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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6/03/03 16:57:44수정됨
Name   바보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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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고전 게임 <레거시 오브 케인> 소회 : 블러드 오멘




<레거시 오브 케인> 혹은 <케인의 위업(Legacy of Kain)>이라는 고전 게임 시리즈가 있습니다. 그리고 올해 3월 3일(혹은 4일) 이 시리즈의 최신작...뻘 되는 2003년 작품 <디파이언스>가 리마스터 버전으로 출시됩니다.

제가 좋아하는 게임이기도 하고, 이 시리즈를 좋아하기도 하고, 실제로도 게임사에 영향력을 행사한 수작이기도 하고, 이래저래 간증을 해볼까 싶습니다만, 아쉽게도 이 게임은 2026년에 소개를 하려면 제일 큰 단점부터 언급을 먼저 해야 하는 게임이기도 합니다. 그 단점이 무엇이냐고요?

이 게임은 말씀드렸듯 한 시리즈의 최신작입니다. 그리고 이야기가 연속적이지요. 얼마나 연속적이냐면... <디파이언스>의 첫 시작이 정확히 전작 게임 <소울 리버 2>의 엔딩 직후입니다. 그런데 전작에 대한 언급을 도무지 안 해요. 리마스터 버전에서는 그래도 양심을 좀 챙겨서 전작까지의 이야기를 어떻게 요약해줄 지도 모릅니다만, 아무래도 그 전작을 해보거나, 옆에서 별도 정리라도 해주는 편이 처음 할 사람에겐 더 절실할 겁니다.

<디파이언스> 출시 당년에도 이건 단점으로 지목된 뼈아픈 요소인데, 지금은 그로부터도 20년이 넘게 지났고, 교재에 실리는 게임인 <소울 리버 1>이라면 차라리 모를까, 그 옆그레이드 게임인 <소울 리버 2>를 2026년에 새삼 손대려는 *입문자*도 없을 겁니다. 물론 소울 리버 1, 2도 앞서 리마스터 버전 게임은 있습니다. 있는데... 멀쩡한 요즘 게임 다 놔 두고 하필 소울 리버 [리마스터를 좋다고 하는 사람이, 원래부터 이 게임 빨아대던 틀딱들 빼고 달리 누가 있어요 ㅋ]

따라서, 이 게임을 현대에 다시 소개하려면, 최신작 하나만 소개할 게 아니라 전체 시리즈에 대한 간단한 요약본을 적어야 맞고, 저도 그래서 <디파이언스> 소개를 위해, 먼저 <레거시 오브 케인> 시리즈에 대한... 제가 알거나 기억하는 만큼의 요약본을 적으려고 합니다. 그러니까 게임 영업인 동시에 고전 게임들에 대한 감상문이기도 하지요. 혹시 이 게임을 해봤고 더 자세히, 정확히 기억하는 선생님이 계신다면, 정정 정보를 올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레거시 오브 케인>의 첫 리마스터는 <소울 리버 1, 2>입니다만, 사실 시리즈 첫 시작은 더 옛날에 나온 고전 게임 [<블러드 오멘: 레거시 오브 케인>]입니다. 스팀에서는 왠지 팔지 않아서 지금 하려면 GOG에서 사야 합니다. (한국에서는 그냥 탑뷰라고 퉁쳐버리는) 탑뷰 방식 아이소메트릭 시점을 썼고, 필드를 돌아다니면서 잡몹을 칼로 썰어대고, 시체에서 삥을 뜯어서 마을에서 무기와 물약을 사고, 던전에 가서 보스를 때려잡으면 되는, 게임은 그냥 90년대 말에 돌멩이보다 흔하고 평범했던 모험 액션 게임이었습니다.

주인공이 흡혈귀고, 인간이 잡몹이고, 변장 마법을 안 쓰면 마을 분위기가 던전보다 살벌해지며 던전 가서 때려잡아야 할 보스들이 게임 속 세계의 수호자들이라는 것만 빼면요.

시작은 이렇습니다. 노스고스(Nosgoth, 게임에서는 노즈고트라고도 합니다)라는 판타지 세계에, 세계의 미덕이나 현상을 지탱하는 아홉 개의 마법 대리석 기둥이 있었습니다. 이를 ‘노스고스의 기둥’이라고 불렀습니다. 각 기둥은 차원, 자연, 정신, 존립, 시간, 사멸, 능력, 갈등, 균형의 아홉 영역을 대변했는데, 마지막 아홉 번째는 나머지 여덟 기둥을 침략에서 보호하고 동시에 감시하는 역할을 맡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기둥 그 자체를 외부에서 한 번 더 보호하고 물리적으로도 유지 보수하기 위해, 노스고스의 기둥은 운명에 의지해 자신을 지킬 수호자를 선택하며, 수호자는 기둥에 헌신하는 사제로서 명예와 그 나름의 지위를 누렸습니다.

