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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8/02/12 23:26:15
Name   메아리
Subject   푸코의 자기 배려와 철학상담(11)

6. 결론 : 삶을 바꾸기 위한 철학적 훈련으로서 자기 배려 (계속)


  그런데 철학이 삶에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진리와 관계 맺는다는 것이 우리 삶에서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위해 푸코가 주체와 진리의 관계에 대한 모델로 제시했던 것 중에 두 가지를 비교해 봅시다. 하나는 철학으로서 헬레니즘 모델이고 다른 하나는 종교로서 기독교 모델입니다. 비록 기독교 모델이 헬레니즘 모델의 도덕을 원용하고 있다고는 하나, 둘 다 까다롭고 엄격한 도덕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푸코는 이 둘 사이에서 결정적인 차이를 봅니다. 그것은 ‘자기’를 어떤 가치로 상정하는가 인데, 전자에서 그것은 구축되어야 하는 무엇이고, 후자에서 그것은 포기해야 하는 무엇입니다. 이것은 도덕을 삶의 태도, 즉 ‘자기’의 에토스로 수용함에 있어 두 모델 간의 차이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철학을 기반으로 하는 헬레니즘 모델은 그것을 자신과 타인의 검증대 위에 세워 받아들일 만한 것인가를 결정하는 반면, 기독교 모델에서 그것은 그저 받아들여야 하는 무엇인 것입니다. 기독교 모델은 결국, 철학은 없고 도덕만 남은 경우에 ‘자기’가 어떻게 구축되는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도덕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습니다. 타인에 의해 ‘자기’에게 전달되는 지식, 규범, 사상뿐 아니라 자기가 자신에게 부여하는 관념이나 사유까지도 그 대상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삶에서 철학이 수행할 수 있는 역할 중 하나라 할 수 있습니다. 진리에 대한 검증(Zetesis), 소크라테스가 델피의 신탁을 전해 들었을 때 수행했던 바로 그 작업입니다. 이러한 작업은 삶을 어떻게 바뀔 수 있을까요? 아렌트(Arendt)는 나치의 전쟁 범죄자였던 아이히만의 재판에 대한 소고를 통해 ‘무사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자신의 개인적인 발전을 도모하는데 각별히 근면한 것을 제외하고는 그는 어떠한 동기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리고 이러한 근면성 자체는 결코 범죄적인 것이 아니다. [중략] 그는 단지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결코 깨닫지 못한 것이다. [중략] 그는 어리석지 않았다. 그로 하여금 그 시대의 엄청난 범죄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 되게 한 것은 (결코 어리석음과 동일한 것이 아닌) 순전한 무사유(sheer thoughtlessness)였다.

  아헨바흐는 “철학의 임무는 사고의 소금이 맛을 잃고 있는 경우에 숙고하는 힘(die Kraft der Besinnung)을 새로이 자극하는 것”이라 말합니다. 철학, 특히 철학의 실천은 우리를 평범한 악으로 만들 수도 있는 이러한 무사유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단초가 되어줍니다. “우리 각자 안의 아이히만”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며, 그것에서 벗어나는 기회를 제공해주는 것입니다. 자신이 따르는 가치에 대한 끊임없는 재평가와 검증만이 우리를 그러한 무사유의 상태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계기를 가져다 줄 수 있을 것입니다.

