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16/11/13 13:16:28
Name   똘빼
Subject   낯선 이에게 호의를 베풀지 못하게 되었나봅니다.


제 부친께선 의심이 많으십니다. 금전관계에 있는 사람은 절대 믿지 않으시고, 상대방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전제에서 시작하십니다.

저도 그 태도를 이어받으려 노력했고, 상대의 우는 소리는 어지간해선 듣지 않게 됐습니다. 특히 거래처에서 적자가 심하니 사정을 좀 봐달라고 해도 칼같이 자릅니다. 제가 어리고 만만해보이는 걸 저 자신이 잘 알기 때문에, 더 냉혹하고 모질어지려고 일부러 마음을 다잡는 것도 있습니다.



그러나... 상대의 거짓말이라 생각했던 것이 진짜로 밝혀질 때가 가끔 있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회의와 혼란에 빠지곤 합니다....



얼마전 어떤 학생과 간단한 물품거래를 했습니다. 물품가격은 10만원이었습니다. 학생은 자기가 지금 꼭 필요한데 돈이 없다며 돈을 나중에 드리면 안되겠냐고 하더군요.  

어이가 없어서 안됩니다- 하고 메시지창을 닫아버렸는데 구구절절 사연을 얘기하더라구요. 자기 아버지가 사업이 망하고 어머니가 허리아파서 입원하고 자기는 돈없어서 학교도 휴학했다.. 너무 전형적인 얘기에 저는 실소를 머금으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이 조금 들었습니다. 진짜면 어쩌나..






결국 10만원을 받았습니다만. 글쎄요. 찝찝함이 아직도 가시질 않습니다. "10만원은 어떻게 구했어요?" "아는 언니한테 빌렸어요..." 지친 표정으로 돌아서는 스물한살 여학생의 느슨한 리복운동화는 때가 많이 묻어있었습니다. 어쩌면 어머니 간병을 하고 있다는 이 학생의 말이 진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한참동안 그 자리에 서서 십만원을 만지작거리고 있었습니다. 사실 맘속에선 수십번이나 '저기 학생! 이돈 그냥가져가~' 가 시뮬레아션 되고 있었습니다만, 그 언젠가 제 어란 시절 '가출한아내를 찾으러 나왔다'는 아저씨의 거짓말에 2만원이나 줬던 기억이 그 상상을 행위로 옮기는 것을 가로막았습니다. 만에 하나라도, 제 진심이 기만당하는 걸 감당해낼 자신이 없었습니다.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류시화 시인의 시집 제목이죠.

"베풀어라, 한번도 속지 않은 것처럼"
이라고 누군가 말한다면 ,
글쎄요. 저는 그럴 수 있을까요.....







여러분들은 어떠신가요?



2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공지 티타임 게시판 이용 규정 2 Toby 15/06/19 31934 7
    15147 정치전농에 트랙터 빌려줘본 썰푼다.txt 10 + 매뉴물있뉴 24/12/22 763 2
    15146 의료/건강일종의? 의료사기당해서 올려요 14 + 블리츠 24/12/21 734 0
    15145 정치떡상중인 이재명 55 매뉴물있뉴 24/12/21 1643 15
    15144 일상/생각떠나기전에 생각했던 것들-2 셀레네 24/12/19 534 8
    15142 일상/생각플라이트 시뮬레이터로 열심히 걸어다니고 있습니다~~ 7 큐리스 24/12/19 480 2
    15140 정치이재명은 최선도, 차선도 아니고 차악인듯한데 42 매뉴물있뉴 24/12/19 1767 7
    15139 정치야생의 코모도 랩틸리언이 나타났다! 호미밭의파스꾼 24/12/19 360 4
    15138 스포츠[MLB] 코디 벨린저 양키스행 김치찌개 24/12/19 117 0
    15137 정치천공선생님 꿀팁 강좌 - AI로 자막 따옴 28 매뉴물있뉴 24/12/18 711 1
    15135 일상/생각생존신고입니다. 9 The xian 24/12/18 596 30
    15134 일상/생각산타 할아버지는 알고 계신데.. 5 Picard 24/12/18 409 7
    15133 도서/문학소설 읽기의 체험 - 오르한 파묵의 <소설과 소설가>를 중심으로 1 yanaros 24/12/18 269 4
    15132 정치역사는 반복되나 봅니다. 22 제그리드 24/12/18 710 2
    15131 여행[2024 나의 이탈리아 여행기] 0. 준비 7 Omnic 24/12/17 344 7
    15130 정치비논리적 일침 문화 7 명동의밤 24/12/16 852 7
    15129 일상/생각마사지의 힘은 대단하네요 8 큐리스 24/12/16 759 7
    15128 오프모임내란 수괴가 만든 오프모임(2) 50 삼유인생 24/12/14 1843 5
    15127 일상/생각떠나기전에 생각했던 것들-1 6 셀레네 24/12/14 851 5
    15126 정치사람은 용서하랬다. 저는 그렇게 배웠어요. 12 바보왕 24/12/13 1439 25
    15125 IT/컴퓨터모니터 대신 메타 퀘스트3 VR 써보기(업데이트) 9 바쿠 24/12/12 608 5
    15123 정치향후 정계 예상 (부제: 왜 그들은 탄핵에 반대하는가) 12 2S2B 24/12/12 1151 0
    15121 일상/생각나는 돈을 빌려달라는 말이 싫다. 11 활활태워라 24/12/10 1208 14
    15120 일상/생각아침부터 출근길에 와이프 안아주고 왔습니다. 12 큐리스 24/12/10 873 8
    15119 일상/생각집밥 예찬 2 whenyouinRome... 24/12/09 521 22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