그렇게 흘러가던 어느 날, 노스고스의 안정을 깨뜨리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보라도어라는 이름의 흡혈귀가 인간의 성소를 침략한 것입니다. 보라도어는 성소에 있던 모든 인간을 무자비하게 죽이고, 피를 빨아먹었습니다. 성소를 지키던 기사 대장 말렉과 동료 마법사가 저항했지만, 오히려 말렉이 흡혈귀에게 패배하고, 흡혈귀와 결탁한 흑마법사 모르타니우스에게 넘겨져 영혼만 뜯겨 남겨진 유령 기사로 전락합니다.

그 날, 기둥의 최고 수호자인 균형의 사제 아리엘 또한 살해됩니다.

사제를 잃은 균형의 기둥은 검게 썩으며 무너지기 시작했고, 균형의 보호를 잃고 감시에서 벗어난 나머지 여덟 기둥 또한 같은 운명을 따랐습니다. 세계를 유지하던 마법 가호가 사라지자, 사회는 혼란에 빠지고, 왕국은 멸망했으며, 사람들은 도시에 뭉쳐 구원을 바라고 숨죽이며 기다리거나, 스스로 타락에 합류해 도적이 되었습니다.

시간이 다시 지나서, 난세가 상식이 된 세계에, 케인이라는 젊은 귀족이 여행 중 도적에게 살해당합니다. 원래 그가 어떤 인물이었는지, 여행의 목적이 무엇이었는지는 모릅니다. 사실 중요하지도 않고요. 튜터리얼 끝나자마자 꽥 하고 죽거든요.

지옥에 떨어진 케인에게, 앞서 언급한 흑마법사 모르타니우스가 나타납니다. 모르타니우스는 케인에게 복수할 기회를 주겠다고 하며, 그를 창백한 피부와 시커먼 복색이 인상적인 흡혈귀로 부활시킵니다. 케인은 복수에 눈이 멀어 선뜻 제안을 받아들이지만, 독백으로 이 장면을 회상할 때, 케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대가 없이 얻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복수조차 그렇다. 내가 바친 것은 자유와 운명이었다.’

아무튼 흡혈귀로서 이승에 돌아온 케인은 무덤에서 기어올라와, 죽었던 곳을 지나 도적의 본거지까지 쳐들어가 보이는 모든 무법자를 쳐죽입니다. 시커멓게, 문자 그대로 흑화한 흡혈귀에게 평범한 인간 범죄자들은 속수무책이었고, 케인의 복수는 그렇게, 너무나도 싱겁게 끝납니다.

목적을 잃고 무작정 걸음을 옮기던 케인의 앞에, 어쩌면 여행의 목적지 중 하나였을지도 모를 곳이 나타납니다. 세계의 성소, 노스고스의 아홉 기둥을 발견한 케인이 그곳에 다다르자, 기둥 중 한 곳에서 젊은 여자의 유령이 다가와 자신을 균형의 수호자 아리엘이라고 소개합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당신이 이곳에 온 것은 운명에 의해 정해져 있었습니다. 이제 당신은 기둥의 타락을 바로잡아, 세상에 균형과 치유의 힘을 되찾아줘야 합니다.’

케인은 처음 보는 귀신이 뜬금없이 늘어놓은 용사 타령을 경계하지만, 한 가지 명제에는 동의합니다. 케인은 햇빛을 피하며 피에 굶주려야 하는 배고프고 불쌍한 괴물이었고, 세계고 나발이고 일단 자기 자신을 치유하고자 했으며, 그러려면, 세상에는 균형과 치유의 힘이 아무튼 있기는 해야 했습니다.

아리엘은 균형의 사제가 아직 없으니, 폭주하고 타락한 기둥의 수호자를 쉽게 되돌릴 방법이 없으며, 안타깝더라도 그들을 죽여야만 기둥이 타락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하며, 수호자를 타락으로 이끄는 존재인 [불가칭의 존재(The Unspoken)]를 조심하라고 조언합니다. 이어서 케인이 죽여야 할 수호자를 차례로 지목합니다. 케인의 여정을 하나하나 적으면 너무 길어지니까 시리즈 안에서 자주 언급되는 부분만 요약하자면, 그래서 케인은 이 여덟 기둥의 수호자를 죽이기 위해 온갖 험난한 과정을 거칩니다.

