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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17/02/12 18:19:19 |
Name | 삼공파일 |
Subject | . |
작성자가 본문을 삭제한 글입니다.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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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과 대비가 잘 될 것 같아 제 사례도 소개해보자면...
유년기까지는 골수 개신교 가정에서 태어나 모태 신앙의 세례를 받으며 목가적인 행복감을 누렸죠. 마치 아해들이 해리포터 세계관 속에서 충만감을 느끼면서 자신이 주인공이 되었다는 느낌에 도취되듯, 저 역시 야훼-부모님-친가와 외가-그외 친지들-교회 사람들로 이어지는 인간관계의 연쇄 속에서 내가 세상의 중심에 있다는 안정감을 만끽했습니다. 비록 아버지의 처참한 사업 능력으로 인해 항상 아홉 자리 숫자의 부채가 가계를 짓누르긴 했지만, 그조차도 어머니가 목회자의 길로 아버지... 더 보기
유년기까지는 골수 개신교 가정에서 태어나 모태 신앙의 세례를 받으며 목가적인 행복감을 누렸죠. 마치 아해들이 해리포터 세계관 속에서 충만감을 느끼면서 자신이 주인공이 되었다는 느낌에 도취되듯, 저 역시 야훼-부모님-친가와 외가-그외 친지들-교회 사람들로 이어지는 인간관계의 연쇄 속에서 내가 세상의 중심에 있다는 안정감을 만끽했습니다. 비록 아버지의 처참한 사업 능력으로 인해 항상 아홉 자리 숫자의 부채가 가계를 짓누르긴 했지만, 그조차도 어머니가 목회자의 길로 아버지... 더 보기
본문과 대비가 잘 될 것 같아 제 사례도 소개해보자면...
유년기까지는 골수 개신교 가정에서 태어나 모태 신앙의 세례를 받으며 목가적인 행복감을 누렸죠. 마치 아해들이 해리포터 세계관 속에서 충만감을 느끼면서 자신이 주인공이 되었다는 느낌에 도취되듯, 저 역시 야훼-부모님-친가와 외가-그외 친지들-교회 사람들로 이어지는 인간관계의 연쇄 속에서 내가 세상의 중심에 있다는 안정감을 만끽했습니다. 비록 아버지의 처참한 사업 능력으로 인해 항상 아홉 자리 숫자의 부채가 가계를 짓누르긴 했지만, 그조차도 어머니가 목회자의 길로 아버지를 인도하는 '섭리'의 일부분이며 '이성의 간지'였을 따름이었죠.
그런데 점점 머리가 굵어지면서 위화감이 들었죠. 어머니는 캐리건이 사악해보인다는 이유로 스타크래프트 하는 것을 꾸중하셨으며, 베라모드의 일러스트가 마녀를 닮았다는 이유로 - 남성이라고 정정해주니 마남이라고 재차 규정하셨죠 - 게임 패키지를 버릴 것을 종용하여 결국은 관철시키셨죠. 100원 짜리를 낭비하는 것은 1000원 10000원 100만 원을 낭비하는 것으로 이어지는 일이라며 질타했지만 정작 그 못지 않은 금액들이 헌금으로 나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고요. 진화론은 분명히 과학인데 과학은 불신앙이라는 답이 돌아왔고... 게다가 가족 이외에 개신교적 세계관 내에 있던 사람들이 신학적인 의문에 대해 제대로 답변해주는 것도 아니고 종교적 순수성이 있는 것도 아닌지라 실망스럽기 짝이 없었고요. 주변에 있는 수십 수백의 사람들이 모두 야훼를 외치고 아가페를 논했지만 정작 그에 근접하게 살아가는 것은 어머니 단 한 명에 불과했고 그 어머니는 인간 도그마 그 자체였지요. 그러던 와중에 아버지의 책장에 있던 기독교 사상사를 읽으면서 '아하 이게 다 종교인들 사이의 파벌적인 정치 놀음이었을 뿐이구나!'라는 것을 깨닫고 심중으로 신앙심을 정리하게 되었고요.
그렇게 개신교 이외에는 가르침 받은 것이 없는 상태에서 자체 포맷을 때린 상태로 대학을 가게 되니, 교류할 사람이 없더군요. 할 줄 아는 게 있길 하나 이야깃거리가 있길 하나...개신교에 몰빵한 가정 교육이란 게 실상 사람 반편 만드는 것이더라고요. 끽해야 중고등학교 때 나름대로 탐독한 인문 사회적인 관심사가 전부였는데, 대학이라고 해봐야 그런 것을 좋아하는 이들은 한정되어 있더군요. 자연히 겉돌 수밖에 없었죠.
