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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15/12/14 19:39:14 |
Name | 마르코폴로 |
Subject | <진술> - 하일지 |
‘내가 체포되어 경찰에 끌려오다니, 정말이지 내 생애에 이런 일이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소.' 첫 구절부터 예사롭지 않은 이 소설은 살인 용의자로 체포된 일인칭 화자 '나'의 하룻밤 진술로만 이루어져 있습니다. 아내와 함께 여행 온 한 도시에서 살인 혐의로 체포된 남자가 그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진술하는 형식의 이야기죠. 여기서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 ‘나’의 진술을 시간상으로 살펴보면 국악고등학교의 선생으로 재직하던 시절, 당시 학생이었던 아내를 만나 아내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그녀가 결혼했다는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극심한 반대 의사를 보이던 장인과 처남은 결국 어쩔 수 없이 아내와 자신의 관계를 인정하게 되죠. 그 후 아내와 ‘나’는 나의 학업 때문에 외국에서 생활하게 되고,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긴 했으나 무사히 귀국하여 ‘나’는 교수직에 임용됩니다. 부부는 아이가 없다는 걱정이 있긴 하지만 10년간 변함없이 사랑하고 있고, 최근엔 기다리던 아내의 임신 소식까지 듣게 되면서 더욱 행복하게 생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결혼 10주년 기념으로 여행을 왔던 차에, 처남의 살인사건이 발생하고 그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나’가 지목되면서 알 수 없는 장소로 끌려오게 된 것이죠. 중요한 점은 이것이 소설 속에서 오롯이 ‘나’가 진술한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작품 속에서 ‘나’는 대학교수이자 철학박사인데, 그 신분으로 인한 권위가 일정 정도 진술의 신뢰성을 높입니다.) 그러나 ‘나’를 추궁하는 측의 심문이 진행될수록 ‘나’의 진술은 점점 믿을 수 없는 것으로 밝혀집니다. ‘나’는 전처와 아직 이혼하지 못했고, 이런 상황에 따른 장인에 반대로 아내와 정식으로 결혼을 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나’는 “사실을 고백하자면 지금까지 내가 한 진술은 모두 거짓이었습니다”라는 말로 자신의 거짓 진술을 인정합니다. 또한 아내(전처가 아닌)가 사망 처리된 호적 등본과 같은 명백한 물증을 들이밀어도 그러한 상황을 부정하는 ‘나’의 태도에 ‘나’의 진술뿐만이 아니라 ‘나’라는 화자 자체에 대한 의심마저 생겨납니다. 이런 일련의 과정들을 통해 화자 ‘나’의 진술은 서사적 권위를 상실합니다. 그리고 화자의 진술이 권위를 상실하면서 이제 독자는 드러난 화자가 아닌 텍스트 속에 위치한 내포저자의 의도를 알아내고 추리해야 합니다. 거짓과 진실이 뒤섞인 진술은 소설의 말미에 가서야 ‘나’가 아내의 죽음을 부정하는 정신적 착란 상태에 있음이 밝혀집니다. 진술 중 ‘나’가 사랑에 대해 정의했듯이 사랑을 어떤 대상에 대한 과장된 심리의 지속이라고 인정한다면, ‘나’는 과장된 심리의 지속 상태 속에서 오랜 시간 동안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지요. 아니, 그것으로부터 깨어나기를 거부하고 있다는 것이 더 적확한 표현인 것 같습니다. 그는 8년 전에 일어난 어린 아내의 죽음을 몹쓸 악몽을 꾸었다고 인식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빠져나가고 싶지 않은 그 미몽 속에서 끊임없이 아내의 죽음을 언급하며 자신을 치료하고자 하는 손위 처남인 정신병원 원장을 허상으로 치부합니다. 상상과 실재가 뒤섞여 그의 병을 치료하려 하는 현실의 처남을 허상으로, 그들 부부와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환상 속의 처남을 실재로서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 결과 자신과 아내의 행복을 위협하는 허상 속 처남을 없애려 마음먹게 되고, 처남의 사무실에서 그를 흉기로 때려죽이는 끔찍한 사건을 벌이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 그가 진술 과정에서 살인을 부정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소설 속 ‘나’는 자신의 행복을 방해하는 허상을 제거했을 뿐이니까요. ‘나’에게는 실제로 일어난 일이 아니기에 하늘에 맹세코 자신은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다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이지요. 그렇게 ‘나’는 자신이 만든 환상 속에 영원히 머물러 있습니다. 소설 속의 ‘나’는 대면하고 싶지 않은 현실을 환상을 통해 대체합니다. 그것은 자신의 존재 이유였던 아내의 죽음을 부정하기 위해 스스로의 이성을 죽이는 애처로운 몸부림입니다. 깊은 절망의 밑바닥에서 인간이란 부조리하고, 이성은 나약합니다. 대학교수이자 철학박사인 ‘나’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소설의 마지막까지 아내와 함께 환상 속에서 살아가기를 택하는 ‘나’의 모습을 통해 저자는 독자에게 묻고 있습니다. 인간의 이성은 믿을만한가? 살인자가 된 ‘나’를 보며 혐오와 분노가 아니라 끝없는 슬픔과 연민을 느낄 수 밖에 없는 까닭은 그 질문에 대한 답변이 긍정적이지 않기 때문이겠죠.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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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일지의 작품들은 작가론 차원에서 살필 때 그 진미가 나타나죠.
일상에서 튕겨져나와 주변부를 맴돌던 <경마장 가는 길>의 R은 <경마장의 오리나무>와 <새>에 이르러 [상실]된 자아의 수복을 위해 여기저기 헤매입니다. 이 헤매임에 우주피스라는 방향이 새겨진들 어디에도 없는 <우주피스 공화국>이 나타나진 않습니다. <누나>에 이르러 하일지는 화자가 탈향하기 이전 상태의 우주피스인 [고향]을 보여주... 더 보기
일상에서 튕겨져나와 주변부를 맴돌던 <경마장 가는 길>의 R은 <경마장의 오리나무>와 <새>에 이르러 [상실]된 자아의 수복을 위해 여기저기 헤매입니다. 이 헤매임에 우주피스라는 방향이 새겨진들 어디에도 없는 <우주피스 공화국>이 나타나진 않습니다. <누나>에 이르러 하일지는 화자가 탈향하기 이전 상태의 우주피스인 [고향]을 보여주... 더 보기
하일지의 작품들은 작가론 차원에서 살필 때 그 진미가 나타나죠.
일상에서 튕겨져나와 주변부를 맴돌던 <경마장 가는 길>의 R은 <경마장의 오리나무>와 <새>에 이르러 [상실]된 자아의 수복을 위해 여기저기 헤매입니다. 이 헤매임에 우주피스라는 방향이 새겨진들 어디에도 없는 <우주피스 공화국>이 나타나진 않습니다. <누나>에 이르러 하일지는 화자가 탈향하기 이전 상태의 우주피스인 [고향]을 보여주는데, 그러나 아직 어린 화자의 바람은 고향이 아닌 탈향에 있습니다. 나이가 들어서야 고향에도, 탈향해 이른 일상에도 발 붙이지 못하는 자신을 마주합니다만, 고향/우주피스/피가영/(<진술>의)아내는 이미 사라져, 새벽이 오기 전 길거리를 돌아다니던 나무들은 영영 볼 수 없는 풍경이 되고 말았습니다. 달리 말하면 하일지는 데뷔 이후 하나의 소설만을 썼다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그 하나의 소설을 다양한 각도에서 써내려간다고요.
이와 같은 연상이 꽉 짜인 구성과 그에 맞게 변주되고 뒤틀리는 형식 속에서 제 모습을 드러내죠. [신뢰할 수 없는 발화]야 (일부가 되었든 전체가 되었든)소설에서 곧잘 볼 수 있으니, 오늘날 중요한 건 얼마나 세련되게 구사하느냐에 따라 그 미적 감흥이 결정될 겁니다. 클리셰냐, 아니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클리셰를 얼마나 잘 다루냐가 중요한 거죠. 말하고자하는 단일한 테마에 초점을 맞춰, 면밀히 복선을 깔고 하나하나 차박차박 읽어나가는 독자의 호흡과 감정선에 맞춰 회수하는 솜씨는 하일지를 굳이 찾아 읽는 이유지요. 그 사이사이에서 이 성실하고 능숙한 작가가 그 소재며 형식을 어떻게 조응하고, 또 발전시켜나가는지 엿보는 것도 재미고요. 앞서 이야기한 <진술>의 구술적 형식미는 이후의 <누나>를 통해 그 완성된 모습을 드러냅니다. <진술>의 읽는 재미도 상당하지만, 같은 작가의 작품임에도 그와 비교를 불허할만한 형식적 기교를 보여주죠. 문장, 구성, 형식, 소재를 도저히 쪼개서 보기 어려울만치 각 요소가 단단하고 밀접하게 관계를 맺습니다(사실 각 요소라고 말하기 어려울 것이, 그 자체로 하나의 소설을 이루고 있으니 말이지요.). 그리고 이러한 배치는 <누나>의 공간이 지금은 상실된 대상이며 [단일자]이자 상실이 없는 [순수한 완성 상태]인 고향이라는 점에서 주제와 아주 밀접하게 조응합니다. 알만한 사람 입장에서는 글을 읽는 것만으로도 현기증이 날만치 짜릿짜릿한 작품이죠(제 개인적으로 꼽는 21세기 한국 최고의 소설이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하일지의 소설들은 [소설이 왜 소설이며 소설이어야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그 자체로서> 대답이 될 수 있는 작품들이고요. 음... 그저 하일지 짱짱맨을 거창하게 풀어쓴 말놀음은 아니고요. 소설이 소설로서 표현할 수 있는 양상에 대해, 철저하게 소설적 방법론으로 접근하며 그 과정들을 탐구하는 작가니 말입니다. 말 많은 사람들이 곧잘 소설의 본질이랍시고 이야기네, 문장이네, 사회와 시대의 반영이네 어쩌네 떠들지만 소설의 본질은 그런 게 아니죠. 소설의 본질은 소설 자체입니다. 소설적 형식이고 소설적 구조죠. 따라서 훌륭한 작가란 소설이라는 매체의 형식과 구조의 지평을 치열하게 궁구하는 사람일 겁니다. 당장 한국 문학에서도 하일지의 작품보다 제가 감명 깊게 읽은 작품은, 드물지언정, 없지 않습니다. 하지만 작가로서 태도를 논한다면 하일지는 제가 접했던 세계 어느 문학가와 견주기에도 모자람 없는, 모범될 사례라고 봐요.
일상에서 튕겨져나와 주변부를 맴돌던 <경마장 가는 길>의 R은 <경마장의 오리나무>와 <새>에 이르러 [상실]된 자아의 수복을 위해 여기저기 헤매입니다. 이 헤매임에 우주피스라는 방향이 새겨진들 어디에도 없는 <우주피스 공화국>이 나타나진 않습니다. <누나>에 이르러 하일지는 화자가 탈향하기 이전 상태의 우주피스인 [고향]을 보여주는데, 그러나 아직 어린 화자의 바람은 고향이 아닌 탈향에 있습니다. 나이가 들어서야 고향에도, 탈향해 이른 일상에도 발 붙이지 못하는 자신을 마주합니다만, 고향/우주피스/피가영/(<진술>의)아내는 이미 사라져, 새벽이 오기 전 길거리를 돌아다니던 나무들은 영영 볼 수 없는 풍경이 되고 말았습니다. 달리 말하면 하일지는 데뷔 이후 하나의 소설만을 썼다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그 하나의 소설을 다양한 각도에서 써내려간다고요.
