 그렇게 시끄럽게 떠들고 있는데 딱 들어가니까 거짓말인 것처럼 하나도 안 들렸습니다. 멀리 계신 그 분도 이런 느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했습니다. 그 분께는 우리의 소리가 하나도 안들리는 게 아닐까요.

관람을 마치고 밖에 나와서 여의도로 이동하려고 버스 정류장에 섰습니다. 평소엔 보기 못하는 대규모 버스들이 도로 양 옆을 차지하고 있었어요. 버스에 써 있는 회사명은 금속노조 xx지부. 그런 차량이 대 여섯대는 줄지어 있더군요. 진짜...그걸 보는 순간 무언가 쭈뼛하고 머리가 서고 '송곳' 생각이 났습니다. 우리의 현실, 우리가 서 있는 바로 이 곳은 아직, 송곳의 한 가운데에 있구나..  씁쓸하게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어느 한 분이 나오셔셔 "지금 버스 못 와요, 차벽치고 난리라서 버스고 택시고 아무것도 못 오니까 지하철 타세요!" 이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아마 버스회사 직원인가? 그러신 것 같았습니다.

그 말이 떨어지니까, 옆에 계신 어느 아저씨가, "요즘 시대가 어느땐데 말이야. 시위같은 걸 하고 말야, 노동자들 난리때문에 불편하고 이게 뭐야" 라고 말씀하시면서
저런 것들이 문제라니까. 다 감옥에 쳐 넣어야 돼 하고 끝을 맺으시더군요.

굉장히 충격적이었습니다.
정말로 충격적이었어요. 아니, 알고는 있었는데.. 지금 하고 있는 행사때문에 불편한 것도 맞고, 힘든 것도 맞는데..그렇게까지 말씀하실 필요가 있나 싶었어요 진짜.
순간 아저씨에게 따지고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따져봐야 뭐하나 싶은 생각이 들어서 입을 다물고 말았습니다.

어째서 사람들은
본인의 일이 아니면 이렇게 잔인할정도로 무관심 할 수가 있는 걸까요.
박수는 쳐주지 못할 망정, 뒤돌아선 이에게 돌을 던지지는 말아야 하는거 아닐까요.

어렸을 때는, 세상의 일도 만화 영화처럼 흑백 선악이 잘 갈려있는 줄 알았어요.
되도 않는 정의감에, 객기를 부려보기도 했고 선인 줄 알았는데 내가 악이었구나 싶어서 되도 않게 억지를 부려보기도 했죠.
근데 좀 지나고, 생각해보니까 다 같은 사람이구나 나만 옳은 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누구에게나 쉽게 무엇이 옳다 쉽게 말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바라보는 것이 다를 뿐, 서 있는 위치가 다를 뿐
우리는 다들 누군가의 아비이고 어미이고 아들이며 딸이고 누군가의 형이고 언니고 누나고 동생이고 ..
세상 사람 모두 자기 가족한테는 착한 사람이잖아요. 그 누구라도

근데 왜 우리는 타인에게는 이토록 무관심해질 수가 있는 걸까요.
참.. 무력한, 힘든 하루였습니다.

대한민국 헌법
제10조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제 11조  ①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



0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공지 티타임 게시판 이용 규정 2 Toby 15/06/19 31415 7
    14949 게임[LOL] 9월 29일 일요일 오늘의 일정 발그레 아이네꼬 24/09/29 24 0
    14948 요리/음식팥양갱 만드는 이야기 8 + 나루 24/09/28 220 8
    14947 게임[LOL] 9월 28일 토요일 오늘의 일정 발그레 아이네꼬 24/09/27 100 0
    14946 게임[LOL] 9월 27일 금요일 오늘의 일정 발그레 아이네꼬 24/09/27 142 0
    14945 일상/생각와이프한테 혼났습니다. 3 큐리스 24/09/26 679 0
    14944 게임[LOL] 9월 26일 목요일 오늘의 일정 발그레 아이네꼬 24/09/25 149 0
    14943 게임[LOL] 9월 25일 수요일 오늘의 일정 1 발그레 아이네꼬 24/09/25 107 0
    14942 일상/생각마무리를 통해 남기는 내 삶의 흔적 kaestro 24/09/25 532 2
    14941 기타2002년에도 홍명보는 지금과 같았다? 4 Groot 24/09/24 650 1
    14940 일상/생각 귤을 익혀 묵는 세가지 방법 11 발그레 아이네꼬 24/09/24 535 6
    14939 일상/생각문득 리더십에 대해 드는 생각 13 JJA 24/09/24 606 1
    14938 일상/생각딸내미가 그려준 가족툰(?) 입니다~~ 22 큐리스 24/09/24 572 14
    14937 오프모임아지트 멤버 모집등의 건 26 김비버 24/09/23 1210 21
    14936 문화/예술눈마새의 '다섯번째 선민종족'은 작중에 이미 등장했을지도 모른다. 6 당근매니아 24/09/22 567 0
    14935 육아/가정패밀리카에 대한 생각의 흐름(1)-국산차 중심 28 방사능홍차 24/09/21 898 0
    14934 도서/문학이영훈 『한국경제사 1,2』 서평 - 식근론과 뉴라이트 핵심 이영훈의 의의와 한계 6 카르스 24/09/19 819 15
    14932 일상/생각와이프한테 충격적인 멘트를 들었네요 ㅎㅎ 9 큐리스 24/09/19 1398 5
    14931 일상/생각추석 연휴를 마치며 쓰는 회고록 4 비사금 24/09/18 582 9
    14930 방송/연예(불판) 넷플릭스 <흑백요리사> 감상 나누기 68 호빵맨 24/09/18 1284 0
    14929 음악[팝송] 혼네 새 앨범 "OUCH" 김치찌개 24/09/18 181 1
    14928 일상/생각급발진 무서워요 1 후니112 24/09/17 553 0
    14927 일상/생각오늘은 다이어트를 1 후니112 24/09/16 349 0
    14926 게임세키로의 메트로배니아적 해석 - 나인 솔즈 kaestro 24/09/15 302 2
    14925 일상/생각힘이 되어 주는 에세이 후니112 24/09/15 338 0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