그런 와중에 눈에 들어온 게 운동권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학술에 관심 있는 것은 운동권들 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진보주의를 이야기하면서 노무현을 비판하는 이들이 나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것도 굉장한 힘이 되었고요. 고등학교 때까지는 주변에 노빠밖에 없었고 제 입장에서는 당연히 정치 이야기 꺼내기가 어려웠거든요. 게다가 집안이 워낙 그지인데다 공산주의는 애저녁에 관심있게 공부하고 있던 상태였던지라 좌익 담론은 친숙하기 그지 없던 것이었고...
다행히도 제가 접하게 된 단체는 학내의 군소 학회로, 운동권의 정파 놀음과도 무관하게 그냥 교육 연구하고 교원 정책에만 집중하는 무정파적 모임이었습니다. 그 덕분에 다른 곳보다는 훨씬 유연하고 순수했죠. 사범대생들이 그렇듯 다들 범생이들이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범생이 같은 이들이 범생이 모임에 모여서 범생이 담론을 논하다보니 정말 천진난만했어요. 학회원이 15-20명 정도 되었는데 아마 그 중에서 성경험이 있던 것은 5명 미만이었을 겁니다. 운동권들답잖게 다들 성적으로 미숙했고 아예 그런 쪽으로 생각을 잘 못했죠. 덕분에 모태신앙의 길을 거쳐온 저는 대학 때에도 성적으로 개화할 외부압을 경험하지 못했고. 여하간 그런 환경이었던지라 자연히 좌파 담론 이외에도 이런저런 교양을 플라토닉하게 공유할 수 있었죠.
그렇게 2년 여를 보냈는데...점차 설 자리가 없어지더라고요. 아무리 열려 있다고 한들 운동권들이 갖는 학적 관심사란 게 뻔했기에 지식욕을 충족시켜주긴 어려웠습니다. 새로이 가입해오는 학회원들은 운동이든 학술이든 별로 좋아하지 않기도 했고요. 점차 학회 내에서도 소외감이 느껴졌습니다. 때마침 단과대 학생회 운영이 특정 정파에 의해 개판으로 굴러가는 것을 못 견딘 학회원들이 우리네도 학내 운동의 거점을 마련하자는 의욕을 품으면서 선거전이 벌어졌는데, 그렇게 되니 이리저리 정치적 거래를 제안해오는 정파들이 있더군요. 마치 베트남 전쟁에서 소련과 미국이 월맹과 월남을 통해 대리전을 치렀듯이 새로운 선거구도를 이용하려는 이들이 개입을 시도했습니다. 그러면서 굉장히 정치적인 방향으로 학회가 흘러가게 되기도 했고. 학회 내의 비정치적인 멤버들(주로 동기/후배들)과 정치적인 멤버들 사이의 분열도 심화되었고. 저 자신도 선거전에서 이런저런 협잡질을 능숙하게 수행하기도 했고요. 결정적으로 타고난 천성 자체가 비사회적이고 에너지의 총량 자체가 작은 무심하고 열정 없는 성격인 터라 그쯤 되니까 중재고 뭐고 만사를 감당하기가 힘들어지더라고요. 애초부터 운동권 체질이 아니었던 거죠. 이 모든 덤터기를 나 혼자 쓸 수 없다는 비겁한 생각도 있었고. 그래서 한 두달 갈등 상황 속에서 어찌할 지 모르다가 도망치듯 '권' 생활을 중단하게 되었습니다. 그 쯤 되니 남는 게 없더군요. 유년기부터 차곡차곡 쌓아올려진 가족적/종교적 세계관을 제물로 삼아 만든 좌파적 세계관인데 까보니까 별 게 없더라고요. 그렇게 군대를 가게 되고...
여튼 일련의 경험으로 얻은 교훈이라면, 어차피 세상은 내가 주장하는 이념과 상관없이 굴러가며, 그에 대해 무언가 기대하는 것은 무의미하며, 세상엔 폭력과 허위가 가득하고, 정치가 어떤 식으로 진행되든 개인의 정치 의사는 '사표'에 불과할 뿐이라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결정하는 건 우연이지 '의사의 합' 같은 게 아니고, 설혹 후자 비슷하게 된다고 한들 일 개인의 기여도는 제로에 가깝다는 것이죠. 말초적으로 말하자면 박근혜가 당선이 되든 문재인이 당선이 되든 당선 시키는 것은 시류이지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아무 관계가 없지요. 물론 정치는 중요한 일이긴 합니다. 모두의 삶을 좌지우지하죠. 정확히는 정치의 결과로서 발생하는 행정이. 하지만 그것은 '시류'의 결정이기에 내가 어떻게 컨트롤할 수 없는 것이고 결국 내 영역이 아닌 셈이죠. 옐로스톤 국립공원에서 화산 폭발이 일어날지 여부는 박근혜나 트럼프 따위 잔챙이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중대한 일이며 인간사 뿐만 아니라 지구사 자체를 바꿔놓을 수 있는 일이지만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처럼.