이와 같은 연상이 꽉 짜인 구성과 그에 맞게 변주되고 뒤틀리는 형식 속에서 제 모습을 드러내죠. [신뢰할 수 없는 발화]야 (일부가 되었든 전체가 되었든)소설에서 곧잘 볼 수 있으니, 오늘날 중요한 건 얼마나 세련되게 구사하느냐에 따라 그 미적 감흥이 결정될 겁니다. 클리셰냐, 아니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클리셰를 얼마나 잘 다루냐가 중요한 거죠. 말하고자하는 단일한 테마에 초점을 맞춰, 면밀히 복선을 깔고 하나하나 차박차박 읽어나가는 독자의 호흡과 감정선에 맞춰 회수하는 솜씨는 하일지를 굳이 찾아 읽는 이유지요. 그 사이사이에서 이 성실하고 능숙한 작가가 그 소재며 형식을 어떻게 조응하고, 또 발전시켜나가는지 엿보는 것도 재미고요. 앞서 이야기한 <진술>의 구술적 형식미는 이후의 <누나>를 통해 그 완성된 모습을 드러냅니다. <진술>의 읽는 재미도 상당하지만, 같은 작가의 작품임에도 그와 비교를 불허할만한 형식적 기교를 보여주죠. 문장, 구성, 형식, 소재를 도저히 쪼개서 보기 어려울만치 각 요소가 단단하고 밀접하게 관계를 맺습니다(사실 각 요소라고 말하기 어려울 것이, 그 자체로 하나의 소설을 이루고 있으니 말이지요.). 그리고 이러한 배치는 <누나>의 공간이 지금은 상실된 대상이며 [단일자]이자 상실이 없는 [순수한 완성 상태]인 고향이라는 점에서 주제와 아주 밀접하게 조응합니다. 알만한 사람 입장에서는 글을 읽는 것만으로도 현기증이 날만치 짜릿짜릿한 작품이죠(제 개인적으로 꼽는 21세기 한국 최고의 소설이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하일지의 소설들은 [소설이 왜 소설이며 소설이어야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그 자체로서> 대답이 될 수 있는 작품들이고요. 음... 그저 하일지 짱짱맨을 거창하게 풀어쓴 말놀음은 아니고요. 소설이 소설로서 표현할 수 있는 양상에 대해, 철저하게 소설적 방법론으로 접근하며 그 과정들을 탐구하는 작가니 말입니다. 말 많은 사람들이 곧잘 소설의 본질이랍시고 이야기네, 문장이네, 사회와 시대의 반영이네 어쩌네 떠들지만 소설의 본질은 그런 게 아니죠. 소설의 본질은 소설 자체입니다. 소설적 형식이고 소설적 구조죠. 따라서 훌륭한 작가란 소설이라는 매체의 형식과 구조의 지평을 치열하게 궁구하는 사람일 겁니다. 당장 한국 문학에서도 하일지의 작품보다 제가 감명 깊게 읽은 작품은, 드물지언정, 없지 않습니다. 하지만 작가로서 태도를 논한다면 하일지는 제가 접했던 세계 어느 문학가와 견주기에도 모자람 없는, 모범될 사례라고 봐요.
여담으로 하일지 작품 중 대표작이라고 할만한 걸 추천한다면 나온 시기 순으로 경마장 가는 길(1990), 새(1999), 우주피스 공화국(2006), 누나(2014) 정도 있겠네요.
<경마장 가는 길>이야 워낙 유명하니 설명을 생략하고... <우주피스 공화국>은 40대 남성 할이 리투아니아에서 어디에도 없고 누구도 모르는 국가인 자신의 조국 우주피스 공화국을 찾는 이야기입니다. 아마 홍차넷 분들은 하일지의 다른 소설보다 이 <우주피스 공화국>을 가장 재미나게 읽지 않으실까 싶네요. 그리고 위에서... 더 보기
<경마장 가는 길>이야 워낙 유명하니 설명을 생략하고... <우주피스 공화국>은 40대 남성 할이 리투아니아에서 어디에도 없고 누구도 모르는 국가인 자신의 조국 우주피스 공화국을 찾는 이야기입니다. 아마 홍차넷 분들은 하일지의 다른 소설보다 이 <우주피스 공화국>을 가장 재미나게 읽지 않으실까 싶네요. 그리고 위에서... 더 보기
여담으로 하일지 작품 중 대표작이라고 할만한 걸 추천한다면 나온 시기 순으로 경마장 가는 길(1990), 새(1999), 우주피스 공화국(2006), 누나(2014) 정도 있겠네요.
<경마장 가는 길>이야 워낙 유명하니 설명을 생략하고... <우주피스 공화국>은 40대 남성 할이 리투아니아에서 어디에도 없고 누구도 모르는 국가인 자신의 조국 우주피스 공화국을 찾는 이야기입니다. 아마 홍차넷 분들은 하일지의 다른 소설보다 이 <우주피스 공화국>을 가장 재미나게 읽지 않으실까 싶네요. 그리고 위에서 말했던 <누나>가 있는데, <누나>는 하일지의 소설 가운데 가장 읽기 쉬운 소설입니다만, 제 개인적인 생각에 그 올올한 감흥을 느끼기는 가장 어려울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마지막으로 <새>의 경우 <경마장 가는 길>과 <우주피스 공화국> 사이를 잇는 교량인 동시에, 양자 모두를 포괄하는 소설로 이전에 나타났고 이후에 나타날 하일지 소설의 양상이 어느 정도 완성된 형태를 보인다는 점에서 하일지 팬이라면 꼭 읽어볼만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뭐... 전 재밌게 읽었고 작품 자체만 놓고 봐도 추천할만한 책이기는 한데... 작품 자체에 대한 평과 별개로 많은 분들께 선뜻 건넬만하냐고 묻는다면 좀 갸웃하네요.
<경마장 가는 길>이야 워낙 유명하니 설명을 생략하고... <우주피스 공화국>은 40대 남성 할이 리투아니아에서 어디에도 없고 누구도 모르는 국가인 자신의 조국 우주피스 공화국을 찾는 이야기입니다. 아마 홍차넷 분들은 하일지의 다른 소설보다 이 <우주피스 공화국>을 가장 재미나게 읽지 않으실까 싶네요. 그리고 위에서 말했던 <누나>가 있는데, <누나>는 하일지의 소설 가운데 가장 읽기 쉬운 소설입니다만, 제 개인적인 생각에 그 올올한 감흥을 느끼기는 가장 어려울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마지막으로 <새>의 경우 <경마장 가는 길>과 <우주피스 공화국> 사이를 잇는 교량인 동시에, 양자 모두를 포괄하는 소설로 이전에 나타났고 이후에 나타날 하일지 소설의 양상이 어느 정도 완성된 형태를 보인다는 점에서 하일지 팬이라면 꼭 읽어볼만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뭐... 전 재밌게 읽었고 작품 자체만 놓고 봐도 추천할만한 책이기는 한데... 작품 자체에 대한 평과 별개로 많은 분들께 선뜻 건넬만하냐고 묻는다면 좀 갸웃하네요.
다만 <경마장 가는 길> 이후의 하일지는 좀 다른 게... 장편이라고 해봐야 소설의 부피가 200-300페이지 내외로 확 줄었죠. 아마 읽어도 읽어도 같은 내용의 변주와 반복이 끝이 없는 <경마장 가는 길> 정도로 지루하진 않을 겁니다. 다만 탈향과 방황으로 깊이 침잠하는 <새>는 좀 예외적일 것이고...
<우주피스 공화국>과 <누나>는 같이 읽어보세요. 제각기 읽어도 재밌지만, 등을 마주대고 정반대편을 바라보는 쌍둥이와 같은 작품들이라는 점에서 같이 읽어야 좋습니다. 둘 합쳐봐야 분량이 <경마장 가는 길> 하나도 못 미칠테니 부담도 적어요.
<우주피스 공화국>과 <누나>는 같이 읽어보세요. 제각기 읽어도 재밌지만, 등을 마주대고 정반대편을 바라보는 쌍둥이와 같은 작품들이라는 점에서 같이 읽어야 좋습니다. 둘 합쳐봐야 분량이 <경마장 가는 길> 하나도 못 미칠테니 부담도 적어요.
하아... 하일지의 작품리뷰가 홍차넷에 올라오다니... 일단 감격의 눈물을 좀 닦고...
제가 언젠가는 하일지의 작품을 이어서 즉, [경마장-새-우주피스-누나]로 이어지는 세계관에 대해 글을 한 번 써보려고 했는데 마르코폴로님이 [진술]의 리뷰를 써주실 줄 생각도 못했어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작가고, 세계에 자랑할만한 작가이며, 유일하게 노벨상을 받을만한 작가로 여기고 있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하일지의 작품은 [경마... 더 보기
제가 언젠가는 하일지의 작품을 이어서 즉, [경마장-새-우주피스-누나]로 이어지는 세계관에 대해 글을 한 번 써보려고 했는데 마르코폴로님이 [진술]의 리뷰를 써주실 줄 생각도 못했어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작가고, 세계에 자랑할만한 작가이며, 유일하게 노벨상을 받을만한 작가로 여기고 있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하일지의 작품은 [경마... 더 보기
하아... 하일지의 작품리뷰가 홍차넷에 올라오다니... 일단 감격의 눈물을 좀 닦고...
제가 언젠가는 하일지의 작품을 이어서 즉, [경마장-새-우주피스-누나]로 이어지는 세계관에 대해 글을 한 번 써보려고 했는데 마르코폴로님이 [진술]의 리뷰를 써주실 줄 생각도 못했어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작가고, 세계에 자랑할만한 작가이며, 유일하게 노벨상을 받을만한 작가로 여기고 있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하일지의 작품은 [경마장 가는 길]인데 이 작품 읽었을 때의 충격은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아요.
마스터피스라고 여기는 작품은 [누나]지만, 첫정을 들인게 경마장인지라 아끼고 또 아끼게되네요. 경마장 이후에 경마장시리즈로 나온... [경마장의 오리나무] 등등의 연작을 아주 어렵게 구해 읽었는데, 팟저님이 말씀해주신 대로 \'소설이 왜 소설인가\'에 대해 소설로 답하는 작품들이지요. 우리 문학계가 워낙 한국적 리얼리즘의 전통이 강력하고, 거기다 생뚱맞게도 독자들 사이에는 아름다운(?) 문장이 어쩌고 저쩌고하는 기괴한 평가 지형을 보이는지라, 하일지의 작품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죠. 언제가 마르코폴로님하고 소설에 관해 이야기를 나눌 때 민음사 편집장의 블로그를 링크 해드린거 아마 기억하실지 모르겠네요. 그가 하일지를 평가하는 눈은 정확하죠. 우리 문학계가 발전한다면 하일지에 대한 평가는 달라질 것입니다. 언제가 될런지요.
저는 하일지의 [진술]이, 위에 제가 하일지의 작품관을 이야기할 때 손꼽는 네 가지의 작품, 즉 [경마장-새-우주피스-누나]의 고리에서 살짝 빠져나와 화자의 실험성을 밀고나간 스핀오프처럼 읽었습니다. 기술하신대로 [믿을 수 없는 화자]와 [내포저자]의 개념은 하일지의 작품의 포스트모더니티를 이야기할 때 놓치고 넘어가기 어려운 부분인데, 이런 화자의 문제가 완전히 완성되는 [누나]와, 뫼비우스의 띠처럼 처음과 끝이 연결되어 완전히 닫힌 하나의 세계로서 작용하는 [우주피스 공화국]은 하일지의 작품 세계의 완성이라고 볼 수 있지요. 이 두 작품을 연결하여 쓴다면? 그건 바로 노벨문학상감이죠.
그러나 그러나... 하일지가 홍차넷에 리뷰로 올라왔다는 것만으로도, 그것도 [진술]은 꽤나 오래전 작품이죠. 감동 그 자체입니다.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하일지 사랑합니다.
제가 언젠가는 하일지의 작품을 이어서 즉, [경마장-새-우주피스-누나]로 이어지는 세계관에 대해 글을 한 번 써보려고 했는데 마르코폴로님이 [진술]의 리뷰를 써주실 줄 생각도 못했어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작가고, 세계에 자랑할만한 작가이며, 유일하게 노벨상을 받을만한 작가로 여기고 있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하일지의 작품은 [경마장 가는 길]인데 이 작품 읽었을 때의 충격은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아요.
마스터피스라고 여기는 작품은 [누나]지만, 첫정을 들인게 경마장인지라 아끼고 또 아끼게되네요. 경마장 이후에 경마장시리즈로 나온... [경마장의 오리나무] 등등의 연작을 아주 어렵게 구해 읽었는데, 팟저님이 말씀해주신 대로 \'소설이 왜 소설인가\'에 대해 소설로 답하는 작품들이지요. 우리 문학계가 워낙 한국적 리얼리즘의 전통이 강력하고, 거기다 생뚱맞게도 독자들 사이에는 아름다운(?) 문장이 어쩌고 저쩌고하는 기괴한 평가 지형을 보이는지라, 하일지의 작품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죠. 언제가 마르코폴로님하고 소설에 관해 이야기를 나눌 때 민음사 편집장의 블로그를 링크 해드린거 아마 기억하실지 모르겠네요. 그가 하일지를 평가하는 눈은 정확하죠. 우리 문학계가 발전한다면 하일지에 대한 평가는 달라질 것입니다. 언제가 될런지요.
