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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3/02/25 22:53:56
Name   당근매니아
Subject   [스포] 앤트맨3 : MCU의 황혼
많은 사람들이 MCU는 엔드게임을 기점으로 끝났다고들 말합니다.

저 역시 페이즈 1,2,3 영화 중에는 인크레더블 헐크를 제외하곤 늦게라도 다 감상하긴 했습니다.

아무리 봐도 이 영상물 시리즈는 영화보다도 계간드라마에 가까운 물건이었고, 전부 훑어봐야 이해가 가는 측면들이 꽤 있었으니까요.  당시에 별 관심 없어서 묵혀뒀던 영화들을 나중에 열어보면서 재밌는 작품과 그렇지 않은 작품들을 골라내 보자니, 그래도 그냥저냥 타임킬링 정도는 해주는 수준을 유지해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블랙팬서나 캡틴마블 같은 영화가 로튼토마토 역대 영화 순위의 최상단을 차지한 건 우습기 짝이 없었습니다.  지금 들어가서 보니 그런 논란을 의식한 것인지 아예 예전에 있던 역대 영화 순위 메뉴 자체가 없어진 것 같군요.

지금 이 글을 쓰면서 MCU 페이즈별로 포함되어 있는 영화 목록을 보니, 페이즈4 중에는 블랙팬서2를 제외하고 전부 감상했고, 페이즈5는 이번 앤트맨3편이 첫번째 영화였던 모양입니다.  드라마를 절반 정도 스킵했다 보니 엔드게임 이후로 꽤 많은 영상물을 안 보고 넘어갔다고 생각했는데, 제 생각보다 많이 본 셈이라서 꽤나 새삼스럽습니다.

여튼 이번 앤트맨3편을 보고 느낀 건 이 세계관이 더이상 유지되기 힘든 임계점을 이미 지나왔구나 하는 깨달음입니다.  관객 평가가 상당히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앤트맨3을 굳이 극장에서 감상한 건, 이 시리즈가 MCU 내에서 가오갤 시리즈 다음으로 제 마음이 들었던 솔로영화였기 때문입니다.  앤트맨 시리즈는 일상적인 풍경 안에서 벌어지는 액션을 강점으로 삼았고, 크기가 변화하면서 그런 일상이 서로 다른 스케일로 다가오는 의외성에 상당히 빚지고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질량보존의 법칙이 제맘대로 적용되었다가 말았다가 하는 점, 표면장력 등 미시세계에서 훨씬 강력하게 작용해야 하는 힘들이 대충 얼버무려지는 장면들은 제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긴 했습니다.

그런 과거에 비교해봤을 때 이번 3편은 기존의 장점을 전부 포기한 것처럼 보입니다.  아무도 살아남지 못한다던 양자세계에 말도 못하게 많은 생명체가 살아간다는 점은 뭐 그렇다 칩시다.  그 안에서 살아가는 작자들은 스타트랙이나 스타워즈 같은 스페이스오페라물에 주로 나오는 ㅡ 인간과 거의 유사한 신체구조를 가졌으나 알록달록한 피부색과 돌기, 뿔 정도에서 차이를 가지는 분장생명체 같은 모양새입니다.  근데 이건 이미 MCU의 다른 작품에서 써먹은 풍광이에요.  가오갤이죠.  그런데 앤트맨3편은 아트워크의 기초를 다른 영화에서 대강 차용해온 주제에, 성실하게 변명할 생각조차 없어 보입니다.  그 미시세계 안에서 발견되는 생명체 중 누가 봐도 인간 같아 보이는 이들에 대해서도 설명 대신 대강 뭉개버리고 넘어갔죠.  그리고 그 자들이 원래 여기서 살던 이들인지, 다른 세계에서 핌입자와 유사한 물질에 의해 축소되어 거주하게 되었는지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애초에 물분자보다 작은 쿼크 영역으로 떨어졌는데 그 세계에 존재하는 '물'은 대체 뭐죠.

기존 MCU 영화들은 세계 2차대전 시절(캡틴아메리카), 현대 배경의 하이테크놀러지(아이언맨), 북유럽풍 신화세계(토르), 스페이스오페라(가오갤), 마법이 현실화된 세계(닥터스트레인지), 아프리카풍 하이테크놀러지(블랙팬서) 등 시리즈별로 고유한 분위기를 세계관에 융합하기 위해 노력한 흔적들이 있었습니다.  이 영화는 기존 앤트맨의 분위기와는 너무도 이질적이면서, 가오갤의 아트워크와 그다지 구분되지 않는 세계만 줄창 늘어놓습니다.  몇몇 장면에서 맥락을 떼놓고 가오갤 1편의 적당한 시점에 대강 구겨 넣으면 별 문제 없이 어울리겠다 싶을 정도입니다.

스토리 측면에서도 구멍은 숭숭 뚫려있습니다.  주인공의 장모가 그 세계에 대해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이유도 딱히 설득력이 없고, 주인공 일행과 똑같은 시기에 같은 방식으로 축소되었던 개미들이 왜 그 세계에서 다른 시간선을 인정받아 문명을 일구는 수준까지 갔는지도 이해되지 않습니다.  개미에게 물어 뜯겨서 리타이어에 몰리는, 나름 세계관 최종보스 이야기는 따로 하고 싶지도 않군요.

케빈 파이기는 엔드게임 이후 진행되는 멀티버스 사가 내에서 ① 캉을 타노스를 대신할 메인빌런으로 삼고, ② 인피니티 사가의 기술력을 대체할 마법과 오컬트를 관객에게 납득시키며, ③ 차후 세계관을 확장하거나 다른 작품들을 흡수할 수 있는 발판으로서 멀티버스 개념을 들여오며, ④ 현실상의 문제로 2대를 들여야 하는 몇몇 캐릭터들을 안착시키고자 노력하는 걸로 보입니다.  그러나 평행세계가 도입되는 건 항상 각각의 서사에서의 캐릭터의 무게감이 급격히 줄어들고, 관객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장치가 보다 불어나게 되고, 결과적으로 스토리를 이해시키기 위한 설정 설명이 스토리보다 큰 비중을 가지게 되는 결말로 치닫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전 보통 즐겨보던 작품에 평행세계나 시간여행, 루프 같은 개념이 새로 도입되면 드랍하는 편입니다.  릭앤모티는 빼구요.  MCU 역시 이런 함정에서 그다지 자유롭지 못한 것처럼 보이네요.

여튼 이제 슬슬 이 세계관을 놓아주어야 할 때가 다가오는 걸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 캐시가 2대 앤트맨으로 부각되려고 하는 걸 보면서 느낀 건데, 멀티버스 사가 넘어오면서 하나씩 제시되고 있는 후계자 영웅 캐릭터 중에 남성이 있긴 한가요?  블랙위도우(엘레나), 블랙팬서(슈리), 아이언맨(아이언하트), 호크아이(케이트 비숍), 일시적이긴 했지만 토르(제인 포스터)까지, 하나씩 꼽아보다 보니 너무 노골적이어서 허술해보일 지경이다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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