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17/07/03 19:49:05
Name   SCV
Subject   내가 만난 스승들 #3 - 너 내 반장이 돼라
안녕하세요. SCV 입니다.
인생에서 만난 스승 이야기 3회차입니다 ㅋ

오늘은 중3으로 돌아가볼까 합니다.

중3... 중2는 지났지만 아직 중2병의 후유증이 남아있는 시절...

자세한 사정은 밝히기 어렵지만 (개인 신상이 심하게 특정되므로..) 중 2때 담임선생님이 중 3 담임으로 같이 올라가게 되었고,
저는 그 선생님의 반으로 다시 배정되게 되었습니다. (모종의 사정으로...)

그런데 그분은 (역시 자세히 말할 순 없지만) 저와 심하게 트러블이 있던 분으로.. 제가 특별히 성적이 나쁘거나 비행이 나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상습적으로 저를 구타한 사람이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아마 촌지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여러 정황상...) 그래서 그 선생님도 저를 자기 반에 받기 싫었는데 위에서 말한 모종의 이유로 억지로 받게 된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막 체렙 (...)을 찍은 리니지 초보마냥 교무실에 가서

"저 반 안바꿔주시면 자퇴하겠습니다"

를 시전했습니다. 지금생각해보니 정말 미쳤네요. 깡도 좋네... (그런데 나중에 깡 좋은 짓을 한 번 더 저지릅니다.. )

결국 담임은 저를 패 죽이려다 다른 선생님들이 뜯어 말리다시피 해서 떼어놓임 당하자 "이 새끼 나도 너 같은 새끼 필요 없어 가버려" 라며 저를 FA 시장에 내놓았습니다.

저는 내심 친하게 지냈던 옆반 국어선생님의 반으로 가고 싶었으나, 담임은 자신이 수업을 들어오지 않는 더 먼 반 (보통 주요과목은 한 학년을 2~3등분 해서 나누어 가르치곤 했었죠) 으로 보내버리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앞 반에 영어수업을 담당하시는 3반 담임선생님이 저를 부르시며 "제가 데려가겠습니다" 라고 하시더군요.

그리고는 첫마디가 "야 너 반장 해라." 였습니다.

사실 그 선생님과 악연이라면 악연이 있었던게, 제가 쉬는 시간에 교실에서 말썽쟁이 짓을 하다가 복도를 보니 그 선생님이 오시기에 "야 xx온다 xx" 라고 한걸 다 들으시고 "야 아무리 그래도 선생 이름을 그렇게 막 부르면 되냐? 내가 니 친구냐?" 하면서 분노의 줘팸... 을 시전하셨고 그에 저는 줘터짐..... 상태가 된 적이 있었거든요. 게다가 그거 말곤 일면식도 없었는데 이런 말썽꾼을 영입해서 다짜고짜 반장을 하라고?

"야 너 성적도 좋고 쌈도 잘하고 오늘 보니까 깡도 무지막지하게 좋네. 니가 반장 해라. 니가 우리 반 애들 다 끌고 가 봐라"

결국 선생님의 무한 지지와 무한 신임 (이라고 쓰고 독재라고 읽는다) 끝에 일진과 왕따가 없는 반, 1년 내내 모든 시험에서 압도적 반평균 1등, 역대 최고 진학률을 자랑하는 반이 되었지 말입니다. 아, 상하반기 체육대회도 모두 우승했네요 ㅋㅋ

나중에 선생님께 무슨 생각으로 일면식도 없는 저를 반장을 시키셨나 하고 물었더니 선생님 왈

"선생님한테 대들 깡이면 일진들한테도 안 휘둘리겠다 싶어서"

사실 제가 싸움을 잘했던건 오해(...) 고 초등학교때 친구들 중에 중학교를 같이 온 친구들이 그 사이에 일진화(....) 가 많이 되어서 그런거거든요. 다행히 저희 반 일진들(...)이 죄다 초등학교 때 부터 함께 한 fire egg 친구들이었고, 이 친구들도 결국은 공고든 상고든 진학을 해야 했기 때문에 중 3이 된 시점에서는 관리(..) 가 필요했던거죠. 그래서 저는 딜 (개인 과외 해준다 / 사고치면 어지간한건 내가 선생님하고 쇼부쳐서 무마해준다 - 대신 멀쩡한 애들 패지 마라) 을 성사시켜서 반에 평화(...) 를 가져왔습니다. 생각해보니 이 정책에 반하는 복학생 형(...) 이 하나 있었는데 어떻게 되었는지는 상상에 맡기도록 하고...