  과연 철학이 삶을 바꿀 수 있을까요? 그것은 푸코가 의심을 품지 않았던 몇 안 되는 것 중에 하나였습니다. 그리고 그 확신을 증명하기 위해 그는 멀리 고대의 삶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그곳에서 철학이 삶과 어떠한 방식으로 관계하는지 살펴보려 합니다. 이러한 여정을 통해 그는 근대 이후 간과되어 온 철학의 모습을 찾아내려 합니다. 그 철학은 결코 혼자 방 안에 앉아 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하는 작업이 아니라 거리에서 사람들을 만나서 그들의 삶과 자신의 삶에 대해서, 그 삶들 속에 있는 가치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수행하는 철학이었습니다. 그 대화는 대화이자 수양이었고, 상대방의 삶을 그리고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는 상담이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 철학은 철학실천이었으며 철학상담이었습니다. 푸코에게 소크라테스가, 에픽테토스가, 세네카가 중요한 이유가 이것이었습니다. 이 철학자들은 그들이 만나는 타인들에게 진리를 말하는 것이야말로 자신들의 사명이라 여겼으며, 그 사명을 이루기 위해 자신에게 엄격한 규정을 제시하고 수행하도록 강제했습니다. 그들에게 철학의 의미는 이 두 가지였습니다. 타인에게 진실 말하기, 그리고 그것을 수행하기 위해 자신이 진리의 삶을 살고 있는지 검증하기. 그들의 철학은 타인과의 관계를 기반으로 자신과 관계를 맺는 방식으로 수행되었습니다. 이렇게 자신과 타인과의 상호성이야말로 철학이 우리의 삶과 연관되는 지점입니다. 왜냐하면 자기 검증의 필요성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보다 잘 발견될 수 있기 때문이고, 타인과의 관계야말로 자신과의 관계 설정을 시작하기 위한 출발점이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푸코는 타인과의 대화를 통한 자신과의 대화, 그리고 자신과의 대화를 통한 타인과의 대화라는 순환을 말합니다. 그에게 철학은 타인과의 대화, 그리고 그것을 통한 자기의 변형이 서로 순환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또한 철학상담이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서 지향하고자 하는 바이기도 합니다. 철학상담이 내담자와 상담자 간의 상호성을 강조하는 이유는 그것이 바로 철학의 본래 모습 중에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대화의 모습이야말로 철학상담이 향하는 바로서 해석학적 순환과 맞닿아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두 당사자가 서로의 변화에 있어서 자극과 이유가 되는 것으로, 자기 배려는 해석학적 순환을 이끌어 낼 수 있는 방법으로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보이는 이유는 자기 배려가 ‘자기의 변형’을 그 순환에 있어서 추동원으로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해석학적 순환에 있어서도 두 당사자에게 이러한 ‘자기의 변형’이 중요한 촉매로 역할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상담자의 자기 변형은 그 상담 장면을 이러한 해석학적 순환으로 이끌어 가는 주요한 역할을 합니다.

  아헨바흐는 자신이 철학실천을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이미 철학실천은 나타나 있었다고 말합니다. 아마 ‘이미 나타난 철학실천’ 중에는 푸코의 자기 배려 역시 포함되어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철학상담의 입장에서 푸코의 자기 배려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는 것이 더욱 의미 있다고 하겠습니다.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푸코는 자신의 후기 연구를 통해 사실상 철학상담의 원형을 제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푸코의 후기 사상에 대한 연구는 윤리학이나 교육철학, 정치철학 쪽에서 보다 활발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앞서 살펴보았듯이, 말년의 푸코가 강조한 것은 철학의 실천이며 그것은 지금의 철학상담이 지향하는 바와 직접적으로 연결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푸코가 그렇게도 강조했던 헬레니즘 모델, 즉 에피쿠로스학파와 스토아학파의 사상은 철학상담의 영역에서 귀중한 자산이기도 합니다. 철학상담은 단지 철학의 효과만을 가져오려는 것이 아니라, 그 효과의 근원인 철학 사상에서부터 접근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접근법이 바로 철학이 삶을 대하는 방식이자, 삶을 바꾸는 철학상담 고유의 방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자기 배려는 이러한 철학상담의 고유함이 상담에서 나타날 수 있게 하는 방법 중 하나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진리와 삶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에 대한 태도이자, 진리와 삶을 연관시키려는 구체적인 실천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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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다 올렸네요.
혹시 다 보신 분이 계셨다면 고생 많으셨습니다.
어지러운 글로 눈을 괴롭힌 건 아닌 지 모르겠습니다.
더 짧게 요약했으면 좋았을 텐데...  2/3 나 쳐냈는데도 기네요. ㅜㅜ

그럼 좋은 밤 보내시길...



2
  • 술술 읽히는 글이네요. 동아시아 쪽 정치사상도 주체에 강하게 천착하는 태도라고 생각하는데 비교하면서 흥미롭게 읽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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