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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5/05/05 01:18:38 |
Name | 그런데 |
Subject | 광명역에서 세 번의 목요일, 그리고 어머니 |
이 글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마지막 며칠의 이야기입니다. 더 잊기 전에 적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 어머니는 1년째 항암 투병 중이었습니다. 서울 큰 병원에서 항암제 주사를 맞기 위해, 또 검사를 위해 계시는 부산에서 저희 집으로 오십니다. 그 첫번째 목요일은 어머니가 오시는 날이었습니다. 다음날 의사와 보기로 약속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기차에서 내리는 걸음이 힘겹기는 하지만, 아직은 천천히 걸으실 수는 있어 부산에서 어머니 친구분이 태워주시면 제가 승강장까지 내려가서 모시고 옵니다. 걸음이 이전보다 영 힘드신 것 같습니다. 그래도 손에는 쑥떡이 든 종이상자를 들고 계십니다. 친구분께서 좋은 쑥으로 하셨다며 쥐어주셨답니다. 몇 달 전부터 어머니는 소변에 피가 섞여 나오고 있어 항암 스케줄이 몇 번 깨졌습니다. 부산에 있는 2차 병원에서 방광 내시경으로 방광 안으로 암 조직이 치고 들어온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그 병원은 친구가 의사로 있어 작년부터 여러 차례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암 치료하는 병원으로 자료를 보내며 전원 처리해 주었습니다. 그 방문일이 금요일입니다. 차로 모시고 병원 가는 길에 지나가는 것처럼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엄마는 장성한 자식이 죽었는데 식음을 전폐하고 장이 막혀서 얼마 못가 죽었다더라 운전하던 저는 그러니까 어떻게든 음식을 먹어야 해요. 엄마도 좀 더 드세요. 암조직이 장에 엉겨붙어 장 연동이 잘 안되고 따라서 소화가 잘 안 되기에 장폐색의 위험을 저와 어머니 모두 알고 있습니다. 의사와 면담에서, 방광 까지 들어온 암 조직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당장 어떻게 할 수가 없다고 합니다. 항암제를 계속 쓰는 수 밖에. 그 암조직이 허물어져 소변길이 종종 막히고, 그때마다 방광결석에 준하는 고통을 겪고 또 그걸 씻어내느라 소변줄을 꽂고 세척을 해야 하는 어머니는 너무 고통스러워 하십니다만 뭔가 대증 조치조차 할 수 없다는 의사의 말에 절망하십니다. 복수가 차올라 숨쉬기가 힘드시다며 오후에는 근처 내과에 가서 복수를 뺍니다. 그날 저녁은 아내가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공심채를 사서 굴소스, 새우, 가지와 볶아 내었고, 어머니는 맛있어 하며 평소보다 조금 더 드셨습니다. 다음날부터 어머니는 음식을 삼키지 못하십니다. 계속 토하셔서 걱정이 됩니다. 과식하셔서 그런가 생각하며 죽을 조금 준비했지만 먹고는 토하시길 반복합니다. 미음으로 해도 마찬가지, 심지어 물도 제대로 삼키지 못합니다. 변을 마지막으로 보신 게 화요일이라고 합니다. 변비가 심해서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일요일 아침 근처 약국에서 하제와 제산제도 사왔습니다만 나오는 게 없다고 하십니다. 변비라도 해결하자 싶어 근처 2차 병원으로 어머니를 모시고 가 관장을 부탁하였으나 엑스레이를 찍은 의사의 말은 대장 이하가 모두 텅 비어서 관장을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암 환자는 그 치료 이력을 모르고 또 어떤 상태인지 정밀 검사를 할 수도 없어서 응급실에서는 어떻게 해 줄 수 없다고 합니다만 답답하기 그지없습니다. 오시는 길에 요구르트는 들어갈 꺼 같다시길래 편의점에서 요구르트를 사왔지만 조금 드시고는 이내 토하십니다. 시원한 아이스크림을 말씀하시길래 평소 좋아하시는 더위사냥을 아이들을 시켜 사왔습니다만 역시 반 개도 못 드시고 역류합니다. 일요일 오후 이래서는 안 될 것 같아 항암 치료중인 대형 병원 응급실로 갔습니다만 10 시간 기다리거나 돌아가서 다른 병원을 가서 수액치료라도 받으라고 합니다. 그 병원에서는 영양제 수액은 없다고 합니다. 금식하고 수액을 맞아야 할 거라고 하면서도. 그 때가 일요일 저녁 6시입니다. 갈 병원은 119에 물어봐야 할 거라고 합니다. 10시간을 쭈그리고 있을 수는 없어서 모시고 집으로 와서 119를 불렀고 구급차가 이내 왔습니다만 암환자라고 하자 구급대원의 표정이 변합니다. 받을 수 있는 병원이 없을 것 같답니다. 치료 받는 병원으로 가시는 게 어떠냐지만, 제가 거기서 지금 왔다구요. 