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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17/02/04 05:06:32 |
Name | 삼공파일 |
Subject | . |
작성자가 본문을 삭제한 글입니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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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소설의 기준 중에서 제일 먼저 전제되어야 할 것이 내가 아는 이야기를 하느냐, 내가 관심있는 이야기를 하느냐, 내가 알아듣게 이야기를 하느냐 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제가 2007년 so1스타리그를 시작으로 스덕에 입문해서 나름 개인리그 프로리그 한경기도 안빼놓고 다 챙겨봤습니다. 그러다가 2009년 즈음해서 스갤을 알게 됐어요. 그런데 2년동안 스타에 미쳐있었던 제가 스갤에서 하는 말들을 하나도 못 알아듣겠더라는 겁니다. 분명 스타 얘기를 하는거 같기는 한데 무슨 외국어라도 쓰는거 같았어요. 그런데 분명한건 쟤네... 더 보기
제가 2007년 so1스타리그를 시작으로 스덕에 입문해서 나름 개인리그 프로리그 한경기도 안빼놓고 다 챙겨봤습니다. 그러다가 2009년 즈음해서 스갤을 알게 됐어요. 그런데 2년동안 스타에 미쳐있었던 제가 스갤에서 하는 말들을 하나도 못 알아듣겠더라는 겁니다. 분명 스타 얘기를 하는거 같기는 한데 무슨 외국어라도 쓰는거 같았어요. 그런데 분명한건 쟤네... 더 보기
좋은 소설의 기준 중에서 제일 먼저 전제되어야 할 것이 내가 아는 이야기를 하느냐, 내가 관심있는 이야기를 하느냐, 내가 알아듣게 이야기를 하느냐 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제가 2007년 so1스타리그를 시작으로 스덕에 입문해서 나름 개인리그 프로리그 한경기도 안빼놓고 다 챙겨봤습니다. 그러다가 2009년 즈음해서 스갤을 알게 됐어요. 그런데 2년동안 스타에 미쳐있었던 제가 스갤에서 하는 말들을 하나도 못 알아듣겠더라는 겁니다. 분명 스타 얘기를 하는거 같기는 한데 무슨 외국어라도 쓰는거 같았어요. 그런데 분명한건 쟤네들이 이야기하고 있는건 내가 빠져있는 그 세계의 이야기이고 그 세계의 사건들을 소재로 떠들썩하고 흥겹게 놀고 있다는 점이었어요. 같이 어울리고 싶다는 욕구를 참을 수 없었습니다. 말 그대로 닥치고 눈팅 삼개월을 했더니 저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그들과 동화되었어요. 가끔씩 스갤 용어 해설집 이라는 글이 올라왔는데 저는 아니 이런걸 다 일일히 설명할 필요가 있나? 하고 느꼈습니다. 몇달 전까지만 해도 저 자신이 알아듣지 못했던 표현들에 대해서요.
그렇게 디시에 들어서게 된 저는 점차 다른 갤러리들도 기웃거리기 시작했어요. 고전게임,헬스,도서,영화,아르바이트,연애상담.. 각 갤러리마다 마치 다른 커뮤니티인 마냥 분위기가 전부 다르고 사용하는 '언어'도 달랐습니다. 최근에는 너의 이름을 감명깊게 봐서 너의이름은 갤러리에 들어가 봤는데 역시 처음에는 무슨 얘기 하는지 못알아듣겠더라구요.
소설의 이해라는 것도 약간은 그런 성격이 있는거 같습니다. 소설가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계속 글로만 자신이 하고픈 이야기를 써 나가다 보면 약간은 그 세계에서 말하는 방식이 따로 생기는거 아닌가 싶어요.
