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19/12/30 21:04:07
Name   토끼모자를쓴펭귄
Subject   2019년 송년회를 마치고 집으로 귀가하고 바로 쓰는 글
2019년 12월 30일.. 이제 2019년도 끝이 나는구나

2019년 올해를 보내는 송년회를 보내는 회식을 한 후에 집으로 걸어서 귀가하는 길
옆에 명랑하게 웃고 떠들며 학원에서 나와서 집으로 가는 어린 꼬마아이들 모습이 보인다
나이 30을 향해가는 나는 여전히 그들과 같은 나이의 또래인 느낌이다

10대 때부터 나는 심각한 질병을 앓아왔고 그것이 십몇년이 되어가다보니
나 자신이 결국 버티다 버티다 무너지게 되었다
다른 그 어떤 속담 격언들보다 나에게 더 와닿는 그 말 '오랜 병마에 장사 없다'
내가 생각하는 나는 전교에서 손꼽히는 공부잘하는 나인데 지금 나는 방 구석에 처박혀서 끙끙대고 있다
나에게 다가오는 아픔에 내가 나 자신을 온전히 제어할 수 없음에 나 자신의 못남에 어머니의 욕에
나의 지난 십몇년간은 나에게 기억하고 싶지 않은 시간들이었고
그래서그런지 나에게 그 긴 시간들은 내 기억 속에서 거의 삭제되어 있다

10대~20대에 온전히 누려야 할 것과 충분히 배워야 할 것을 얻지 못했다
병원을 떠돌았고 아픈 와중에도 공부를 하고자 했으나 그게 잘 될리가 없었다
아플때 정신이 흐리멍텅해서 8시간 공부했을 때보다 덜 아프고 말짱할 때 30분 공부했을 때가 더 공부의 양과 질이 압도적이었다
울고 싶었다 기댈 곳이 없는데 기대고 싶었다 그런데 부모님은 내가 기댈 곳이 아니었다 그리고 나는 친구가 없었다

세상은 못난 사람에게 위로를 해주는 곳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들을 못났다고 멸시하고 조롱하는 곳이라는 것까지는 몰랐는데 그게 세상이더라 그건 부모님도 예외가 아니었고 아니 부모님이 더했다 세상은 아예 나에게 관심이 없었거든
나는 아파서 정신을 못차려서 구렁텅이로 빠지고 있었는데 부모님은 그런 나를 자신의 실패작이라고 멸시했다 발로 밟아서 더 수렁에 집어넣고 있었다
인간 혐오증에 빠졌다

그래서 죽고 싶을만큼 힘들었는데 그때 어떤 연예인을 알아서 그 사람 따라다니면서 한마디라도 좋은 말을 해주는 걸 들으니 기운이 났다
알고 있어 저런게 다 가식이라는 걸 그래도 나는 나에게 그렇게 좋은 말을 해주는 게 십년만이었는데 나는 거기에 기대어서라도 살고 싶었다

병원에 꾸준히 가고 의사님 말씀을 꼬박꼬박 들었다
나에게 있어서 담당 의사님의 말씀은 신의 말씀보다 더 귀중한 말씀으로 여기고 따랐다
내 말을 들어주었다 내가 다른 이에게 할 수 없는 말을 들어주었다
나는 묵묵히 들어줄 사람이 필요했다

나를 위해서 내 말을 들어주는 몇몇 멘토들이 더 있었다 그들 때문에 버틸 수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잘난 줄 알았던 나인데 깊은 나락으로 빠졌을 때에야 비로소 세상은 나 혼자서만 살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하늘의 도우심으로 많이 나았다
그토록 공부를 열심히 했는데도 못 붙었던 시험은 내가 몸이 회복되자마자 바로 붙을 수 있었다
책상 앞에 오래 앉아있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일단 신체와 정신이 말짱해야 정보가 머릿속으로 잘 들어올 수 있는 것이다

종교를 믿을 때 나는 신에게 내 병을 고쳐달라고 간신히 빌었지만 그는 그것을 거절했고
내 주변의 종교인들은 '선의를 가지고' 나를 핍박했다 그래서 나는 종교를 버리게 되었고 신을 믿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만약 신이 있다면.. 어쨌든 더 늦기 전에 지금이라도 나를 수렁 속에서 꺼내주신 것에 대해 감사하다.