핵 앤 슬래시 던전을 타임어택으로 뚫고 가는가 하면, 망령 기사 말렉에게 단기 접전을 걸어놓고는 두들겨 맞고 패배해서 볼썽사납게 도주하기도 하고, 흡혈귀인 상태로는 인간 마을을 들어갈 수 없어서 마법과 누더기 옷으로 인간인 척 변장을 해야 하는가 하면, 변장이 풀려서 온 사방의 민병대와 창 든 기사, 낫을 든 농부들에게 사냥당하며 개처럼 도망다니기도 했습니다.

예언자의 동굴에서 만나 서로 돕고 지나간 줄 알았던 인자한 인상의 대머리 영감님이, 알고 봤더니 죽여야 할 수호자이자, 그 중에서도 가장 사악한 배신자인 [시간의 관개유수(Time Streamer) 모비어스]임을 알고 분노에 휩싸이거나, 죽을 고생을 하면서 겨우 고향에 들렀더니 고향에는 역병이 돌아 사람들이 떼죽음을 당하는 것을 보며 회한을 느끼기도 합니다. 모든 난세의 원흉이자, 자신을 제외하면 세상에 남은 마지막 흡혈귀인 보라도어와 협력하며 타락한 수호자를 사냥하기도 하고, 특히 기사 말렉에게는 보라도어가 마지막 일격을 날려 오랜 악연에 걸맞은 최후를 선사하게 합니다.

악마가 된 수호자를 죽이겠다면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아직 젊고 무구한 10대 청년을 칼로 찍어 죽이는 엽기적인 짓마저도 해치웠습니다. 또한 세계를 수호하는 기둥을 섬기던 노스고스 전통 신앙을 거부하고 ‘해쉬 악 긱’이라는 새로운 신을 숭배하는 이교도와 마주치며, 불편한 정치적 공존부터, 칼을 통한 물리적 충돌에 이르기까지, 불쾌한 교류를 이어나가기도 했습니다. 가장 사악한, 인류의 배신자 모비어스조차 [더 큰 세력]의 앞잡이에 불과했다는 '기둥의 영락'에 무력감에 빠지기도 하지만, 이내 그 모비어스와 졸개들이 자신의 동료 보라도어를 참수하여 죽인 모습에 끝없이 분노를 불태워 가며, 하나씩 수호자들을 추적해 결국에는 그 모비어스마저 죽이고 차례로 타락했던 노스고스의 아홉 기둥을 정화합니다.

그 과정에서 케인은 두고두고 자신의 전설을 대변하며 언급될 성물 무기, ‘소울 리버’를 지옥 바닥에서 주워 들고 개인 무장으로 삼습니다. 이 시점에서의 소울 리버는 ‘영혼 사냥꾼’으로도 불리는 귀신이 씌었다고 알려져 있었으며, 덕분에 칼은 보스를 제외한 게임 내 어떤 적이라도 일격에 쳐죽이는 대신, 휘두를 때마다 적과 케인 양쪽의 마나를 빨아먹었습니다.

또한 케인은 여행을 통해 세 가지 사실을 배웁니다. 첫 번째는, 수호자들은 아리엘의 주장과 달리 처음부터 타락한 존재였습니다. 균형의 힘만이 이들을 ‘되돌릴’ 수 있다는 말은 사실이었지만, 반대로 균형의 힘이 있다고 해서 이들이 타락을 안 할 수 있는 건 아니었습니다.

두 번째는 앞서 이야기한 보라도어의 성소 침공과 균형의 사제 살해는 완전한 별개의 사건이었다는 것입니다. 이 세계에서 흡혈귀는 근원에 숨은 악이 아니라 그저 제 3의 영역에 머무를 뿐인 ‘관심 밖의 괴물, 사소한 악’이었습니다. 세계를 타락에 빠뜨리고, 균형의 사제 아리엘을 죽여 세계의 몰락에 쐐기를 박은 진정한 적은 따로 있었습니다. 이 세계의 타락을 숨기고, ‘차라리 덜 사악한’ 흡혈귀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리기 위해, 타락과 손잡은 자들이 있었습니다. 보라도어와 케인을 희생양 삼아 세계를 자신들의 천국으로 만들려고 했던 그 자들이, 다름아닌 기둥을 배신한 대다수 수호자였습니다.

