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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19/09/11 10:51:00 |
Name | Moleskin |
Subject | 노랫말. |
그녀는 음악을 들을 때 가사를 귀담아 듣지 않는다고 했다. 턴테이블에 LP판을 올려서 듣던 시절이나, 만 원이 넘는 돈을 주고 CD 한장을 사서 CD플레이어에 넣던 시절엔 내가 트는 그 음악이 곧 전부였기에 가사까지도 신경써야 했겠지만 유튜브에서 내 취향에 따라 영원히 음악을 틀어주는 요즘 시대에 가사보다는 이어지는 그 바이브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아침에 일어날 때, 청소할 때, 슬플 때, 술 마실 때 상황에 맞는 가사를 찾아 음악을 듣는 나로서는 놀라운 일이었다. 학교 앞 닭곰탕 집에서 후추를 잔뜩 넣어 먹는 것, 비오는 주말이면 늘어지게 잔 다음 오후에나 일어나 액션 영화 한 편을 보는 것, 이 학교 학생치고 지독히도 공부하기를 싫어해 시험 전날에 부랴부랴 밤샘 벼락치기로 일관하는 것, 그리고 해뜰 쯤 잠들고 비몽사몽하다 시험을 망치는 것까지 똑같았던 우리에게 노래 가사에 대한 견해 차이는 내가 생각하기에 우리 사이 가장 큰 간극이었다. 그런 그녀가 딱 한 번 노랫말이 좋다고 한적이 있다. 별다를 거 없는 평일, 흰 티만 걸친 채 우리는 이불이 널부러진 좁은 싱글 침대 위에서 각자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그 노래가 어쩌다 틀어진건진 기억나지 않는다. 그녀의 취향에 공감하는 척 했지만 나의 진심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김범수가 나가수에서 히트치기 전부터도 팬이었던 나였지만 사실 그 노래만큼은 딱히 와닿지 않았다. 남겨진 사람보다 '떠나는 사람이 더 힘든 법'이라니. '사랑해서 떠난다는 말, 과분하다는 말'을 더이상 코웃음 치지 않게 되었다니. 화자는 차였지만 당신이 나에게 과분함을 알고 보내드리겠다는 그런 내용. 특히나 '그대도 잘못했다면 그 곁에 남기 수월했을까요'라는 부분에서 화자는 대체 어떤 잘못은 저지른건지가 더 궁금해진다는 점에서 아주 잘못 만들어진 노래였다. 그렇지만 그 노래는 나의 애창곡이 되었다. 그녀가 좋아하는 노래였으니까. 우리는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인이 되고 1년이 지날 쯤 헤어졌다. 그녀는 나보다 회사 동기들과 더 많은 시간을 가졌고 그런 시간들을 내가 걱정할 때 쯤 먼저 작별을 고했다. 영원할 것 같던 인연이었지만 그렇게 되지 못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가 회사 사람을 만난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나 역시도 그녀 이후에 몇 번의 만남과 헤어짐을 거쳤다. 물론 첫사랑이었던 그녀만큼 지독하고 구질구질하게 만난건 아니었다. 남들처럼 흔한 연애였다. 가끔 노래방에 가게 되면 그 노래를 부른다. 요즘 들어 그녀가 노래에서 어떤 느낌을 받았는지 어렴풋이 느껴진다. 그녀가 과분했다거나 내가 잘못했다는게 아니다. 그저 나는 사랑을 다시는 못할 것 같다. 그녀가 아니면. ---- 그저 감상적인 글을 한 편 쓰고 싶었습니다.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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