내 잃어버린 십몇년은 내 기억에서 거의 black-oute되어 소거된 상태이고
나는 그래서 아직도 마음이 청소년 같은데 아이 같은데 몸은 이리 늙어있다
그 나이대에 나도 많은 걸 해보고 싶었는데 벌써 어른이다

그래서 저 아이들과 나는 다른 세대이다. 나는 어른이다.
그 잃어버린 시간들을 다시 생각나게 하는, 밝게 웃는 저 아이들은 내가 아프기 전 쾌활했던 내 자신의 모습이다.



7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공지 티타임 게시판 이용 규정 2 Toby 15/06/19 35517 1
    15992 IT/컴퓨터[리뷰] 코드를 읽지 않는 개발 시대의 서막: Moltbot(Clawdbot) 사용기 6 + nm막장 26/01/31 396 1
    15991 일상/생각결혼준비부터 신혼여행까지 (3/청첩장 및 본식 전, 신혼여행) 5 danielbard 26/01/30 257 2
    15990 정치중국몽, 셰셰, 코스피, 그리고 슈카 13 meson 26/01/29 979 6
    15989 IT/컴퓨터램 헤는 밤. 28 joel 26/01/29 717 27
    15988 문화/예술[사진]의 생명력, ‘안정’을 넘어 ‘긴장’으로 8 사슴도치 26/01/28 365 19
    15987 IT/컴퓨터문법 클리닉 만들었습니다. 7 큐리스 26/01/27 519 16
    15986 게임엔드필드 간단 감상 2 당근매니아 26/01/26 516 0
    15983 스포츠2026년 월드컵 우승국//대한민국 예상 순위(라운드) 맞추기 관련 글 6 Mandarin 26/01/26 317 0
    15982 오프모임2월 14일 신년회+설맞이 낮술모임 (마감 + 추가모집 있나?없나?) 18 Groot 26/01/26 663 3
    15981 정치이재명에게 실망(?)했습니다. 8 닭장군 26/01/25 952 0
    15980 IT/컴퓨터타롯 감성의 스피킹 연습사이트를 만들었어요 ㅎㅎ 4 큐리스 26/01/25 386 0
    15979 정치민주당-조국당 합당해서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요? 14 Picard 26/01/23 855 0
    15978 오프모임1/23 (금) 용산 또는 서울역 저녁 모임 8 kaestro 26/01/23 659 1
    15977 스포츠[MLB] 코디 벨린저 5년 162.5M 양키스행 김치찌개 26/01/22 299 0
    15976 정치한덕수 4천자 양형 사유 AI 시각화 11 명동의밤 26/01/21 1144 11
    15974 오프모임2월 7일 토요일 14시 사당 또는 이수 커피 모임 하실 분? 20 트린 26/01/20 844 5
    15973 도서/문학용사 힘멜이라면 그렇게 했을테니까 7 kaestro 26/01/19 996 9
    15971 꿀팁/강좌나노바나나 프롬프트 - 걸리버 소인국 스타일 음식 이미지 3 토비 26/01/17 704 1
    15970 의료/건강혈당 스파이크란 무엇일까? 12 레이미드 26/01/17 983 2
    15969 꿀팁/강좌나노바나나 프롬프트 - 책 위에서 음식 만드는 이미지 11 토비 26/01/16 786 4
    15968 오프모임1/29 (목) 신촌 오프라인 모임 16 dolmusa 26/01/15 915 7
    15966 역사내란 우두머리 윤석열 사형 구형 논고문 13 과학상자 26/01/14 1296 4
    15965 경제서울시 준공영제 버스원가 개략적 설명 24 루루얍 26/01/13 1190 21
    15964 일상/생각초보 팀장 표류기 - 실수가 아니었다고 11 kaestro 26/01/13 872 9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