그러면 수호자의 배후, 세계의 진정한 적, 타락의 근원은 누구일까요? 답은 간단했습니다. 앞서 아리엘이 조언했던, 수호자를 타락에 빠뜨린다던 [불가칭의 존재] 혹은 이교도들이 숭배하는 새로운 신 ‘[해쉬 악 긱]’ 바로 이 자가 세계의 진정한 적, 케인이 물리쳐야 할 악의 본체였습니다. 사실, 아리엘도 이 존재를 아예 모르는 건 아니었습니다. 뻔히 케인에게 그 자를 조심하라고 조언한 존재가 아리엘 본인이니까요.

단지 그 능력의 수준이, 균형이 무너지고 나서 암약을 했다는 수준을 넘어서 ‘버젓이 아리엘이 살아있을 때부터 일찌감치 노스고스에 사악한 영향력을 발휘할 정도’였다는 게 계산 밖이었을 뿐이죠. 케인은 결국 미친 복수귀 뉴프랩터를 죽인 것을 시작으로, 타락한 기둥의 배신자인 말렉, 디쥴, 네메시스, [강령술사 모르타니우스,] [시간의 관개유수 모비어스,] 아지무스 등을 차례로 거치며 이 [해쉬 악 긱] 역시 어두운 밤 아래로 불러내어, 처절한 결투 끝에 기어이 그 육신을 죽이고 영혼을 다시 한 번 노스고스 세계에서 지옥으로 추방합니다.

그리고 세계의 거악을 심판한 케인 앞에 세 번째 진실이 드러납니다. 그토록 강력하고 대단하다는 악의 적을, 케인이 차례로 쳐부수고 이길 수 있었던 이유, 아리엘이 기다린 운명의 주인공이 바로 케인인 이유지요.

케인이 바로, 아리엘이 죽은 후 태어난 다음 대의 균형의 사제 후보였던 것입니다.

따라서 케인이 살아 있는 한, 노스고스의 마지막, 그리고 가장 중요한 균형의 기둥만은 치유될 수 없었고, 세계의 진정한 구원을 위해서는 케인이 자살을 통해 희생해야만 했습니다. 그것이 아리엘이 주장이었습니다.



장대한 이야기 끝에, 게임은 플레이어에게 (당시에 범람하던 여러 게임처럼) 죽을래 살래, 두 가지의 선택지를 제시합니다. 죽으면 해피엔딩이고, 살면 배드엔딩입니다. 자,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런데, 이 시점에서 꼼꼼한 플레이어라면 자신의 플레이를, 요약본에서도 (제가 주관적인 해석을 꽤 넣기는 했습니다만) 맥락을 맞춰 보신 분들이라면, 돌이켜본 후 한 가지를 깨달으실 겁니다. 이 게임에서 말하는 정보라는 게 앞뒤가 안 맞다는 것 말이죠.

기둥의 수호자가 정화되려면, 균형의 사제가 있거나, 균형의 사제가 될 사람, 즉 균형의 후예가 수호자를 죽여야 합니다. 그런데 균형의 후예가 이제 또 죽고 나면? 다음 기둥의 수호자가 타락한 뒤에는 누가 그들을 또 죽일 건가요?

혹은 균형의 힘이 ‘아리엘’에게 되돌아가거나, 케인 이후의 다음 후보에게 넘어간다면, 다음 대의 수호자가 타락하지 않도록 막을 수 있을까요? 그런데 그게 아니란 말이죠. 아리엘이 살아 있을 때조차 세계는 타락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번 그들이 타락했을 때, 케인이란 대안조차 스스로 거세하고 다음 시대 다음 후보를 그저 앉아서 무력하게 기다릴 뿐인 세계는, 지금과 같은 임시 복구마저 할 수 없는 완벽한 먹잇감이 되고 맙니다.

다시 말해, 케인이 희생하는 엔딩은, 마치 해피 엔딩인 것처럼 평화로운 모습을 보여주지만... 실제로는 [최악의 엔딩]입니다. 흡혈귀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시키는 대로 남의 말을 잘 들을 뿐인 ‘가축들’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결말이지요.