저는 하일지의 [진술]이, 위에 제가 하일지의 작품관을 이야기할 때 손꼽는 네 가지의 작품, 즉 [경마장-새-우주피스-누나]의 고리에서 살짝 빠져나와 화자의 실험성을 밀고나간 스핀오프처럼 읽었습니다. 기술하신대로 [믿을 수 없는 화자]와 [내포저자]의 개념은 하일지의 작품의 포스트모더니티를 이야기할 때 놓치고 넘어가기 어려운 부분인데, 이런 화자의 문제가 완전히 완성되는 [누나]와, 뫼비우스의 띠처럼 처음과 끝이 연결되어 완전히 닫힌 하나의 세계로서 작용하는 [우주피스 공화국]은 하일지의 작품 세계의 완성이라고 볼 수 있지요. 이 두 작품을 연결하여 쓴다면? 그건 바로 노벨문학상감이죠.
그러나 그러나... 하일지가 홍차넷에 리뷰로 올라왔다는 것만으로도, 그것도 [진술]은 꽤나 오래전 작품이죠. 감동 그 자체입니다.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하일지 사랑합니다.
하일지 <누나>의 첫 두 챕터를 올립니다.
제가 쓴 덧글을 다시 읽어보니 아무래도 소설을 읽지 않은 유저들이 <누나>를 파악하는 데 영 도움이 못 될 거 같아서요.
천진하고 유쾌한 소설입니다. 재밌게 읽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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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만과 박노마]
새벽이 오기 전에 나무들은 길거리를 걸어다녔다. 우체국 앞 상수리나무도, 향교 앞 은행나무도, 신작로를 따라 늘어서 있는 미루나무도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길거리를 싸돌아다녔다. 바람이라도 부는 ... 더 보기
제가 쓴 덧글을 다시 읽어보니 아무래도 소설을 읽지 않은 유저들이 <누나>를 파악하는 데 영 도움이 못 될 거 같아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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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진하고 유쾌한 소설입니다. 재밌게 읽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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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만과 박노마]
새벽이 오기 전에 나무들은 길거리를 걸어다녔다. 우체국 앞 상수리나무도, 향교 앞 은행나무도, 신작로를 따라 늘어서 있는 미루나무도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길거리를 싸돌아다녔다. 바람이라도 부는 밤이면 나무들은 휘휘소리까지 내며 걸어 다니고 있었는데, 그것은 흡사 밤늦도록 휘파람을 불며 동네를 누비고 다녔던 부랑자들 같았다. 나무들이 길거리를 활보하고 다니는 밤이면 나는 으레 오줌을 쌌다.
동네 부랑자들 중에서도 제일 재수 없는 건 박대장의 아들 박수만이었다. 박수만의 자지는 실한 왜무같이 큰데, 커다란 독버섯 모양으로 불그스름한 대가리가 훌떡 까져 있어서 정말 흉측했다. 그 기괴한 자지가 부끄럽지도 않은지 박수만은, 멋을 내려고 일부러 그렇게 했겠지만, 시커먼 머리카락을 한 움쿰이나 자지 윗부분에 붙이고 있었다.
그런 박수만과 그의 무리가 언제부터인지 저녁마다 우리 집 주위를 배회하면서 휘파람을 불곤 했다. 그런 밤이면 나는 잠들지 않으려고 애쓰곤 했다. 누나를 감시해야했기 때문이었다. 엄마가 살아 있다면 내가 굳이 누나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겠지만 엄마가 없으니 나라도 누나를 감시해야 했던 것이다.
물론 나는 누나를 믿어야 했다. 나보다 다섯 살이나 많은 나의 동복이니까 말이다. 게다가, 이복동생들을 제외하면 우리 가족은 모두 도회지에서 살다 왔고, 엄마가 죽고 가세가 기울어 비록 끝을 내지는 못했지만 누나는 한 학년이 열세 학급이나 되는 큰 학교에서 5학년까지 다녔으니, 이 시골 처녀들하고는 어디가 달라도 달랐다. 누나는 글자도 반듯하게 쓸 줄 알았고, 책도 잘 읽었다. 그런 누나의 눈에 밤마다 몰려다니며 휘파람이나 불어 대는 대장장이 아들과 그 무리들이 얼마나 한심하게 보였겠는가. 그러니 내가 굳이 누나를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그러나 지난해 심한 학질에 걸려 오랫동안 고생을 하던 누나는 어느 날 아침 공복에 금계랍을 한꺼번에 세 알이나 먹어 버렸다. 그 빨간색 알약이 얼마나 독했던지 그 조신했던 누나가 갑자기 허옇게 눈알을 까뒤집고 히히히 소리 내어 웃으며 빙글빙글 마당을 돌기 시작했다. 방에는 이복동생이 똥을 싸 놓고 울고 있었는데도 그런 것은 안중에도 없는 것 같았다. 놀란 아버지가 누나의 따귀를 찰싹찰싹 때리며 정신 차리라고 소리쳤지만 소용없었다. 누나는 연신 히히히 웃으며 헛소림나 해 댔다. 약을 토하게 하려고 살뜨물을 받아 먹여 보기도 했지만 소용없었다. 결국 아버지는 누나를 들쳐 업고 읍내를 향해 내달렸다. 다 큰 처녀가 아버지의 등에 업혀 가는 모습은 등굣길 아이들의 구경거리였다.
다행히도 누나는 차차 정신이 돌아오는 것 같았다.
\"아버지, 그냥 걸어갈게요.\"하고 누나가 말했던 것이다.
아버지는 괜찮으냐고 물었고, 누나는 괜찮다고 말했다. 아버지 등에서 내린 누나는 길가에 주저앉아 멍한 눈으로 강을 굽어보고 있었다. 아주 오랫동안 시퍼런 강물만 바라보고 있던 누나는 이윽고 나에게, 학교에 안 가고 뭐하느냐고 물었다.
그 일이 있은 뒤 그토록 누나를 괴롭혔던 학질은 똑 떨어졌다. 그러나 그때부터 나는 누나를 믿지 못하게 되었다. 괜찮다고는 하지만 누나는 제정신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나는 염려했던 것이다. 그래서 어느 날 나는 누나에게, 박수만이 얼마나 망측한 인간인가 하는 걸 일러두기 위하여, 지난 여름 물가에서 멱을 감다가 본 박수만의 자지에 대해 들려주었다. 내 이야기를 들은 누나는 키득키득 웃을 뿐이었다. 아마도 내 말을 믿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덧붙여 말했다.
\"증말이야. 내 눈으로 똑똑히 봤단 말이야. 그리고 <한 많은 38선>에서는 인민군으로 나갔던 놈이야.\"
박수만의 여동생 박노마도 재수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어느 여름날 아침 내가 잠을 자고 있는데, 문밖에서 누나를 상대로 박노마가 무어라 재잘재잘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눈을 떠 보니 해는 벌써 중천에 떠 있고, 방문은 활짝 열렸는데, 나는 발가벗겨진 채 방바닥에 널브러져 자고 있었다. 새벽녘에 오줌을 싸는 바람에 계모가 또 내 옷을 홀딱 벗겨 버린 것이 틀림없었다. 오줌을 쌌기로서니 다 큰 아들의 옷을 홀딱 벗겨 버린 계모가 야속했지만, 그것을 탓할 겨를이 없었다. 문밖에서는 까무잡잡한 얼굴의 박노마가 말끄러미 내 자지를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나보다 두 살이나 어린 계집애가 당황하는 기색 하나 없이 내 자지를 말똥히 바라보고 있었으니 정말 요망스럽고 재수 없는 계집애가 아닐 수 없었다.
원망스럽기는 누나도 마차가지였다. 다 큰 남동생이 발가벗은 채 자고 있는데 이웃집 계집애가 왔으면 문이라도 닫아주고 이야길 하든지 말든지 할 일 아닌가? 이래저래 화가 난 나는 누나에게 내 팬티와 바지 어디 있느냐고 소리쳤다. 누나는 빨랫줄을 가리켜 보이며, 아침에 빨아 널었는데 아직 덜 말랐다고 했다. 나는 괜찮다고 하면서 빨리 달라고 소리쳤다. 그러자 누나는 계모가 입던 치마 하나르 던져 주며 이거라도 입고 있으라고 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고무줄을 넣은 커다란 치마를 모가지만 내놓고 입었다. 그때서야 박노마는 더 이상 구경거리가 없다고 생각한 듯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다. 정말 얄미운 계집아이이고, 생각할수록 분통이 터지는 일이었다.
그러나 나는 마냥 화를 내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내가 걱정했던 건 노마가 동네방네 소문을 내고 다니면 어쩌나 하는 것이었다. 내 자지 봤다는 소문이 같은 반에 다니는 피가영이의 귀에까지 들어가는 날이면 정말이지 창피스러워 더 이상 학교에 다닐 수 없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물론 나의 자지는 박수만의 그것처럼 흉측하게 크지도 않았고 대가리가 훌떡 까지지도 않아서 특별히 흉잡을 만한 것은 없었다. 멋을 부리기 위해 자지에 머리카락을 붙이고 있지도 않았으니까 말이다. 그런데도 노마가 내 자지를 봤다는 소문을 내고 다닌다면 나는 감당하기 쉽지 않을 것 같았다. 5학년이나 된 아이가 오줌을 싸 팬티까지 홀랑 벗겨진 채 자고 있었다는 말까지 덧붙인다면 나는 영락없이 아이들의 놀림감이 될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노마가 만약 소문을 내고 다닌다면 나도 노마 오빠 박수만의 자지를 봤다는 소문을 내고 다니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흉측하게 생긴 데다가 멋을 내기 위해서 머리카락을 한 움큼이나 붙이고 있었으니 박수만의 자지는 충분히 소문거리가 될 만도 했다. 그러나 그걸 소문냈다가는 화가 난 박수만이 대장간에서 쓰는 커다란 해머를 들고 와 내 머리통을 내려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리고 누나에게도 무슨 해코지를 할 수도 있다. <한 많은 38선>에서 국군을 괴롭혔던 걸로 보아 능히 그러고도 남을 놈이었다.
가장 좋은 방법은 나도 노마의 보지를 보는 것이었다. 내가 보지를 보고 나면 그 계집애는 내 자지를 봤다는 소문을 내지 못할 테니까 말이다. 그런데도 그 계집애가 소문을 낸다면 나도 소문을 내면 그만이었다. 게다가 노마도 자신의 오빠처럼 멋을 부리기 위해 보지에 한 움큼 머리카락을 붙이고 다닌다는 헛소문이라도 내게 되면 호기심 많은 사내아이들은 궁금증을 참지 못해서 노마의 치마를 걷어 올리고 팬티를 왈칵 벗겨 버리곤 할 거라는 생각을 하자 나는 갑자기 통쾌해졌다.
그런데 문제는 노마의 보지를 어떻게 보느냐 하는 것이었다. 몰래 다가가 갑자기 확 팬티를 벗기고 볼 수는 있겠지만 그건 점잖은 사람이 차마 할 짓이 아니었다. 게다가 박노마같이 요망한 계집아이의 보지는 보라고 해도 굳이 보고 싶지도 않았다. 도끼 자국처럼 쪽 찢어진 것 외에 뭐가 특별한 것이 있겠는가.
아편쟁이 조순규의 딸 조춘자의 보지는 좀 특이하기는 했다. 제 아버지가 아편을 해서 그런지 오줌 눌 때 보니 금계랍처럼 빨간색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특별히 볼만한 것은 아니었다. 보고 있기가 민망할 만큼 흉측할 뿐이었다. 아버지는 아편쟁이 조순규를 경멸했고, 나는 아편쟁이 딸 조춘자의 그 빨간 보지를 경멸했다. 그러던 터라 나는 여자아이의 보지 따위에는 관심도 없었다.
오석기의 여동생 오춘매의 보지도 좀 특이할 것이다. 몇 해 전 겨울밤, 깊은 잠에 빠져 있다가 오줌이 마려워 일어난 오춘매는 잠에 취해서 요강인 줄 알고 화로 위에 걸터앉아 버렸던 것이다. 그 바람에 심한 화상을 입었는데, 그 딱한 계집애의 보지를 나같이 점잖은 사람이 왜 굳이 보고 싶겠는가?
다행히도 박노마는 내 자지 봤다는 소문을 내고 다니지는 않았다. 그렇기는 하지만 나는 그런 재수 없는 계집애에게 내 자지를 보여주고 말았다는 것이 못내 억울했다. 피가영에게 그것을 보여 주었더라면 그토록 억울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바로 그 점 때문에 나는 가영이에게 미안해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귀신을 보는 할멈]
내가 박수만과 박노마를 재수 없게 생각하는 진짜 이유는 박수만의 자지가 해괴망측하기 때문도 아니고, 박노마가 내 자지를 봤기 때문도 아니었다. 그들의 할머니가 귀신을 보기 때문이었다.