여기까지 보면 이양반이 왜 스승인가 싶을텐데 지금까진 프롤로그(........) 였구요 이제부터 일화.

1. 영어선생님이셨는데.. 수업을 '팝송' 으로 하셨습니다.

   지금이야 팝송으로 영어 배우는게 별거 아닙니다만, now 2집, 맥스 1집 하던 시절에는 영어를 팝송으로 배운다는게 'x선생 파닉스' 같은걸 사 볼 여력이 없는 가난한 시골애들에게는 굉장히 낯선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Perhaps Love' , 'I can't stop loving you', 'My Way', 'Paint my love', 'Heal the World' 등 수 많은 팝송의 가사를 손수 해석하고 정리해서 아이들에게 나눠주셨고 그걸로 수업을 했습니다. 듣기와 문법, 단어가 한 방에 해결되는 환상적인 수업이었지요. 영어점수요? 그 선생님이 수업들어가시는 반과 옆(저의 담임이 되기를 거부한)... 반들의 영어성적 차이는 그야말로 어마어마 했습니다. 심지서 선생님이 가르쳐주신 팝송.. 에 나온 문법이 고등학교 입학시험에 주루루룩 나오거든요.

  "노래는 시고, 시는 언어를 이해하는 가장 좋은 길이다" 라는 말을 남기셨드랬죠.


2. 체벌 - 난 딱 한 번만 때린다.

  요즘이야 학생들 몸에 손대는게 흔치 않은 일입니다만 저희 때는 뭐(.....) 발로 차고 뺨 때리고 난리도 아니었지요. 저희 선생님도 아주 체벌을 안 하셨던 분은 아니시지만 이 분은 딱 한 번만 때리셨습니다.
  "너희는 사람이기 때문에 말로 한다. 말로 해서 도저히 안되면 짐승이기에 딱 한 번 때린다. 딱 한번 때려도 안되면 나는 포기한다."
  카리스마 넘치는 그 선생님의 '포기한다' 라는 말 한마디가 얼마나 무섭던지. 아마 머리 큰 고등학생이면 안 먹혔을 수도 있고 요즘이면 더 그랬을 수도 있지만, 어린 마음에 누구로부터 포기당한다는건 참 무서운 말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도 반장인 주제에 딱 한 번 맞았(...) 습니다. 그리고나서 성적이 미친듯이 올랐으니 좋.....은 결말인가요 ㅋㅋ


3. 선생님의 일은 선생님이 할테니 학생의 일은 학생이 하라.

  생각해보니 제 스승 시리즈에 등장하는 분들의 공통점이 있는데, 그건 '학생자치' 를 누구보다 지지하고 지원해주셨다는겁니다. 이 선생님도 마찬가지로, 비록 독재(....)적인 지명에 의해 선출된 학급 임원들이었지만 어쨌든 같은 반 급우들의 이야기를 충실히 듣고 학급 운영에 충실히 반영했습니다. 지금 와서 디테일한 부분은 잘 생각은 안나지만, 생각보다 많은 파격적인 의견들이 받아들여졌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심지어 그 중 일부는 학년주임이나 교감, 교장선생님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으나 담임선생님이 "이 반은 제 반이고, 제 반은 제가 알아서 합니다." 라고 일갈해서 정리하셨습니다. 그리고서는 저에게 말씀하셨죠. "늬들은 늬들 일이나 잘 해. 늬들이 잘 하게 하는게 내 일이니까 거기까진 신경 쓰지 말고."

4. 특이한 시험 감독 자세..
  
   이분의 트레이드마크가 있는데.. 바로 특이한 시험감독 자세입니다. 뭐냐면... 교탁 위에 앉아서 가부줘를 틀고 감독을 하십니다. 그.. 낮은 교단 말고 말 그대로 교탁요. 선생님들이 수업시간에 책 펴놓고 기대고 서 계시는 그 교탁 위에.. 그것도 키가 180을 넘어 185쯤 되시는 분이(....) 앉아서 그러고 감독을 하십니다.
   이거 완전 무슨 센트리 타워가 따로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정행위를 시전(...) 하는 용자들이 있는데, 그런 경우 교탁 위에서 가부좌한 채로 쩜프(....) 해서 내려가셔서 손목을 낚아채십니다. 그리곤 외치시지요. "너 빵점"
   .... 한 번 보면 다시는 잊을 수 없는 광경입니다.