이 경우 개인이 취할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은 자신과 뜻을 같이 하는 이들과 함께함으로써 자신의 정체성을 공동체의 액션과 동일시하면서 커뮤니티즘에 도취되는 것일 테지요. 이런 이념을 지지하는 것은 나 혼자만이 아니며 우리 모두가 함께 행동하여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하지만 그것은 자신의 삶이 먼지와 다를 게 없다는 것을 회피하기 위한 눈속임에 불과하므로 미망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저에게 있어 개신교나 운동권이 그랬던 것처럼...소위 '이길 수 없다면 합류하라'인 셈이죠. 파시즘이 사람들을 매혹시키는 것도 같은 이유일 겁니다. 물론 파시즘은 전간기와 2차대전 때에 발생한 특수한 현상이고, 이런저런 전체주의적인 대중 행위들을 죄다 파시즘으로 간주하는 것은 많은 이들이 지적하듯 부적절한 것은 맞아요. 하지만 그것은 전간기 파시즘처럼 이런저런 조건들이 맞아 사람들이 갖고 있는 커뮤니티즘적 열정이 결집되어 극단화 되는 일이 발생하기 어렵다 뿐, 그런 커뮤니티즘적 열정이 비일상적이라서 그런 게 아니죠.
해서 그 이후로는 정치나 사회에 대해 기대를 끊어버렸고, 관심도 사라졌습니다. 물론 여전히 유희로서 재미있기는 합니다. 애들 장난일 수밖에 없는 WWE나 스1이 아직까지도 재미있는 것처럼. 존 시나의 마이크 워크나 대선 후보들의 마이크 워크나 딱히 차이가 없는 것이죠. 더 락의 피플스 스터너가 제대로 들어갔네 아니네를 논하는 거나 이재명의 행보가 타당하네 어쩌네 하는 거나 크게 다를 것이 없을 테고요. 내가 지금까지 지켜보고 관심을 두었던 것의 실체를 명확하게 알게 되고 견적이 명확해지니까 오히려 즐기기도 더 좋더군요. 그나마도 전역 후 3~4년은 기권표나마 투표라도 했습니다만 통진당 사태를 보니 굳이 그럴 필요도 없다 싶더라고요. 당권파도 웃기지만 유시민과 참여계도 비웃음 나오긴 매한가지고.
여튼 끼적이다보니 길어졌는데...굳이 해야할 이야기였나 싶긴 하네요. 재수 없다면 재수 없는 이야기니. 저도 본문 보고 솔찬히 흥미로웠나봅니다.
유년기까지는 골수 개신교 가정에서 태어나 모태 신앙의 세례를 받으며 목가적인 행복감을 누렸죠. 마치 아해들이 해리포터 세계관 속에서 충만감을 느끼면서 자신이 주인공이 되었다는 느낌에 도취되듯, 저 역시 야훼-부모님-친가와 외가-그외 친지들-교회 사람들로 이어지는 인간관계의 연쇄 속에서 내가 세상의 중심에 있다는 안정감을 만끽했습니다. 비록 아버지의 처참한 사업 능력으로 인해 항상 아홉 자리 숫자의 부채가 가계를 짓누르긴 했지만, 그조차도 어머니가 목회자의 길로 아버지를 인도하는 '섭리'의 일부분이며 '이성의 간지'였을 따름이었죠.
그런데 점점 머리가 굵어지면서 위화감이 들었죠. 어머니는 캐리건이 사악해보인다는 이유로 스타크래프트 하는 것을 꾸중하셨으며, 베라모드의 일러스트가 마녀를 닮았다는 이유로 - 남성이라고 정정해주니 마남이라고 재차 규정하셨죠 - 게임 패키지를 버릴 것을 종용하여 결국은 관철시키셨죠. 100원 짜리를 낭비하는 것은 1000원 10000원 100만 원을 낭비하는 것으로 이어지는 일이라며 질타했지만 정작 그 못지 않은 금액들이 헌금으로 나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고요. 진화론은 분명히 과학인데 과학은 불신앙이라는 답이 돌아왔고... 게다가 가족 이외에 개신교적 세계관 내에 있던 사람들이 신학적인 의문에 대해 제대로 답변해주는 것도 아니고 종교적 순수성이 있는 것도 아닌지라 실망스럽기 짝이 없었고요. 주변에 있는 수십 수백의 사람들이 모두 야훼를 외치고 아가페를 논했지만 정작 그에 근접하게 살아가는 것은 어머니 단 한 명에 불과했고 그 어머니는 인간 도그마 그 자체였지요. 그러던 와중에 아버지의 책장에 있던 기독교 사상사를 읽으면서 '아하 이게 다 종교인들 사이의 파벌적인 정치 놀음이었을 뿐이구나!'라는 것을 깨닫고 심중으로 신앙심을 정리하게 되었고요.
