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15/12/01 02:19:11
Name   마르코폴로
Subject   로마의 몰락, 파스타의 쇠퇴.


- 중세 귀족의 특권이었던 사냥

파스타는 고대 그리스에서 전래되었다고 전해질 정도로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음식입니다. 그러나 로마가 붕괴한 이후부터 르네상스 시대 이전까지의 시기에는 파스타에 대한 기록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예전에 '파스타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린 적이 있는데, 그 글에서도 그리스 로마 시대 이후 바로 14세기의 파스타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갑니다.)당시의 기록이 많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 추측에 의한 것이긴 하지만, 왜 파스타가 사라졌는가에 대해서 유추해 볼 수 있는 정황은 분명 존재합니다.

로마 시대 귀족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식생활은 빵, 올리브유, 채소가 중심이 된 식단이었습니다. 그러나 로마 붕괴 이후 유럽에서 주도권을 장악한 게르만족들은 이전의 귀족들과 선호하는 음식이 달랐습니다. 그들은 될수록 고기를 많이 먹으려고 했는데, 특히 사냥에서 잡은 짐승을 좋아했습니다. 게르만의 자유인은 '종사제'(기사는 주군에게 충성을 다하고 주군은 기사를 부양하는 주종 제도)라는 군사적 주종 제도를 중심으로 관계를 맺고 전쟁을 직업으로 삼았습니다. 이들은 농노의 노동력에 의존하는 생활을 했는데, 전쟁이 없을 때는 씨족 생활을 할 때와 같이 주로 사냥을 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과거에는 게르만족이 주로 채집과 수렵을 통해 식량을 확보했다고 여겼지만,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농경과 목축을 병행한 정착인이었다는 학설이 유력합니다. 이들은 로마 제국을 점령하고 나서 곧바로 정착해 농노를 이용한 농경을 시작한 것으로 보입니다)

중세의 귀족은 사냥을 통해 선대 전사들에 대한 기억을 되살렸고, 사냥해온 짐승들로 연회를 열면서 재산을 탕진했습니다. 그러한 행위를 통해 자신들의 부와 권력을 외부에 과시하곤 했지요. 남자다움의 상징은 사냥과 고기였고, 농업이나 그 밖의 생산 활동은 남성적이지 못한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이런 일련의 경향 탓인지 기름도 동물성 기름이 더 귀하게 대접받았습니다. 돼지기름과 버터가 올리브유를 대신해 식탁을 차지하게 된 것이지요. 로마 시절 귀족들의 식탁에 오르던 올리브유는 중세 유럽에서 음식재료로서 제대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약이나 화장품, 등유, 종교의식에 쓰였습니다.

로마가 몰락한 후에도 밀이나 잡곡은 여전히 중요한 음식재료였지만, 게르만족의 침입과 지속적인 전란으로 인해 농지가 심하게 황폐해집니다. 이런 사정으로 인해 중세 초기 몇백 년 동안 일부의 부유층만 빵으로 만들어서 밀가루를 소비했고 하층민은 기껏해야 스펠트 밀, 보리, 귀리, 조, 피, 수수 같은 잡곡을 이용한 빵이나 미네스트라(채소나 콩, 고기 등을 넣은 수프)정도만 만들어 먹었습니다. 밀을 빻아 가루로 만들어 반죽한 것을 먹는 요리(빵을 제외한)가 오랜 기간 동안 사라져 버린 것이지요. 이렇듯 중세 유럽에서 자취를 감춘 파스타는 고전 문화가 부흥하던 14세기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러서야 부활합니다.  



4
  • 파스타 먹고 싶어지는 글이네요
  • 파스타먹고싶다아,,
  • 캬 르네상스 찬양해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공지 티타임 게시판 이용 규정 2 Toby 15/06/19 35264 1
15932 음악예술가들이 영원히 철이 들지 않기를 골든햄스 25/12/29 115 0
15931 일상/생각2025년 후기 8 + sarammy 25/12/28 321 6
15930 창작또 다른 2025년 (16) 트린 25/12/28 103 3
15929 음악[팝송] 머라이어 캐리 새 앨범 "Here For It All" 1 김치찌개 25/12/26 172 2
15928 경제빚투폴리오 청산 24 기아트윈스 25/12/26 892 10
15927 창작또 다른 2025년 (15) 트린 25/12/26 208 1
15926 일상/생각나를 위한 앱을 만들다가 자기 성찰을 하게 되었습니다. 1 큐리스 25/12/25 576 9
15925 일상/생각환율, 부채, 물가가 만든 통화정책의 딜레마 9 다마고 25/12/24 723 13
15924 창작또 다른 2025년 (14) 2 트린 25/12/24 211 1
15923 사회연차유급휴가의 행사와 사용자의 시기변경권에 관한 판례 소개 6 dolmusa 25/12/24 557 9
15922 일상/생각한립토이스의 '완업(完業)'을 보며, 사라지는 것들에 대하여. 1 퍼그 25/12/24 686 16
15921 일상/생각아들한테 칭찬? 받았네요 ㅋㅋㅋ 3 큐리스 25/12/23 557 5
15920 스포츠[MLB] 송성문 계약 4년 15M 김치찌개 25/12/23 246 1
15919 스포츠[MLB] 무라카미 무네타카 2년 34M 화이트삭스행 김치찌개 25/12/23 167 0
15918 창작또 다른 2025년 (13) 1 트린 25/12/22 211 2
15916 게임리뷰] 101시간 박아서 끝낸 ‘어크 섀도우즈’ (Switch 2) 2 mathematicgirl 25/12/21 355 2
15915 일상/생각(삼국지 전략판을 통하여 배운)리더의 자세 5 에메트셀크 25/12/21 466 8
15914 창작또 다른 2025년 (12) 트린 25/12/20 247 4
15913 정치2026년 트럼프 행정부 정치 일정과 미중갈등 전개 양상(3) 2 K-이안 브레머 25/12/20 383 6
15912 게임스타1) 말하라 그대가 본 것이 무엇인가를 10 알료사 25/12/20 613 12
15911 일상/생각만족하며 살자 또 다짐해본다. 4 whenyouinRome... 25/12/19 604 26
15910 일상/생각8년 만난 사람과 이별하고 왔습니다. 17 런린이 25/12/19 965 21
15909 정치 2026년 트럼프 행정부 정치 일정과 미중갈등 전개 양상(2)-하 4 K-이안 브레머 25/12/19 488 6
15908 창작또 다른 2025년 (11) 2 트린 25/12/18 275 1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