박노마의 할머니는 귀신같이 생겼다. 폭삭 늙은 얼굴에는 검은 사마귀가 덕지덕지 나 있고, 헝클어진 머리는 수세미 같았다. 조그마한 두 눈은 흡사 까마귀 눈처럼 동그랗고 눈알은 노르스름했다. 정말이지 보는 것만으로도 재수가 없어지는 할멈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 할멈을 보게 될까 봐 박 대장의 대장간 쪽으로는 잘 가지 않았다. 어쩌다 그 할멈을 보게 되면 재수가 없을까 봐 침을 세 번 뱉고 세 번 깨끔발 뛰기를 했다. 나뿐만 아니라 동출이도 병근이도 그렇게 했다. 그런데 그 할멈이 귀신을 볼 수 있다.
박노마의 할머니가 귀신을 보게 된 것은 어릴 때 까마귀 눈알을 먹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본래 까마귀는 워낙 눈이 좋아서 귀신까지도 볼 수 있다. 공동묘지에서 까마귀가 까옥까옥 우는 것도 알고 보면 귀신을 향해 짖는 것이다. 그런 까마귀의 눈알을 먹었으니 귀신을 보게 되는 것은 당연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흔히 눈이 좋아서 뭐든 귀신같이 잘 찾아내는 사람을 두고 \"까마귀 눈알을 먹었나?\"라고 말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까마귀 눈알을 잘 먹지 않는다. 귀신이 보이면 무서울 테니까 말이다. 그런데도 박노마 할머니가 까마귀 눈알을 먹게 된 것은 어릴 때 심한 삼눈을 앓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까마귀 눈알 덕분에 삼눈은 나았지만 그때부터 두 눈이 까마귀 눈처럼 동그랗고 눈알이 노르스름하게 변해서는 귀신을 보게 되었다고 한다.
뭘 깜빡깜빡 잘 잊어버리는 사람을 두고 흔히 \"가마귀 고기를 먹었나?\"하고 핀잔주는 소리를 듣게 되는데, 까마귀 고기를 먹는다고 기억력이 없어진다고 믿는 것은 미신이다. 학교 선생님도 그렇게 말했다. 그것은 과학적인 생각이 아니라고 말이다. 그것은 까마귀 고기를 먹지 못하게 주의를 주기 위해서 하는 말인데, 까마귀 고기를 먹다가 자칫 눈알까지 먹게 되면 귀신을 보게 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아무리 배가 고파도 까마귀 고기는 먹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도 박노마의 할머니는 까마귀 눈알을 먹었으니 어떻게 되었겠는가?
삼눈에 걸리면 붕어 세 마리를 대가리가 겹치도록 종이 위에 그려 놓고, 해가 돋을 때 바늘로 그 붕어 눈을 꼭 질러 방문에 붙인 뒤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며 \"붕어 세마리가 삼눈 앓지 사람이 삼눈 앓나?\"하고 세 번만 말하면 씻은 듯이 낫는다. 그런 간단한 방법은 모르고 까마귀 눈알을 먹어 버렸다니, 참 미련한 짓을 한 것이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사람은 박노마의 할머니가 귀신을 보게 된 것은 저승에 갔다 왔기 때문이라고 했다. 어른들이 하는 말에 따르면 10여 년 전에 박노마의 할머니는 심한 장질부사를 앓아 죽었다고 한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박 대장 집에 모여 장례를 치르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사흘째 되던 날 밤에 병풍 뒤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다고 한다. 그래서 병풍 뒤로 가 봤는데 글쎄 박노마의 할머니가 관 뚜껑을 열고 일어나 앉아 있더라는 것이었다. 그때 일은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친다는 듯이 어른들도 치를 떨었다.
사흘 만에 되살아난 박노마의 할머니한테서 사람들은 저승에 갔다 온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혼련이 된 박노마의 할머니가 가장 먼저 본 것은 누렇게 보리가 익은 끝없이 넓은 보리밭이었다고 한다. 보리밭 사이로는 황톳길이 나 있어서 그 길을 따라 걸어갔다고 한다. 가다가 배가 고파 보리깜부기를 몇 개 꺾어 먹었다고 한다. 그런데 깜부기 가루가 어굴에 묻어 그것이 지금까지 남아 할멈의 얼굴에 난 검은 사마귀가 된 것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지금은 보리 철도 아닌데 무슨 보리밭이 있었겠어요?\"
처음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누군가가 할멈에게 물었다고 한다. 그러자 할멈은 여기와 거기는 철이 다른 것 같더라도 했다고 한다.
그야 어쨌든, 보리밭 사이로 난 황톳길을 따라 한참 가다 보니 저만치 도포를 입은 사람들이 가고 있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그 사람들이 장에 가는 줄로만 알았다고 한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날이 장날이 아니었다고 한다. 그래서 장날도 아닌데 어딜 가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그랬더니 누군가가 \"저승 가지 어딜 가요?\" 하고 말했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서야 가만히 보니 그 사람들이 모두 죽은 혼령들이었다고 한다. 박노마의 할머니도 아무 생각 없이 그 혼령들을 따라갔다고 한다.
그렇게 한참을 가다 보니 강이 나타났고, 강가에 이르러 보니 키가 7척이나 되는 뱃사공이 기다리고 있었다고 한다. 혼령들은 모두 배에 올랐고, 박노마의 할머니도 배에 올랐다고 한다.
그렇게 저승으로 갔던 박노마의 할머니가 어떻게 이승으로 되돌아오게 되었는가 하는 것은 다소 모호했다. 배에 오르다가 신바 한 짝을 강물에 빠뜨려서 신발을 찾으려고 배에서 내렸다는 말도 있고, 배를 타고 건너갔는데 얼굴에 시커멓게 보리깜부기가 묻은 걸 보고 염라대왕이 낯을 찌푸리고 세수를 하고 오라고 해서 돌아왔다고 하기도 한다.
그때부터 사람이 죽으면 제일 먼저 죽은 사람의 얼굴에 보리깜부기 칠을 해 주는 풍속이 생긴 것이다. 되살아나게 하기 위해서 말이다. 때때로 사람들이 \"보리깜부기 칠해줄 사람도 없다.\"라고 말하는 것을 듣게 된다. 이 말은 일점 자식이 없다는 뜻인데, 자식이 없어 죽은 뒤에 얼굴에 보리깜부기를 칠해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말이다.
그야 어쨌든, 저승에 갔다 온 후로 박노마의 할머니는 죽은 혼령을 보게 되었다고 한다.
까마귀 눈알을 먹어서 그렇건 저승을 갔다 와서 그렇건 박노마의 할머니가 귀신을 보는 것은 틀림없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렇겠지만 그 재수 없는 할멈은 때때로 \"저기 굶어 죽은 귀신이 가네\", \"저기 목매달아 죽은 귀신이 가네\", \"저기 물에 빠져 죽은 귀신이 가네\"하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이 말을 들으면 아이들은 질겁했다.
그런데 그 재수없는 할망구는 때때로 아이들을 놀려먹기 위해서 일부러 그런 말을 하는 것 같기도 했다. 한번은 그 할멈의 말을 듣고 새파랗게 질려 있는 우리가 딱했던지 허도가 이런 말을 했기 때문이다.
\"거짓말이야. 너네들 놀려 먹으려고 일부러 하는 말이야.\"
허도는 진지한 청년이었기 때문에 믿음이 가긴 했다. 게다가 그는 책도 많이 읽는 사람이었다. 그렇기는 하지만 허도는 천품이 워낙 착하고 자상해서 누구에게나 듣기 좋은 말만 해주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허도의 이 말도 곧이곧대로 믿을수만은 없었다. 게다가, 우리를 위로해 주기 위해서 그렇게 했겠지만, 그날 허도는 이런 말까지 덧붙였던 것이다.
\"세상에 귀신은 없단다.\"
귀신이 없다는 그의 말을 우리가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는가? 귀신이 없다면 서낭당은 왜 지었으며, 제사는 왜 지내는가? 밤이 되면 귀신의 울음소리가 도처에서 들려오고, 귀신을 봤다는 사람도 부지기수인데, 세상에 귀신이 없다는 허도의 말을 우리가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는가 말이다.
저승에 갔다왔기 때문인지 그런지는 모르지만 박노마의 할머니는 세상에 무엇은 것이 없는 사람이었다. 가을철이 되면 그 깊은 대산 골짜기를 일주일이고 열흘이고 혼자 돌아다니며 버섯이며 더덕을 캐고 도토리를 주웠다. 어떨 때는 약에 쓴다고 머리가 두 개 달린 살모사가 금계랍처럼 빨간 독사를 잡아오기도 했다. 그렇게 혼자 산속을 헤집고 다니다가 밤이 되면 굴속에 들어가 잔다고 한다.
\"그러다 굴속에 짐승이라도 들앉았으면 어쩌려고?\"
듣고 있던 계모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나 그 할멈은 호랑이도 무서워하지 않는다고 한다. 한번은 실제로 호랑이 굴속에 들어간 적이 있는데 굴 저편에 호랑이 새끼 세 마리가 놀고 있는 걸 보고 이쪽에서 그냥 잤다고 한다.
그렇게 무서운 것이 없는 사람이니 마을에 궂은일이 있으면 불러다 시켰다. 사람이 죽으면 염을 하기 전에 시체를 닦는 일이라든가 어린애가 죽으면 뒷산 애장터에 갖다 묻는다든가 하는 일 따위가 그런 것이었다.
그야 어쨌든 그 재수없는 할멈의 손녀인 박노마가 내 자지를 봐 버렸으니 장차 이 일을 어쩌면 좋은가 하는 생각에 나는 잠이 오지 않았다. 그리고 그날 내가 오줌을 쌌다고 깝대기를 홀딱 벗겨 버린 계모를 나는 두고두고 원망했다.
제가 쓴 덧글을 다시 읽어보니 아무래도 소설을 읽지 않은 유저들이 <누나>를 파악하는 데 영 도움이 못 될 거 같아서요.
천진하고 유쾌한 소설입니다. 재밌게 읽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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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만과 박노마]
새벽이 오기 전에 나무들은 길거리를 걸어다녔다. 우체국 앞 상수리나무도, 향교 앞 은행나무도, 신작로를 따라 늘어서 있는 미루나무도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길거리를 싸돌아다녔다. 바람이라도 부는 밤이면 나무들은 휘휘소리까지 내며 걸어 다니고 있었는데, 그것은 흡사 밤늦도록 휘파람을 불며 동네를 누비고 다녔던 부랑자들 같았다. 나무들이 길거리를 활보하고 다니는 밤이면 나는 으레 오줌을 쌌다.
동네 부랑자들 중에서도 제일 재수 없는 건 박대장의 아들 박수만이었다. 박수만의 자지는 실한 왜무같이 큰데, 커다란 독버섯 모양으로 불그스름한 대가리가 훌떡 까져 있어서 정말 흉측했다. 그 기괴한 자지가 부끄럽지도 않은지 박수만은, 멋을 내려고 일부러 그렇게 했겠지만, 시커먼 머리카락을 한 움쿰이나 자지 윗부분에 붙이고 있었다.
그런 박수만과 그의 무리가 언제부터인지 저녁마다 우리 집 주위를 배회하면서 휘파람을 불곤 했다. 그런 밤이면 나는 잠들지 않으려고 애쓰곤 했다. 누나를 감시해야했기 때문이었다. 엄마가 살아 있다면 내가 굳이 누나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겠지만 엄마가 없으니 나라도 누나를 감시해야 했던 것이다.
물론 나는 누나를 믿어야 했다. 나보다 다섯 살이나 많은 나의 동복이니까 말이다. 게다가, 이복동생들을 제외하면 우리 가족은 모두 도회지에서 살다 왔고, 엄마가 죽고 가세가 기울어 비록 끝을 내지는 못했지만 누나는 한 학년이 열세 학급이나 되는 큰 학교에서 5학년까지 다녔으니, 이 시골 처녀들하고는 어디가 달라도 달랐다. 누나는 글자도 반듯하게 쓸 줄 알았고, 책도 잘 읽었다. 그런 누나의 눈에 밤마다 몰려다니며 휘파람이나 불어 대는 대장장이 아들과 그 무리들이 얼마나 한심하게 보였겠는가. 그러니 내가 굳이 누나를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그러나 지난해 심한 학질에 걸려 오랫동안 고생을 하던 누나는 어느 날 아침 공복에 금계랍을 한꺼번에 세 알이나 먹어 버렸다. 그 빨간색 알약이 얼마나 독했던지 그 조신했던 누나가 갑자기 허옇게 눈알을 까뒤집고 히히히 소리 내어 웃으며 빙글빙글 마당을 돌기 시작했다. 방에는 이복동생이 똥을 싸 놓고 울고 있었는데도 그런 것은 안중에도 없는 것 같았다. 놀란 아버지가 누나의 따귀를 찰싹찰싹 때리며 정신 차리라고 소리쳤지만 소용없었다. 누나는 연신 히히히 웃으며 헛소림나 해 댔다. 약을 토하게 하려고 살뜨물을 받아 먹여 보기도 했지만 소용없었다. 결국 아버지는 누나를 들쳐 업고 읍내를 향해 내달렸다. 다 큰 처녀가 아버지의 등에 업혀 가는 모습은 등굣길 아이들의 구경거리였다.