그렇게 개신교 이외에는 가르침 받은 것이 없는 상태에서 자체 포맷을 때린 상태로 대학을 가게 되니, 교류할 사람이 없더군요. 할 줄 아는 게 있길 하나 이야깃거리가 있길 하나...개신교에 몰빵한 가정 교육이란 게 실상 사람 반편 만드는 것이더라고요. 끽해야 중고등학교 때 나름대로 탐독한 인문 사회적인 관심사가 전부였는데, 대학이라고 해봐야 그런 것을 좋아하는 이들은 한정되어 있더군요. 자연히 겉돌 수밖에 없었죠.
그런 와중에 눈에 들어온 게 운동권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학술에 관심 있는 것은 운동권들 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진보주의를 이야기하면서 노무현을 비판하는 이들이 나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것도 굉장한 힘이 되었고요. 고등학교 때까지는 주변에 노빠밖에 없었고 제 입장에서는 당연히 정치 이야기 꺼내기가 어려웠거든요. 게다가 집안이 워낙 그지인데다 공산주의는 애저녁에 관심있게 공부하고 있던 상태였던지라 좌익 담론은 친숙하기 그지 없던 것이었고...
다행히도 제가 접하게 된 단체는 학내의 군소 학회로, 운동권의 정파 놀음과도 무관하게 그냥 교육 연구하고 교원 정책에만 집중하는 무정파적 모임이었습니다. 그 덕분에 다른 곳보다는 훨씬 유연하고 순수했죠. 사범대생들이 그렇듯 다들 범생이들이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범생이 같은 이들이 범생이 모임에 모여서 범생이 담론을 논하다보니 정말 천진난만했어요. 학회원이 15-20명 정도 되었는데 아마 그 중에서 성경험이 있던 것은 5명 미만이었을 겁니다. 운동권들답잖게 다들 성적으로 미숙했고 아예 그런 쪽으로 생각을 잘 못했죠. 덕분에 모태신앙의 길을 거쳐온 저는 대학 때에도 성적으로 개화할 외부압을 경험하지 못했고. 여하간 그런 환경이었던지라 자연히 좌파 담론 이외에도 이런저런 교양을 플라토닉하게 공유할 수 있었죠.
그렇게 2년 여를 보냈는데...점차 설 자리가 없어지더라고요. 아무리 열려 있다고 한들 운동권들이 갖는 학적 관심사란 게 뻔했기에 지식욕을 충족시켜주긴 어려웠습니다. 새로이 가입해오는 학회원들은 운동이든 학술이든 별로 좋아하지 않기도 했고요. 점차 학회 내에서도 소외감이 느껴졌습니다. 때마침 단과대 학생회 운영이 특정 정파에 의해 개판으로 굴러가는 것을 못 견딘 학회원들이 우리네도 학내 운동의 거점을 마련하자는 의욕을 품으면서 선거전이 벌어졌는데, 그렇게 되니 이리저리 정치적 거래를 제안해오는 정파들이 있더군요. 마치 베트남 전쟁에서 소련과 미국이 월맹과 월남을 통해 대리전을 치렀듯이 새로운 선거구도를 이용하려는 이들이 개입을 시도했습니다. 그러면서 굉장히 정치적인 방향으로 학회가 흘러가게 되기도 했고. 학회 내의 비정치적인 멤버들(주로 동기/후배들)과 정치적인 멤버들 사이의 분열도 심화되었고. 저 자신도 선거전에서 이런저런 협잡질을 능숙하게 수행하기도 했고요. 결정적으로 타고난 천성 자체가 비사회적이고 에너지의 총량 자체가 작은 무심하고 열정 없는 성격인 터라 그쯤 되니까 중재고 뭐고 만사를 감당하기가 힘들어지더라고요. 애초부터 운동권 체질이 아니었던 거죠. 이 모든 덤터기를 나 혼자 쓸 수 없다는 비겁한 생각도 있었고. 그래서 한 두달 갈등 상황 속에서 어찌할 지 모르다가 도망치듯 '권' 생활을 중단하게 되었습니다. 그 쯤 되니 남는 게 없더군요. 유년기부터 차곡차곡 쌓아올려진 가족적/종교적 세계관을 제물로 삼아 만든 좌파적 세계관인데 까보니까 별 게 없더라고요. 그렇게 군대를 가게 되고...