하는 말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인근 병원 응급실로 가 봅니다. 하지만 역시 그 병원에서도 어머니의 혈압이 낮다는, 자리가 없다는 핑계로 입원을 거부합니다. 밤을 지내고, 월요일 근처 내과를 찾아 수액을 맞을 수는 있었습니다만 계속 토하고 위액이 역류하는 데에는 대응이 없습니다. 화요일에는 동생이 와서 결국 암치료 병원 응급실로 갔고 아침 10시에 도착한 어머니는 검사 들어간 게 세 시 경 이런 저런 검사를 하여 암이 갈비뼈에도 전이되었다, 고칼륨혈증이 나와 수액으로 피 농도를 조절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새벽 6시에 또 바로 집으로 보냅니다. 그 병원은 입원하려면 무슨 상태여야 하는 걸까요? 돌아오신 게 수요일 아침이어서 이제 좀 물이라도 드시려나 생각하며 하루를 지냈지만 결국 나아지는 것은 없습니다. 어머니는 이제 호스피스를 말씀하십니다. 목요일 아침 병원에 전화해서 호스피스를 위한 소견서를 받기 위해 최종 진료를 요청하였습니다만 그것도 당일은 안 되고 원래 예약되어 있는 다음 주 화요일 오라고 합니다. 이제 더 기다릴 수는 없습니다. 물을 못 마신 지 5일째입니다. 부산에 있는 2차병원, 어머니가 여태 도움을 받았던, 으로 가는 것이 최선으로 보입니다. 그 친구에게 부탁하여 입원실을 어떻게어떻게 예약하고 친구는 가시는 마지막까지 계실 수 있도록 해 도와 주겠다고 합니다. 바로 부산으로 가는 기차표를 두 장 끊습니다. 이제 혼자서는 걸을 수 없으십니다. 광명역으로 택시를 타고 갑니다만 휠체어 서비스는 경황이 없어 예약하지 못했습니다. 힘들게 걸음을 옮기십니다. 내려가는 기차에서 머리가 빠지고 심하게 마른 어머니의 옆모습을 봅니다. 이제 기차를 더 타시지는 못할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부산에 있는 여동생의 차로 병원을 향하며 어머니는 광안대교의 바다를 보시며 뛰어들면 시원하겠다.. 고 그러십니다. 힘겹게 내려가서 입원을 하셨고 그나마 안도가 되었습니다. 여태까지의 검사결과도 있고 중환자실도 있는 병원이니까요. 저는 그날 밤차로 다시 상경합니다. 목요일 밤 11시의 광명역은 인적이 드뭅니다. 다음날 검사를 마친 친구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위 아래쪽이 아예 막힌 것 같다고 합니다. 십이지장 즈음에 암이 치고 들어왔거나 근처까지 온 암 때문에 위가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이미 자세한 검사를 하기 힘들다고 합니다. 복부로 내려가는 신경을 끊는 주사를 놔 드리면 고통이 덜하실 거라고 해서 그래 달라고 했고 서명을 보냈습니다. 어머니는 다음날부터 급격히 호흡이 힘들어졌습니다. 폐 사진에, 한 쪽 폐가 하얗게 변했다고 합니다. 계속 토하시던 게 목을 지나 폐로 갔나 봅니다. 친구는 주말을 넘기기 힘드실 거라 합니다. 그리고 어머니는 토요일 운명하셨습니다. 저는 토요일 낮에 급히 구한 기차로 다시 부산으로 갔고 어머니의 임종을 지켰습니다. 아무리 가쁘게 숨을 내쉬어도 산소 포화도는 60을 겨우 유지하고 맥박은 140을 찍는 것을 보며 마지막임을 알 수 있었고 숨이 잦아들며 잠에 들듯 어머니는 돌아가셨습니다. 삼남매는 병실 옆 준비실에 마련된 작은 공간에서 어머니의 임종을 보고 있었습니다. 토요일 저녁 7시 30분이었습니다. 장례식이라는 절차는 생각보다 무미건조하게 진행됩니다. 죽음에 익숙한 사람은 없고, 그렇다고 살면서 죽음을 겪지 않을 수는 없기에 정형화된 제도가 그 절차를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동생이 가 본 교통이 좋은 위치의 장례식장을 골라서 전화하는 것으로 절차가 시작되었고 이후는 4지선택에 가까운 선택만으로 결정이 진행됩니다. 이미 밤이 늦었으므로 장례는 일요일부터 치르기로 합니다. 역시 정형화된 장례식은 하라는 대로 하면 됩니다. 오시는 손님을 보면, 특히 어머니와 함께 만났던 상대방을 보면 그렇게 눈물이 납니다. 3일간의 장례식은 어머니의 화장으로 끝났고 화요일 오후에는 어머니는 작은 상자에 담겼습니다. 며칠간 혼자 계시던 집에 지내며 물건을 치우고 사망신고 등 몇 가지 처리하다 다시 올라오는 기차는 공교롭게도 다시 목요일 저녁이었습니다. 정확히 7일 전은 어머니를 부산에 모시고 간 후 오는 길이었다면 이제는 어머니를 보내고 오는 길이 되었습니다. 집으로 오는 버스를 타고 오는 제 손에는 어머니가 사서 한 번 밖에 쓰시지 못한 예쁜 파란색 트렁크가 더해졌습니다. 버리자니 아깝고 놔 두자니 버려질 이러저런 물건이 담겨 있는.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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