다행히도 누나는 차차 정신이 돌아오는 것 같았다.
\"아버지, 그냥 걸어갈게요.\"하고 누나가 말했던 것이다.
아버지는 괜찮으냐고 물었고, 누나는 괜찮다고 말했다. 아버지 등에서 내린 누나는 길가에 주저앉아 멍한 눈으로 강을 굽어보고 있었다. 아주 오랫동안 시퍼런 강물만 바라보고 있던 누나는 이윽고 나에게, 학교에 안 가고 뭐하느냐고 물었다.
그 일이 있은 뒤 그토록 누나를 괴롭혔던 학질은 똑 떨어졌다. 그러나 그때부터 나는 누나를 믿지 못하게 되었다. 괜찮다고는 하지만 누나는 제정신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나는 염려했던 것이다. 그래서 어느 날 나는 누나에게, 박수만이 얼마나 망측한 인간인가 하는 걸 일러두기 위하여, 지난 여름 물가에서 멱을 감다가 본 박수만의 자지에 대해 들려주었다. 내 이야기를 들은 누나는 키득키득 웃을 뿐이었다. 아마도 내 말을 믿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덧붙여 말했다.
\"증말이야. 내 눈으로 똑똑히 봤단 말이야. 그리고 <한 많은 38선>에서는 인민군으로 나갔던 놈이야.\"
박수만의 여동생 박노마도 재수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어느 여름날 아침 내가 잠을 자고 있는데, 문밖에서 누나를 상대로 박노마가 무어라 재잘재잘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눈을 떠 보니 해는 벌써 중천에 떠 있고, 방문은 활짝 열렸는데, 나는 발가벗겨진 채 방바닥에 널브러져 자고 있었다. 새벽녘에 오줌을 싸는 바람에 계모가 또 내 옷을 홀딱 벗겨 버린 것이 틀림없었다. 오줌을 쌌기로서니 다 큰 아들의 옷을 홀딱 벗겨 버린 계모가 야속했지만, 그것을 탓할 겨를이 없었다. 문밖에서는 까무잡잡한 얼굴의 박노마가 말끄러미 내 자지를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나보다 두 살이나 어린 계집애가 당황하는 기색 하나 없이 내 자지를 말똥히 바라보고 있었으니 정말 요망스럽고 재수 없는 계집애가 아닐 수 없었다.
원망스럽기는 누나도 마차가지였다. 다 큰 남동생이 발가벗은 채 자고 있는데 이웃집 계집애가 왔으면 문이라도 닫아주고 이야길 하든지 말든지 할 일 아닌가? 이래저래 화가 난 나는 누나에게 내 팬티와 바지 어디 있느냐고 소리쳤다. 누나는 빨랫줄을 가리켜 보이며, 아침에 빨아 널었는데 아직 덜 말랐다고 했다. 나는 괜찮다고 하면서 빨리 달라고 소리쳤다. 그러자 누나는 계모가 입던 치마 하나르 던져 주며 이거라도 입고 있으라고 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고무줄을 넣은 커다란 치마를 모가지만 내놓고 입었다. 그때서야 박노마는 더 이상 구경거리가 없다고 생각한 듯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다. 정말 얄미운 계집아이이고, 생각할수록 분통이 터지는 일이었다.
그러나 나는 마냥 화를 내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내가 걱정했던 건 노마가 동네방네 소문을 내고 다니면 어쩌나 하는 것이었다. 내 자지 봤다는 소문이 같은 반에 다니는 피가영이의 귀에까지 들어가는 날이면 정말이지 창피스러워 더 이상 학교에 다닐 수 없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물론 나의 자지는 박수만의 그것처럼 흉측하게 크지도 않았고 대가리가 훌떡 까지지도 않아서 특별히 흉잡을 만한 것은 없었다. 멋을 부리기 위해 자지에 머리카락을 붙이고 있지도 않았으니까 말이다. 그런데도 노마가 내 자지를 봤다는 소문을 내고 다닌다면 나는 감당하기 쉽지 않을 것 같았다. 5학년이나 된 아이가 오줌을 싸 팬티까지 홀랑 벗겨진 채 자고 있었다는 말까지 덧붙인다면 나는 영락없이 아이들의 놀림감이 될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노마가 만약 소문을 내고 다닌다면 나도 노마 오빠 박수만의 자지를 봤다는 소문을 내고 다니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흉측하게 생긴 데다가 멋을 내기 위해서 머리카락을 한 움큼이나 붙이고 있었으니 박수만의 자지는 충분히 소문거리가 될 만도 했다. 그러나 그걸 소문냈다가는 화가 난 박수만이 대장간에서 쓰는 커다란 해머를 들고 와 내 머리통을 내려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리고 누나에게도 무슨 해코지를 할 수도 있다. <한 많은 38선>에서 국군을 괴롭혔던 걸로 보아 능히 그러고도 남을 놈이었다.
가장 좋은 방법은 나도 노마의 보지를 보는 것이었다. 내가 보지를 보고 나면 그 계집애는 내 자지를 봤다는 소문을 내지 못할 테니까 말이다. 그런데도 그 계집애가 소문을 낸다면 나도 소문을 내면 그만이었다. 게다가 노마도 자신의 오빠처럼 멋을 부리기 위해 보지에 한 움큼 머리카락을 붙이고 다닌다는 헛소문이라도 내게 되면 호기심 많은 사내아이들은 궁금증을 참지 못해서 노마의 치마를 걷어 올리고 팬티를 왈칵 벗겨 버리곤 할 거라는 생각을 하자 나는 갑자기 통쾌해졌다.
그런데 문제는 노마의 보지를 어떻게 보느냐 하는 것이었다. 몰래 다가가 갑자기 확 팬티를 벗기고 볼 수는 있겠지만 그건 점잖은 사람이 차마 할 짓이 아니었다. 게다가 박노마같이 요망한 계집아이의 보지는 보라고 해도 굳이 보고 싶지도 않았다. 도끼 자국처럼 쪽 찢어진 것 외에 뭐가 특별한 것이 있겠는가.
아편쟁이 조순규의 딸 조춘자의 보지는 좀 특이하기는 했다. 제 아버지가 아편을 해서 그런지 오줌 눌 때 보니 금계랍처럼 빨간색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특별히 볼만한 것은 아니었다. 보고 있기가 민망할 만큼 흉측할 뿐이었다. 아버지는 아편쟁이 조순규를 경멸했고, 나는 아편쟁이 딸 조춘자의 그 빨간 보지를 경멸했다. 그러던 터라 나는 여자아이의 보지 따위에는 관심도 없었다.
오석기의 여동생 오춘매의 보지도 좀 특이할 것이다. 몇 해 전 겨울밤, 깊은 잠에 빠져 있다가 오줌이 마려워 일어난 오춘매는 잠에 취해서 요강인 줄 알고 화로 위에 걸터앉아 버렸던 것이다. 그 바람에 심한 화상을 입었는데, 그 딱한 계집애의 보지를 나같이 점잖은 사람이 왜 굳이 보고 싶겠는가?
다행히도 박노마는 내 자지 봤다는 소문을 내고 다니지는 않았다. 그렇기는 하지만 나는 그런 재수 없는 계집애에게 내 자지를 보여주고 말았다는 것이 못내 억울했다. 피가영에게 그것을 보여 주었더라면 그토록 억울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바로 그 점 때문에 나는 가영이에게 미안해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귀신을 보는 할멈]
내가 박수만과 박노마를 재수 없게 생각하는 진짜 이유는 박수만의 자지가 해괴망측하기 때문도 아니고, 박노마가 내 자지를 봤기 때문도 아니었다. 그들의 할머니가 귀신을 보기 때문이었다.
박노마의 할머니는 귀신같이 생겼다. 폭삭 늙은 얼굴에는 검은 사마귀가 덕지덕지 나 있고, 헝클어진 머리는 수세미 같았다. 조그마한 두 눈은 흡사 까마귀 눈처럼 동그랗고 눈알은 노르스름했다. 정말이지 보는 것만으로도 재수가 없어지는 할멈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 할멈을 보게 될까 봐 박 대장의 대장간 쪽으로는 잘 가지 않았다. 어쩌다 그 할멈을 보게 되면 재수가 없을까 봐 침을 세 번 뱉고 세 번 깨끔발 뛰기를 했다. 나뿐만 아니라 동출이도 병근이도 그렇게 했다. 그런데 그 할멈이 귀신을 볼 수 있다.
박노마의 할머니가 귀신을 보게 된 것은 어릴 때 까마귀 눈알을 먹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본래 까마귀는 워낙 눈이 좋아서 귀신까지도 볼 수 있다. 공동묘지에서 까마귀가 까옥까옥 우는 것도 알고 보면 귀신을 향해 짖는 것이다. 그런 까마귀의 눈알을 먹었으니 귀신을 보게 되는 것은 당연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흔히 눈이 좋아서 뭐든 귀신같이 잘 찾아내는 사람을 두고 \"까마귀 눈알을 먹었나?\"라고 말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까마귀 눈알을 잘 먹지 않는다. 귀신이 보이면 무서울 테니까 말이다. 그런데도 박노마 할머니가 까마귀 눈알을 먹게 된 것은 어릴 때 심한 삼눈을 앓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까마귀 눈알 덕분에 삼눈은 나았지만 그때부터 두 눈이 까마귀 눈처럼 동그랗고 눈알이 노르스름하게 변해서는 귀신을 보게 되었다고 한다.
뭘 깜빡깜빡 잘 잊어버리는 사람을 두고 흔히 \"가마귀 고기를 먹었나?\"하고 핀잔주는 소리를 듣게 되는데, 까마귀 고기를 먹는다고 기억력이 없어진다고 믿는 것은 미신이다. 학교 선생님도 그렇게 말했다. 그것은 과학적인 생각이 아니라고 말이다. 그것은 까마귀 고기를 먹지 못하게 주의를 주기 위해서 하는 말인데, 까마귀 고기를 먹다가 자칫 눈알까지 먹게 되면 귀신을 보게 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아무리 배가 고파도 까마귀 고기는 먹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도 박노마의 할머니는 까마귀 눈알을 먹었으니 어떻게 되었겠는가?
삼눈에 걸리면 붕어 세 마리를 대가리가 겹치도록 종이 위에 그려 놓고, 해가 돋을 때 바늘로 그 붕어 눈을 꼭 질러 방문에 붙인 뒤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며 \"붕어 세마리가 삼눈 앓지 사람이 삼눈 앓나?\"하고 세 번만 말하면 씻은 듯이 낫는다. 그런 간단한 방법은 모르고 까마귀 눈알을 먹어 버렸다니, 참 미련한 짓을 한 것이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사람은 박노마의 할머니가 귀신을 보게 된 것은 저승에 갔다 왔기 때문이라고 했다. 어른들이 하는 말에 따르면 10여 년 전에 박노마의 할머니는 심한 장질부사를 앓아 죽었다고 한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박 대장 집에 모여 장례를 치르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사흘째 되던 날 밤에 병풍 뒤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다고 한다. 그래서 병풍 뒤로 가 봤는데 글쎄 박노마의 할머니가 관 뚜껑을 열고 일어나 앉아 있더라는 것이었다. 그때 일은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친다는 듯이 어른들도 치를 떨었다.
사흘 만에 되살아난 박노마의 할머니한테서 사람들은 저승에 갔다 온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혼련이 된 박노마의 할머니가 가장 먼저 본 것은 누렇게 보리가 익은 끝없이 넓은 보리밭이었다고 한다. 보리밭 사이로는 황톳길이 나 있어서 그 길을 따라 걸어갔다고 한다. 가다가 배가 고파 보리깜부기를 몇 개 꺾어 먹었다고 한다. 그런데 깜부기 가루가 어굴에 묻어 그것이 지금까지 남아 할멈의 얼굴에 난 검은 사마귀가 된 것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지금은 보리 철도 아닌데 무슨 보리밭이 있었겠어요?\"
처음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누군가가 할멈에게 물었다고 한다. 그러자 할멈은 여기와 거기는 철이 다른 것 같더라도 했다고 한다.