여튼 일련의 경험으로 얻은 교훈이라면, 어차피 세상은 내가 주장하는 이념과 상관없이 굴러가며, 그에 대해 무언가 기대하는 것은 무의미하며, 세상엔 폭력과 허위가 가득하고, 정치가 어떤 식으로 진행되든 개인의 정치 의사는 '사표'에 불과할 뿐이라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결정하는 건 우연이지 '의사의 합' 같은 게 아니고, 설혹 후자 비슷하게 된다고 한들 일 개인의 기여도는 제로에 가깝다는 것이죠. 말초적으로 말하자면 박근혜가 당선이 되든 문재인이 당선이 되든 당선 시키는 것은 시류이지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아무 관계가 없지요. 물론 정치는 중요한 일이긴 합니다. 모두의 삶을 좌지우지하죠. 정확히는 정치의 결과로서 발생하는 행정이. 하지만 그것은 '시류'의 결정이기에 내가 어떻게 컨트롤할 수 없는 것이고 결국 내 영역이 아닌 셈이죠. 옐로스톤 국립공원에서 화산 폭발이 일어날지 여부는 박근혜나 트럼프 따위 잔챙이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중대한 일이며 인간사 뿐만 아니라 지구사 자체를 바꿔놓을 수 있는 일이지만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처럼.
이 경우 개인이 취할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은 자신과 뜻을 같이 하는 이들과 함께함으로써 자신의 정체성을 공동체의 액션과 동일시하면서 커뮤니티즘에 도취되는 것일 테지요. 이런 이념을 지지하는 것은 나 혼자만이 아니며 우리 모두가 함께 행동하여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하지만 그것은 자신의 삶이 먼지와 다를 게 없다는 것을 회피하기 위한 눈속임에 불과하므로 미망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저에게 있어 개신교나 운동권이 그랬던 것처럼...소위 '이길 수 없다면 합류하라'인 셈이죠. 파시즘이 사람들을 매혹시키는 것도 같은 이유일 겁니다. 물론 파시즘은 전간기와 2차대전 때에 발생한 특수한 현상이고, 이런저런 전체주의적인 대중 행위들을 죄다 파시즘으로 간주하는 것은 많은 이들이 지적하듯 부적절한 것은 맞아요. 하지만 그것은 전간기 파시즘처럼 이런저런 조건들이 맞아 사람들이 갖고 있는 커뮤니티즘적 열정이 결집되어 극단화 되는 일이 발생하기 어렵다 뿐, 그런 커뮤니티즘적 열정이 비일상적이라서 그런 게 아니죠.
해서 그 이후로는 정치나 사회에 대해 기대를 끊어버렸고, 관심도 사라졌습니다. 물론 여전히 유희로서 재미있기는 합니다. 애들 장난일 수밖에 없는 WWE나 스1이 아직까지도 재미있는 것처럼. 존 시나의 마이크 워크나 대선 후보들의 마이크 워크나 딱히 차이가 없는 것이죠. 더 락의 피플스 스터너가 제대로 들어갔네 아니네를 논하는 거나 이재명의 행보가 타당하네 어쩌네 하는 거나 크게 다를 것이 없을 테고요. 내가 지금까지 지켜보고 관심을 두었던 것의 실체를 명확하게 알게 되고 견적이 명확해지니까 오히려 즐기기도 더 좋더군요. 그나마도 전역 후 3~4년은 기권표나마 투표라도 했습니다만 통진당 사태를 보니 굳이 그럴 필요도 없다 싶더라고요. 당권파도 웃기지만 유시민과 참여계도 비웃음 나오긴 매한가지고.
여튼 끼적이다보니 길어졌는데...굳이 해야할 이야기였나 싶긴 하네요. 재수 없다면 재수 없는 이야기니. 저도 본문 보고 솔찬히 흥미로웠나봅니다.
베버의 <직업으로서의 정치>가 참 적절하다 싶어요.
"자신의 영혼의 구원 또는 타인의 영혼의 구제를 원하는 자는, 이것을 정치라는 방법으로 달성하고자 해서는 안 됩니다. 정치는 전혀 다른 과업들을 가지고 있는데, 이 과업들은 폭력의 수단을 통해서만 완수될 수 있는 것들입니다."
"정치는 확실히 머리로 하는 것이지만, 머리로만 하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신념정치가의 입장은 전적으로 옳습니다다. 그렇지만 “어리석고 비열한 것은 세상이지 내가 아니다. 결과에 대한 책임은 내게 있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게 있다. 나는 ... 더 보기
"자신의 영혼의 구원 또는 타인의 영혼의 구제를 원하는 자는, 이것을 정치라는 방법으로 달성하고자 해서는 안 됩니다. 정치는 전혀 다른 과업들을 가지고 있는데, 이 과업들은 폭력의 수단을 통해서만 완수될 수 있는 것들입니다."