그럼, 케인이 가축이 되기를 거부하고 이기적인 선택을 한다면, 배드엔딩이 아니게 될까요? 사실 그렇지도 않습니다. 아리엘이 한 말이, 혹은 전승으로 알려진 사실이 전부 거짓은 아니거든요. 수호자가 타락하면, 기둥도 타락합니다. 운명을 깨달아 균형의 사제 자격을 갖춰버린 케인이 기둥의 의지를 배신한 순간, 간신히 정화되어 가던 기둥은 도루묵으로 타락할 뿐만 아니라, 처절하게 박살나기까지 합니다. 세계의 미덕과 ‘자연스러움’은 영원히 사라지고, 무너진 기둥 아래 케인은 해골로 옥좌를 만들어 앉으며 흡혈귀의, 식인 괴물의 제국을 세웁니다. 누가 봐도 배드엔딩 맞습니다.

즉, 이 게임의 진짜 엔딩은 해피엔딩과 배드엔딩이 아닙니다. 바로 [해피엔딩인 척하는 가장 끔찍한 파멸 엔딩][그냥 눈에 뵈는 그대로 역겨울 뿐인 찐또배기 배드엔딩]입니다. 차라리 카레맛 똥과 똥맛 카레 중에서 하나를 고르는 게 나을 정도죠.

그러니 다시 묻겠습니다. 여러분이라면 필연적인 파멸과 영원한 타락 중에서, 어떤 파국을 맞이하시겠습니까?



중요한 건 이겁니다. 어느 쪽 엔딩이든, 케인은 이 날 선택을 내렸다는 겁니다.

그리고 케인의 선택은 노스고스에 영구한 영향을 끼쳤을 것이고... 바로 이 한 번의 치명적인 선택으로 끝날 케인의 모험과 행적이, 바로 노스고스라는 한 세계를 파멸시킨 [피의 전조(Blood Omen)]입니다. 그리고 이 끔찍한 사건의 전말이야말로, 케인이라는 흡혈귀가 남긴 가장 위대한 업적, 즉 [케인의 위업(Legacy of Kain)]으로 알려질 이야기의 내용입니다.



게임은 그 때도 지금도 평범한 90년대 보통 느낌이 다입니다. 하지만 이야기는 안 그랬어요. 보이는 서사의 이면까지 가지 않아도, 게임 전체가 그냥 세기말 씹덕 감성으로 풀무장한, 당시 게이머들에게 너무나도 매혹적인 '웃음기라고는 하나도 없는 어둡고 침울하고 비극적인 다크 판타지'였습니다. 거기에 매순간 처음 들은 것과 나중에 들은 것이 달라지는 서사, 표면 서사만 따라가면 엿을 먹는 이벤트 흐름과 배배 꼬인 퍼즐이 있었습니다.

마지막의 엔딩은 [비극과 더 큰 비극 중 하나를 고를 뿐인 순간이 주어져도, 과연 개인이 선택의 자유를 가진다고 볼 수 있는가,] 더 나아가 [과거가 현재를 결정하는 것이 사실이라 치고, 미래가 현재에서 읽힌다고 어느 누가 주장할 수도 있다면, 선택의 자유는 대체 어디에 있는가] 하는 물음을 플레이어가 진지하게 고민할 기회를 주었고요. 게이머들이 이 게임을 플레이한 후, 결정론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저는 이 게임을 한 걸음 늦게 플레이해봐서 당시의 게시판 분위기까지 알지는 못합니다만, 엔딩 가지고 갑론을박이 꽤나 오래 갔다고 하더군요. 미국에서도, 의외로 아시아에서도 그랬다고 합니다.

더구나 이 게임을 만든 실리콘 나이츠가 모회사인 에이도스, 그리고 계열사인 크리스털 다이내믹스와도 인연이 있었던지라 <툼 레이더> 등 당시 흥행작 덕을 덤태기로 보기도 해, 결과적으로 <블러드 오멘>은 예상보다 훨씬 성공적인 흥행을 했습니다. 시리즈의 잠재력을 주목한 에이도스는 앞서 말한 크리스털 다이내믹스와 힘을 모아 개발사로 하여금 <블러드 오멘>의 후속작을 개발하도록 했습니다. 특히 다음 작품은, 미국과 아시아 양쪽에서 먹힐 만한 하드웨어 플랫폼을 고르라고 하고, 개발 지원도 팍팍 해줬지요.

그렇게 <레거시 오브 케인> 시리즈가 캐논 확장의 첫 발을 디디며, 이 다음 작품으로... 게임 개발사를 진지하게 논할 때 두고두고 참조되는 고전 중 하나인 <소울 리버>가 탄생하게 됩니다.



개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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