그야 어쨌든, 보리밭 사이로 난 황톳길을 따라 한참 가다 보니 저만치 도포를 입은 사람들이 가고 있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그 사람들이 장에 가는 줄로만 알았다고 한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날이 장날이 아니었다고 한다. 그래서 장날도 아닌데 어딜 가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그랬더니 누군가가 \"저승 가지 어딜 가요?\" 하고 말했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서야 가만히 보니 그 사람들이 모두 죽은 혼령들이었다고 한다. 박노마의 할머니도 아무 생각 없이 그 혼령들을 따라갔다고 한다.
그렇게 한참을 가다 보니 강이 나타났고, 강가에 이르러 보니 키가 7척이나 되는 뱃사공이 기다리고 있었다고 한다. 혼령들은 모두 배에 올랐고, 박노마의 할머니도 배에 올랐다고 한다.
그렇게 저승으로 갔던 박노마의 할머니가 어떻게 이승으로 되돌아오게 되었는가 하는 것은 다소 모호했다. 배에 오르다가 신바 한 짝을 강물에 빠뜨려서 신발을 찾으려고 배에서 내렸다는 말도 있고, 배를 타고 건너갔는데 얼굴에 시커멓게 보리깜부기가 묻은 걸 보고 염라대왕이 낯을 찌푸리고 세수를 하고 오라고 해서 돌아왔다고 하기도 한다.
그때부터 사람이 죽으면 제일 먼저 죽은 사람의 얼굴에 보리깜부기 칠을 해 주는 풍속이 생긴 것이다. 되살아나게 하기 위해서 말이다. 때때로 사람들이 \"보리깜부기 칠해줄 사람도 없다.\"라고 말하는 것을 듣게 된다. 이 말은 일점 자식이 없다는 뜻인데, 자식이 없어 죽은 뒤에 얼굴에 보리깜부기를 칠해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말이다.
그야 어쨌든, 저승에 갔다 온 후로 박노마의 할머니는 죽은 혼령을 보게 되었다고 한다.
까마귀 눈알을 먹어서 그렇건 저승을 갔다 와서 그렇건 박노마의 할머니가 귀신을 보는 것은 틀림없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렇겠지만 그 재수 없는 할멈은 때때로 \"저기 굶어 죽은 귀신이 가네\", \"저기 목매달아 죽은 귀신이 가네\", \"저기 물에 빠져 죽은 귀신이 가네\"하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이 말을 들으면 아이들은 질겁했다.
그런데 그 재수없는 할망구는 때때로 아이들을 놀려먹기 위해서 일부러 그런 말을 하는 것 같기도 했다. 한번은 그 할멈의 말을 듣고 새파랗게 질려 있는 우리가 딱했던지 허도가 이런 말을 했기 때문이다.
\"거짓말이야. 너네들 놀려 먹으려고 일부러 하는 말이야.\"
허도는 진지한 청년이었기 때문에 믿음이 가긴 했다. 게다가 그는 책도 많이 읽는 사람이었다. 그렇기는 하지만 허도는 천품이 워낙 착하고 자상해서 누구에게나 듣기 좋은 말만 해주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허도의 이 말도 곧이곧대로 믿을수만은 없었다. 게다가, 우리를 위로해 주기 위해서 그렇게 했겠지만, 그날 허도는 이런 말까지 덧붙였던 것이다.
\"세상에 귀신은 없단다.\"
귀신이 없다는 그의 말을 우리가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는가? 귀신이 없다면 서낭당은 왜 지었으며, 제사는 왜 지내는가? 밤이 되면 귀신의 울음소리가 도처에서 들려오고, 귀신을 봤다는 사람도 부지기수인데, 세상에 귀신이 없다는 허도의 말을 우리가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는가 말이다.
저승에 갔다왔기 때문인지 그런지는 모르지만 박노마의 할머니는 세상에 무엇은 것이 없는 사람이었다. 가을철이 되면 그 깊은 대산 골짜기를 일주일이고 열흘이고 혼자 돌아다니며 버섯이며 더덕을 캐고 도토리를 주웠다. 어떨 때는 약에 쓴다고 머리가 두 개 달린 살모사가 금계랍처럼 빨간 독사를 잡아오기도 했다. 그렇게 혼자 산속을 헤집고 다니다가 밤이 되면 굴속에 들어가 잔다고 한다.
\"그러다 굴속에 짐승이라도 들앉았으면 어쩌려고?\"
듣고 있던 계모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나 그 할멈은 호랑이도 무서워하지 않는다고 한다. 한번은 실제로 호랑이 굴속에 들어간 적이 있는데 굴 저편에 호랑이 새끼 세 마리가 놀고 있는 걸 보고 이쪽에서 그냥 잤다고 한다.
그렇게 무서운 것이 없는 사람이니 마을에 궂은일이 있으면 불러다 시켰다. 사람이 죽으면 염을 하기 전에 시체를 닦는 일이라든가 어린애가 죽으면 뒷산 애장터에 갖다 묻는다든가 하는 일 따위가 그런 것이었다.
그야 어쨌든 그 재수없는 할멈의 손녀인 박노마가 내 자지를 봐 버렸으니 장차 이 일을 어쩌면 좋은가 하는 생각에 나는 잠이 오지 않았다. 그리고 그날 내가 오줌을 쌌다고 깝대기를 홀딱 벗겨 버린 계모를 나는 두고두고 원망했다.
글주인은 어디가고 beer inside님, 팟저님 그리고 제가 판을 벌였네요. 나중에 마르코폴로님이 보시면 얼마나 황당하실까 싶어요. 크크킄
일단, 하일지의 소설은 한국적 리얼리즘에만 익숙한 독자에겐 너무나 낯설게 느껴질 겁니다. 별로 색다를 것 없는 작가적 정서라고 쓰고 하루키의 아류(아직도!)라고 읽는 작품이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하고, 그나마 좋다고 여겨지는 작품들도 작가의 야망이 그리 크지 못해서 쓰다 만듯한 느낌을 주기도 하고요... 하일지처럼 진하게 작가적 정서를 보여주고 일관되게 자신의 작품세계를 그려나가는, 그것도... 더 보기
일단, 하일지의 소설은 한국적 리얼리즘에만 익숙한 독자에겐 너무나 낯설게 느껴질 겁니다. 별로 색다를 것 없는 작가적 정서라고 쓰고 하루키의 아류(아직도!)라고 읽는 작품이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하고, 그나마 좋다고 여겨지는 작품들도 작가의 야망이 그리 크지 못해서 쓰다 만듯한 느낌을 주기도 하고요... 하일지처럼 진하게 작가적 정서를 보여주고 일관되게 자신의 작품세계를 그려나가는, 그것도... 더 보기
글주인은 어디가고 beer inside님, 팟저님 그리고 제가 판을 벌였네요. 나중에 마르코폴로님이 보시면 얼마나 황당하실까 싶어요. 크크킄
일단, 하일지의 소설은 한국적 리얼리즘에만 익숙한 독자에겐 너무나 낯설게 느껴질 겁니다. 별로 색다를 것 없는 작가적 정서라고 쓰고 하루키의 아류(아직도!)라고 읽는 작품이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하고, 그나마 좋다고 여겨지는 작품들도 작가의 야망이 그리 크지 못해서 쓰다 만듯한 느낌을 주기도 하고요... 하일지처럼 진하게 작가적 정서를 보여주고 일관되게 자신의 작품세계를 그려나가는, 그것도 아주 세련되고 현대적인 방식을 보여주는 작가는 한국에 없다고 단언합니다. 예술인데 끝까지 가야죠. 현실에서는 끝까지 못가니까 예술을 하는 것인데, 거기서도 망설이고 있으면 어쩌라는 건가 싶어 아쉬울 때가 많아요.
아이들이 레고로 세상을 만들고 거기 세워둔 레고인물에게 똑같은 행위를 반복시키고 다시 제자리에 돌려놓듯이, 하일지의 소설은 하일지에게 일종의 놀이죠. 그래서 하일지가 소설 속에 구현한 세상은 현실과 모방했지만 철저히 허구적인 시공간일 수 밖에 없지요. 하일지 소설 속의 시간이 종종 직선적이 아니라 원형적인 것은 바로 이러한 레고 세상의 시간이 원형적인 것과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팟저님이 말씀하신대로 [믿을 수 없는 화자]를 내세우는 것은 더 이상 새로운 수법은 아니죠. [경마장 가는 길]의 화자는 독자에게 일단은 믿을 수 있는 화자(그가 외국 유학을 마친 교수라는 점)으로 등장하지만, 그가 정말 믿을 만한 화자인지는 시간이 흐를수록 확신할 수 없게 되어버리죠.
내포저자가 화자의 상태를 의심하고 있다는 메세지를 전달하는 수법으로 작가는 같은 이야기를 수없이 반복합니다. [우주피스 공화국]의 주인공인 할은 믿을 수 없는 화자는 아니지만 그가 찾아나선 우주피스는 도저히 실제할 수 없는 곳이라는 느낌을 주지요. 그리고 작품에서 시간은 원형적으로 흘러 다시 처음으로 돌아오구요. [누나]에서는 성장한 화자(믿을 수 있는 화자)가 어린 화자(믿을 수 없는 화자)를 등장시켜 원형의 세상인 단양을 그리는데, 피가영의 뒤란으로 대표되고, 나무가 걸어다니는 환상의 공간은 우주피스 공화국과 같은 맥락에서 도저히 현실적이지가 않죠.
그래도 그나마 이 작품이 독자에게 친근하게 느껴지는 점이라고 한다면, 믿을 수 있는 화자를 등장시켜 시간이 둥글게 흐르는 원형의 세상인 단양을 빠져나오도록 만드는 누나가 존재하기 때문이지요. 재밌는 것은 믿을 수없는 화자인 어린 주인공은 누나가 금계랍이라는 약을 먹어서 믿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는 점입니다. 크크크크크 어쩜 이리 잘 썼을까요? 작가는 어린 시절 레고놀이와 같은 자신의 작품에서 약간은 독자를 의식하는 방향으로 도약을 하게 된 것이지요.
팟저님이 하일지를 작가론으로 읽어주셔서, 저는 철저히 독자의 입장에서 읽어보았습니다.
일단, 하일지의 소설은 한국적 리얼리즘에만 익숙한 독자에겐 너무나 낯설게 느껴질 겁니다. 별로 색다를 것 없는 작가적 정서라고 쓰고 하루키의 아류(아직도!)라고 읽는 작품이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하고, 그나마 좋다고 여겨지는 작품들도 작가의 야망이 그리 크지 못해서 쓰다 만듯한 느낌을 주기도 하고요... 하일지처럼 진하게 작가적 정서를 보여주고 일관되게 자신의 작품세계를 그려나가는, 그것도 아주 세련되고 현대적인 방식을 보여주는 작가는 한국에 없다고 단언합니다. 예술인데 끝까지 가야죠. 현실에서는 끝까지 못가니까 예술을 하는 것인데, 거기서도 망설이고 있으면 어쩌라는 건가 싶어 아쉬울 때가 많아요.
아이들이 레고로 세상을 만들고 거기 세워둔 레고인물에게 똑같은 행위를 반복시키고 다시 제자리에 돌려놓듯이, 하일지의 소설은 하일지에게 일종의 놀이죠. 그래서 하일지가 소설 속에 구현한 세상은 현실과 모방했지만 철저히 허구적인 시공간일 수 밖에 없지요. 하일지 소설 속의 시간이 종종 직선적이 아니라 원형적인 것은 바로 이러한 레고 세상의 시간이 원형적인 것과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팟저님이 말씀하신대로 [믿을 수 없는 화자]를 내세우는 것은 더 이상 새로운 수법은 아니죠. [경마장 가는 길]의 화자는 독자에게 일단은 믿을 수 있는 화자(그가 외국 유학을 마친 교수라는 점)으로 등장하지만, 그가 정말 믿을 만한 화자인지는 시간이 흐를수록 확신할 수 없게 되어버리죠.
내포저자가 화자의 상태를 의심하고 있다는 메세지를 전달하는 수법으로 작가는 같은 이야기를 수없이 반복합니다. [우주피스 공화국]의 주인공인 할은 믿을 수 없는 화자는 아니지만 그가 찾아나선 우주피스는 도저히 실제할 수 없는 곳이라는 느낌을 주지요. 그리고 작품에서 시간은 원형적으로 흘러 다시 처음으로 돌아오구요. [누나]에서는 성장한 화자(믿을 수 있는 화자)가 어린 화자(믿을 수 없는 화자)를 등장시켜 원형의 세상인 단양을 그리는데, 피가영의 뒤란으로 대표되고, 나무가 걸어다니는 환상의 공간은 우주피스 공화국과 같은 맥락에서 도저히 현실적이지가 않죠.