"정치는 확실히 머리로 하는 것이지만, 머리로만 하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신념정치가의 입장은 전적으로 옳습니다다. 그렇지만 “어리석고 비열한 것은 세상이지 내가 아니다. 결과에 대한 책임은 내게 있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게 있다. 나는 ... 더 보기
베버의 <직업으로서의 정치>가 참 적절하다 싶어요.
"자신의 영혼의 구원 또는 타인의 영혼의 구제를 원하는 자는, 이것을 정치라는 방법으로 달성하고자 해서는 안 됩니다. 정치는 전혀 다른 과업들을 가지고 있는데, 이 과업들은 폭력의 수단을 통해서만 완수될 수 있는 것들입니다."
"정치는 확실히 머리로 하는 것이지만, 머리로만 하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신념정치가의 입장은 전적으로 옳습니다다. 그렇지만 “어리석고 비열한 것은 세상이지 내가 아니다. 결과에 대한 책임은 내게 있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게 있다. 나는 사람들을 위해 일하고 있으며 그들의 어리석음과 비열함을 뿌리 뽑을 것이다.”라고 말하는 사람을 보면 우선 그 사람이 낭만적 감흥에 도취되어 있을 뿐인 허풍선이에 불과한 것인지, 아니면 그런 이상을 실현할 내적인 힘을 지니고 있는지를 우선 따져봐야 합니다.
'어리석고 비열한 것은 세상이지 내가 아니다. 결과에 대한 책임은 내게 있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게 있다. 나는 사람들을 위해 일하고 있으며 그들의 어리석음과 비열함을 뿌리 뽑을 것이다'라고 말하는 사람을 보면 우선 그 사람이 낭만적 감흥에 도취되어 있을 뿐인 허풍선이에 불과한 것인지, 아니면 그런 이상을 실현할 내적인 힘을 지니고 있는지를 우선 따져봐야 합니다."
"이 밤이 서서히 물러가고 난다면, 그때는 지금 겉보기에 그렇게도 풍성히 봄을 구가하고 있는 사람들 중 과연 누가 아직도 살아 있을까요? 세상과 직업을 있는 그대로 단순하고 덤덤하게 감수하고 있을까요? 아니면 ― 그리 드문 일도 아닙니다만 ―, 그럴 재주가 있는 사람들은 신비주의적 현실도피에 빠져들거나 또는 ― 흔히 있는 개탄스러운 현상이지만 ― 단지 유행에 따라 이런 신비주의자 행세를 억지로 하고 있을지도 모르지요. 이런 모든 경우에 대해 나는 아래와 같은 결론을 내릴 것입니다. 위의 상황에 빠진 자들은 자기 자신의 행동을 감당해 낼 수 있는 능력이 없었으며, 실제로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감당해 낼 능력도 없었으며, 또 이 세상에서의 일상을 감당해 낼 능력도 없었습니다. 이들은 스스로 가지고 있다고 믿었던 정치에 대한 소명을 객관적으로 그리고 실제적으로 그의 가장 깊은 내면에는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차라리 소박하고 단순하게 사람들간의 형제애를 도모하고 그저 자신의 일상적 임무에 열심히 몰두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입니다."
"정치란 열정과 균형감각 둘 다를 가지고 단단한 널빤지를 강하게 그리고 서서히 뚫는 작업입니다. 만약 지금까지 <불가능>에 도전하는 사람들이 계속해서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인류는 아마 가능한 것마저도 성취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옳은 말이며 모든 역사적 경험에 의해 증명된 사실입니다. 그러나 지도자이면서 또한 ― 매우 소박한 의미에서 ― 영웅인 자만이 이렇게 불가능한 것을 시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지도자도 영웅도 아닌 사람이라 할지라도, 모든 희망과 좌절조차 견디어낼 수 있을 정도로 단단한 의지를 갖추어야 합니다. 지금 그래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오늘 아직 가능한 것마저도 달성해내지 못할 것입니다. 자신이 제공하려는 것에 비해 세상이 너무나 어리석고 비열하게 보일지라도 이에 좌절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 사람, 그리고 그 어떤 상황에 대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라고 말할 능력이 있는 사람, 이런 사람만이 정치에 대한 <소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신의 영혼의 구원 또는 타인의 영혼의 구제를 원하는 자는, 이것을 정치라는 방법으로 달성하고자 해서는 안 됩니다. 정치는 전혀 다른 과업들을 가지고 있는데, 이 과업들은 폭력의 수단을 통해서만 완수될 수 있는 것들입니다."
