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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6/02/19 09:40:38
Name   nickyo
Subject   새누리당과의 아침
지난 헬스장 3개월을 돌이켜 보자면, 1달 반을 미친듯이 다니고 1달을 쉬엄쉬엄 다니더니 반달은 거의 뭐 존안을 뵙기가 너무나 어렵다 소리를 들어도 할 말이 없는 출석률이었다. 그래서 어제 다시 헬스장을 연장했다. 체중계에 올라서니 현실도피정도가 아니라 차원이동을 해서 뭇 중소도시 탐관오리 중세영주쯤 되어도 비주얼적으로는 합격(그리고 아마 여느 차원이동을 한 고3짜리에게 서컹 하고 목이 날아가든지 하겠지)이겠지 싶었다. 내일부터는 젠장 아침은 사과한개! 저녁은 굶어! 라는 생각으로 잠자리에 들었다.


나는 아침 6시 55분에 기상한다. 50분도 7시도 아닌것은 나의 마지막 자존심이랄까. 뭐랄까, 10분단위보다는 5분단위가 좀 더... 이를테면 바쁜 현대인 느낌이 나지 않는가? 하지만 나는 바쁜 현대인이면서도 주6.5일 근무(왜냐면 달에 휴일이 두번뿐이니까)를 하며 고작 40만원을 받고도 '감사'해야하는 일개 독서실총무이자.. 모든 질문에 대한 AT필드가 되어주는 '공무원수험생' 이라서, 어, 뭐라더라. 미생도 되지 못한 그런.. 마, 송곳도 비정규직은 되어야 송곳이 되는거 아니겠능교? 해서 바쁜 현대인이고 싶은 거창한 명예욕구가 있는 셈이다. 그래서 55분이라 이거지.


어쨌든 계획대로(그리고 정말 드물게도 결심대로) 사과 한 개를 먹고, 우유를 반잔 마시고. 키세스초콜렛이 보여서 딱 한개를 입에 물고(결심대로가 아닌듯한 기분이 들기 시작한다) 독서실을 열러 갔다. 걸어가면 약 4km, 마을버스를 타면 20분. 키세스를 입에 문 죄책감 때문인지, 혹은 아침밥을 안먹었더니 시간이 좀 여유있어서인지 걷기로 했다. 서초구 방배동의 오전 7시는 고즈넉하다. 딱히 막 출근의 번잡함도 없고... 비교적 서늘하고 조용한 느낌의 을씨년스러운 거리를 걷는다. 새삼 도보블럭이 울퉁불퉁하다는 생각이다. 이를테면 평지는 사실 조금은 위로 조금은 아래로 조금은 대각선으로 비뚤비뚤 발이 닿는 곳이 기울어 있다. 평소라면 느끼지도 못했을 불편함이 유독 신경을 건드린다. 지자체 예산으로 보도블럭을 맨날 새로 깐다는 느낌인데도 이러냐! 이 머저리들! 하지만 롤러코스터 타이쿤을 해본 이들은 안다. 땅을 평평하게 하는 것이 얼마나 돈이 많이 드는지.. 그러니 그냥 비틀비틀대며 걸음을 옮긴다. 내가 내는 세금이래봐야 부가세 정도 아니냐. 언감생심.. 발목아 힘내라.


방배역쯤 도착했는데 왠 빨간옷의 예쁘장한 아주머니가 서있었다. 기호 1번. 조 뭐시기. 옆에는 엄청 훤칠한 남자가 멋드러진 코트를 입고 명함을 뿌린다. 츄리닝 바지에 커다란 까만 파카를 입은 나는 그 옆을 무관심하게, 사실은 매우 적대적인 기분으로 지나가려 시도했다. 하지만 그 후보는 아마 그 어디에서도 내게는 할 것 같지 않은 깍듯한 인사와 웃음으로 악수를 요청한다. 두 손으로 매우 공손하게. 나는 웃고싶지 않았지만 사회적동물로서 웃음과 목례로 악수를 거절한다. 아이 시부럴. 서초구에서 무슨 선거운동이야. 니네 그런거 안해도 맨날 잘 해먹잖아. 솔직히 그런 심정. 옆의 훤칠한 남자가 명함을 준다. 역시 웃음과 목례로 거절한다. 돌아서는 순간 조커마냥 내 표정은 사회성을 잃고 제자리를 찾는다. 빌어먹을 친자본부역자놈들. 그러나 아마 임금노동자로 살고 온갖 자본주의의 혜택을 누리는 나라고 부역자가 아닐까. 그래도 임마 너는 젊은놈이.. 너 금수저니? 하고 생각했더니, 금수저에 참 어울리는 외모였다. 으으, 빨리 장원급제를 하고싶다. 하지만 실제로 나의 장원급제는 고을의 방원시험 정도 아니냐..