그래도 그나마 이 작품이 독자에게 친근하게 느껴지는 점이라고 한다면, 믿을 수 있는 화자를 등장시켜 시간이 둥글게 흐르는 원형의 세상인 단양을 빠져나오도록 만드는 누나가 존재하기 때문이지요. 재밌는 것은 믿을 수없는 화자인 어린 주인공은 누나가 금계랍이라는 약을 먹어서 믿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는 점입니다. 크크크크크 어쩜 이리 잘 썼을까요? 작가는 어린 시절 레고놀이와 같은 자신의 작품에서 약간은 독자를 의식하는 방향으로 도약을 하게 된 것이지요.
팟저님이 하일지를 작가론으로 읽어주셔서, 저는 철저히 독자의 입장에서 읽어보았습니다.
http://www.seelotus.com/gojeon/hyeon-dae/soseol/jak-ga-lon/ha-il-ji.htm
이게 제가 읽어본 하일지 [경마장 가는 길]에 대한 가장 적절한 평론이에요.
Beer Inside님이 말씀해주신 것과 하나도 다를 것이 없는 내용입니다.
비어님 진짜 이쁘당(이거 인제 표준말이래요~) 크크크크크크크크크크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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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흐흐흐
말씀하신 우주피스공화국은 사서 읽다가 버슨지 지하철인지에 두고 내려서 리투아니아 호텔에서 파티 초대받아서 간 부분까지만 읽었네요. ㅠ
조만간 영풍이나 교보에 가서 서서(!) 다 읽고 올 생각입니다.
진술을 읽고 이 소설이 한국소설이라는데 한번 놀라고 2000년에 쓰여졌다는 것에 또 한번 놀랐어요.
극중 인물의 이름이랑 작가 이름 블라인드 처리하고 누구 작품인 것 같냐고 물어본다면 일단, 한국 작품은 아니라고 대답할 것같아요.
얼마 전 출판사에 근무하는 지인을 만났을 때 하일... 더 보기
말씀하신 우주피스공화국은 사서 읽다가 버슨지 지하철인지에 두고 내려서 리투아니아 호텔에서 파티 초대받아서 간 부분까지만 읽었네요. ㅠ
조만간 영풍이나 교보에 가서 서서(!) 다 읽고 올 생각입니다.
진술을 읽고 이 소설이 한국소설이라는데 한번 놀라고 2000년에 쓰여졌다는 것에 또 한번 놀랐어요.
극중 인물의 이름이랑 작가 이름 블라인드 처리하고 누구 작품인 것 같냐고 물어본다면 일단, 한국 작품은 아니라고 대답할 것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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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만간 영풍이나 교보에 가서 서서(!) 다 읽고 올 생각입니다.
진술을 읽고 이 소설이 한국소설이라는데 한번 놀라고 2000년에 쓰여졌다는 것에 또 한번 놀랐어요.
극중 인물의 이름이랑 작가 이름 블라인드 처리하고 누구 작품인 것 같냐고 물어본다면 일단, 한국 작품은 아니라고 대답할 것같아요.
얼마 전 출판사에 근무하는 지인을 만났을 때 하일지에 대해 슬쩍 물어본 적이 있었는데, 글은 잘 쓰는데 아무도 다뤄주지 않는 작가라는 평을 하더군요.
저는 90년대의 한국소설과 작가들에 대해서는 백지상태와 마찬가지라 잘 몰랐었는데 어딘가 밉보인 일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
당시의 문단의 경향을 비껴가는 소설을 쓴 것이 원인인 것 같긴한데, 그렇다고 하더라도 한심한 일이죠.
살펴보니 소설에 대한 비평이 드물더군요. 국내 문단이 이정도 작품을 외면할 정도로 좋은 상황인가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말씀하신 우주피스공화국은 사서 읽다가 버슨지 지하철인지에 두고 내려서 리투아니아 호텔에서 파티 초대받아서 간 부분까지만 읽었네요.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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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술을 읽고 이 소설이 한국소설이라는데 한번 놀라고 2000년에 쓰여졌다는 것에 또 한번 놀랐어요.
극중 인물의 이름이랑 작가 이름 블라인드 처리하고 누구 작품인 것 같냐고 물어본다면 일단, 한국 작품은 아니라고 대답할 것같아요.
얼마 전 출판사에 근무하는 지인을 만났을 때 하일지에 대해 슬쩍 물어본 적이 있었는데, 글은 잘 쓰는데 아무도 다뤄주지 않는 작가라는 평을 하더군요.
저는 90년대의 한국소설과 작가들에 대해서는 백지상태와 마찬가지라 잘 몰랐었는데 어딘가 밉보인 일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
당시의 문단의 경향을 비껴가는 소설을 쓴 것이 원인인 것 같긴한데, 그렇다고 하더라도 한심한 일이죠.
살펴보니 소설에 대한 비평이 드물더군요. 국내 문단이 이정도 작품을 외면할 정도로 좋은 상황인가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본문과 댓글의 배치를 바꿔놓고 싶네요. 좋은 글 잘 봤습니다. 소설의 본질이 소설 자체라는 말이 인상깊습니다. 신형철이 \'몰락의 에티카\' 에서 \'그 소재가 무엇이건, 미학적으로 태만한 작품은 옹호할 수가 없다.\' 라던 일갈이 생각나네요. 소설은 현실의 반영이 아니라 현실을 먹는 것이라는 말도 했었죠. 그런 것치곤 날선 비평이 드물긴 합니다만. 어쨌든 댓글에서 말씀하신 부분을 보니 신형철의 글이 생각 나네요.
하일지의 소설은 \'진술\' 이외에는 제대로 봤다고 할만한 작품이 없습니다. 경마장 시리즈는 접해보지 못했고, 비교적... 더 보기
하일지의 소설은 \'진술\' 이외에는 제대로 봤다고 할만한 작품이 없습니다. 경마장 시리즈는 접해보지 못했고, 비교적... 더 보기
본문과 댓글의 배치를 바꿔놓고 싶네요. 좋은 글 잘 봤습니다. 소설의 본질이 소설 자체라는 말이 인상깊습니다. 신형철이 \'몰락의 에티카\' 에서 \'그 소재가 무엇이건, 미학적으로 태만한 작품은 옹호할 수가 없다.\' 라던 일갈이 생각나네요. 소설은 현실의 반영이 아니라 현실을 먹는 것이라는 말도 했었죠. 그런 것치곤 날선 비평이 드물긴 합니다만. 어쨌든 댓글에서 말씀하신 부분을 보니 신형철의 글이 생각 나네요.
하일지의 소설은 \'진술\' 이외에는 제대로 봤다고 할만한 작품이 없습니다. 경마장 시리즈는 접해보지 못했고, 비교적 최근작인 우주피스공화국 이나 누나 같은 작품들은 읽긴 했으나, 당시의 사정으로 제대로 읽었다긴 민망한 수준이네요. 그러나 데뷔 이후 하나의 작품만을 썼다고 언급하신 부분을 보니 로맹가리가 떠오릅니다. 로맹가리의 소설도 하나의 주제로 써내려간 원곡과 변주곡이라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경마장시리즈는 아마도 못(?) 볼 것 같지만 우주피스공화국과 누나는 다시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좋은 댓글 감사합니다.
하일지의 소설은 \'진술\' 이외에는 제대로 봤다고 할만한 작품이 없습니다. 경마장 시리즈는 접해보지 못했고, 비교적 최근작인 우주피스공화국 이나 누나 같은 작품들은 읽긴 했으나, 당시의 사정으로 제대로 읽었다긴 민망한 수준이네요. 그러나 데뷔 이후 하나의 작품만을 썼다고 언급하신 부분을 보니 로맹가리가 떠오릅니다. 로맹가리의 소설도 하나의 주제로 써내려간 원곡과 변주곡이라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경마장시리즈는 아마도 못(?) 볼 것 같지만 우주피스공화국과 누나는 다시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좋은 댓글 감사합니다.
저는 일단 한국소설이야기할때 하일지를 그냥 넘기는 비평가는 비평가 자격이 없다고 봐요. 그리고 만약 김현이 살아있었다면... 왜 빨리 죽었어... 하고 원망해요. 하일지가 어떤 문학권력의 아귀다툼의 희생양인지, 아니면 그가 아부할줄 모르는 사람이기 때문인지, 아니면 아예 관심이 없는지 속사정은 잘 모르겠습니다만, 해외에서 문학을 공부하는 분들이 한국문학계를 걱정하며 들먹이는게 항상 하일지에요. 애인과 저는 하일지가 한국에서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가정법 많이 씁니다. 너무 안타까와요...
작년에 동인문학상 수상 후보 작으로 구효서 작품하고 하일지 [누나]가 같이 올라왔죠. 크크크크크킄 하일지 떨어뜨리고 수상한 구효서 작품 서점서 읽다가 화나서 서점 뒤집을 뻔했어요... ㅠㅠ
작년에 동인문학상 수상 후보 작으로 구효서 작품하고 하일지 [누나]가 같이 올라왔죠. 크크크크크킄 하일지 떨어뜨리고 수상한 구효서 작품 서점서 읽다가 화나서 서점 뒤집을 뻔했어요... ㅠㅠ
우아~ 기대할께요. 안하시면 하라고 막 채근해야쥐~
그래도 마르코폴로님이 이렇게 멍석깔아주셔서 어제 오늘 저 무척 기분 좋았다능. 팟저님이나 저나 어쨌든 하일지를 알아봤던 사람이고, 마르코폴로님도 [진술] 리뷰 올리시면서 새삼 진가를 알아보신 것 같고, 비어님이랑 눈부심님도 하일지에 관심 가져주시고... 제가 괜히 뿌듯해요. 저는 문학을 정말 사랑합니다. 그래서 우리 문학계가 발전하고 더 좋은 작품이 나오길, 더 좋은 작가가 나오길, 눈이 높은 독자가 더 많아지길 바래요. 그래서 해외의 어... 더 보기
그래도 마르코폴로님이 이렇게 멍석깔아주셔서 어제 오늘 저 무척 기분 좋았다능. 팟저님이나 저나 어쨌든 하일지를 알아봤던 사람이고, 마르코폴로님도 [진술] 리뷰 올리시면서 새삼 진가를 알아보신 것 같고, 비어님이랑 눈부심님도 하일지에 관심 가져주시고... 제가 괜히 뿌듯해요. 저는 문학을 정말 사랑합니다. 그래서 우리 문학계가 발전하고 더 좋은 작품이 나오길, 더 좋은 작가가 나오길, 눈이 높은 독자가 더 많아지길 바래요. 그래서 해외의 어... 더 보기
우아~ 기대할께요. 안하시면 하라고 막 채근해야쥐~
그래도 마르코폴로님이 이렇게 멍석깔아주셔서 어제 오늘 저 무척 기분 좋았다능. 팟저님이나 저나 어쨌든 하일지를 알아봤던 사람이고, 마르코폴로님도 [진술] 리뷰 올리시면서 새삼 진가를 알아보신 것 같고, 비어님이랑 눈부심님도 하일지에 관심 가져주시고... 제가 괜히 뿌듯해요. 저는 문학을 정말 사랑합니다. 그래서 우리 문학계가 발전하고 더 좋은 작품이 나오길, 더 좋은 작가가 나오길, 눈이 높은 독자가 더 많아지길 바래요. 그래서 해외의 어떤 작품에도 뒤지지 않길 바래요. 이 땅에서 좋은 것이 하나도 없어서 이론도 수입하고, 문학도 수입하고... 그런 현실이 정말 슬퍼요. 누군지 기억이 잘 안나는데 모국어로 이루어진 글을 읽는 행위를 엄마의 젖을 빠는 것과 같다고 했었죠. 마르코폴로님과 홍차넷을 통해서 이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정말 기쁩니다.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이 제 주위에 있다는 것이 정말 행복해요. 저는 다 씨가 말라버린줄 알았어요. 혼자서 책을 사거나 읽으면서 외롭다고 생각한 적 많았어요. 이렇게 좋은걸 누구랑 나누지 못해서 슬프다는 생각 많이 했어요. 울기도 했다능... 크크크크크크 아놔~
그래도 마르코폴로님이 이렇게 멍석깔아주셔서 어제 오늘 저 무척 기분 좋았다능. 팟저님이나 저나 어쨌든 하일지를 알아봤던 사람이고, 마르코폴로님도 [진술] 리뷰 올리시면서 새삼 진가를 알아보신 것 같고, 비어님이랑 눈부심님도 하일지에 관심 가져주시고... 제가 괜히 뿌듯해요. 저는 문학을 정말 사랑합니다. 그래서 우리 문학계가 발전하고 더 좋은 작품이 나오길, 더 좋은 작가가 나오길, 눈이 높은 독자가 더 많아지길 바래요. 그래서 해외의 어떤 작품에도 뒤지지 않길 바래요. 이 땅에서 좋은 것이 하나도 없어서 이론도 수입하고, 문학도 수입하고... 그런 현실이 정말 슬퍼요. 누군지 기억이 잘 안나는데 모국어로 이루어진 글을 읽는 행위를 엄마의 젖을 빠는 것과 같다고 했었죠. 마르코폴로님과 홍차넷을 통해서 이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정말 기쁩니다.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이 제 주위에 있다는 것이 정말 행복해요. 저는 다 씨가 말라버린줄 알았어요. 혼자서 책을 사거나 읽으면서 외롭다고 생각한 적 많았어요. 이렇게 좋은걸 누구랑 나누지 못해서 슬프다는 생각 많이 했어요. 울기도 했다능... 크크크크크크 아놔~
아 참! 이 건 제 블로그 이웃이었던 작가 한분이 자신의 블로그에 올려주셨던 건데 이제 블로그를 안하셔서 제가 예전에 스크랩했던거 올려볼께요. 이 분은 작품을 그리 많이 내지는 않았어요. 아주 관념적인 소설을 쓰는 작가인데, 링크로 출처를 밝히려고 해도 이제 주소가 없는 자료가 되었네요.