스갤에 처음 들어설 당시의 제가 스타를 모르는 사람이 아니었듯이, 맨부커상 소식을 듣고 한강이라는 작가를 채식주의자로 처음 접하는 독자들이 한강이 이야기하는 주제에 대해 모르는 사람인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아주 평범하고 누구나 거기에 대해서 어떤 의견이나 생각을 나눌 수 있는 이야기에요. 물론 공감가지 않는 부분은 있겠죠. 같은 스갤에서도 택빠와 뱅빠가 싸우고 테란이 사기다 아니다 싸우듯이. 채식주의자를 읽고 이게 무슨 소리야? 라는 기분이 드는 분들은 제가 처음 스갤에 들어갔을 때 얘네들 한국말 쓰는거 맞나 ? 하는 기분을 느낀 거랑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지하생활자의 수기라는 소설을 한 십년 전에 제목만 보고 샀는데 그때는 도스토예프스키라는 사람이 누군지도 모르고 실존주의가 뭔지도 몰랐습니다. 책을 읽어도 이게 무슨 말인지 도무지 모르겠더라구요. 어렵고 말고가 아니라 아예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이런 걸 뭐하자고 썼는지 이해가 안됐어요. 한 칠년 후 저는 그 소설을 배꼽 잡고 웃으며 읽고 있었습니다. 제가 실존주의를 이해하게 되어서가 아니었어요. 그냥 그 책이 어떤 식으로 말을 하고 있는지에 적응이 되었을 뿐입니다. 스갤 닥눈삼 한다음에 재미나게 스갤질을 하게 된 것처럼요.
저는 개인적으로 <문학적 소양>이라는 말을 싫어하는데, 철학이나 정치나 기타 학문적인 분야는 체계적이든 주먹구구식이든 어떻게든 공부가 필요한 반면에 소설읽기는 유희라는 성격이 강하다고 생각해서요. 한마디로 '재미있는 구라치기' 를 듣는 겁니다. 누가누가 나를 심심하지 않게 썰을 잘 풀어 주나 찾는 놀이가 소설읽기라고 생각하는 거에요. 스갤에서 개드립 잘치고 짤방 잘 만드는 사람에게 '스타크래프트 소양이 높다' 라고 표현하지 않잖아요.?
다만 이것은 소설이라는 매체를 소비하는 입장에서 그런 거고 평론의 영역으로 넘어가면 거기서부터는 확실히 차이가 나겠죠. 폭풍의 언덕을 감명 깊게 읽는건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에밀리 브론테의 문학세계에 대해 말하는건 사람마다 정말로 수준차이가 날테니까요.
혼자서 할 수 있는 트럼프 게임이 몇가지 종류가 있는데 그중 '피라미드'라는 게임이 있습니다. 맨 위에 한 장의 카드를 깔고 그 아래 두 장의 카드를 반쯤 포개 올려놓고 그 아래 세 장을 올리고... 해서 맨 아래 열세 장인가의 카드가 깔려요. 그런 다음에 두 카드의 합이 13이 되는 쌍을 제거해 나가는 게임입니다. 약간은 헌티드 맨션 비슷하기도 하네요. 이게 어떤 카드가 처음에는 제거가 안되다가 다른 카드부터 제거해 나가다 보면 결국은 모든 카드가 다 제거가 됩니다. 근데 이게 나중에 제거되는 카드의 제거조건이 먼저 제거되는 카드의 제거조건보다 난이도가 높은게 아닙니다. 그저 우연히 어느 카드가 어느 위치에 깔려 있었느냐의 차이 뿐이에요.
사람마다 살아온 과정이 전부 다르고 경험의 종류도 순서도 다 다릅니다. 또 같은 경험을 해도 느끼는게 다 다르고요. 저는 이십대 중반까지 오만과 편견을 이해하지 못했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시시한 이야기라고 생각했어요. 나중에 여자사람들 속에서 이런저런 사귐을 경험하고 난 뒤에 읽은 오만과 편견은 엄지척! 이었지요. 고시원에서 폐인생활을 한 후 라스콜리니코프를 이해했고 아버지가 길에서 쓰러져 돌아가신 후 마르멜라도프를 이해했습니다. 한 사람에게 어떤 소설이 어느 시기에 어떻게 다가오느냐는 사람마다 전부 다를겁니다. 다만 약간 아래 깔려 있어서 조건만 충족되면 바로 제거할 수 있는 카드와 같은 소설이 있고 다른 카드를 먼저 제거한 이후에 제거할 수 있는 카드 같은 소설도 있는거 같아요. 또 스갤 닥눈삼 같은 시간을 보낸 후에 읽히는 소설도 있구요. 안녕 주정뱅이는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술에 대한 이야기라면 먼저 제거할 수 있는 카드 같은 소설이 아닌가 싶습니다. 삼공파일님께서 <채식주의자 대신 구원투수로>라고 표현하신건 아마 그런 의미가 아닐까 생각해요. 한 소설이 우연한 계기로 어떤 사람의 마음 속을 헤집어놓고 나면, 그 사람은 스갤에서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면서도 그곳이 너무 재미있어 보여 어떻게든 어울려 보고 싶어 미치겠는 사람과 비슷한 처지에 처합니다. 한번 받은 감동을 또 느끼고 싶어서 무슨 말인지 모르는 거 같은 수많은 소설들 속을 찾아 헤매요. 그런 시간들이 자연스럽게 닥눈삼을 충족시키기도 하고 자신의 인생 경험 톱니바퀴와 맞아떨어지는 소설을 한권 두권 만나다 보면 트럼프 카드가 한쌍 한쌍 제거되는 것과 같이 처음에는 안 읽혔던 소설도 나중에는 눈물범벅으로 만들기도 하고 현웃 터지며 읽기도 하고 그렇게 변하는거 같아요.