나는 새누리당을 너무 싫어한다. 증오한다. 한나라당때부터도 싫어했고, 이회창부터도 싫었다. 새누리당을 싫어했던 이유는 단순하고도 명백하다. 어릴 적 자유주의 신봉자였을때는 자유를 표방하면서 자유를 침해해서 싫었고, 사회주의자를 (내지는 뭐 사민주의자라고.. 코렁탕과 마티즈는 무섭다) 자청하는 지금에서는 뭐, 더 얘기할 이유가 없다. 민주정의 정치체제를 바라보는 시각에 있어서 적어도 내게 새누리당의 존재란 철저하게 민주정의 지독한 암세포같은.. 필요악 이런것도 아니고.. 나는 양웬리가 아니고, 새누리당 같은 애들이 계속 집권하고 그러면 라인하르트를 빨 수밖에 없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아, 양웬리 대단한 놈. 그리고 그런 생각을 들게 한다는 시점에서부터 나는 새누리당이 넘나 싫기만한것..


언덕길을 지나 아침 일찍부터 찬바람과 싸우며 웃음짓고 인사하는 새누리당 후보. 서초구에서 새누리당으로 나온다는 것은 일종의 특권에 가깝다. 불패신화 수준의 느낌이랄까. 월드컵 홈어드밴티지보다도 더 강력한.. 그런데도 그 사람은 아침부터 나와서 고개를 조아린다. 이건 아주 놀라운 일이고, 대단한 일이다. 왜냐면 일반 시민이 평소에 새누리당 으으으으원님을 찾아뵙고 인사를 받고 악수를 하는건 매우 까다로운 일이기 때문이다. 물론 불가능한것도 아니고 새누리당의원들이 뭐 막 지역구 시민들을 외면하고 막 그러는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내가 새누리당을 싫어하는 핵심은 정책적이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거짓과 기만이 너무나 뻔뻔스럽다는 점에있는데, 지역 상가나 소상공인들에게 여러분의 삶을 돕겠습니다 하고 지역 청년들에게 새 일자리를 떠들며 노동개혁을 던지고 임대차보호법을 악법으로 남겨두고... 언행불일치 정도를 떠나서 먹이를 던져주고 다가오는 개를 불질러 죽이는 수준이니까.. 뒤통수를 찰싹 치는 정도로는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쨌든, 아마 국회의원 사무실에 찾아간다면 의외로 괜찮은 확률로 그들을 만날 수 있을것이다. 하지만 어쨌든 저러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선거 전의 몇 달이 유별나다. 심지어 서초구에서! 그들은 거의 따논 당상, 포장된 빅맥, 뭐 더 쉬운 비유를 상상하기도 어렵구만. 하여튼 손 놓고 있어도 대충 당선될 거라는 사람들이다. 그래도 그들은 고개를 숙인다. 정작 여기에 민주/정의 쪽 후보는 보이지 않는데.



한달인가 두달인가 전에도 그랬다. 새누리당 조끼를 입은 사람들이 내방역 역사내에서 홍보를 한다. 방배역과 내방역은 매우 가깝다. 서초구라는 소리다. 의원이나 후보는 없고 그냥 새누리당을 홍보한다. 빨간색을 입고 고운 얼굴과 친절한 목소리로 인사를 하며.. 이들을 이렇게 수고스럽게 만드는것이, 몇 달전에 그래도 내가 으어 인사 함 받아보끄나 할 수 있는게 민주정의 가치쯤 될 것이다. 내게 있는 도장의 권리, 그게 드러날 때 만큼은 그들과 일순간 비슷한 위치에 선.. 교과서에서나 봤던 '동등한 입장' 비스무리한 기분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 그들의 경제적 상황, 그들 삶의 환경, 그들이 살면서 누리고 겪는 것들의 차이.. 동등 따위는 영원히 멀고 그들의 인사 뒤에는 기만이 서려있다. 그리고 그 기만을 위해 그들은 철저하다.