우리나라에서 구하기 어려운 작품도 있고, 구해도 읽기가 만만치 않는 작품들이 대부분이긴 한데, 그래도 그만한 가치가 있지요. 제가 이중에서 비교적 접근하기 쉬운 작품들은 홍차넷에 따로 리뷰를 올려볼까 했었는데, 정말 시간이 안나네요. 일단 ... 더 보기
우리나라에서 구하기 어려운 작품도 있고, 구해도 읽기가 만만치 않는 작품들이 대부분이긴 한데, 그래도 그만한 가치가 있지요. 제가 이중에서 비교적 접근하기 쉬운 작품들은 홍차넷에 따로 리뷰를 올려볼까 했었는데, 정말 시간이 안나네요. 일단 ... 더 보기
아 참! 이 건 제 블로그 이웃이었던 작가 한분이 자신의 블로그에 올려주셨던 건데 이제 블로그를 안하셔서 제가 예전에 스크랩했던거 올려볼께요. 이 분은 작품을 그리 많이 내지는 않았어요. 아주 관념적인 소설을 쓰는 작가인데, 링크로 출처를 밝히려고 해도 이제 주소가 없는 자료가 되었네요.
우리나라에서 구하기 어려운 작품도 있고, 구해도 읽기가 만만치 않는 작품들이 대부분이긴 한데, 그래도 그만한 가치가 있지요. 제가 이중에서 비교적 접근하기 쉬운 작품들은 홍차넷에 따로 리뷰를 올려볼까 했었는데, 정말 시간이 안나네요. 일단 리스트만 참고하시라고 올려봐요. 저도 시간 쪼개고 다시 한 번 읽으면서 하나씩 리뷰 올려보도록 하지요. 저는 이 리스트에 약 90%정도 동의합니다. 마르코폴로님도 보시고 어느 정도 동의하시는지 여쭙고 싶네요. 예전에 좋은 작품 찾아다닐 때 상당히 도움 많이 받았어요.
*** 20세기 소설의 혁신을 가져온 작가와 작품들 ***
[유럽문학]
조리스 칼 위스망스 - 거꾸로(1884)*
크누트 함순 - 굶주림(1890)*
오스카 와일드 -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1891)
헨리 제임스 - 나사의 회전(1898)*
앙리 바르뷔스 - 지옥*
제임스 조이스 - 율리시스
버지니아 울프 - 올란도/댈러웨이 부인
프루스트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헤르만 블로흐 - 몽유병자들/ 베르길리우스의 죽음**
프란츠 카프카 - 심판/성/단편집**
곰브로비치 - 페르디두르케/포르노그라피아*
사무엘 베케트 - 몰로이/고도를 기다리며(희곡)*
토마스 만 - 마의 산
조셉 콘래드 - 암흑의 핵심
모리스 블랑쇼 - 아미나다브/기다림/망각
볼프강 보르헤르트 - 이별없는 세대/5월에 뻐꾸기가 울었다
토마스 베른하르트 - 비트겐슈타인의 조카/모자*
하인리히 뵐 - 카타리나 블름의 잃어버린 명예
앙드레 말로 - 인간의 조건
사르트르 - 구토/말
알베르 까뮈 - 전락/이방인*
헤르만 헤세 - 황야의 이리*
로브그리예 - 질투/고무지우개*
조르쥬 바타이유 - 눈이야기*
루이 페르디낭 셀린느 - 밤끝으로의 여행/외상죽음**
쥴리앙 그라크 - 시트르의 바닷가**
필립 솔레르스 - 여자들/루브르를 훔친 기사 네방 드놀
프랑수아 모리악 - 떼레즈 데께루/밤의 종말
끌로드 시몽 - 플랑드르로 가는 길
니코스 카잔차키스 - 희랍인 조르바
이탈로 칼비노 - 나무위의 남작/반쪼가리 자작/보이지 않은 도시들**
알프리데 옐리네크 - 피아노 치는 여자
쟝 주네 - 도둑일기
파스칼 키냐르 - 은밀한 생/로마의 테라스/세상의 모든 아침**
잉에보르크 바흐만 - 삼십세/동시에**
마르그리트 뒤라스 - 모데라토 칸타빌레*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 - 하드리아누스의 회상록
조르주 페렉 - 시간의 사용
미셸 투르니에 -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황야의 수탉
로맹 가리 - 자기앞의 생/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로제 그르니에 - 물거울*
루이제 린저 - 완전한 기쁨/생의 한가운데
밀란 쿤데라 - 불멸/농담/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살만 루슈디 - 악마의 시/무어인의 한숨**
페터 한트케 - 어두운 밤 나는 적막한 집을 나섰다/낯선 자/ 돈 후안
주제 사라마구 - 수도원의 비망록/죽음의 정지*
호세 카밀로 셀라 - 파스쿠알 두아테르의 가족
도리스 레싱 - 황금노트북/다섯째 아이*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 나느 훌리아 아줌마와 결혼했다/세상종말 전쟁*
크리스토프 란스마이어 - 최후의 세계*
아모스 오즈 - 여자를 안다는 것*
아고타 크리스토프 - 존재의 세가지 거짓말*
미하일 불카코프 - 거장과 마르가리타**
[미국문학]
허먼 멜빌 - 빌리버드(1891)/바틀비(1853)
F. 피츠제럴드 - 피츠제럴드 단편선
헨리 밀리 - 북회귀선*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 롤리타
윌리엄 포크너 - 음향과 분노/내가 죽어 누워있을때/압살롬 압살롬
J.D. 샐린저 - 호밀밭의 파수꾼/아홉가지 이야기**
챨스 부코우스키 - 일상의 광기에 대한 이야기/팩토텀*
헤밍웨이 -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노인과 바다
윌리엄 S. 버로우스 - 네이키드 런치*
토마스 핀천 - 제49호 품목의 경매**
커트 보네거트 - 제5도살장**
리차드 브라우티건 - 미국의 송어낚시/워터멜론 슈가에서**
레이먼드 카버 - 대성당(단편집)
존 치버 - 돼지가 우물에 빠졌던 날/기괴한 라디오*
앤서니 버지스 - 시계태엽 오렌지
토니 모리슨 - 비러비드
[중남미문학]
후안 롤포 - 빼드모 빠라모**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 단편집(5권)/만리장성과 책들/칠일밤
아돌포 비오이 카사레스 - 모렐의 발명
실비나 오캄포 -천국과 지옥에 관한 보고서*
마르케즈 - 백년동안의 고독/아무도 대령에게 편지하지 않다**
마누엘 푸익- 거미여인의 키스/천사의 음부/부에노스 아이레스 어페어**
이사벨 아옌데 - 영혼의 집
라우라 에스키벨 - 달콤쌉사름한 초콜릿*
마르케스 외 - 붐 그리고 포스트 붐*
루이사 발렌수엘라 외 - 탱고(환상단편들)
로리 콜윈 외 - 세상에서 제일 잘 생긴 익사체*
루이스 세풀베다 - 연애소설 읽는 노인
[아시아문학]
이상 - 단편선집
박상륭 - 죽음의 한 연구*
최인훈 - 구운몽
이청준 - 당신들의 천국/대표중단편집
이인성 - 낯선 시간 속으로/미쳐버리고 싶은, 미쳐지지 않는*
최수철 - 공중누각/분신들
조세희 -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공*
하일지 - 진술/우주피스 공화국**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 라쇼몽
다자이 오사무 - 사양/인간실격
가와바타 야스나리 - 설국*
미시마 유키오 - 금각사
아베 코보 - 모래의 여자
오에 겐자부로 - 체인지링/만엔원년의 풋볼**
마루야마 겐지 - 물의 가족/달에 울다*
오르한 파묵 - 새로운 인생/내 이름은 빨강*
루쉰 - 루쉰소설 전집
가오싱젠 - 영혼의 산
위화 - 허삼관 매혈기
아룬다트 로이 - 작은 것들의 신
아라빈드 아디가 - 화이트 타이거
[아프리카 문학]
나딘 고디머 - 거짓의 날들
나지브 마흐푸즈 - 우리동네 이야기
응구기 와 시옹오 - 한톨의 밀알
치누아 아체베 -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
월레 소잉카 - 해설자들
나딘 고디머 외 - 나를 인간이라고 부르지마라 외 단편
알랭 마방쿠 - 아프리카 술집, 외상은 어림없지
우리나라에서 구하기 어려운 작품도 있고, 구해도 읽기가 만만치 않는 작품들이 대부분이긴 한데, 그래도 그만한 가치가 있지요. 제가 이중에서 비교적 접근하기 쉬운 작품들은 홍차넷에 따로 리뷰를 올려볼까 했었는데, 정말 시간이 안나네요. 일단 리스트만 참고하시라고 올려봐요. 저도 시간 쪼개고 다시 한 번 읽으면서 하나씩 리뷰 올려보도록 하지요. 저는 이 리스트에 약 90%정도 동의합니다. 마르코폴로님도 보시고 어느 정도 동의하시는지 여쭙고 싶네요. 예전에 좋은 작품 찾아다닐 때 상당히 도움 많이 받았어요.
*** 20세기 소설의 혁신을 가져온 작가와 작품들 ***
[유럽문학]
조리스 칼 위스망스 - 거꾸로(18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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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카 와일드 -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18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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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바르뷔스 - 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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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 단편선집
박상륭 - 죽음의 한 연구*
최인훈 - 구운몽
이청준 - 당신들의 천국/대표중단편집
이인성 - 낯선 시간 속으로/미쳐버리고 싶은, 미쳐지지 않는*
최수철 - 공중누각/분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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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일지 - 진술/우주피스 공화국**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 라쇼몽
다자이 오사무 - 사양/인간실격
가와바타 야스나리 - 설국*
미시마 유키오 - 금각사
아베 코보 - 모래의 여자
오에 겐자부로 - 체인지링/만엔원년의 풋볼**
마루야마 겐지 - 물의 가족/달에 울다*
오르한 파묵 - 새로운 인생/내 이름은 빨강*
루쉰 - 루쉰소설 전집
가오싱젠 - 영혼의 산
위화 - 허삼관 매혈기
아룬다트 로이 - 작은 것들의 신
아라빈드 아디가 - 화이트 타이거
[아프리카 문학]
나딘 고디머 - 거짓의 날들
나지브 마흐푸즈 - 우리동네 이야기
응구기 와 시옹오 - 한톨의 밀알
치누아 아체베 -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
월레 소잉카 - 해설자들
나딘 고디머 외 - 나를 인간이라고 부르지마라 외 단편
알랭 마방쿠 - 아프리카 술집, 외상은 어림없지
아... 오랫만에 이 리스트를 보니 새삼스러운게 어찌나 구하기 어려운 책이 많은지... 아예 번역이 안된것은 모르되, 번역되었는데 절판된 것들 헌책 찾아다니며 새책값의 서너배주고 산것도 꽤 됩니다. 흐흐흐 누렇게 바래버린 그 책들이 제 보물 1호에요. 하일지의 [진술]과 [우주피스 공화국]이 리스트에 보이는데, [누나]가 나오기 전이라서요. 오르한 파묵도 [새로운 인생] 대신 [검은책]을 넣어야한다고 보고... 하여튼 저랑 살짝 의견차가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제일 좋아하는 리스트에요. 아주 하드한 작품들이죠. 만만치 않은 야생마같은 놈들입니다. 크크크크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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