"정치는 확실히 머리로 하는 것이지만, 머리로만 하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신념정치가의 입장은 전적으로 옳습니다다. 그렇지만 “어리석고 비열한 것은 세상이지 내가 아니다. 결과에 대한 책임은 내게 있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게 있다. 나는 사람들을 위해 일하고 있으며 그들의 어리석음과 비열함을 뿌리 뽑을 것이다.”라고 말하는 사람을 보면 우선 그 사람이 낭만적 감흥에 도취되어 있을 뿐인 허풍선이에 불과한 것인지, 아니면 그런 이상을 실현할 내적인 힘을 지니고 있는지를 우선 따져봐야 합니다.
'어리석고 비열한 것은 세상이지 내가 아니다. 결과에 대한 책임은 내게 있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게 있다. 나는 사람들을 위해 일하고 있으며 그들의 어리석음과 비열함을 뿌리 뽑을 것이다'라고 말하는 사람을 보면 우선 그 사람이 낭만적 감흥에 도취되어 있을 뿐인 허풍선이에 불과한 것인지, 아니면 그런 이상을 실현할 내적인 힘을 지니고 있는지를 우선 따져봐야 합니다."
"이 밤이 서서히 물러가고 난다면, 그때는 지금 겉보기에 그렇게도 풍성히 봄을 구가하고 있는 사람들 중 과연 누가 아직도 살아 있을까요? 세상과 직업을 있는 그대로 단순하고 덤덤하게 감수하고 있을까요? 아니면 ― 그리 드문 일도 아닙니다만 ―, 그럴 재주가 있는 사람들은 신비주의적 현실도피에 빠져들거나 또는 ― 흔히 있는 개탄스러운 현상이지만 ― 단지 유행에 따라 이런 신비주의자 행세를 억지로 하고 있을지도 모르지요. 이런 모든 경우에 대해 나는 아래와 같은 결론을 내릴 것입니다. 위의 상황에 빠진 자들은 자기 자신의 행동을 감당해 낼 수 있는 능력이 없었으며, 실제로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감당해 낼 능력도 없었으며, 또 이 세상에서의 일상을 감당해 낼 능력도 없었습니다. 이들은 스스로 가지고 있다고 믿었던 정치에 대한 소명을 객관적으로 그리고 실제적으로 그의 가장 깊은 내면에는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차라리 소박하고 단순하게 사람들간의 형제애를 도모하고 그저 자신의 일상적 임무에 열심히 몰두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입니다."
"정치란 열정과 균형감각 둘 다를 가지고 단단한 널빤지를 강하게 그리고 서서히 뚫는 작업입니다. 만약 지금까지 <불가능>에 도전하는 사람들이 계속해서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인류는 아마 가능한 것마저도 성취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옳은 말이며 모든 역사적 경험에 의해 증명된 사실입니다. 그러나 지도자이면서 또한 ― 매우 소박한 의미에서 ― 영웅인 자만이 이렇게 불가능한 것을 시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지도자도 영웅도 아닌 사람이라 할지라도, 모든 희망과 좌절조차 견디어낼 수 있을 정도로 단단한 의지를 갖추어야 합니다. 지금 그래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오늘 아직 가능한 것마저도 달성해내지 못할 것입니다. 자신이 제공하려는 것에 비해 세상이 너무나 어리석고 비열하게 보일지라도 이에 좌절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 사람, 그리고 그 어떤 상황에 대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라고 말할 능력이 있는 사람, 이런 사람만이 정치에 대한 <소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문재인이나 운동권을 비판하려는 글이 아니구요ㅎㅎ 제가 정치나 언론에 대해서 겪었던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그러한 경험들의 연장선 상에서 독해할 수 있는 책들을 소개한 것이에요. 제가 겪었던 일들은 제 개인의 경험이기도 하지만 참여정부, MB정권, 박근혜 정권 사이에 있었던 정치적 사건들로 외삽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기도 해요. 호라타래님이 저랑 나이도 같고 정치에 대해서도 많이 아시는 것 같은데 저한테 어떻게 그런 걸 아느냐라는 질문을 했고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한 것이죠.
글이 불친절한 것은... 그렇게 느끼실 수도 있죠. 저는 이런 글 쓰면 오히려 글이 너무 친절할까봐 걱정돼요.
글이 불친절한 것은... 그렇게 느끼실 수도 있죠. 저는 이런 글 쓰면 오히려 글이 너무 친절할까봐 걱정돼요.
삼공 님 글이 가끔은 좀 불친절하게 느껴지긴 하죠? ㅋㅋㅋ
글 전체에서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얘기지만, 단적인 예로 제가 발췌한 세 문장만 봐도 '예전에 읽었다'는 정보는 첫 번째 문장의 주변부에만 담겨 있고, 나머지 두 문장은 (이번엔) 제대로 읽지 않았다는 내용이니까요. 꼼꼼히 읽지 않으면 '책 춫천. 책장 정리하다 다시 봄. 사실 안 읽고 표지만 봄.'으로 오해되기 쉬운...