---------------

시간이 많이 흘러 많은 기억이 사라졌네요. 보다 더 자세하게 이것 저것 쓸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막상 쓰려고 보니 전체적으로 좋았던, 영향받았던 인상만 남았지 뽷 하고 와닿는 임팩트 있는 이야기들이 지금 막 생각나진 않습니다. 너그럽게 양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중 3 시절, 담임선생님 덕분에 왕따도 일진도 낙오자도 없이 모두가 함께 웃으며 생활하고 결국은 모두 다 함께 좋은 결실을 맺었던 것 같네요. 맡았던 학급을 하드캐리한 수준으로만 보면 아마 이 선생님이 최고가 아닐까 싶습니다 ㅎㅎㅎ 겪었던 어떤 학급도 이 때 만큼 즐겁고 유쾌하고 또 열심히 공부하진 않았던 것 같아요.



8
  • 춫천
  • 반장되면 햄버거.
  • 햄버거 롯데리아는 ㄴㄴ합니다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공지 티타임 게시판 이용 규정 2 Toby 15/06/19 30651 6
14626 음악[팝송] 걸 인 레드 새 앨범 "I'M DOING IT AGAIN BABY!" 김치찌개 24/04/27 38 0
14625 의료/건강SOOD 양치법 + 큐라덴 리뷰 7 오레오 24/04/26 476 0
14624 일상/생각5년 전, 그리고 5년 뒤의 나를 상상하며 6 kaestro 24/04/26 422 3
14623 방송/연예요즘 우리나라 조용한 날이 없네요 6 니코니꺼니 24/04/26 864 0
14622 IT/컴퓨터5년후 2029년의 애플과 구글 1 아침커피 24/04/25 434 0
14621 기타[불판] 민희진 기자회견 63 치킨마요 24/04/25 1798 0
14620 음악[팝송] 테일러 스위프트 새 앨범 "THE TORTURED POETS DEPARTMENT" 김치찌개 24/04/24 153 1
14619 일상/생각나는 다마고치를 가지고 욕조로 들어갔다. 8 자몽에이슬 24/04/24 613 17
14618 일상/생각저는 외로워서 퇴사를 했고, 이젠 아닙니다 18 kaestro 24/04/24 1154 17
14617 정치이화영의 '술판 회유' 법정 진술, 언론은 왜 침묵했나 10 과학상자 24/04/23 845 10
14616 꿀팁/강좌[해석] 인스타 릴스 '사진찍는 꿀팁' 해석 20 *alchemist* 24/04/23 693 15
14615 경제어도어는 하이브꺼지만 22 절름발이이리 24/04/23 1452 8
14614 IT/컴퓨터re: 제로부터 시작하는 기술 블로그(1) 2 kaestro 24/04/22 356 1
14613 음악[팝송] 밴슨 분 새 앨범 "Fireworks & Rollerblades" 김치찌개 24/04/22 118 0
14612 게임전투로 극복한 rpg의 한계 - 유니콘 오버로드 리뷰(2) 4 kaestro 24/04/21 344 0
14611 사회잡담)중국집 앞의 오토바이들은 왜 사라졌을까? 22 joel 24/04/20 1253 30
14610 기타6070 기성세대들이 집 사기 쉬웠던 이유 33 홍당무 24/04/20 1581 0
14609 문화/예술반항이 소멸하는 세상에서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세우는 소녀들 5 kaestro 24/04/20 703 6
14608 음악[팝송] 조니 올랜도 새 앨범 "The Ride" 김치찌개 24/04/20 136 1
14607 요리/음식드디어 쓰는 쌀국수 투어 모음집 2편 15 kogang2001 24/04/19 398 8
14606 요리/음식드디어 쓰는 쌀국수 투어 모음집 1편 4 kogang2001 24/04/19 371 10
14605 게임오픈월드를 통한 srpg의 한계 극복 14 kaestro 24/04/19 562 2
14604 일상/생각개인위키 제작기 6 와짱 24/04/17 831 12
14603 정치정치는 다들 비슷해서 재미있지만, 그게 내이야기가 되면... 9 닭장군 24/04/16 1277 6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