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23/09/28 17:54:38
Name   아침커피
Link #1   https://brunch.co.kr/@crmn/18
Subject   영끌, FOMO, 그리고 미쳤다
정신분석학에서 말실수에는 말 한 사람 자신도 모르는 그 사람의 본심이 숨어 있다고 하는 것에서 볼 수 있듯 말에는 생각보다 깊은 의미가 담겨 있다. 그래서 유행어들을 보면 시대의 상황을, 사조를 알 수 있고 더 나아가서 무엇을 조심하며 살아가야 하는지도 알 수 있다.

'영끌'이라는 말이 있다. 영혼까지 끌어모은다는 뜻인데 최근 몇 년 간은 돈을 최대한 조달해서 집을 사는 경우에 주로 쓰인 말이다. 그런가보다 할 게 아니라 잠시 생각해보아야 한다. 영혼이 중요한지 집이 중요한지. 당연히 영혼이 집보다 중요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영혼을 끌어모아서 집을 샀다. 사회 분위기가 그랬다. 그러면 집에 영혼이 묶이게 된다. 대출 이자가 오르면 영혼이 고뇌에 빠지게 된다. 괴테의 파우스트가 바로 이 내용, 영혼을 다른 것의 대가로 건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그러면 왜 영끌이 일어났을까. 그 원인으로 뉴스에 FOMO 라는 말이 자주 나왔다. FOMO는 Fear Of Missing Out의 약자로, 우리말로 옮기면 '뒤처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 정도가 된다. 집값이 계속 오르는 상황에서 나만 뒤처질까 두려워서 영끌을 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두려움이 판단력을 흐리게 한다는 것을 평소에는 알고 있더라도 정작 두려운 상황이 되면 생각이 차분하게 돌아가지 않아서 이성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실수를 하게 된다. 그럴 때에는 내가 현재 무엇인가를 두려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 만으로도 큰 도움이 된다. 그런 점에서 FOMO라는 유행어는 사실 우리에게 큰 도움을 주는 말이었다. 지금 사회 전체가 fear, 두려움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알려줬으니. 특정 가격에 집을 사냐 안 사냐가 문제가 아니라, 집을 사는 이유가 두려움이냐 이성적인 판단이냐가 중요하다. 만약 두려움이 원인이라면 결정을 미루고 차분히 다시 생각해야 한다.

언제부터인지 '대단하다'라고 할 상황에서 '미쳤다'라고 말하는 것이 유행이다. TV에 노래를 엄청 잘 하는 가수가 나오면 패널들이 놀란 표정으로 '미쳤다'를 외친다. 미친 실력, 미친 가창력, 미친 감성 등의 표현이 넘쳐난다. 훌륭한 강의를 듣고 오면 친구에게 "야, 그 강사 미쳤어"라며 강사 칭찬을 한다. '미친 놈'은 욕인데 왜 '미친 실력'은 칭찬이 되어버린 걸까. 사회가 점점 더 자극적인 표현을 원하는 것 같고, 그렇게 된 데에는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 쇼츠 탓이 큰 것 같다는 추측을 해 볼 뿐이다. '엄청난' 실력, '최고의' 가창력, '대단한' 감성 등의 온건(?)한 표현은 사회가 원하는 정도의 자극을 주지 못하는 것 같고, 자극에 대한 추구는 끝이 없기에 이런 사회 분위기가 염려스럽다. 술은 술을 부르고 담배는 담배를 부르고 자극은 더 큰 자극을 부른다. 미쳤다라는 유행어가 빨리 사라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9
  • 공검합니다.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5915 일상/생각(삼국지 전략판을 통하여 배운)리더의 자세 에메트셀크 25/12/21 13 0
15911 일상/생각만족하며 살자 또 다짐해본다. 2 whenyouinRome... 25/12/19 439 25
15910 일상/생각8년 만난 사람과 이별하고 왔습니다. 16 런린이 25/12/19 720 21
15907 일상/생각페미니즘은 강한 이론이 될 수 있는가 6 알료사 25/12/18 557 7
15905 일상/생각무좀연고에 관한 신기한 사실 5 홍마덕선생 25/12/18 493 3
15904 일상/생각조금은 특별한, 그리고 더 반짝일 한아이의 1학년 생존기 10 쉬군 25/12/18 407 28
15901 일상/생각두번째 확장 프로그램이 나왔습니다. 3 큐리스 25/12/16 442 6
15899 일상/생각PDF TalkTalk 기능 업글 했어요.^^ 제 몸무게 정도?? 4 큐리스 25/12/16 408 2
15896 일상/생각불행에도 기쁨이, 먹구름에도 은색 빛이 골든햄스 25/12/16 374 13
15893 일상/생각 크롬 확장 프로그램이 승인이 났습니다. ㅎㅎ 16 큐리스 25/12/12 1060 32
15889 일상/생각[뻘글] 철학자 존 설의 중국어방 문제와 LLM 은 얼마나 다를까? 13 레이미드 25/12/11 766 1
15886 일상/생각뭔가 도전하는 삶은 즐겁습니다. 4 큐리스 25/12/09 822 11
15874 일상/생각큰일이네요 와이프랑 자꾸 정들어서 ㅋㅋㅋ 14 큐리스 25/12/02 1317 7
15869 일상/생각상남자의 러닝 3 반대칭고양이 25/11/27 880 5
15867 일상/생각사장이 보직해임(과 삐뚫어진 마음) 2 Picard 25/11/26 893 5
15866 일상/생각기계가 모르는 순간 - 하루키 느낌으로 써봤어요 ㅋㅋㅋ(와이프 전전전전전 여친을 기억하며) 5 큐리스 25/11/25 812 0
15863 일상/생각창조론 교과서는 허용될 수 있을까 12 구밀복검 25/11/25 1279 18
15860 일상/생각식생활의 스트레스 3 이이일공이구 25/11/20 870 1
15859 일상/생각누구나 원하는 것을 얻는다. moqq 25/11/20 815 7
15844 일상/생각추위 속의 수요일 골든햄스 25/11/12 649 5
15843 일상/생각내가 크던 때와, 내 아이가 크기 시작한 때의 이야기 9 Klopp 25/11/12 932 12
15835 일상/생각집을 샀습니다. 8 절름발이이리 25/11/08 1164 13
15829 일상/생각마음이 짠합니다. 4 큐리스 25/11/07 921 5
15827 일상/생각짧은 이직 기간들에 대한 소회 27 kaestro 25/11/06 1215 5
15816 일상/생각요즘 단상과 경주 APEC 4 김비버 25/10/30 1168 13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