저는 이런 스타일의 글 읽는 데 익숙하고 싫어하지도 않지만, 삼공 님이 식물갤 같단 소리 듣는 홍차넷에서 좌충우돌 키배러였던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하고... (쫄보라 이쯤에서 도망)
글 전체에서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얘기지만, 단적인 예로 제가 발췌한 세 문장만 봐도 '예전에 읽었다'는 정보는 첫 번째 문장의 주변부에만 담겨 있고, 나머지 두 문장은 (이번엔) 제대로 읽지 않았다는 내용이니까요. 꼼꼼히 읽지 않으면 '책 춫천. 책장 정리하다 다시 봄. 사실 안 읽고 표지만 봄.'으로 오해되기 쉬운...
저는 이런 스타일의 글 읽는 데 익숙하고 싫어하지도 않지만, 삼공 님이 식물갤 같단 소리 듣는 홍차넷에서 좌충우돌 키배러였던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하고... (쫄보라 이쯤에서 도망)
잘 읽었습니다. 시기도 다르고 학교의 상황도 다르지만, 제 후배 중에서도 학보사 편집장을 하면서 중간에 치이는 경험을 맛본 애가 있어서 보다 확 다가왔어요.
저는 한국 정치 현실에 대한 관심을 옅게 가졌던 편이에요. 스무살 초반 쯤에 정치 과목 수업을 들으면서 흥미를 느끼기는 했지만, 개론서들을 훓어보다보니 제도 구성에 대한 관심보다는 정치 철학이나, 사회학, 그 내에서도 인간 사이의 상호 작용이 더 재미있게 느껴져서 책 읽는 방향을 바꾸었어요. 그렇다고 현실 정치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이유는 없는데 흠... 저도 잘 모르겠네... 더 보기
저는 한국 정치 현실에 대한 관심을 옅게 가졌던 편이에요. 스무살 초반 쯤에 정치 과목 수업을 들으면서 흥미를 느끼기는 했지만, 개론서들을 훓어보다보니 제도 구성에 대한 관심보다는 정치 철학이나, 사회학, 그 내에서도 인간 사이의 상호 작용이 더 재미있게 느껴져서 책 읽는 방향을 바꾸었어요. 그렇다고 현실 정치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이유는 없는데 흠... 저도 잘 모르겠네... 더 보기
잘 읽었습니다. 시기도 다르고 학교의 상황도 다르지만, 제 후배 중에서도 학보사 편집장을 하면서 중간에 치이는 경험을 맛본 애가 있어서 보다 확 다가왔어요.
저는 한국 정치 현실에 대한 관심을 옅게 가졌던 편이에요. 스무살 초반 쯤에 정치 과목 수업을 들으면서 흥미를 느끼기는 했지만, 개론서들을 훓어보다보니 제도 구성에 대한 관심보다는 정치 철학이나, 사회학, 그 내에서도 인간 사이의 상호 작용이 더 재미있게 느껴져서 책 읽는 방향을 바꾸었어요. 그렇다고 현실 정치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이유는 없는데 흠... 저도 잘 모르겠네요. 관심의 우선 범위에서 뒤로 쭉 밀려나 있었다고 해야겠어요. 때문에 현실 정치의 흐름에 대한 지식은 완전히 꽝이에요 꽝. 제도권 교육에서 다루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달까요. 지난 번의 해프닝 이후로 생각을 해보니, 삼공님의 지식을 보면서 제가 신기해 하는 것이 더 이상하더라고요 ㅋㅋ
글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 앞으로도 많이 많이 기대할게요~
저는 한국 정치 현실에 대한 관심을 옅게 가졌던 편이에요. 스무살 초반 쯤에 정치 과목 수업을 들으면서 흥미를 느끼기는 했지만, 개론서들을 훓어보다보니 제도 구성에 대한 관심보다는 정치 철학이나, 사회학, 그 내에서도 인간 사이의 상호 작용이 더 재미있게 느껴져서 책 읽는 방향을 바꾸었어요. 그렇다고 현실 정치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이유는 없는데 흠... 저도 잘 모르겠네요. 관심의 우선 범위에서 뒤로 쭉 밀려나 있었다고 해야겠어요. 때문에 현실 정치의 흐름에 대한 지식은 완전히 꽝이에요 꽝. 제도권 교육에서 다루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달까요. 지난 번의 해프닝 이후로 생각을 해보니, 삼공님의 지식을 보면서 제가 신기해 하는 것이 더 이상하더라고요 ㅋㅋ
글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 앞으로도 많이 많이 기대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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