제가 2007년 so1스타리그를 시작으로 스덕에 입문해서 나름 개인리그 프로리그 한경기도 안빼놓고 다 챙겨봤습니다. 그러다가 2009년 즈음해서 스갤을 알게 됐어요. 그런데 2년동안 스타에 미쳐있었던 제가 스갤에서 하는 말들을 하나도 못 알아듣겠더라는 겁니다. 분명 스타 얘기를 하는거 같기는 한데 무슨 외국어라도 쓰는거 같았어요. 그런데 분명한건 쟤네들이 이야기하고 있는건 내가 빠져있는 그 세계의 이야기이고 그 세계의 사건들을 소재로 떠들썩하고 흥겹게 놀고 있다는 점이었어요. 같이 어울리고 싶다는 욕구를 참을 수 없었습니다. 말 그대로 닥치고 눈팅 삼개월을 했더니 저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그들과 동화되었어요. 가끔씩 스갤 용어 해설집 이라는 글이 올라왔는데 저는 아니 이런걸 다 일일히 설명할 필요가 있나? 하고 느꼈습니다. 몇달 전까지만 해도 저 자신이 알아듣지 못했던 표현들에 대해서요.
그렇게 디시에 들어서게 된 저는 점차 다른 갤러리들도 기웃거리기 시작했어요. 고전게임,헬스,도서,영화,아르바이트,연애상담.. 각 갤러리마다 마치 다른 커뮤니티인 마냥 분위기가 전부 다르고 사용하는 '언어'도 달랐습니다. 최근에는 너의 이름을 감명깊게 봐서 너의이름은 갤러리에 들어가 봤는데 역시 처음에는 무슨 얘기 하는지 못알아듣겠더라구요.
소설의 이해라는 것도 약간은 그런 성격이 있는거 같습니다. 소설가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계속 글로만 자신이 하고픈 이야기를 써 나가다 보면 약간은 그 세계에서 말하는 방식이 따로 생기는거 아닌가 싶어요.
스갤에 처음 들어설 당시의 제가 스타를 모르는 사람이 아니었듯이, 맨부커상 소식을 듣고 한강이라는 작가를 채식주의자로 처음 접하는 독자들이 한강이 이야기하는 주제에 대해 모르는 사람인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아주 평범하고 누구나 거기에 대해서 어떤 의견이나 생각을 나눌 수 있는 이야기에요. 물론 공감가지 않는 부분은 있겠죠. 같은 스갤에서도 택빠와 뱅빠가 싸우고 테란이 사기다 아니다 싸우듯이. 채식주의자를 읽고 이게 무슨 소리야? 라는 기분이 드는 분들은 제가 처음 스갤에 들어갔을 때 얘네들 한국말 쓰는거 맞나 ? 하는 기분을 느낀 거랑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지하생활자의 수기라는 소설을 한 십년 전에 제목만 보고 샀는데 그때는 도스토예프스키라는 사람이 누군지도 모르고 실존주의가 뭔지도 몰랐습니다. 책을 읽어도 이게 무슨 말인지 도무지 모르겠더라구요. 어렵고 말고가 아니라 아예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이런 걸 뭐하자고 썼는지 이해가 안됐어요. 한 칠년 후 저는 그 소설을 배꼽 잡고 웃으며 읽고 있었습니다. 제가 실존주의를 이해하게 되어서가 아니었어요. 그냥 그 책이 어떤 식으로 말을 하고 있는지에 적응이 되었을 뿐입니다. 스갤 닥눈삼 한다음에 재미나게 스갤질을 하게 된 것처럼요.