철저하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강남 3구는 새누리당의 표밭이라고 하지만, 새누리당의 후보들은 그걸 잃지 않기 위해 힘쓴다. 지역 행사가 있으면 열심히 얼굴을 비추고, 지역 행사의 유지들에게 굽신댄다. 이 동네에 특별히 공동체 주의같은게 있진 않지만 몇몇 대형 고급 아파트 단지의 친목행사라거나, 지역 몇몇 종교공동체나 여타 협회들의 간부들과 지역구의원, 그리고 지역구 청장급 라인은 매우 친밀하다. 그리고 알다시피.. 그러한 간부들은 소속 집단의 사람들에게 그들의 인간적인 면모와 이해관계를 바탕으로 자발적 선거운동 부역자가 된다. 일상속에서도 우리 구에, 우리 모임에, 여기를 더 낫게할 사람이 누구인지를 끊임없이 강변하고 주변에 알린다. 그리고 인간적인 친밀도로 이어진 많은 사람들의 네트워크속에서 그것은 손쉽게 재생산된다. 물론 그걸 중간에 끊어내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적어도 서초구를 안정적인 표밭으로 만드는 것은 단순히 '땅값'이나 '세금'이나 '기업프렌들리'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인간적 친밀도나, 우리가 남이가! 같은 것으로 마음을 결정하고 이후에 그 결정에 합리성을 만들기 위해 '재건축의 기대치' '세금의 기대치' '기업 친화 정책'의 기대치 '일자리' 의 기대치등을 부여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그리고 새누리당의 그네들은 매번 선거기간때마다, 그 권력의 안정성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 새누리당의 정책적 방향이 비교적 많은 사람에게 좋게 받아들여지는 서초구에서, 그들은 정책이 아니어도 필사적으로 권력을 수호하기 위해 움직인다.



독서실에 도착할때쯤이 되어서는 새누리당 후보자에 대한 불쾌감은 상당히 희석되었다. 난 여전히 서초구 주민이지만 여기가 새누리당 표밭이라는게 너무나 부끄럽고.. 수치스럽고.. 어떤 후보의 말마따나, '바꾸는 모습을 보여줘야 호구가 안됩니다' 같은 말에 동의한다. 하지만.. 이 구의 사람들에게 새누리당 사람들은 기만의 경계를 보여주지 않는다. 철저하게, 열심히 지역의 네트워크를 관리하고 위장의 가면을 쓴다. 그들이 의정활동에서 어떻게 하든지간에 그들은 너무나 친절하고 사람좋은 미소로, 그리고 언론 기사와는 다르게 지역구에서 마주칠때는 든든하고 멋진.. 우리편처럼 연기한다. 그들의 민낯은 그들과 반대에 서서 갈등해보기전에는 도무지 알 수 없을만큼.. 잠긴 건물의 문을 따며 생각한다. 가진 자들의 것을 언제든 되돌릴 수 있는 체제를 겨우 만들었다. 가진 자들이 재생산하는 이데올로기에 대해 저항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자유를 확보했다. 제도도, 자유도 내주어야 했던 가진 자들은 필사적이다. 어쩌면 우리가 얻은 것들은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여전히 투쟁적이다. 불안하게 흔들리며 표류하는 나룻배 밑으로 지독한 싸움이 이어지는 셈이다. 현실은 잃을것이 적은 이들보다.. 잃을 것이 많은 이들의 싸움이 더 표독스럽다. 잃을 것이 유일하여 잃고나면 아무것도 없는 이들의 절박함보다, 하나에서 열을 잃어도 낭떠러지로 떨어질 일은 없는 이들의 탐욕이 훨씬 더 적극적이고 열정적이다. 사회에선 끊임없이 천박한 자본주의의 이데올로기를 재생산시키고, 경제는 점점 혹독하게 시민의 삶을 죄여온다. 잃을 것은 쇠사슬 뿐이라 했지만 쇠사슬과 목숨 이외에도 잃을게 생겨버린 우리들은 어디까지 싸울 수 있으며 어디까지 저항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러한 절박함 만큼이나 그렇게 행동하고 있기는 할까.. 작은 풀뿌리를, 작은 시민교육을, 작은 행동을 이어나가고 싶지만 이내 내가 앉아야 할 곳은 여전히 독서실 한 켠의 외풍이 스며드는 차가운 총무석이다.




싸움을 포기당한 땅에 산다는 것은 이토록 비참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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