저는 개인적으로 <문학적 소양>이라는 말을 싫어하는데, 철학이나 정치나 기타 학문적인 분야는 체계적이든 주먹구구식이든 어떻게든 공부가 필요한 반면에 소설읽기는 유희라는 성격이 강하다고 생각해서요. 한마디로 '재미있는 구라치기' 를 듣는 겁니다. 누가누가 나를 심심하지 않게 썰을 잘 풀어 주나 찾는 놀이가 소설읽기라고 생각하는 거에요. 스갤에서 개드립 잘치고 짤방 잘 만드는 사람에게 '스타크래프트 소양이 높다' 라고 표현하지 않잖아요.?
다만 이것은 소설이라는 매체를 소비하는 입장에서 그런 거고 평론의 영역으로 넘어가면 거기서부터는 확실히 차이가 나겠죠. 폭풍의 언덕을 감명 깊게 읽는건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에밀리 브론테의 문학세계에 대해 말하는건 사람마다 정말로 수준차이가 날테니까요.
혼자서 할 수 있는 트럼프 게임이 몇가지 종류가 있는데 그중 '피라미드'라는 게임이 있습니다. 맨 위에 한 장의 카드를 깔고 그 아래 두 장의 카드를 반쯤 포개 올려놓고 그 아래 세 장을 올리고... 해서 맨 아래 열세 장인가의 카드가 깔려요. 그런 다음에 두 카드의 합이 13이 되는 쌍을 제거해 나가는 게임입니다. 약간은 헌티드 맨션 비슷하기도 하네요. 이게 어떤 카드가 처음에는 제거가 안되다가 다른 카드부터 제거해 나가다 보면 결국은 모든 카드가 다 제거가 됩니다. 근데 이게 나중에 제거되는 카드의 제거조건이 먼저 제거되는 카드의 제거조건보다 난이도가 높은게 아닙니다. 그저 우연히 어느 카드가 어느 위치에 깔려 있었느냐의 차이 뿐이에요.
사람마다 살아온 과정이 전부 다르고 경험의 종류도 순서도 다 다릅니다. 또 같은 경험을 해도 느끼는게 다 다르고요. 저는 이십대 중반까지 오만과 편견을 이해하지 못했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시시한 이야기라고 생각했어요. 나중에 여자사람들 속에서 이런저런 사귐을 경험하고 난 뒤에 읽은 오만과 편견은 엄지척! 이었지요. 고시원에서 폐인생활을 한 후 라스콜리니코프를 이해했고 아버지가 길에서 쓰러져 돌아가신 후 마르멜라도프를 이해했습니다. 한 사람에게 어떤 소설이 어느 시기에 어떻게 다가오느냐는 사람마다 전부 다를겁니다. 다만 약간 아래 깔려 있어서 조건만 충족되면 바로 제거할 수 있는 카드와 같은 소설이 있고 다른 카드를 먼저 제거한 이후에 제거할 수 있는 카드 같은 소설도 있는거 같아요. 또 스갤 닥눈삼 같은 시간을 보낸 후에 읽히는 소설도 있구요. 안녕 주정뱅이는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술에 대한 이야기라면 먼저 제거할 수 있는 카드 같은 소설이 아닌가 싶습니다. 삼공파일님께서 <채식주의자 대신 구원투수로>라고 표현하신건 아마 그런 의미가 아닐까 생각해요. 한 소설이 우연한 계기로 어떤 사람의 마음 속을 헤집어놓고 나면, 그 사람은 스갤에서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면서도 그곳이 너무 재미있어 보여 어떻게든 어울려 보고 싶어 미치겠는 사람과 비슷한 처지에 처합니다. 한번 받은 감동을 또 느끼고 싶어서 무슨 말인지 모르는 거 같은 수많은 소설들 속을 찾아 헤매요. 그런 시간들이 자연스럽게 닥눈삼을 충족시키기도 하고 자신의 인생 경험 톱니바퀴와 맞아떨어지는 소설을 한권 두권 만나다 보면 트럼프 카드가 한쌍 한쌍 제거되는 것과 같이 처음에는 안 읽혔던 소설도 나중에는 눈물범벅으로 만들기도 하고 현웃 터지며 읽기도 하고 그렇게 변하는거 같아요.
채식주의자는 상을 받아서 오히려 억울한 처지가 된 소설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영호 이제동 김택용 놔두고 염보성이 올해의 프로게머상을 받으면 욕을 엄청 먹겠죠. 그렇다고 염보성이 전체 프로게이머 중에서 낮은 레벨이 아닌 것과 비슷하다고 봅니다. 안녕 주정뱅이는 안그래도 읽어야 할 목록에 있었는데 순번을 좀 당겨야겠네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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